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 김정일관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 김정일관

지난 9월 발생한 최악의 수해로 북한 당국의 중국인 관광객 대상 묘향산 관광상품 판매가 전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에서 북한 관광상품을 취급하는 한 중국 여행사는 “지난 9월 15일부터 묘향산 단체관광이 전면 중단됐다”며 “자연재해로 접근도로의 교량이 심각히 유실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묘향산 관광은 금강산 관광과 함께 북한 당국이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해온 주요 관광상품 중 하나다. 평안북도와 평안남도, 자강도 등 3개 도(道) 사이에 걸쳐 있는 묘향산은 평양에서부터 170㎞ 정도 떨어져 있다. 평양~(묘)향산 간 관광도로를 타고 평양에서 약 2시간 정도면 충분히 접근이 가능해 중국인 관광객도 즐겨 찾는 북한의 대표 관광지였다.

북한 당국은 그간 중국 측 여행사와 관광객들을 상대로 ‘북한 최고 지도자의 피서지’로 묘향산을 홍보해왔다. 묘향산 관광상품의 경우 묘향산의 산수를 비롯해 고려시대에 건립된 고찰 보현사(普賢寺)와 ‘국제친선전람관’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짜였다. 국제친선전람관은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집권 때 전 세계 179개국 정상들로부터 받았다는 무려 22만여점의 기념선물 등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북한 당국은 1978년 개관한 이 전람관을 ‘영광의 선물관’이라고 부르며 북한 체제의 우월성과 공산국가 간 우의를 과시하는 관광 명소로 활용해왔다. 현대식 한옥으로 지어진 김일성관과 김정일관 등 두 개 전시관을 갖추고 있는데, 지난해 대대적으로 확장공사에 나선 사실이 미국의 위성에 포착되기도 했다.

수해로 묘향산 관광이 중단되자 중국 측 여행사들은 기존에 판매해왔던 묘향산 관광상품을 남포의 서해갑문이나 평양 소재 용악산으로 돌리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발생한 수해피해가 워낙 막대해 묘향산으로 향하는 도로복구와 관광재개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핵개발의 새 돈줄로 한·미 양국이 주시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 대상 북한 관광상품 판매에도 어느 정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북한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0만명 정도다. 이 중 90%는 단둥·신의주 통로를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중국 관광객으로 추정된다. 한 중국 언론은 이를 통해 얻는 북한의 관광수입이 2014년 기준 4360만달러(약 493억원) 정도로 추산했다. 향후 한·미 양국이 북한 관광 제재조치를 본격화할 경우 이러한 관광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북한 사회과학원은 “현재 관광객 수를 10배로 늘려 오는 2017년까지 100만명, 2020년까지 2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터무니없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김일성관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김일성관

중국 관광객 80%

중국 여행사들이 알선하는 ‘조선 여행’은 최근 북한 핵개발의 가려진 돈줄로 주목받아 왔다. 미 국무부 역시 새로운 제재 대상 카드로 북한 관광을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미 국무부의 애나 리치-앨런 동아태담당 대변인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진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출처에서 수익을 끌어다 쓰고 있다”며 “북한을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은 북한에 가기 전에 자신이 쓰는 돈이 어떤 것을 지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길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 국무부 대니얼 프리드 제재정책조정관도 지난 9월 중국인 관광객을 북한으로 실어나르는 북한 국영 고려항공을 제재 대상으로 시사한 바 있다. 우리 외교부 역시 선양(瀋陽) 주재 총영사관을 통해 지난 4월부터 북한 관광상품을 취급해온 북·중 접경 랴오닝성과 지린(吉林)성 일대의 52개 여행사에 대한 한국 비자 접수 및 교부 대행업무를 정지시켰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비자 대행업무를 취급해온 선양 총영사관 관할 동북3성 123개 여행사의 42%에 해당하는 수치다.

중국과 북한은 엄연한 수교국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항공뿐 아니라 도로, 철도 등을 이용한 여행이 자유롭다. 이에 중국과 북한의 접경인 랴오닝성과 지린성 등에 소재한 상당수 중국 여행사들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지금도 절찬리에 북한 관광상품을 판매 중이다. 단둥에 소재한 한 여행사의 경우 반일(半日)치기 관광상품부터 최장 일주일에 달하는 다양한 관광상품을 내놓고 있다. 또 북한 투자에 관심이 있는 기업인이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조선상무(비즈니스)고찰노선’이란 특화 상품까지 출시할 정도다. 이 밖에 지린성 창춘(長春)에 소재한 한 여행사의 경우 ‘1960~1970년대 중국으로의 여행’이라는 광고를 하며 훈춘(琿春)에서 나선을 오가는 관광상품을 팔고 있다.

북한 관광상품의 경우 가격대는 최저 390위안(약 6만6000원)짜리 초저가형 반일여행부터 최고 4950위안(약 84만원)에 달하는 제법 고가 상품까지 다양하다. 여행코스는 여행사와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철로나 육로를 이용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 측 단둥역에서 집결한 뒤, 출입국(입출경) 수속을 밟고 단체로 북한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단둥은 북한을 여행하는 중국 관광객의 80% 이상이 기점으로 삼는 곳이다.

단둥에서 신의주 일대를 오가는 반일치기 여행상품의 경우 압록강 중조우의교를 통해 북으로 들어가 대략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말 그대로 북한 국경을 잠깐 넘어갔다가 압록강 풍경을 돌아보고 식사와 함께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프로그램이다. 초저가 여행상품이 대개 그렇듯 북한산 화장품과 담배, 술 등을 판매하는 쇼핑센터를 방문하는 일정도 있다. 또한 40위안(약 6600원)을 현지에서 추가로 지불하면 버스를 타고 신의주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는 선택관광상품까지 판매 중이다. 공연은 학생들 공연으로 짜이는데, 여행사 측은 “양국 간 우의 증진을 위해 학생들에게 줄 작은 기념품을 준비하라”고 밝히고 있다. 또 “식사는 평양냉면, 보신탕 등 조선 특색 요리가 제공된다”고 여행사 측은 소개한다.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주요 도시와 관광지를 둘러보는 관광상품도 있다. 단둥의 한 여행사에서 3600위안에 판매하는 관광상품의 경우 5일간 평양을 비롯해 개성, 판문점, 원산 등지를 둘러보는 코스로 짜여 있다. 주로 단둥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북·중 간 국제열차편을 이용하는데 오후 5시경이면 평양역에 도착한다. 육로로 225㎞ 불과한 거리를 기차로 무려 7시간이나 걸려 이동하는 까닭은 북한의 열악한 철로 사정 탓으로 풀이된다. 평양 관광의 경우 대개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관련된 공산혁명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정 위주다.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만경대(萬景臺)를 시작으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져 있는 만수대(萬壽臺) 기념비, 대동강변의 주체사상탑, 건당(建黨)기념탑, 조국전쟁승리기념관, 인민대학습당, 김일성광장 등을 차례로 둘러보는 코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 110m에 만들어졌다는 평양지하철을 실제로 한 구간 탑승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지방 관광상품의 경우 꼭 빠지지 않는 것은 금강산 관광이다. 묘향산, 칠보산과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 산악 관광지로 꼽히는 금강산의 경우 남측 접경 강원도에 위치해 동선(動線), 접근성 등의 측면에서 과거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현대아산이 1998년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이후 도로와 숙박 등 관광인프라가 정비되면서 북한의 신흥 관광지로 떠올랐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원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접근한다. 현지에서 1박을 한 뒤 구룡연폭포와 삼일포(三日浦) 등을 둘러보고 당일 저녁 평양으로 돌아오는 상품 구성이다.

특히 금강산 지역의 숙박은 한때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 겸 남한 관광객 숙소로 사용한 금강산호텔을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강산호텔은 1958년 건립한 금강산여관을 현대아산이 임차 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호텔이다. 하지만 2008년 7월, 남한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되면서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로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은 여행사들이 취급하는 금강산관광상품에 반드시 동명왕릉이 여행코스로 포함되는 점이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주몽(朱蒙)을 모신 곳으로 알려진 이 무덤은 평양 외곽인 역포구에 위치해 있는데, 금강산으로 가는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변에 위치해 있어 빠지지 않는 관광코스가 된 것으로 보인다.

양각도국제호텔 내 평양오락장
양각도국제호텔 내 평양오락장

개성인삼판매장 등 쇼핑관광

평양 남쪽에 있는 개성으로 향하는 지방관광 상품의 경우 중국에서 소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으로 부르는 한국전쟁 관련 테마여행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중국이 당사자로 참여했던 정전협정 회담장(담판장)을 비롯해 판문각, 남북군사분계선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위해 북한 군인이 직접 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여행사 측은 밝히고 있다. 또 오는 길에 개성의 고려박물관을 참관하고, 고려인삼판매점을 들러 쇼핑하는 코스로 짜여 있다. 이 밖에 지린에서 출발해서 경제무역지대(FTZ·경제특구)로 지정된 나선을 둘러보는 관광상품은 김일성·김정일의 대형 동상을 참관하고, 김일성화와 김정일화를 키우는 화초온실을 둘러본 뒤 비파도 해안에 가서 수산물 가공공장을 들러 쇼핑하는 일정으로 짜여 있다.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숙소는 평양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대부분 대동강이 보이는 양각도국제호텔이나 량강(兩江)호텔을 이용한다. 이는 북한 지방의 열악한 숙소 사정 탓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부분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대동강 양각도(羊角島)에 자리한 양각도국제호텔에 투숙한다. 1001개 객실을 갖춘 대형 호텔로, 과거 마카오의 카지노를 40년간 독점해온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가 투자해 개설한 ‘평양오락장(娛樂場)’이란 외국인 카지노까지 갖췄다. 양각도는 대동강의 하중도(河中島)로 강물로 격리돼 있어 외래 관광객을 통제하는 데 유리하다. 량강호텔은 보통강이 대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330개 객실을 갖춘 호텔인데, 악명 높은 시설관리로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혹평을 얻고 있다.

중국계 자본이 투자한 호텔을 주로 이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평양과 제법 거리가 먼 경제특구 나선에서는 비파해수욕장 인근에 카지노를 갖춘 엠페러오락호텔을 주로 이용한다. 엠페러오락호텔은 마카오에서 카지노 호텔인 영황오락주점(그랜드엠페러호텔)을 운영하는 홍콩의 엠페러(英皇)그룹이 투자해 2000년에 문을 연 카지노 호텔이다. 심지어 단둥의 한 중국 여행사는 신의주에서 남쪽으로 40㎞ 정도 떨어진 평북 동림군 동림폭포 인근에 북한과 합작으로 동림빈관이란 4성급 호텔을 세워 신흥 관광지로 개발하기도 했다. 이 호텔은 2014년 10월 문을 열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 위주로 받고 있는데 방이 없어 못 팔 정도라고 한다.

평양 양각도의 양각도국제호텔
평양 양각도의 양각도국제호텔

중국인 관광객 대상 북한 여행의 교통편은 대개 철도나 버스로 이뤄지지만, 고가 여행상품의 경우 종종 항공편을 이용하기도 한다. 일부 고가 여행상품의 경우 북한 입국 시에만 단둥과 평양을 연결하는 국제열차 편으로 들어가고, 출국 시에는 평양 순안공항에서 고려항공을 이용해 선양 등지로 나오는 일정을 짜고 있다. 철로 입경이 불편한 지린성 창춘 등지서 출발하는 북한 관광상품 역시 고려항공 전세기 편을 종종 이용한다. 북측 백두산 기슭의 양강도 삼지연군의 삼지연공항으로 들어갔다가, 북한 전역을 둘러보고 평양 순안공항에서 다시 창춘으로 빠져나오는 코스다. 삼지연공항 역시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남북 간 백두산 관광사업을 준비하면서 남측이 제공한 남북협력기금을 받아 정비한 공항이다.

중국인 관광객 입국에 필요한 비자발급 절차 역시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원활하다. 여행사들은 비자접수를 함께 취급하고 있는데 대개 일주일 정도면 비자발급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알리고 있다. 심지어 지난 7월 9일부터는 단둥에서 신의주의 ‘여행특구’를 제한적으로 오가는 단체관광 상품의 경우 아예 비자는 물론 여권 없이도 여행이 가능하다. 북한 여행이 주로 이뤄지는 동북3성을 비롯해 중국에는 여전히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여권조차 없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여행사 측은 “4일 전에만 신분증 사본을 제출하면 된다”고 밝혔다. 반면 조선족 동포의 경우는 “7일 전에 선명한 신분증 사본 혹은 6개월 이상 유효기간이 남은 여권 사본을 미리 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탈북 브로커나 남측 정보원으로 종종 활동하는 조선족 동포들의 북한 방문을 원천적으로 거르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에 따르면, 현재 무여권 북한 여행은 ‘여행특구’로 지정된 3만㎡ 이내 지역에서만 가능한데, 북한과 중국 당국은 향후 여행특구를 13만㎡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화폐가치 교란을 우려해 위안화 6000위안(약 100만원) 이상의 소지를 금하고, 북한 표준시(동경 127.5도 기준)를 적용해 중국과 북한의 시차를 30분으로 소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과 중국의 시차는 1시간이다. 또한 여행사 측은 “한국에서 제조한 식품, 기념품, 인쇄물을 비롯 소형 카메라 외에 망원렌즈를 갖춘 카메라와 망원경은 반입이 안 된다”며 “취재 목적을 띤 관광 역시 절대 불허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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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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