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재배지가 북상에 북상을 거듭하고 있다. 한때 국내 최대 사과 산지인 대구에는 요즘 사과가 거의 없다. 대신 사과는 태백산맥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그 결과 경북 북부 지방이 최대 사과 산지가 되었고, 강원도 농민들도 고랭지 배추밭을 뒤엎고 사과나무를 앞다퉈 심고 있다. 정선은 강원도 내 최대 사과 재배지이고, 남한의 최북단인 강원도 양구 농민도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사과는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는 과실수다. 생육기 평균기온이 15~18도여야 하고, 일교차가 커야 열매가 잘 익는다. 사과 재배지의 변화는 지구온난화 탓이다.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위협하고 있고, 한반도 온난화는 한국인의 삶을 바꾸고 있다. 사과 재배지의 변화는 한반도 온난화와 지구 기후변화를 실감케 한다. 강원도 내 최대 사과 산지인 정선군 임계면과, 대구의 마지막 남은 사과 산지인 평광동을 취재했다. 한반도 온난화를 가장 민감하게 피부로 느끼는 곳이었다.<편집자주>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용산1리의 배선철씨 사과밭. ⓒphoto 이미형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용산1리의 배선철씨 사과밭. ⓒphoto 이미형

지난 10월 4일 대구시 동북쪽 환성산 자락의 평광동 입구.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웠을 때 멀쩡한 사과가 길 위에 뒹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평광동은 대구의 마지막 사과 산지다. 전국 사과 생산량의 절대량을 차지하던 대구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라 사과 농가가 거의 사라졌다. 날씨가 더워져 재배를 할 수 없게 되었고, 대구 북쪽으로 산지가 이동한 지 오래다. 평광동이 대구 사과의 명맥을 이어가는 건, 이 마을이 외딴 산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에는 해발 807m 환성산이 있고, 왼쪽으로는 4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미리 연락해둔 주민 우희택(63)씨를 마을회관 앞에서 만났다. 우씨는 이 마을 ‘새사과연구회’ 회장. 우 회장을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차를 타고 올라가 그의 과수원으로 갔다. 주위가 온통 사과나무인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푸르스름한 사과가 달려 있어 그전까지는 잘 몰라봤다. 우 회장은 “홍옥·홍로·아오리 품종은 추석 때 다 땄다. 지금 달려 있는 건 부사이고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수확한다”고 말했다.

과수원에서는 그의 부인이 가위를 들고 사과나무 잎을 잘라주고 있었다. 사과가 붉은색이 나도록 잘 익게 하려면 햇볕을 가리는 잎을 잘라줘야 한다고 했다. 부인은 “남자들은 이런 일을 잘 못한다”라며 가위질을 계속했다. 과수원 한쪽에 있는 과일저장고에서 우 회장이 사과 몇 개를 갖고 왔다. 홍로 품종이라며 먹어보라고 했다. 아삭아삭하고 달달한 즙이 혀끝에 닿는 게 좋았다. “저장고에서 바로 꺼내 먹어야 맛이 좋다. 공판장을 거쳐 소비자 손에 가는 건 출하로부터 5일 이상 소요된다. 그러면 맛이 변한다. 맛이 천지 차이다. 반면 우리에게 택배주문을 하면 전국 어디나 하루면 도착한다.” 사과 맛이 시간에 따라 그렇게 달라지는 줄 처음 알았다.

우 회장은 “평광동은 기온이 서울과 같다. 대구 시내보다는 몇 도가 낮다. 해발고도가 평균 350m다. 특히 일교차가 10도 이상 난다. 사과는 일교차가 커야 잘 익는다. 우리 동네에서는 여름에도 에어컨 사용할 일이 없고, 새벽에는 추워서 이불을 덮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에게 사과나무를 몇 그루 재배하느냐고 묻자 “그렇게 물으면 대답 못 한다. 면적이 4000평(1만3200㎡)쯤 된다”면서 과수원 수는 4개라고 말했다. 사과생산량이 10㎏ 기준 1년에 2500~2800상자라고 했다. 품종별로는 부사 50%, 아오리 40%, 홍로 10%를 재배한다. 홍로는 추석 차례상에 올라가는 품종이다.

대구의 마지막 사과밭 평광동

과수원을 나와서 사과연구회 회장으로 일했던 최부현씨를 만났다. 70대인 최씨는 “강원도 골짜기까지 정부가 사과 재배를 권장하니, 사과가 과잉 생산되어 가격이 말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홍로 사과 10㎏ 공판 가격이 2만원밖에 나가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농민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부현씨는 “평광동은 골이 깊어 6·25전쟁 때도 인민군이 들어오지 않았다. 요즘은 버스가 다니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리어카, 소달구지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때는 대부분 벼농사를 지었고, 사과농사는 몇 집 안 했다. 요즘은 쌀농사도 짓지 않는다”고 했다.

최부현씨가 평광마을발전회 우희윤 회장을 소개해준다고 해서 그를 따라갔다. 마을은 규모가 커서 또다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행정구역상 평광동 1통·2통·3통으로 구분되고, 120여가구가 살고 있다. 해발고도가 차이가 많아, 먼저 만났던 우희택씨 과수원과 마을 입구와는 100m 차이가 난다. 사과는 계단식 과수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우희윤씨는 평광동발전회장이고, 마을기업 대표를 맡고 있다. 우희윤 회장은 평광동 사과 재배 역사와 관련해 “1969년에 절대농지 규제가 풀렸다. 이후 주민들이 논에 사과를 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벼 생산량을 확보하기 위해 논에 다른 용도의 작물을 심는 걸 가능한 막았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 규제를 풀었고, 평광동 농민들은 쌀보다 소득이 더 좋은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희윤 회장은 “1970년대 초 농협에 있던 분이 일본에 갔다가 ‘동북7호’라는 부사 품종을 들여왔다. 그게 평광마을 사과의 본격적인 출발이다. 그 부사가 때깔은 나빠도 맛은 최고”라고 말했다. 그의 선친도 그때 사과를 처음 심었다. 우 회장은 “당시에는 사과 가격이 좋았다. 내가 1979년 초에 제대를 했는데, 아버지가 사과 400상자 판 돈으로 (서구) 평이동에 땅 200평(660㎡)을 샀다. 한 상자가 그때 2만원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2만원이다. 외국 과일이 많이 들어오고 경제가 어려우니 사과가 잘 안 팔린다”라며 푸념했다.

우희윤 회장은 1981년 가업을 물려받았다. 50대 초반에는 2만6500㎡(8000평) 규모로 사과를 재배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1만3200㎡ 규모라고 했다. “농사일을 감당하기에는 이제 나이가 많다”라고 했다.

우희윤 회장은 평광마을 사과 생산량이 1년에 20만상자 정도라며 “축복받은 땅”이라고 말했다. 재배 면적은 120㏊라고 했다. 평광마을도 주민들이 고령화하면서 땅을 외지인에게 파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고, 퇴직 후 평광마을로 이사와 사과를 재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120가구 중 원주민은 80가구, 그리고 외지인이 40가구라고 했다.

평광동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과나무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심은 100년이 넘은 나무다. 우희윤 회장을 따라서 그 나무를 보러 갔다. 차를 타고 조금 올라가니 ‘첨백당’이라는 지역문화재로 지정된 한옥이 나왔다. 그리고 첨백당 옆길을 조금 올라가니 한 집이 나왔다. 철망으로 된 문이 닫혀 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우희윤 회장이 전화를 걸었고, 집안에서 60대 여성이 나왔다. 그는 “문을 열어줄 수 없다. 집안을 공개했더니 사람들이 와서 사과를 맘대로 따가는 등 행동이 말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오래된 사과나무는 대문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집주인 아주머니에 따르면 그 사과나무 품종은 홍옥이고, 올해는 30㎏을 땄다고 했다. 나뭇가지의 일부분만 살아있다고 했다.

평광동은 우씨가 많았다. 그래서 물어보니 단양 우씨 집성촌이라고 했다. 우희윤씨는 “한때는 주민 80%가 우씨였다”라고 했다.

11월 2일에는 사과 따기 체험 행사가 평광동에서 열린다. 우희윤 회장은 “올해가 사과나무 심은 지 102년이다. 100주년 때 행사를 못 해서 올해 좀 늦었지만 100주년 행사를 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그는 “20~30년 전부터 기후변화로 사과 농사를 못 짓는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향후 30~40년은 문제없다”라고 했다.

평광동을 나서 과거 사과밭이 가득했다는 대구에서 경산, 영천 가는 길에 있는 금호강변 지역으로 갔다. 포도밭, 대추밭이 수없이 많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니 언뜻 평광마을에서 본 사과나무의 형태와 비슷한 밭이 나타났다. 사과나무인가 궁금했다. 차를 세우고 물었다. 60대 후반 여성은 “이 근처에 사과는 없다”라고 말했다.

강릉에서 정선 임계면에 접어드는 지점에 있는 사과 홍보 장식. 정선 임계면은 강원도 최대 사과 산지다. ⓒphoto 최준석 선임기자
강릉에서 정선 임계면에 접어드는 지점에 있는 사과 홍보 장식. 정선 임계면은 강원도 최대 사과 산지다. ⓒphoto 최준석 선임기자

강원도 최대 산지 정선 가보니

이틀 후 대구의 마지막 사과 생산지 평광동에서 170㎞ 북쪽에 있는 강원도 정선군을 찾았다. 지난 10월 6일 강릉에서 승용차를 타고 남쪽으로 20여분 지났을 때 정선군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도로안내판이 나타났다. 이어 정선군 임계면을 알리는 ㄷ 자 모양의 대형 홍보판이 보인다. 그 위에 걸린 빨간색 대형 사과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정선은 강원도 내 최대 사과 산지이고, 특히 임계면은 정선군 사과 생산량의 70% 이상을 생산한다. 사과를 내세운 지역 홍보판은 임계면이 사과를 지역특산물로 띄우고 있다는 표시다. 정선군 임계면을 찾아간 건 기후변화로 인해 사과 재배지가 급속히 북상하고 있고, 정선이 강원도 내 최대 사과 재배지역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강릉과 정선 경계를 이루는 버들고개(600m)를 뒤로하고 임계면으로 차를 운전해 내려갔다. 임계면의 중심지는 임계사거리. 시내에 다가가자 ‘정선 사과 축제’라고 쓴 휘장이 거리의 가로등마다 온통 걸려 있다. 10월 18~20일 사흘간 행사가 열린다고 쓰여 있다. 오후 늦은 시간이어서 본격적인 취재는 다음 날 하기로 하고, 숙소가 있는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로 갔다. ‘정선아리랑’으로 유명한 아우라지는 임계면 바로 서쪽에 접해 있다. 여량버스터미널에서 가게를 하는 심인섭씨에게 정선 사과 재배에 관해 물어봤다. 그는 “15년 전부터 사과농사가 될 거라는 말이 나왔고, 여량에서도 6~7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사과를 심기 시작했다”고 했다. 심씨는 “사과가 너무 많다. 정선읍으로 가는 길에 있는 남평에도, 북면 고향리에도 사과밭이 있다”면서 “고추·옥수수·콩은 시세가 안 맞으니, 특수작물인 사과를 재배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여량 시내에서 남쪽 계곡 쪽으로 가니 진짜 사과밭이 펼쳐져 있었다. 홍로 품종이 주로 재배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다.

지역주민의 소개를 받아 몇 년 전 사과나무를 심었다는 ‘새치펜션’을 찾아갔다. 펜션 앞의 밭에 사과나무들이 보였다. 70대 남자 주인은 “5년 전에 400주를 심었고 작년에 첫 수확을 했다. 기초시설과 사과묘목 구입비로 2500만원이 들었는데, 이 중 절반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했다”고 말했다. 펜션 주인이 사는 집 바로 앞 밭을 사과밭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는 유기농업을 배우기 위해 충북 괴산·청주, 경북 청송 등 전국에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했다. 부사와 홍로 품종 두 가지를 재배하는데 이따금씩 강릉 해변에 가서 바닷물을 1t씩 싣고 온다고 했다. “바닷물에 인체에 필요한 미네랄이 풍부하다. 물을 떠와 탱크에 보관해뒀다가 사과나무에 준다”는 것이다. 올해는 추석을 전후해 5㎏들이 350상자 분량의 홍로 품종을 수확했고, 부사는 아직 알이 매달려 있는데 250상자 수확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선군 사과 재배농가 340가구

다음 날 아침 일찍 정선 아우라지에서 임계면으로 다시 갔다. 임계면 가까이 가니, 전날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사과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곳은 ‘송원사과농장’. 안내판 뒤를 보니 산 아래 사과밭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사과밭 아래로는 배추밭이 있다. 본래 정선은 고랭지 배추로 유명하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고랭지 배추밭을 뒤엎고 사과를 심고 있다고 한다.

임계 시내로 접어들자 여기도 사과밭, 저기도 사과밭이다. 임계농협을 찾아갔다. 사전에 만나기로 한 정선 임계농협의 변기환 상무는 “정선군 전체 사과 재배지는 240㏊이고 재배농가는 340가구로 알고 있다. 이 중에서 임계면은 정선 사과의 70% 이상을 생산하고, 재배면적은 140㏊이다. 재배농가는 220가구”라고 소개했다. 변 상무는 “경상도 사과는 푸석하나, 정선 사과는 고구마처럼 단단하다. 사과의 단단한 맛이 좋다”며 임계 사과를 자랑했다. 그는 “정선 사과 축제가 올해 3번째로 열린다”며 “지난해는 이틀간 행사를 했으나, 올해는 하루 늘려 사흘간 행사가 열린다. 사과 재배 농가가 부스를 차리고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정선에서 재배하는 사과 품종은 추석 때 수확한 홍로가 30%, 요즘 수확하는 홍금·감홍이 10%, 그리고 10월 말에 수확하는 부사가 60%를 차지한다. 정선 임계농협은 국고보조금과 지차체, 그리고 농협 자체 자금을 동원해 대규모 사과 선별·저장창고를 지난해 만들었는데 임계농협 사무실에서 차로 5분 거리 떨어져 있는 유통센터에 가보니 입이 쩍 벌어질 만한 규모였다.

임계 시내에서 남쪽 태백 쪽으로 국도 35번을 따라 차를 타고 내려갔다. 길 옆에 홍보 간판을 세워놓은 사과 농원만 해도 ‘봉산농원’ ‘초록농원’ ‘명품사과농원’ ‘미사과농원’ ‘다은이네 사과농장’ 등 셀 수가 없다. 임계면의 최대 사과 재배지는 남북으로 흐르는 골지천변에 있는 용산1리.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사과 재배를 시작했다는 농민 배선철씨(65·임계농협 감사)를 만났다. “5300평(1만7500㎡)에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는 그 역시 배추 등 고랭지 농사를 30년 이상 하다가 2009년 사과로 작목을 바꿨다고 했다. “배추, 무는 가격변동이 심하다. 그래서 소득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작물을 찾았다. 정선에서도 사과가 된다는 얘기를 듣고 고랭지 배추밭을 갈아엎고 사과를 심었다.” 사과 묘목은 경북 풍기에서 사왔다고 한다. 2년생 600그루를 사와 2009년에 심었고, 3년 후인 2012년에 1000그루, 그리고 또 3년이 지난 2015년에 600그루를 더 심었다.

“내가 사과를 심는다고 하니, 동네 사람들이 처음에는 임계에서 사과가 되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사과나무는 잘 뿌리를 내렸다. 100% 살아남았다. 4년 차인 2012년부터 수확했다. 소득이 배추 때보다 몇 곱이 더 나왔다.” 배씨는 “내가 사과농사를 시작한 지 4~5년 후인 2013~2014년경 사과농사가 인근 지역에 급속히 퍼졌다”고 했다. 배씨의 사과밭 바로 옆 다른 사람의 밭에서는 부사가 잘 익고 있었다. 무밭도 있었는데 무는 수확을 하지 않고 베어져 있었다. 배씨는 “올해 무값이 폭락해서 수확하지 않고, 못 쓰게 잘라놓은 것”이라고 했다.

앞서 대구 평광동에서 본 사과와는 달리 정선 임계의 사과 나무는 어린 티가 확 났다. 평광동의 사과나무들은 굵기가 굵고 키도 컸으나 정선의 사과나무들은 줄기 두께가 불과 몇㎝ 정도였다. 배씨는 “골지천변 2㎞에 경관사업을 위해 사과 800그루를 심었다. 몇 년이 지나면 사과도 열리고 산책로로 좋아질 것”이라고 자랑했다. 용산1리를 휘감아 돌아가는 골지천은 태백 쪽에서 내려오는데 정선 아우라지를 거쳐 동강에 합류하고 다시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용산1리를 떠나 골지천을 따라 남쪽으로 차를 몰고 계속 내려갔다. 역시 사방이 사과밭이었다. 사과나무는 땅에 박아놓은 파이프들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모두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문래3리 버스정류장을 지나자 은치교라고 쓴 다리가 나오고 거기부터는 삼척이었다. ‘삼척시 하장면 토산마을’이라고 쓴 안내판이 나왔다. 차를 다시 정선 방면으로 돌리니 버스정류장 바로 뒤쪽에 사과밭이 보였다. 300그루쯤 심어져 있었다. 농민을 만나보려 했으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대구 동구 평광동에서 사과를 키우는 우희택씨. ⓒphoto 권창회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대구 동구 평광동에서 사과를 키우는 우희택씨. ⓒphoto 권창회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강릉 마이스터 사과대학’

차를 운전하고 다시 골지천을 따라 올라갔다. 강 건너편에도 대단위 사과밭들이 보여 다리를 건너가니 ‘부부사과농원’ ‘어울농원’ 등 사과농장 안내판이 계속 나왔다. 차를 세우고 일을 하고 있는 어울농원 최종성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내가 임계에서 제일 먼저 사과를 심었다. 2009년에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9000평(3만㎡) 농사를 짓는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도 1400주를 새로 심었는데 2년 후면 수확할 것이라고 했다. 문래 1·2·3리에는 사과 농가가 모두 24가구 있는데 3~4년 전부터 부쩍 사과를 많이 심었다고 했다. 최씨 역시 원래 배추를 심다가 해발 550m의 고랭지 배추밭을 갈아엎었다고 한다. 가격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배추농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사과 재배 기술을 어떻게 익혔느냐고 물었더니 ’강릉 마이스터 사과대학’에 다닌다면서 “2년 전부터 매주 사과대학에 간다. 사과 재배기술을 익히기 위해 안 간 곳이 없다”고 말했다. “남쪽(경북)은 이제 사과를 정리해야 한다. 날씨가 더워져서 후지 품종이나 겨우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날씨가 더우면 그쪽은 사과 색깔이 안 좋다. 작년이 그랬다. 작년 여름에 무척 더웠지 않았나. 반면 올해는 여름 날씨가 서늘해서 대구로 봐서는 좀 낫기는 했을 것이다.”

정선 주민에 따르면, 경북의 일부 사과 재배 농민이 강원도로 옮겨와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임계농협 변기환 상무는 “경북 영주에서 사과를 키우던 농민 2~3명이 정선 임계에 와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여량에서 만났던 한 사과 농민은 “강원도 양구군도 펀치볼에서 사과를 키운다. 양구군이 강원도 내 두 번째 사과 생산지다. 그곳에 영주 사람이 옮겨와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임계농협 변기환 상무는 정선 사과농사는 앞으로 30년간은 문제가 없다고 호언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정선에서 사과 재배가 시작됐는데 앞으로 30년은 문제없다고 본다. 기온이 더 올라가면 정선에서는 해발고도가 높은 곳으로 사과 생산지를 바꾸면 된다. 하지만 5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때도 정선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을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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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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