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취임 100일 기자회견장에 선 윤석열 대통령이 한 기자에게 노동개혁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곧바로 독일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지금의 노동법 체계는 과거 2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하는 법체계다.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산업구조하에서는 적용될 노동법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 “독일에서 사민당이 노동개혁을 하다가 정권을 17년 놓쳤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경제와 역사에 매우 의미 있는 개혁을 완수했다.”

‘노동·연금·교육’의 세 분야는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3대 개혁 과제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답한 ‘개혁’이란 독일의 ‘하르츠(Hartz) 개혁’을 말한다. 하르츠 개혁은 독일의 노동시장을 뒤바꾼 대표적인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다. 시행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독일 내 사회적 대논쟁을 불러일으킨, 그리고 독일 사회에서 이견이 이처럼 컸던 사례가 없었던 개혁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논쟁적 개혁을 윤 대통령은 롤모델로 삼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셈이다.

 

대통령마다 다른 ‘하르츠 개혁’ 접근법

‘하르츠 개혁’은 과거 11.3%까지 치솟은 독일의 실업률을 잡기 위해 2002년 독일 정부가 시작했던 변화였다. 핵심은 이랬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실업률을 감소시키고 고용률을 증가시키자는 쪽에 중점을 뒀다. 시간제 일자리인 ‘미니잡(mini job)’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 법의 규제를 풀고 노동자 해고 보호 조처도 완화했으며 파견 노동에 관한 규제도 대거 풀어버렸다.

개혁의 결과는 어땠을까. 숫자로는 효과적이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실업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상황을 맞았지만 독일의 실업률은 오히려 감소했다. 하지만 숫자와 달리 세간의 평가는 상반된다.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의 진짜 환자 취급을 받던 독일을 다시 부흥시킨 성공적 노동 개혁”이라고 호평했다. 반면 독일 유력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하르츠 개혁을 두고 “2차 대전이 끝난 1949년 이래 가장 큰 폭의 복지 삭감”이라고 비판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시장 유연화와 더불어 공적 보호망까지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독일 내에서는 하르츠 개혁의 핵심을 ‘노동시장 유연화’보다 실업 문제를 다루는 사회보장제도를 전면 재편한 점이라고 본다.

일단 우리의 실업급여에 해당하는 독일의 실업보험(Arbeitslosenver-sicherung)의 수급 기간이 조정됐다. 원래는 최대 32개월이던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최소 12개월로 하향 조정됐다. 여기에 더해 수급자의 자산 공제 기준과 소득 공제 기준을 하향 조정해 적용 대상 범위도 축소했다. 국가와 수급자 사이의 관계는 이로써 완전히 새로 설정됐다.

이런 하르츠 개혁은 과거 정부에서도 노동 개혁의 단골 예시로 언급돼 왔다. 윤 대통령 이전에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도 독일의 개혁을 소환했는데 정부의 지향점만큼이나 각각 주목하는 포인트가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은 최대 국정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하르츠 개혁을 들고 나왔다. 독일의 고용 기적에 방점을 찍었고 관심을 뒀다. 문 전 대통령은 하르츠 개혁으로 가는 과정에 좀 더 주목했다. 2018년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을 당부하며 ‘하르츠 개혁’을 언급했다.

이처럼 역대 정권이나 현 정권 모두 하르츠 개혁을 바이블처럼 여기고 국내에 적용해보길 원했다. 문제는 하르츠 개혁을 도입하려면 양국 사이에 비슷한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독일의 배경과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매우 다르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과 한국의 노동 개혁을 위한 함의’라는 논문을 썼던 임유진 강원대 교수(정치외교)는 하르츠 개혁을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한편 복지 혜택을 축소해 실업자들의 구직활동에 대한 자발적인 이니셔티브를 강화하기 위한 노동시장 개혁”이라고 봤다.

임 교수는 “하르츠 개혁은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 보호가 잘 이루어진 노동환경에서 노동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부분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모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대로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미 충분하게 유연화돼 있기 때문에 실업자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역시 상당히 취약하다”고 그 차이를 설명했다.

원래 독일은 고용 보호에서 엄격한 전통을 가진 국가였고 비정규직의 비율도 낮은 수준에서 유지돼 왔다. 하지만 하르츠 개혁이 만든 미니잡 또는 미디잡 등 비정규직이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라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문제다.

안진수 노무법인 유앤 파트너 노무사는 “한국은 사회안전망 부족을 고용보험 확대라는 궁여지책으로 상쇄하려는 곳이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고용보험 같은 것도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짜여 있는데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 유연화를 꾀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호의 틀 속에서 벗어나게 된다. 틀 밖의 노동이 늘어나는 현상이 생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하르츠 개혁 같은 시도가 성공하려면 노동 유연성을 고려해 볼 수 있을 정도의 사회안전망 강화가 필요하다. 약해졌다는 독일의 안전망이 지금 우리 제도보다 강하다. 실업급여만 해도 우린 최장 210일인데 독일은 최소 

1년이다. 보완책도 없다면 어떤 노조가 노동을 유연화하자는 데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제도 개선안 내놓을 12명의 교수들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은 불을 보듯 뻔하다. 독일보다 훨씬 정치적·사회적 양극화가 심한 곳이 한국이다. 따라서 하르츠 개혁의 성과보다는 설득의 과정을 차용하는 건 고려해 봄 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개혁이 취했던 형식을 빌리자는 얘기다. 임 교수는 “개혁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한국적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교훈을 얻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 방법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르츠 개혁을 시작했던 게르하르츠 슈뢰더 총리는 2002년 15명의 전문가들로 ‘하르츠 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 8월 18일 발족한 우리의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이하 노동연구회)’는 슈뢰더의 ‘15인 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다만 참가 위원 모두가 교수로 구성된 노동연구회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노동 개혁 관련 공약을 들여다보며 산적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노동연구회에 참가하는 한 위원은 “아마도 임금근로자 위주로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긱(Gig) 노동자처럼 사회보험 혜택의 밖에 있는 노동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더 꼼꼼히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나 여건으로 볼 때 쉽지 않은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노동위원회가 내놓을 제도개선안은 독일처럼 이견이 큰 결론이 나올까, 아니면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이 나올까. 앞으로 4개월 뒤면 등장한다.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