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관광객들이 평양의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photo China Times
중국인 관광객들이 평양의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photo China Times

“양국 인민이 우호를 돈독히 하고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사를 교환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이 1949년 10월 4일 박헌영 부총리 겸 외무상 명의로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겸 외교부장에게 보낸 외교 전문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10월 6일 저우 외교부장의 명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의 즉각적인 외교관계 수립과 상호 대사 파견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답신 전문을 박헌영에게 보냈다. 북·중 수교 관련 외교 전문은 중국 외교부가 2006년 1월 공개한 ‘비밀해제 외교문헌’(解密外交文獻·1949년부터 1955년까지 외교 관련 비밀문서)에 들어 있다. 북한과 중국은 이처럼 외교부 수장 간의 두 차례 전문 교환을 통해 전격적으로 외교관계를 맺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출범을 선언한 이후 중국은 불과 1주일 만에 7개국과 수교했다. 북한은 옛 소련(2일), 불가리아(4일), 루마니아(5일)에 이어 중국의 네 번째 수교국이 됐다. 중국은 북한과 수교한 날 헝가리와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중국의 네 번째 수교국 북한

올해 10월 6일은 북한과 중국이 수교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70년간 북·중 관계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현재는 중국이 북한의 생명줄(life line)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수교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북한 정권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했다. 당시 김일성은 1950년 10월 1일 마오 주석에게 친서를 보냈다. 친서는 중국 건국 1주년을 축하한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참전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김일성은 친서에서 “38선이 위험하다. 우리 힘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없다. 조선 땅에 들어와 작전을 펴달라”고 호소했다. 마오는 10월 4일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한반도 참전 문제를 논의했다. 정치국원들은 대부분 “신중국이 수립된 지 얼마 안 된 만큼 국내 건설에 몰두해야 하고, 또 적은 강대한 미국인 만큼 대외전쟁은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펑더화이(彭德懷)는 “적이 조선반도 전체를 점령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에 막대한 위협이 된다”면서 참전을 역설했다. 결국 마오는 10월 5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참전을 결정하고 인민지원군이란 이름으로 26만명의 병력이 압록강을 건너는 날을 10월 15일로 정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은 10월 7일 김일성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성명을 냈다. 유엔은 같은 날 남북한 통일을 위한 선거의 실시 등을 결의했다. 유엔군은 10월 9일 서부전선에서 38선을 넘어 평양을 향해 북진을 시작했다. 만약 마오가 참전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당시 한반도는 통일됐을 뿐만 아니라 미군의 폭격 등으로 김일성도 사망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70년 만에 유커(游客)라는 이름으로 중국인 관광객 수십만 명이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 중국인 관광객들의 대거 방문으로 상당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와 비교할 때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폭 증가했다. 올봄부터 북·중 접경도시인 중국 단둥에서 평양으로 가는 국제열차는 만원 사례를 보이고 있고, 중국 관광버스가 평양역 주차장을 연일 가득 메우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평양의 주요 관광지에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대형 매스게임과 예술공연으로 유명한 ‘인민의 나라’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보도(2019년 9월 9일자)했다. 북한 국가관광총국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2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이 중 중국인이 90%에 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평양을 방문, 김정은과 함께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 인민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평양을 방문, 김정은과 함께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 인민일보

시진핑 “북 관광객 500만으로 늘려라”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20~21일 평양을 방문한 이후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 정부가 시 주석의 방북 이후 북한 방문 관광객을 500만명으로 늘리라고 여행사 등에 지시했다고 보도(9월 20일자)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가 478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파격적인 규모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시 주석이 중국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의 공무원들에게 의무적으로 북한 관광에 나서라고 지시했다고 보도(9월 25일자)했다. 중국 지린성 훈춘시의 조선족 소식통은 “지난 7월부터 시 주석의 지시로 북조선 관광이 상당히 활성화됐다”며 “공무원은 물론 학교와 유치원 선생들까지 무조건 북한 관광에 나서도록 의무화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시 주석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관광으로 조선을 도와야 한다’면서 이런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런 보도 내용들을 볼 때 중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위배되지 않는 관광 지원사업을 통해 북한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유엔 안보리 제재로 석탄 등 광물자원 수출이 막힌 가운데 관광은 주요 외화소득원이 될 수 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로 지난해 북한의 대외무역(남북교역 제외) 규모는 전년보다 절반 아래로 떨어진 28억4000만달러(3조3475억원)였다. 지난해 북·중 무역 규모는 27억2000만달러로 전년(52억6000만달러)보다 48.2% 감소했으며, 북한의 대중 무역적자는 23억3000만달러로 19.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지난해 북한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이 1인당 300달러를 사용했을 것으로 가정할 경우 2018년 한 해에 북한이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은 3억6000만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국 정부는 북한을 방문하는 자국 관광객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마지막으로 북한 방문 관광객 수를 밝힌 것은 2012년으로, 당시 방문객은 23만7000여명이었다.

북한 경제는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제재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중국의 이런 지원 덕분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국은행의 ‘2018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 보고서(7월 26일자)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보다 4.1% 감소해 1997년(-6.5%)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990년대 후반은 북한이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와 극심한 경제난으로 대규모 아사(餓死)가 발생하는 등 ‘고난의 행군’을 겪던 시기다. 이에 따라 북한은 제2의 고난의 행군에 직면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북한 경제는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다. 제재가 본격화된 후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북한이 버티고 있는 것은 중국의 도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북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평양을 구경하고 있다. ⓒphoto 차이나 데일리
중국인 관광객들이 북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평양을 구경하고 있다. ⓒphoto 차이나 데일리

북한에 쌀 80만t, 옥수수 100만t 지원

실제로 중국 정부는 시 주석 방북 이후 쌀 80만t과 옥수수 등 100만t을 북한에 지원했다. 대북 식량 지원은 유엔 안보리 제재에 저촉되지 않지만 중국 정부는 구체적인 지원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가뭄의 영향으로 지난해 북한의 작물 생산량이 전년 대비 12% 감소해 1000만명 이상이 식량 부족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식량기관들도 북한이 올해 150만〜180만t의 곡물 부족 상태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식량 지원 규모로 볼 때 북한은 더 이상 식량 부족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가 제공하겠다고 밝힌 쌀 5만t을 거부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지렛대가 제재조치인데 중국의 지원으로 이처럼 제재조치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제재조치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도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낮은 북한이 제재조치의 효과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의 침략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의미의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른다. 마오 전 주석이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할 경우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완충지대를 잃을 것을 막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시 주석은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경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대야 한다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미국을 견제하려면 완충지대와 전략적 균형을 갖기 위한 지렛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이 북한과의 수교 70주년을 맞아 단둥에 있는 항미원조전쟁기념관을 재개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기념관은 중국 정부가 6·25전쟁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1993년 설립한 곳으로 지난 3년간 리모델링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전쟁기념관으로 꾸몄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6·25전쟁처럼 승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9월 24일 뉴욕에서 미·중 관계 전국위원회 연설을 통해 6·25전쟁을 예로 들면서 “70년이 지난 오늘날도 미국이 또다시 상대를 잘못 선택해 잘못된 대항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은 쌍궤병행(雙軌竝行,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과 쌍중단(雙中斷,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내세우며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북한을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의 지도부가 평양의 조중우호탑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CCTV
중국과 북한의 지도부가 평양의 조중우호탑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CCTV

국경절 열병식에 등장한 6·25 당시 부대들

중국이 지난 10월 1일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맞아 벌인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에 6·25전쟁 당시 상당한 전과를 올린 제82집단군(과거 38군)을 포함시킨 것도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제38군이 1950년 11월 미군 1만1000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었다. 제38군은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이던 펑더화이가 “제38군 만세!”라고 치하 전보를 보내면서 ‘만세군(萬歲軍)’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이번 열병식에는 상감령전투의 영웅 황지광(黃繼光)이 소속했던 낙하산병들로 구성된 공군부대도 참가했다. 황지광은 1952년 10월 상감령전투에서 미군의 총구를 몸으로 막다 21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시 주석은 평양 방문 둘째 날인 지난 6월 21일 북·중 우호협력 관계를 상징하는 ‘조중우의탑(朝中友誼塔)’을 방문해 참배했다. 조중우의탑은 6·25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을 기리기 위해 북한이 평양 모란봉 구역에 건립한 상징물이다. 당시 시 주석은 “북·중이 평화를 수호하려는 결연한 결심을 전 세계에 분명히 알리기 위해 참배했다”고 강조했었다. 시 주석은 2017년 8월 1일 인민해방군 창설 90주년 기념식에서 “미제의 침략에 맞서 북조선을 도운 정의로운 항미원조전쟁에서 승리해 국위를 떨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각 지역에서 ‘동맹국들’을 확대하려는 전략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북한과의 ‘사회주의 연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별로 동맹관계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5일 수교 70주년을 맞아 러시아와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사실상 동맹이나 다름없다. 중국이 밀월관계를 맺은 국가들을 보면 중남미에서 쿠바·베네수엘라, 동남아에서 캄보디아·라오스, 서남아에서 파키스탄, 중동에서 이란, 중앙아시아에서 우즈베키스탄, 아프리카에서 세네갈 등을 들 수 있다. 중국은 각 지역별로 일대일로 프로젝트 등과 각종 원조를 통해 끈끈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으로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비롯해 무역전쟁 등에 대응하기 위해 우군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 또다시 중국행 가능성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의 이런 전략은 김정은 정권의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과의 전면적인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김정은이 최근 신압록강대교의 북한 쪽 연결도로 공사를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14년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신압록강대교를 완공해놓았다. 중국 지린성 지안과 북한 만포 간 국경을 잇는 다리는 이미 개통됐다. 김정은은 지난해 3월 첫 방중 이후 4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특히 김정은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마다 중국을 찾아 시 주석과 회담하면서 미국과의 협상 전략을 논의했다. 김정은은 조만간 중국을 또다시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으로선 중국과의 밀착이 제재완화와 체제보장은 물론 미·북 회담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국으로선 북한의 든든한 뒷배가 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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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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