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4일(현지시각) 기자회견장에서 발언 중인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4일(현지시각) 기자회견장에서 발언 중인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photo 뉴시스

2022년 12월 초만 해도 경기침체 경고 속에서 일부 낙관론이 흐르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한편에서는 침체의 폭과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왔다. 로이터통신이 실시한 설문조사는 이런 낙관론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코노미스트들 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48명 중 35명은 “침체의 기간이 짧고 깊이도 얕을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 12월 14일(현지시각)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런 낙관론에 재를 뿌리는 경고를 다시 한번 내놨다. 이날 2시 연방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결과가 나왔는데 일단 기준금리는 0.5%포인트가 인상돼 4.25~4.5%가 됐다. 여기까지는 시장의 예상대로 진행됐다. 다만 통화정책 성명서와 경제전망, 점도표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달랐다. 매파적 의견이 가득했다.

 

“시장의 이견? 연준이 강제할 것”

먼저 봐야 할 건 연준의 발표 내용이다. 연준은 매번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기조 변화를 기대했던 시장의 바람은 완전히 깨졌다. 성명서에는 여전히 대폭적인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담겼다. 이전 성명서에서 반복해 등장했던 ‘지속적인 인상(ongoing increases)’이란 표현이 수정될 것이다, 그래서 기조 변화를 보여줄 것이다 등의 기대는 무너졌다. 문구 수정도 없었고 톤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변화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인상’이라는 표현은 살아있었다.

공개한 점도표(dot plot)도 놀라웠다. 세계 경제에 영향을 크게 끼치는 연준 내 19명의 위원들은 2023년 말까지 도달할 기준금리 중앙값을 5.00~5.25%로 예측했다. 점도표는 적정 금리가 어느 정도 돼야 할지 체크하는 도표다. 이들이 내놓은 예측은 시장이 예상했던 4.8%보다 높았다. 19명 중 17명이 5% 이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의견이다. 이는 2023년에도 연준이 0.75%포인트의 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점도표의 꼭지점은 2023년 12월을 기준으로 작성됐기 때문에 적어도 2023년에 금리가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강하게 시사했다.

이후 있었던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결과 발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드러운 메시지 대신 강경한 이야기만을 뱉었다. 파월의 메시지 중 몇 가지만을 살펴봐도 그랬다.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리기 위한 통화정책을 달성하려면 기준금리의 지속적 인상이 적절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금리 인하는 보지 못할 것이다” “역사는 조기 완화에 대해서 경고해 왔다. 2023년 금리 인하는 경제전망에 들어있지 않다” “인플레이션 목표 변경은 어떤 상황에서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파월의 발언 탓에 시장은 혼란스러웠다. 매파적 의견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를 묻는다. 파월 의장은 2023년 중 금리가 내려가는 쪽으로 전환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시장은 과연 그렇게까지 할까 의심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12월 27일 펴낸 ‘내년 글로벌 경제여건 및 국제금융시장 전망’ 보고서를 보면 월스트리트의 10개 투자은행(IB) 중 과반이 넘는 6곳이 연준이 새해에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의 발언과는 전혀 다른 예측이다.

하지만 연준은 시장을 강제할 힘을 갖고 있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연준은 성장을 늦추고 실업률을 높이고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만약 시장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연준은 그것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준의 2023년 경제전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 2023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2%에서 0.5%로 크게 내려간다. 둘, 물가상승률은 3.1%에서 3.5%로 수정했다. 셋, 이에 따라 최종 금리도 지난 9월 FOMC 때는 4% 중반대였지만 이번에는 5%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더욱 커진 경기 침체 경고음을 발동했다.

지난 12월 23일 미국 뉴욕 퀸스의 한 식료품점 창문에 상품들의 가격이 붙어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23일 미국 뉴욕 퀸스의 한 식료품점 창문에 상품들의 가격이 붙어있다. photo 뉴시스

‘서비스업-임금-인플레이션’의 연결고리

연준은 왜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일단 경기 관련 지표가 예상치보다 악화됐기 때문이다. 일단 물가를 보자. 1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7.1%, 전월과 비교해 0.1% 상승했다. 수치 그 자체만 보면 높지만 5개월 연속 상승폭은 둔화세였다. 문제는 서비스 물가다. CPI의 서비스물가는 전월과 비교해 0.4% 올랐다. 10월의 0.5%보다는 상승 폭이 줄었지만 근원 상품 물가가 전월보다 0.5%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서비스 분야만 대조적으로 크게 올랐다.

서비스물가 상승이 중요한 건 임금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연준이 긴축을 고집하며 강경하게 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금 상승 흐름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서비스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내려가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있다”면서 “서비스물가에 큰 영향을 주는 노동시장이 매우 과열돼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물가에 영향을 주는 큰 요인인 미국의 집값은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임금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다는 걸 그는 경계했다.

실제 미국의 고용지표는 다른 지표와 비교했을 때 매우 좋다. 노동시장의 견고함을 보여준다. 지난 12월 22일 공개된 12월 11~17일(현지시간)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21만6000건이다. 전주(21만1000건)보다는 소폭 증가했지만 여전히 전체 조사 범위를 놓고볼 때 지표 하단에 위치한 결과다.

실업수당 청구는 노동시장의 현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연준은 2023년 실업률 4.6%를 전망치로 내세웠는데, 현재 수치인 3.7%보다 0.9%가 올라야 이룰 수 있다. 사실 이마저도 2021년 6%대 실업률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세계 3대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을 공동 설립한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파월 의장은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수는 없겠지만, 실업률이 4%나 5%, 또는 6%로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길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앤 스완크 KPMG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의 12월 발표 뒤 공개한 리포트에서 “장기간의 경기 둔화, 그리고 실업률 상승이 인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반대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과거와 비교해 매우 낮으니 연준의 뜻대로 되지 않는 셈이다.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이런 시기에 고용시장이 활황이라는 건 앞뒤가 안 맞아 보이지만 그만큼 미국의 노동인구가 감소해서 생긴 결과다. 일할 수 있는 사람보다 일자리가 많으니 구직자는 여러 곳의 일자리 중 가장 많은 임금을 주는 곳을 골라서 갈 수 있고 구인 쪽에서는 높은 임금을 내세워 사람을 구하려고 한다. AP통신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사망한 노동연령층이 약 40만명에 육박했고 합법적 이민자 숫자도 약 100만명 감소했다. 현재 미국의 일자리 수요는 대략 1000만개 정도인데 일자리를 구하는 구직자는 6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구직자 우위의 시대다.

미국이 3%대라는,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의 실업률을 유지하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물론 실리콘밸리 등을 중심으로 화이트칼라 부문의 해고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것 역시 일시적이다. 지난 12월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구인·구직 사이트 잡리크루터의 설문조사를 인용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최근 테크기업에서 실직한 노동자 중 79%가 구직을 시도한 지 3개월 이내에 새 직장을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딘가에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더라도 여전히 사람을 구하는 기업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

다른 지표들도 경기침체의 시그널이 된다. 지난 11월 미국 소매판매는 하락세였는데 전체 소매판매 총액은 6894억달러로 10월과 비교해 0.6% 감소했다. 언론에서 예상한 감소폭이 대략 0.2~0.3%였으니 두세 배 더 감소한 셈이다.

미국은 내수가 떠받치는 국가다. 개인의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2를 차지하는 기둥이다. 특히 11월은 블랙프라이데이와 사이버먼데이가 포함돼 있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적극적으로 여는 시즌이다. 문제는 대규모 할인 기간에 온라인 상점판매는 0.9%가 하락했다는 점. 미국인들의 소비심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소매판매에서 유일하게 서비스로 분류되는 식음료 서비스 분야가 0.9%나 상승한 건 앞서 언급한 서비스 물가상승과 임금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다. 상품 수요는 감소하는데 서비스만은 예외인 상황이다. 서비스 수요가 견고하다는 건 그만큼 서비스 분야의 고용을 유발하고 이 부문 임금 인상이 일어나면서 인플레이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파월 의장이 우려하는 서비스 분야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이런 고리를 이룬다. 상품 수요는 빠르게 감소하고 부동산 가격도 하락하는데 서비스와 노동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띠는 지금의 지표들이 연준을 긴장시킨 이유다.

 

유럽과 일본의 공조, 연준에 힘 실려

피벗을 두고 시장은 연준과 이견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이 연준과 긴축 공조에 나서면서 연준 쪽 의견에 점점 힘이 실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박민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12월 FOMC 직후에는 연준의 긴축 장기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의 결정으로 연준 주장에 힘이 실렸다. 침체를 예상하면서도 기준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는 유럽중앙은행과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긴축 시그널을 보낸 일본은행의 결정은 시장에 형성된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의 후반’이라는 인식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침체가 온다면 새해 3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 블룸버그통신 산하 연구소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지난 12월 25일 ‘2023년 세계 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미국에 경기 침체가 온다면 내년 3분기가 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2년 3.1%였던 세계 경제성장률이 2023년 2.2%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통 2.5% 미만을 ‘둔화’라고 표현하지만 ‘침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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