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회원들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두산인문관 해방터 인근에서 홍콩 정부의 국가폭력을 규탄하며 홍콩 시위 5대 요구안을 상징하는 다섯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11일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회원들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두산인문관 해방터 인근에서 홍콩 정부의 국가폭력을 규탄하며 홍콩 시위 5대 요구안을 상징하는 다섯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13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인문대 1층 로비에서 한국 학생과 중국 유학생 수십 명이 4시간 이상 대치하며 몸싸움까지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1시쯤 이 대학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약칭 홍콩진실모임)’ 회원 10여명이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 2장을 붙이자, 지나가던 중국 학생들이 이에 항의하면서 충돌이 시작됐다. 중국 학생들은 대자보를 떼기 위해 달려들었고 한국 학생들이 이를 제지하면서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빚어졌다. 중국 유학생 커뮤니티에는 ‘저녁에 열리는 홍콩 토론회를 파괴하러 갈 친구들을 모은다’는 글도 올라왔다. 이 소식을 들은 주최 측이 ‘토론회를 지켜달라’는 호소문을 내자, 한국과 홍콩 학생 200여명이 토론회장에 몰렸다. 한국 학생 숫자가 훨씬 많아지자 더 이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양대 사건은, 그동안 논쟁 단계에 그쳤던 한·중 대학생의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번질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양대·고려대의 한·중(韓中) 학생 충돌

이에 앞서 지난 11월 11일 오후 고려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에는 마구 찢어지고 구겨진 대자보 사진이 올라왔다. ‘홍콩 항쟁에 지지를!’이라는 제목의 이 대자보는 그날 오후 3시쯤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게시한 것이었다. 대자보는 ‘사회가 공정하고 평등하고 더 살 만하기를 바라는 홍콩 노동자 청년들의 염원은 지금 한국에 있는 우리의 마음과도 같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염원하는 모든 대학생들과 진보좌파는 흔들림 없이 홍콩 노동자 청년들의 항쟁을 지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붙인 지 1시간도 안 되어 훼손됐다. ‘고파스’에는 후드티를 뒤집어쓴 몇몇 학생들이 대자보 위에 중국 오성홍기(五星紅旗)를 부착하는 사진도 올라왔다. 이튿날 정경대 게시판에는 ‘The angry young(분노한 젊은 세대) 행위가 도대체 민주인가 폭행인가?’라는 제목의 홍콩 시위 반대 대자보도 나붙었다. ‘고려대 중국 유학생 모임’의 명의로 된 이 대자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법을 어기는 행위는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홍콩은 중국의 불가분한 일부로서 국가통일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홍콩 동포를 포함한 모든 중국 공민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 위에는 ‘홍콩 폭동의 본질은 테러리즘이다’ ‘HongKong belongs to China!(홍콩은 중국에 속한다)’ 등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서울대 ‘레넌 월’의 찬반 논쟁

서울대에서는 ‘포스트잇 논쟁’이 벌어졌다. 서울대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이 지난 11월 6일 중앙도서관 입구 통로에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취지의 ‘레넌 월(Lennon Wall·레넌의 벽)’을 설치하자 곧 찬반 논쟁이 불붙었다. ‘레넌 월’은 1980년대 체코 공산정권 시기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프라하의 벽에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노래 가사를 적은 데서 유래한다. 이 게시판은 설치 하루 만에 홍콩 시위를 비판하는 친중(親中) 포스트잇 수십 장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거기에는 ‘사실도 모르면서 어리석은 발언을 그만 좀 해라. 홍콩은 영원히 중국 땅이다’ ‘너희 한국인들과 무슨 상관있냐’ ‘홍콩 젊은이들은 반정부주의자들에게 선동돼 길거리에 나갔다’ 등의 주장이 담겨 있었다. 지난 11월 12일 오후 서울대 ‘레넌 월’을 찾았을 때 이러한 친중 성향의 글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 ‘홍콩에 자유를’ ‘Stand With HK(홍콩을 지지한다)’ ‘홍콩의 民主主義는 중국 民主主義’ ‘Free Tibet, Free HK’ 같은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

한국 문제나 대학생 자신들의 문제도 아닌 홍콩 시위를 두고 왜 한·중 대학생들이 극렬하게 대립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양국 대학생 간의 가치관 충돌이 숨어 있다. 한국 대학생은 ‘자유·민주·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을 홍콩 시민들과 똑같이 인식하고 지지하는 반면, 중국 대학생들은 자국의 국가이익이 어떠한 보편적 가치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청년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중국의 주권과 영토, 국가이익, 공산당 통치의 정치체제, 사회주의적 제도가 어떠한 이념이나 명분보다도 우선한다는 ‘중화민족주의’ 사고로 무장돼 있다.

‘중화민족(中華民族)’이란 19세기 말~20세기 초 쑨원(孫文) 등 지식인들이 제창한 개념으로, 중국 영토 내의 여러 민족들이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일치 단결하여 외세에 대항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 이전까지 ‘중화민족’이란 단어는 없었다. 단지 한족과 만주족(滿族), 오랑캐 등의 개념만 존재했다. 1911년 쑨원 주도의 신해혁명으로 탄생한 국가가 ‘중화민국’이었다. 쑨원은 아시아 민족끼리 단결해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지만, 아시아 민족 내부적으로는 차등을 두었다. 그는 1921년 구이린(桂林)에서 한 연설에서 “중국의 영토로 말하자면 베트남, 한국, 미얀마, 티베트, 대만 등은 중국의 속국이거나 속지(屬地)였다. 요컨대 이전에 이들은 모두 중국의 영토였는데, 현재 외국의 판도로 들어가서 중국의 주권을 잇달아 상실했던 것이다”고 주장했다. 즉 중국이 서구 열강에 대항해 싸워야 하지만 아시아 민족들의 독립투쟁, 즉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이나 티베트의 독립투쟁 등에는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억압했다. 쑨원이 제창한 ‘중화민족’은 결국 ‘한족(漢族)우월주의’ 위에, 명청(明淸)대 자신들이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했던 영토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는 ‘영토확장주의’가 결합된 개념이다. 이 ‘중화민족주의’는 공산당 정부 이전, 즉 국민당 정부 시절에도 존재했다. 따라서 이는 중국인의 DNA에 새겨진 한족 우월주의이자 배타적 국익우선주의인 것이다.

지난 11월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인문대 1층 로비에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지키려는 한국 학생들(오른쪽)과 이를 떼어내려는 중국 학생들(왼쪽)이 대치하고 있다. ⓒphoto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지난 11월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인문대 1층 로비에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지키려는 한국 학생들(오른쪽)과 이를 떼어내려는 중국 학생들(왼쪽)이 대치하고 있다. ⓒphoto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쑨원이 제창한 ‘중화민족’의 한계

시진핑이 내건 ‘중국의 꿈(中國夢)’ 역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중국의 영토 범위 안에서 어떤 외세의 간섭도 배제하며, 중국의 국익과 가치를 극대화하여 화려했던 대제국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꿈이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전통적 ‘중화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가치관’이 합쳐진 개념이다. 그가 ‘중국몽’의 실현을 다른 어떤 가치나 목표보다 우선한다는 점에서 시진핑이야말로 ‘중화민족주의’의 표상이다. ‘중화민족주의’가 구현되면 될수록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나 ‘서구식(영국식) 민주주의와 법치’는 용납되기 어렵다. 중국공산당이 강요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영토적 개념을 넘어 공산당 통치의 정치체제와 법률체계, 사회경제 시스템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동안 홍콩이 누려온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언론출판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버리고, 이제 ‘중화민족의 대가정(大家庭)’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 시진핑 공산당의 뜻이다. 750만 홍콩 시민들은 자신의 삶의 기반을 이루는 가치가 중국공산당에 의해 송두리째 파괴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거꾸로 중국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홍콩인들이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의 가치관이 중국 대륙으로 퍼지면 공산당 독재체제가 위협받게 된다. 또 중국이 홍콩을 통제하지 못하면, 장차 대만과 티베트, 위구르지역 등도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 정부가 홍콩 시위를 두려워하고 기어코 진압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의 중국’과 인류 보편 가치의 충돌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세계 각국이 중국과 수교할 때 인정해야만 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1979년 미국도, 1992년 한국도 중국과 수교할 때 이 원칙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 원칙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대만, 홍콩, 티베트 등지에서 중국이 어떤 정치체제와 가치체계를 시행하더라도 외국은 간섭할 수 없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미국이 홍콩 시위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때마다 중국이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는 것도 이런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입장과 논리에서 보면, 한국 대학생들의 홍콩 시위 지지는 곧 ‘내정간섭’이 된다. 자기들 영토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한다는 논리다. 서울대 ‘레넌 월’에 붙은 ‘너희 한국인들과 무슨 상관있냐’ ‘내정간섭 말라’는 포스트잇이 이런 관점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한국 대학생들이 주장하는 ‘홍콩에 자유를’ ‘홍콩 민주주의 지지’ ‘한국은 공산국가가 아니다’ ‘언론자유를 무시하지 말라’ 같은 구호는 인류 보편적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떤 국가나 정부도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그 국가가 중국이든, 북한이든, 혹은 아프리카의 어떤 군사정권이든, 자유와 인권을 짓밟고 독립된 사법부의 재판 없이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대학에서 벌어지는 한·중 학생들의 충돌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당 독재 전체주의’라는 체제 간 경쟁이자 ‘인류 보편적 가치관’과 ‘국익 우선의 중화민족주의 가치관’의 충돌이다.

한국 대학가의 홍콩 지지 운동이 홍콩 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한국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대학으로 확산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국에 와 있는 중국 유학생들이 대자보를 찢고 현수막을 훼손하는 것도 그러한 확산을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보인다. 국제 여론전에서 지지 않겠다는 의도다. 그 배경에는 주한 중국대사관과 베이징 정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지만 큰’ 이 싸움에서 한국 대학생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결과를 얻어내느냐가 향후 한·중관계를 결정하는 상징적인 나침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중 양국 미래 세대의 가치관의 충돌이자, 그 가치관을 실현하고자 하는 용기와 역량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경찰은 지금까지 이러한 양국 대학생의 충돌에 적극 개입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중국 눈치 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대학생 청년 세대는 홍콩 지지 집회를 열고 ‘레넌 월’을 설치할 만큼 건강한 가치관 위에 서 있다. 한국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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