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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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비염, 천식 치료로 유명한 서효석(78) 편강한의원 원장이 치료에 도전 중인 새로운 질병은 노인 치매다. 다만 방법이 한방 치료가 아닌 ‘바둑’이다. 지난해 3월 대한바둑협회 회장을 맡은 후 초등학생 바둑 보급과 더불어 노인 치매 예방을 위한 ‘쉬운 바둑’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2일 서울 서초구 편강한의원에서 만난 서효석 회장은 기자에게 “바둑에 은퇴는 없고 치매 걸린 프로 기사도 없다”며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바둑을 배우라”고 권했다. 서 회장은 지난 4월 27일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치매예방 범국민 캠페인’ 행사에서 기존 19줄의 바둑판을 13줄로 축소해 배우기 쉽고 경기 속도도 빠른 ‘이지고(Easy Go)’를 선보였다고 소개했다. 또 내년 9월에는 미국에서 ‘바둑페스티벌’을 열어 한국 바둑을 미국에 전파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올해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단장으로도 참가하는 서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만나 바둑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신이 만든 놀이’라는 바둑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욕이 넘쳤다.

- 한의원장으로서 바둑 협회장을 맡게 된 계기가 뭔가. “바둑을 좋아하다 보니 대회를 많이 후원했다. 세계 인터넷 바둑대회(편강배 인터넷 세계바둑대회)를 8회 후원했는데 그 대회에서 발굴한 스타가 중국 커제 9단이다. 중국은 바둑기사가 우승하면 보통 상금 일부는 중국 기원이 가져가는데, 인터넷 대회는 전액 기사 개인에게 전달된다. 무명의 커제가 여기에 매력을 느껴 바둑에 빠져 결국 세계 1위가 되었다. 편강한의원에서 ‘구전녹용’ 바둑팀을 창단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기원에서 나를 이사로 추대했고 바둑에 대한 이러한 인연으로 작년 3월 협회장에 출마하게 되었다.”

- 회장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게 뭔가. “바둑 역사가 4000년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스포츠는 없다. 선거 때 ‘바둑 인구를 100만명으로 늘리고, 미국에 바둑을 보급하겠다’고 공약했다. 2024년 9월 28일 미국바둑협회(AGA)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이지고 페스티벌(Easy Go Festival)’을 개최한다. 미국은 바둑(BADUK)보다는 일본식 표기인 ‘고(ご)’가 익숙하다. 알파‘고’처럼 바둑도 영어 ‘고(Go)’로 더 알려져 있다. 이젠 바둑 이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지고’라는 새로운 바람을 미국에 일으키려는 것이다. 이미 미국에 새로운 이지고 바둑판과 유니폼을 기증했다. 미국 방송으로 생중계할 수 있도록 이미 준비도 마쳤다. 미국의 청소년들이 바둑을 배우면 게임중독을 예방하고 총기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들이 배우면 치매를 예방하고 친구를 얻을 수도 있다. 미국에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다. 이지고 대회가 열리는 9월 28일은 미국의 도움으로 한국전쟁에서 서울을 수복한 날이다. 그 후 70년 동안 한국은 비약적 발전을 했다. 이러한 고마움에 바둑을 선물하려는 것이다.”

- 바둑을 두면 진짜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나. “바둑에 은퇴는 없다. 생명이 붙어 있으면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바둑이다. 한국 프로기사 가운데 치매 환자가 아직 한 명도 없다. 일본의 97세 여성 바둑기사의 올해 성적이 2승 2패다. 단 한 수만 판단을 잘못해도 지는 것이 바둑이다. 긴 시간 정신을 집중하면 치매는 저 멀리 떨어져 나간다. 바둑의 효과를 증명한 논문도 있다. 서울대 연구팀이 바둑을 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뇌를 비교한 논문을 냈는데 바둑을 두면 정서 처리와 직관적 판단을 좌우하는 편도체와 전두엽 등이 활성화된다.”

- 바둑이 좋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나 너무 어렵다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13줄 바둑(13×13)을 만들어 보급하려는 것이다. 19줄 바둑(19×19)은 시합에 1~2시간 걸리는데 13줄은 1시간에 4~5판 대국을 할 수 있다. 배우기도 쉽다. 12시간이면 다 배울 수 있다.”

- 정말 12시간 만에 바둑을 배울 수 있나. “부천의 초등학교에서 축구, 수영, 바둑 등 특성화 교육을 하는데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부천시 전체 초등학교가 60개교인데 처음에는 신청 학교가 10개교가 안 되었다. 3년이 지난 내년에는 58개교가 교육에 참여한다. 축구, 수영보다 바둑이 큰 인기다. 바둑을 10시간 가르치니 애들이 바둑을 하더라. 노인이니까, 2시간 더 들여 배우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 바둑을 하면 무엇이 좋나. “그냥 빠져들고 그러다 보면 걱정이 없어진다. 진하게 바둑을 한 판 두게 되면 희한하게 걱정이 반으로 줄어든다. 스트레스도 한결 덜 수 있다.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주의가 산만하다. 바둑을 하면서 몰입을 경험하면 학업 능률이 오르고 인내심이 길러진다. 예절도 익히면서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된다.”

-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지금은 어떤가.  “한동안 바둑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협회가 그 흐름을 잘 타지 못했다. 이제 바둑으로 치매 예방을 하자는 범국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대한바둑협회가 대한노인회와 함께 ‘치매예방 범국민 캠페인’을 서초구에서 시작했다. 명사들도 부르고 13줄 쉬운 바둑도 소개했다. 강남구, 관악구 등에서도 하고 싶다고 하더라. 서울 25개구에서 행사가 열리면 바둑 치매 예방 붐이 불 것이다.”

- 젊어서부터 바둑을 배워도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을까. “일찍 바둑을 배우는 것이 좋다. 여성이 치매 환자가 많은데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5년 더 긴 탓도 있지만 남자들처럼 스트레스를 풀 수가 없다는 것도 이유다. 집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속이 끓어오르는데 혼자서 걱정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97세가 20~40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바둑이다. 여성들도 바둑을 배우면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이 어떤 것인가. “의사, 한의사 등이 모두 참여하는 바둑대회가 있는데 1980년대 내가 한의사 대표로 참여해서 의학계 불패의 신화였던 의사 최강자를 이겼던 적이 있다.”

- 한국 프로기사 가운데는 누구를 제일 좋아하나. “신진서가 제일이다. 겸손하다. 세계 최고 챔피언인데 아마추어한테 딱 한 번 졌다. 그것이 나다. 혹시 져준 것이 아닌가 싶어서 부모에게 물어봤는데 나에게 진날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원장님에게 대마 잡혔다. 조심해야겠다’고 하더라. 프로들은 져주더라도 근소하게 져준다.”

- 바둑이 진짜 올림픽 종목이 될 수 있을까. “중국, 일본 기원하고 얘기하고 있다. IOC 위원장을 만나서 같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미 아시안게임에는 들어갔다. 올해 9월 내가 단장으로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간다. 바둑은 국경을 초월해 친구가 될 수 있는 공통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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