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7일, 고(故) 조양호 회장 추모사진전에 참석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photo 대한항공
지난 6월 7일, 고(故) 조양호 회장 추모사진전에 참석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photo 대한항공

대한항공 조원태 회장의 ‘폭탄발언’에 부산시가 뒤숭숭하다. 조원태 회장이 오는 2025년경 대한항공 계열의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와 아시아나항공 계열의 LCC 에어부산·에어서울 등 3사(社)를 합쳐 출범할 예정인 ‘통합 LCC’의 브랜드로 ‘진에어’를 낙점하고, 통합 LCC 허브공항으로 인천공항을 쓰겠다고 밝히면서다. 조원태 회장은 지난 6월 22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참석차 카타르 도하를 방문한 자리에서 항공전문지 ‘플라이트 글로벌’과 인터뷰를 갖고, “통합 LCC의 브랜드는 진에어, 통합 LCC의 허브공항은 인천공항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030년 유치예정인 부산엑스포를 앞두고 가덕도신공항 조성을 추진 중인 부산시는 당초 통합 LCC가 부산 가덕도신공항을 허브로 택해주길 내심 기대해 왔다. 하지만 조원태 회장이 통합 LCC 허브를 인천으로 못 박고, “인천을 중심으로 운항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가덕도신공항에는 일단 비상등이 켜졌다. 조원태 회장은 “부산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긴 하지만, 우리는 부산을 두 번째 허브(secondary hub)로 유지할 것”이란 구상도 함께 밝혔다.

 

조원태 “부산은 두 번째 허브”

대한항공은 지난 6월 13일,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로부터 진에어 지분 전량(54.91%)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통합 LCC 재편의 첫발을 내디딘 바 있다. 당초 계획대로 오는 2025년경 통합 LCC가 출범하면 LCC 업계 1위 제주항공을 제치고 사실상 국내 2위 항공사가 된다. 하지만 통합 LCC가 인천공항을 허브로 항공기를 띄우면 가덕도신공항은 노선배정 등에서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부산시 입장에서 이 같은 구도는 에어부산이 부산 김해공항을 허브로 항공기를 띄워온 것만도 못한 결과다. 심지어 통합 LCC가 부산이 아닌 인천공항을 허브로 사용하면, 허브공항 유치는커녕 항공사 본사마저 서울이나 인천 등지로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통합 출범 예정인 LCC 3사 가운데 2곳(진에어, 에어서울)이 서울에 본사를 두고 항공수요가 많은 인천을 중심으로 운항하는 상황에서, 항공사 허브를 인천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것은 사실상 모험에 가깝다. 게다가 대한항공은 인천과 강한 연고를 갖고 있다. 노태우 정부 때 수도권신공항을 인천 영종도로 낙점할 때도 대한항공의 적지 않은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에어부산이 본사를 두고 허브공항으로 쓰는 부산 김해공항은 항공수요도 수도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소음피해 등을 이유로 24시간 공항 사용도 불가능하다. 24시간 운영을 목표로 조성 예정인 가덕도신공항은 특별법을 바탕으로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해상매립에 따른 막대한 공사비에 환경파괴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언제 완공될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국토부가 밝힌 가덕도신공항의 예상 완공시점은 오는 2035년이다.

게다가 국토부가 가덕도신공항은 국제선 전용공항으로 사용하고 김해공항의 국내선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통합 LCC로서는 공항 이원화에 따른 운영부담이 크다. 수도권과 달리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기도 힘든데, 공항이 국제선과 국내선 두 곳으로 쪼개지면 부담이 늘 수 밖에 없다. 항공기 회전을 극대화해야 하는 LCC로서는 국제선과 국내선을 통합 처리하는 기존 김해공항만도 못한 상황이다.

부산시의 이 같은 위기감은 업계 3위 LCC인 티웨이항공이 본사를 서울에서 대구로 옮기기로 한 것과도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전까지 대구~방콕 등 대구발 국제선 노선을 띄워온 티웨이항공은 오는 7월 5일 대구공항에서 대구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아예 본사를 대구로 옮기기로 했다. 티웨이항공의 전신이 2004년 충북 청주시의 지원을 받아 청주공항을 허브로 출범한 국내 최초 LCC ‘한성항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구시로서는 월척을 낚아올린 셈이다.

홍준표 신임 대구시장도 지난 6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티웨이항공 본사가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기로 합의를 봤다”며 “앞으로 대구 통합신공항을 거점으로 여객, 물류를 전 세계로 운송하는 대한민국 핵심 항공사로 도약하는 데 대구시가 행정적으로 전폭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는 2028년 개항을 목표로 하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은 대구공항을 완전폐쇄하고 옮겨가는 터라 항공사로서는 가덕도신공항과 달리 공항 이원화에 따른 운영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부산시, 통합 LCC 본사 유치 사활

자연히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으로 촉발된 LCC 업계 재편으로 대구에도 쫓기는 상황이 된 부산시는 가덕도신공항 조성에 앞서 LCC 허브나 본사 유치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생 공항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개 이상 항공사의 허브를 유치하는 것이 필수다. 가덕도신공항의 모델인 일본 오사카 간사이(關西)공항 역시 전일본공수(ANA) 계열 LCC 피치항공의 허브다. 간사이공항에 본사를 둔 피치항공이 오는 8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운항을 재개하는 노선도 오사카(간사이)~인천 노선이다.

하지만 국내 LCC의 경우, 나름 확고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는 터라 당장 부산으로 옮겨갈 만한 항공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국내 1위 LCC인 제주항공은 제주도가 지분을 갖고 있어 제주공항을 허브로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견건설업체 ‘성정’에 인수된 이스타항공은 전라북도에 연고를 갖고 있어 새만금공항(예정) 조성 시 1순위로 옮겨 갈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는 오는 2029년까지 새만금공항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 밖에 신생 LCC인 에어로케이는 충북 청주공항, 플라이강원은 강원도 양양공항, 에어프레미아는 인천공항을 각각 국제항공운송면허 발급 당시 거점공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운송면허 발급 당시 거점공항 3년 유지조항을 걸어둔 관계로 당장 거점공항을 옮기기는 쉽지 않다. 이 밖에 소형항공기를 운항하는 하이에어는 서울에 본사를 두고 울산공항을 거점공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부산 지역 상공인들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무산에 대비해 에어부산의 지분을 추가로 인수해 에어부산을 독립항공사로 존속시키는 방안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합병승인을 받았으나, 미국·EU(유럽연합)·중국·일본 경쟁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과 그 자회사인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은 별도 매각을 통한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때 부산시나 부산지역 기업이 에어부산의 지분을 인수해 가덕도신공항을 모항으로 하는 부산지역 항공사로 남기자는 것이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진에어와 에어부산은 주력기종이 각각 보잉과 에어버스로 달라 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며 “부산시로서도 통합 LCC 본사마저 빼앗길 바에 에어부산 존속이란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부산시 신공항추진본부의 한 관계자는 “기업결합심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검토 중”이라며 “에어부산 본사 이전과 관련해서도 산업은행 등 관계기관과 다양하게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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