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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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는 고려인마을이 있다. 고려인 3~5세 4000여명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지난 1월 고려인 연구차 이곳에 머무르고 있던 정막래(51) 계명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는 짧은 머리의 60대 고려인 남성을 만났다. 마을의 다른 고려인들처럼 일용직노동자인 그는 겨울이라 일거리가 없다고 했다. 인근 공단의 일은 젊은이들 차지고 농장, 밭일 등을 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러시아어를 하는 한국인을 만나 반가웠던지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나는 펜 말고는 무거운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고려인 3세 김블라디미르(62). 그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문학대학과 의과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너는 한국 땅을 반드시 밟아라”는 선친의 유언을 안고 그는 6년 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다. 부모의 조국이라고 찾아왔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막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매일 정 교수가 머무르고 있는 마을종합지원센터에 찾아오던 김씨가 어느 날 슬그머니 자신이 쓴 시를 한 편 내밀었다.

정 교수는 마음이 짠했다. 그의 시에는 시인의 감성이 넘쳤다. 시를 통해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평생 교수로, 시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막노동을 하고 있는 현실도 안타까웠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그동안 그가 쓴 시가 시집 한 권 분량이 됐다.

‘다시금 12월이 우리를 추위 속으로 내몰고 있다.

눈은 불꽃처럼 반짝거린다.

오늘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날 것 같다.’

-‘다시금 12월이’ 중

‘다 녹여다오, 제발 다 녹여다오!

생각에 잠긴 왈츠 소리가 울리고.

문 옆에는 꽁꽁 언 포플러나무가 서 있고

4월에 새순이 뻗어나온다오.’

-‘다 녹여다오’ 중

정 교수는 박사 논문을 미뤄놓고 러시아어로 쓴 김씨의 시를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논문도 아니고 시를 번역하는 일은 또 다른 창작이었다. 지난 2월 말 김블라디미르 시집 ‘광주에 내린 첫눈’이 나오자 마을잔치가 열렸다. 주민들은 제 일인 듯 기뻐했다. 정 교수가 한 일은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이들에게 김씨의 시집은 시집 이상의 의미였다. 부모의 나라라고 찾아왔지만 가난하고 말 못 한다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주눅 들고 설움 받던 이들에게 김씨의 시집은 “우리도 이런 지성인이 있다”는 자존심이자 자랑거리였다.

정 교수가 고려인들에게 안겨준 선물은 또 하나 있다. 시집과 함께 펴낸 ‘고려인을 위한 한국어’ 책이다. 국내 정착한 고려인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한국어이다.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삶이다 보니 학원은커녕 야학을 열고 공부를 가르쳐줘도 배우러 갈 형편이 안 된다. 정 교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들을 추려 회화책을 만들었다. 러시아어를 한국어로 쓰고 한국어 밑에 다시 러시아어로 음을 써놓아 쉽게 따라 익힐 수 있게 했다. 고려인들이 이 책만 익혀도 기본 생활은 가능하도록 돼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정 교수를 큰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러시아 국비유학생 1호

정 교수는 우리나라 러시아 국비유학생 1호이다. 도스토옙스키에 빠져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정 교수는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문학과 수석입학·수석졸업을 했다. 러시아와 수교를 맺은 다음해인 1992년 모스크바국립대학으로 가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계명대 교수가 됐다. 영어의 토플에 해당하는 토르플(TORFL)을 2002년 국내에 들여오고,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의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복수학위제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쓴 러시어어 교재가 100권에 달한다.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정 교수가 느닷없이 고려인 연구에 빠진 사연이 있다. 정 교수는 2년 전 우연히 대학 스승인 임영상 교수를 만났다. 임 교수는 대뜸 “아직 러시아어문학과가 살아 있어?”라고 물었다. 그렇잖아도 학과의 존폐를 걱정하던 정 교수는 임 교수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때 30곳이 넘었던 러시아어문학과는 현재 20곳에 불과하고 문화콘텐츠학과 등으로 이름을 바꾸고 있었다.

미래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 교수가 책임교수로 있는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에 당장 입학했다. 임 교수는 고려인 연구의 국내 권위자이다. 러시아어가 자유로우니 고려인 연구도 유리했다. 극동지방에서 1920년대에 발간됐던 고려인 신문 ‘선봉’ 연구 등 논문도 여러 편 써냈다. ‘고려인마을’을 주제로 한 박사 논문 마무리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김블라디미르 시집 번역과 고려인 회화책을 만드느라 발목이 잡힌 것이다.

화요일마다 한국외대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는 정 교수는 “아주 작은 일을 했을 뿐인데 고려인마을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하는 것을 보니 논문은 쓰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광주 고려인마을을 찾는다. 3월에도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 행사’ 출범식에 참석하는 등 두 차례 다녀왔다. 정 교수가 처음 갔을 땐 데면데면하던 사람들이 이젠 “같이 살면 안 되느냐”면서 손을 잡아끈다고 한다.

“공동체 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회갑, 돌잔치를 해도 마을회관 빌려서 동네잔치를 벌입니다. 춤추고 놀면서 회포를 푸는 것이 살아가는 힘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역사적인 조국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에서 겪는 애환을 축제로 풀어내는 거죠. 과거 조선족이 하던 일을 지금은 고려인들이 채워주고 있습니다. 도시 재생으로도 연결이 되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더 끌어안아야 합니다.” 고려인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가능한 힘을 보태겠다면서 정 교수가 말했다.

정 교수의 올해 스케줄은 ‘고려인 사랑’으로 빼곡히 차 있다. 미국 뉴욕 학술대회를 다녀와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로 고려인 연구 여행을 떠나야 한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내던져졌던 고려인들 중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고려인의 귀환’ 뒤에 숨은 역사를 발굴해낼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미뤄둔 박사 논문도 마쳐야 하고 LA 코리아타운, 오사카 코리아타운 연구 여행도 계획돼 있다. 고려인 실존 인물을 총망라한 ‘고려인 백과사전’ 번역도 올해의 숙제이다. 러시아어 1400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으로 후원자를 찾고 있다. 7월에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행사로 강제이주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는 2주 일정의 ‘시베리아 회상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정 교수는 고려인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이 죽기 전에 이들의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블라디미르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작업도 해야 한다. 김씨는 시 한 편 완성할 때마다 정 교수에게 보내 무언의 압력을 주고 있다.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한 일정이지만 정 교수는 오히려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래도 고려인마을이 가장 먼저죠. 저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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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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