도서관 속 트윈세대 전용공간 ‘스페이스T’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도서문화재단씨앗의 김정민(왼쪽), 신혜미 실장. 서울 종로구에 있는 콘텐츠랩 ‘스토리 라이브러리’(위)와 ‘스토리 스튜디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도서관 속 트윈세대 전용공간 ‘스페이스T’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도서문화재단씨앗의 김정민(왼쪽), 신혜미 실장. 서울 종로구에 있는 콘텐츠랩 ‘스토리 라이브러리’(위)와 ‘스토리 스튜디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세종시 청소년들에게 최근 핫플레이스가 생겼다. 문을 연 지 6개월밖에 안 됐지만 주말이면 아침 일찍 달려가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들어갈 수 있다. 카페처럼 멋진 공간에 없는 것이 없다. 입장료도 무료이다. 눈치 볼 어른도 없고 잔소리하는 엄마도 없다.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1216 트윈세대 전용이다.

트윈세대는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낀 세대(between+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세종시의 12~16세 트윈세대들이 달려가는 곳은 다름 아닌 세종시립도서관이다. 사실 트윈세대는 도서관에서 사라지는 나이이다. 11세까지는 엄마 손 잡고 도서관을 찾고 17세부터는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지만 엄마 손을 벗어나는 12세가 되면 도서관에서도 벗어난다. 그런 아이들이 도서관을 스스로 찾아온 데는 이유가 있다.

 

도서관 속 새로운 도서관 ‘스페이스T’ 

지난해 11월 문을 연 세종시립도서관에는 다른 도서관에 없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도서관 3층에 위치한 트윈세대 전용공간 ‘스페이스 이도(SPACE IDO)’이다. 책이 빼곡한 서가로 채워진 풍경을 떠올려선 안 된다. ‘스페이스 이도’에는 골목길처럼 S자 모양의 곡선으로 이어진 원목 책장을 따라 다양한 공간들이 숨어 있다. 사운드존, 탐색존, 미디어존, 실험존 등 8개의 공간들은 각각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3곳의 창작존은 글, 그림, 만들기로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창작 도구를 모두 갖춰놓았다. 사운드존에서는 LP, CD, DVD로 음악을 듣고, 실험존에서는 무기나 자동차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존에서는 웹툰을 보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조용한 공간을 찾아 책을 읽는 아이들도 있다. 떠들고 뛰고 누워서 뒹굴거려도 말리는 사람은 없다. 입소문을 타고 도서관을 안 오던 트윈세대들이 이젠 도서관이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선다.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아이들도 있다. 주말엔 이용객이 많아 3부제 운영을 할 정도이다.

‘스페이스 이도’는 재단법인 도서문화재단씨앗(이사장 최휘영)이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스페이스T’ 프로젝트로 탄생한 공간이다. ‘스페이스T’는 지자체 대표 공공도서관 안에 트윈세대를 위한 전용 공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이다. 전주시립도서관 ‘우주로 1216’, 수원 슬기샘어린이도서관 ‘트윈웨이브’에 이어 ‘스페이스 이도’가 세 번째 공간이다.

도서문화재단씨앗이 공간 설계, 구축부터 시작해 공간에 넣을 콘텐츠 기획까지 기금과 운영을 지원한다. 2007년 출발한 도서문화재단씨앗은 도서관 속 어린이 작업실 ‘모야’, 트윈&틴 전용 ‘라이브러리 티티섬’, ‘기적의 도서관 2.0’ 프로젝트 등을 통해 도서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장시키는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 한 축이 ‘스페이스 T’이다. ‘스페이스T’의 두 번째 공간인 수원 슬기샘어린이도서관 ‘트윈웨이브’는 ‘2021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서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스페이스T’ 프로젝트로 탄생한 트윈세대 전용공간인 세종시립도서관 ‘스페이스 이도’. photo 도서문화재단씨앗·딤스튜디오
‘스페이스T’ 프로젝트로 탄생한 트윈세대 전용공간인 세종시립도서관 ‘스페이스 이도’. photo 도서문화재단씨앗·딤스튜디오

MZ세대, 트윈세대에게 배우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스페이스T’의 베이스캠프가 있다. ‘스토리 스튜디오’와 ‘스토리 라이브러리’이다. ‘스페이스T’에 들어가는 콘텐츠가 집약돼 있는 곳으로 R&D(연구개발) 랩인 셈이다. 이곳에서 ‘스페이스 T’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두 명의 MZ세대를 만났다. 도서관의 정의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 ‘도서문화재단씨앗’의 김정민(36) 콘텐츠랩 실장과 신혜미(36) 공간사업실 실장이다. 이들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도서관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트윈세대를 주목하고 도서관 속에 전용 공간을 만든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주목해서 들어야 할 내용이다.

“트윈세대는 자기 시간이 가장 많은 세대입니다. 부모 손에서는 벗어났고 입시는 아직 멀어요. 이때가 자신을 탐색하는 나이입니다. 새로운 자극을 주고 새로운 경험을 주면 훨씬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김정민)

“놀이터도 도서관도 편하게 이용할 수 없는 나이, 시간은 많은데 정작 갈 곳이 없습니다. 또래 친구랑 갈 수 있는 곳이 편의점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거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인데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공부방과 학원의 격차뿐만이 아니라 거실에서 주는 경험의 격차도 큽니다. 누구나 좋은 거실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편안하게 쉬면서 자유롭게 뭔가를 할 수 있는 곳, ‘공공의 거실’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스페이스T의 방향이었습니다.”(신혜미)

“안전한 곳에서 자신을 탐색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하려면 어디여야 하지? 그 답이 공공도서관이었습니다. 도서관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안전하고,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돼 있는 곳입니다. 미술관, 박물관보다는 문턱이 낮습니다. 제3의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 공공도서관 안에 트윈세대 전용공간을 집어넣자고 생각하고 2019년부터 공모를 통해 공공도서관과 손잡고 ‘스페이스 T’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김정민)

이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시작점은 ‘도서관에 발을 끊은 트윈세대들을 어떻게 다시 불러들일까?’였다.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그 세대가 뭘 하고 싶은지를 알아야 했다. 먼저 트윈세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10대는 유튜브랑 게임을 제일 좋아하지 않아?” “대세 아이돌, 대세 유행템을 좋아하겠지.” 대부분의 어른들처럼 두 MZ세대도 처음엔 선입견으로 트윈세대들을 판단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를 보고 두 사람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대답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이유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세상과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관이 뚜렷해지고, 덕질이 시작되는 나이였습니다. 달리 할 것이 없어서 유튜브와 게임을 한다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김정민)

“또래들을 만나 취향을 공유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며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이 시기는 기존 도서관 분류 체계대로 꽂혀 있는 서가가 아닌 동적인 탐색이어야 합니다.”(신혜미)

수원 슬기샘어린이도서관 ‘트윈웨이브’. photo 도서문화재단씨앗·딤스튜디오
수원 슬기샘어린이도서관 ‘트윈웨이브’. photo 도서문화재단씨앗·딤스튜디오

‘탐색’과 ‘창작’의 키워드로

아이들의 생각을 담는 과정은 설문조사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디자인 워크숍 등을 열고 설계, 감리, 공간 이름을 짓는 것까지 함께했다. 그래서 전주, 수원, 세종 3곳은 공간도 이름도 모두 다르다. 도시의 환경에 따라, 도시의 경험에 따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찾은 키워드가 ‘탐색’과 ‘창작’이었다.

다음으로 ‘스페이스T’를 위해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끄집어내고 표현하고 소통하는지 알기 위해 혜화동에 10대들을 위한 작업실을 내세운 ‘스토리 스튜디오’와 ‘스토리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두 공간은 쓰고, 읽고, 듣고, 녹음하고, 만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두 공간에는 그 결과물이 전시돼 있었다. 음악, 웹툰, 영화, 공작 도구 등 다양한 선택지가 널려 있는 ‘스토리 스튜디오’에는 나무로 만든 집, 로봇, 무기부터 탁구대까지 아이들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19세까지 이용이 가능한 ‘스토리 라이브러리’는 북바인딩 도구가 있어서 책을 직접 쓰고 만들 수 있다. 이곳에서는 모두 ‘작가’이다. 김정민 실장은 “반려견이 죽은 후 겪은 힘든 시간을 깨알 같은 글씨로 써서 만든 책을 읽고 코끝이 찡했다”고 말했다. 서가에 꽂힌 책에 밑줄을 그어도 되고 낙서하듯 글귀를 적어도 괜찮다. 같이 볼 수 있는 예의만 지키면 된다. 책이 경건한 존재가 아니라 여기선 놀이처럼 즐거운 것이다. 책을 직접 만들고 자신이 만든 작품이 전시되고 소셜미디어에 소개되는 경험을 한 아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두 공간 모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경험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경험을 할지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자신을 알아간다.

“친구 따라 왔다가 공작에 빠져 2년 동안 117회, 400시간 이용 기록을 세운 아이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작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가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해 만들기 장인이 됐습니다. 그 친구의 작업물만 모아 놓은 전시 공간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자기는 작업을 평생 취미로 가져갈 거라고 말하는데 감동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직업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줄 알게 됐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김정민 실장의 말이다.

신혜미 실장은 “아이들은 상시성과 자유를 주었을 때 그 선택권을 본능적으로 잘 사용합니다. 여기 오기 위해 학원 숙제를 몰아서 하고 지방에서도 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이들은 기를 쓰고 옵니다. 좋은 선택지를 주면 아이들은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주시립도서관 ‘우주로 1216’. photo 도서문화재단씨앗·딤스튜디오
전주시립도서관 ‘우주로 1216’. photo 도서문화재단씨앗·딤스튜디오

도서관의 정의를 바꾸다 

‘스토리 스튜디오’에서 유일하게 할 수 없는 것은 게임이다. 단골 중에 몰래 게임만 하던 초등학생이 있었다. “게임은 안 되고 게임을 만들거나 게임 영상을 만드는 것은 괜찮다”고 알려줬더니 어느 날 게임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게임에 나오는 소품을 직접 만들어 보더니 다음엔 게임 영상 편집에 빠졌다. 김정민 실장은 “기회를 주고 기다리면 결국 자기 길을 찾아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혜화 콘텐츠랩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을 알아가는 탐색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쌓인 데이터들은 ‘스페이스T’에 적용된다. 세종시립도서관 ‘스페이스 이도’의 김연은 주무관은 “트윈세대는 워낙 도서관에 안 오는 나이라서 공간을 만들어놓고도 과연 올까 싶었는데 깜짝 놀랐다. 창작존을 가장 좋아하고 같은 취미나 책 취향에 따라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주말이면 줄을 서고 한 달에 20일을 오는 친구도 있다. 아이가 안 보이면 으레 여기 있는 줄 알고 전화하는 부모도 있다”고 말했다. ‘스페이스 이도’는 얼마 전 공간을 궁금해하는 부모들을 위해 ‘오픈 데이’를 했다. 김 주무관은 한 엄마가 남긴 메모에 큰 감동을 받았다. 메모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아이가 ‘이도’에 갔다 올 때 너무 행복하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스페이스 T’의 피드백은 다양하다. 김정민·신혜미 실장은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일을 안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천국 같아요.”

“17세 돼서 못 오면 어떡하지?”

그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내가 뭘 잘하는지 발견할 기회가 없었는데 새롭게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이다.

“과거에는 크리에이티브가 옵션이었다면 이젠 생존과 연결됩니다. 공부와 대학이 아닌 경험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스페이스T는 아이들의 미래로 연결되는 공간과 기회를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곳입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도서관에 ‘스페이스T’를 계속 확산하고 싶습니다.” 신혜미 실장의 말이다.

김정민 실장은 “아이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단어 중에서 ‘처음’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그 나이는 뭐든 처음 경험하는 것이 많은 나이입니다. 부모의 손을 떠나서. 그 첫 경험이 어땠느냐에 따라 인생의 중요한 것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그 처음을 만들어주는 안전한 공간이 도서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신했습니다.”

도서관의 정의를 ‘한 사람의 성장에 필요한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도서관의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기존의 도서관에서 책만 상상했다면 ‘성장’이라는 키워드 아래에서는 새로운 자극, 새로운 경험, 예술, 좋은 친구, 좋은 연결 등 상상할 수 있는 단어들이 무한히 많아진다.

꼭 공부가 아니어도, 경쟁을 하지 않아도, 부모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미래를 탐색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트윈세대가 어른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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