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 폭파 현장. 이날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은 관리 지휘소시설 7개 동을 폭파했다. photo 뉴시스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 폭파 현장. 이날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은 관리 지휘소시설 7개 동을 폭파했다. photo 뉴시스

최근 대북인권단체 TJWG(전환기정의워킹그룹)는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들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 매핑’이라는 보고서에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있으며, 이 오염된 지하수가 인근 하천 및 바다로까지 유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근 지역에서 나는 농수산물이 중국산으로 둔갑해 국내 시장에까지 퍼져 있는 현황을 감안하면 그에 따른 추가적 피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6차례에 걸친 대규모 핵실험이 있었던 이곳의 방사성 물질 유출 가능성을 4년 전부터 조사해왔고 북한 지도를 활용해 예상 피해 영향 범위를 그려냈다.

 

풍계리 탈북민 40명 중 9명이 ‘이상 수치’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성 물질 유출 피해 가능성을 가장 유의미하게 유추해볼 수 있는 조사는 탈북민 피폭 검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핵실험이 시작된 2006년부터 2017년 사이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지역에 거주하다가 2022년까지 입국한 탈북민은 900명 가까이 된다. 이 기간 인근에서 살다 온 주민들은 원인 모를 통증이나 희귀병 증상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2017년과 2018년 방사선 피폭 및 방사능 오염 검사 종합 분석을 시행했으나 두 번으로 그쳤다. 지난 2월 21일 이를 지적하는 내용의 해당 보고서가 발간되자 통일부는 지난 2월 24일 브리핑을 통해 탈북민 방사선 피폭 검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가 5~6년 전 피폭 검사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전수 검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동시에 정부에서 각별히 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시 통일부가 맡아서 진행한 두 차례의 검사는 절차 및 내용에서 부족했다는 사실이 향후 대거 발견됐기 때문이다. 2년에 걸쳐 총 40명만 검사를 받았고, 이 중 9명에게서 이상 수치가 나왔음에도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한 추가 검진이나 치료 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는 이 같은 결과를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고 국회의원 요청에 따라 사후적으로만 자료를 제출했다. 전문가들이 이 사안과 관련해 “풍계리 지역 지하수가 오염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입을 모은 만큼, 사안의 심각성에 맞게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풍계리 지하수 오염은 통제 불능” 

한반도 북동쪽에 있는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고 지하수가 오염되었을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6차에 걸쳐 진행된 북한의 핵실험 과정에서 방사성 물질이 갱도 밖으로 누출되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어떤 핵폭탄으로 북한이 실험했는지 알 수 없기에 정확히 어떤 종류의 방사능 물질(핵종)이 나왔는지, 지난 2017년 북한이 풍계리 실험장을 폭파하면서 지상으로 오염물질 누출 경로가 차단됐는지 등을 확인하기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이후 인근 지역에서 자연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고 지하 핵실험장이 있는 만탑산 지반이 50㎝가량 가라앉는 등 표면 변형이 확인되면서 우려는 현실에 가까워졌다. 2017년 전문가 참고인으로 국회에 출석한 서울시립대 이수곤 교수는 지진 현상이 지반 균열과 침하, 방사선 누출을 시사한다며 “무서운 것은 지하수다. 지하수는 아웃 오브 컨트롤(통제 불능) 상태”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도 “산이 (공중으로) 떴다가 40~50㎝ 팍 주저앉았다고 생각해보라. 그 일대 전부가 쫙 균열이 간다”며 “아무리 산이 화강암으로 돼 있어 오염 물질이 유출되기가 어렵다 해도 그 근처는 완전히 만신창이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만성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도 지하수 오염에 대해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실질적으로 우리는 실험장에서 어떤 핵종이 나왔는지 모르고, 어떻게 유출되는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핵실험을 할 때 폭탄을 터뜨려서 방사능 물질이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실험장에 남고, (갱도가) 붕괴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유출 피해가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지하수 오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하수를 이용해서 주민들이 식생활을 했다면 방사선 피폭도 있을 거다.”

‘오염 지하수’ 경로 파악도 불가 

문제는 이 지하수가 어떤 수맥을 타고 흘러가 오염이 확산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TJWG는 지난 2월 21일 발간한 해당 보고서에서 북한이 간행한 ‘조선지리전서’를 참조해 핵실험장 주변 지표수의 합류 지점과 수계를 그려냈다. 북한이 1990년 간행한 조선지리전서에서는 만탑산에서 발원하는 물이 ‘장흥천’을 따라 길주군으로 내려간다고 되어 있는데, 이 물길은 김책시와 화대군 사이를 지나 동해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보고서는 “주민들의 물 이용 실태는 특히 우려할 만하다”며 “2008년 인구조사 데이터는 길주군이 포함된 함경북도의 여섯 가구당 거의 한 가구(15.5%)가 지하수, 우물, 공동수도, 샘물 등을 식수로 사용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방사성 물질이 농수산물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 각지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은 현지 주민들이 섭취할 뿐만 아니라 중국을 거쳐 한국·일본에까지 거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북한에서 ‘칠보산’으로 브랜딩해 국제적으로 유통하는 송이버섯 산지는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도 집중적으로 위치해 있다. ‘조선향토대백과’에 언급된 송이버섯 산지가 풍계리 실험장 반경 40㎞ 내외에 수십 곳 있고, 칠보산도 실험장에서 53㎞ 떨어져 있다. 한국은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따라 북한산 농수산물 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북한산 송이버섯은 암암리에 중국산으로 둔갑해 팔리거나, 전통시장이나 탈북민 커뮤니티 등지에서 암암리에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찾은 국제 기자단과 북한 관계자들이 핵실험장 주변에 흐르는 계곡을 건너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찾은 국제 기자단과 북한 관계자들이 핵실험장 주변에 흐르는 계곡을 건너고 있다. photo 뉴시스

풍계리 송이버섯이 중국산으로 팔려 

보고서를 발간한 시민단체 TJWG는 이러한 방사능 물질로 인한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탈북민 피폭 검사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지난 2월 24일 통일부에서는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했던 두 차례의 피폭 검사가 표본 수와 체계 측면에서 부족했음을 인정하며 관련 지역 출신 탈북민을 대상으로 전수검사를 상반기 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3월 8일 통일부에 질의한 결과 해당 계획은 아직 검사 인원과 검사 착수 시기를 논의 중에 있으며, 관련 예산은 기존의 탈북민 의료지원(건강검진) 예산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소 몇 명 이상 검사하겠다’ 등 목표치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탈북민 피폭 검사에 대해서 통일부는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어 결과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주간조선이 확인한 당시 두 차례 검사 결과지에 따르면 40명 중 9명 체내에서 방사능 이상 수치가 발견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최소검출한계인 250mGy(밀리그레이)를 넘긴 이들 중에는 치사량에 해당하는 1386mGy가 검출된 탈북민도 있었다. 통일부는 앞서 30명을 검사한 2017년 결과(이상 수치 4명)에 대해서는 브리핑을 통해 발표했으나, 2018년 시행해 10명 중 5명이 이상 수치를 보인 결과에 대해서는 먼저 알리지 않았다. 약 1년 후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실에서 자료를 요청하자 그제야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검사를 진행한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이러한 이상 수치가 방사선 피폭과 인과관계를 가진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과지에 따르면 “체내 방사능 오염은 방사성 물질의 유효반감기에 의해 감소하는 특성이 있어, 북핵 실험에 기인한 오염이 있었더라도 검사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보인 피검자는 없었다. 연령, 의료피폭력, 흡연력 등 교란변수에 의해 높게 측정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에 “외부 변수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차를 벗어나는 유의미한 큰 수치가 나왔을 때는 원인이 정확히 뭔지 조사를 하든가 치료를 하든가 해야 했었다”고 비판했다. 

2018년 시행한 검사 역시 당초 검사 인원을 20명으로 잡고, 검사를 맡긴 한국원자력의학원에도 20명분 검사에 해당하는 예산으로 계약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0명만 검사를 시행한 것으로 나왔다. 이에 통일부는 지난 3월 8일 질의에서 “대상자의 검사 희망 여부, 한국원자력의학원의 결과 분석 기간 등을 이유로 검사 인원이 10명으로 되었다”고 답했다. 이어 ‘2018년 이후 검사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통일부는 즉답하지 않고 “그동안 건강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탈북민에 대해서 건강검진 등 의료 지원을 지속해왔다”며 “최근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제반사항을 검토해 검사를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민 피폭 검사 필요성은 앞서 2016년부터 탈북민 대상 인터뷰를 진행한 시민단체 ‘샌드연구소’에서 제기해왔다. 길주군 출신 탈북민을 중심으로 원인 모를 질환을 앓거나 신체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현상이 발견된 것이 이유였다. 탈북민들 사이에서는 핵실험장 주변 마을에 일명 ‘귀신병’이 돈다는 얘기도 나왔다. 방사성 물질 유출 현황을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전문가 및 관련 단체에서는 사안의 심각성에 걸맞은 수준의 조사와 검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를 발간한 TJWG의 이영환 대표는 “지난 정권에서 이뤄졌던 수준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챙기고 관계 부처가 협의해 이전처럼 흐지부지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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