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81호] 2017.11.06
관련 연재물

[안보] 북한 核 그 종말의 여로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좌) 김정은 (우) 트럼프 photo 뉴시스
1950년대 초반 시작된 북한의 핵개발 역사가 이제 종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시점이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국의 핵폭탄 위협에 질겁했던, 아니 그것보다도 오히려 더 소련의 나몰라라는 식 오리발적 행동에 분노한 김일성은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핵무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을 사주한 소련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자 오히려 책임회피에 급급했고 이에 좌절한 김일성은 ‘독자적 전쟁수행 능력’이 없는 나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절절히 느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일성의 핵개발 노력은 실질적인 것이기보다는 허풍의 측면이 더 컸다. 그러나 김일성 왕조체제가 실질적으로 핵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발생했으니 바로 1989년 무렵 발생한 공산권의 붕괴사건이었다. 동부 유럽 공산당이 줄줄이 붕괴했고 1990년에 소련마저 붕괴해 버리고 말았다.
   
   김일성-김정일 정권이 정상적인 정권이라면 핵을 개발하기보다는 개혁개방을 통해 살길을 찾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왕조(王朝)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김일성-김정일 체제는 국민 혹은 국가의 생존보다는 권력의 생존을 도모하는 수단을 적극적으로 강구했다. 북한의 핵폭탄 개발 계획이 국제문제로 비화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의 일이었다. 미국의 정보 당국자들은 영변에 있는 핵시설이 북한이 말하는 핵 발전 시설이 아니라 핵폭탄을 만드는 군사시설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방지하기 위해 그다지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다. 냉전이 다 끝난 마당에, 그래서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소련도 소멸해 버렸고 중국도 자본주의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 같은 작은 나라 하나가 핵을 만든다는 것이 세계 전략 구도의 대세(大勢)에 영향을 미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1차 핵 합의 이후 북한에 경수로 및 다른 경제지원을 제공할 때, 북한은 어차피 무너질 정부인데 별 걱정할 일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핵폭탄은 생(生)과 사(死)의 문제였다. 북한을 지원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되었던 중국이 한국과 수교할 때 김정일은 “믿을 것은 핵폭탄밖에 없다”며 북한의 과학자들을 독려했다.
   
   
   왜 치킨게임이 아닌가
   
   2001년 9·11테러사건 이후 미국이 북한의 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북한의 핵폭탄이 테러의 도구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몰아세우며 북한을 압박했다. 테러리스트 그 자체가 운반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북한이 미국까지 날아올 수 있는 미사일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듯 “바보 같은” 전임 대통령들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 부담을 트럼프에게 맡겨 놓고 떠나갔다. 트럼프의 전임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핵에 대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약간은 황당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책을 전개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의 핵은 이제 완성 직전의 단계에 이르렀다.
   
   오바마가 북한 핵에 대해 전략적 인내를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의 핵폭탄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예상되던 시점이 2020년이었기 때문이다. 2020년은 오바마가 백악관을 떠난 후 4년이 더 지난 시점이다. 트럼프가 북한의 핵폭탄에 대해 도무지 인내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재임기간 중 북한의 핵폭탄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2017년 북한의 핵 도발을 면밀히 관찰한 후, 북한의 핵폭탄이 미국 본토를 공격하게 될 시간을 2018년 후반으로 앞당겼다. 그렇지 않아도 성미 급한 트럼프를 좌우지간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한국의 언론이 현실을 곡해하는 설명이 있는데 트럼프와 김정은의 대결을 고전적인 치킨게임으로 보는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벌이는 게임을 치킨게임으로 설명하면 안 된다. 트럼프가 타고 있는 것은 탱크다. 반면 김정은이 타고 있는 것은 경차다. 트럼프가 달리다가 핸들을 꺾을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정은은 그냥 달릴 경우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국제정치를 힘의 정치(Power Politics)라고 말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응 소사(小史)
   
   2017년 한 해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에 거의 도달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과 이를 결코 허락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이 정면충돌하는 해였다. 1월 20일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꼭 2주째 되는 날 김정은의 북한이 단행한 미사일 실험을 보고 격분했으며 “대단히 골치 아픈 문제에 대단히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천명했다. 트럼프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미사일 및 핵실험 도발을 끊임없이 단행해오고 있으며 미국과 북한이 주고받는 말의 험악함은 이미 도를 넘은 지 오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8일 “북한이 도발을 지속할 경우 불과 분노(fire and fury)의 세례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후 며칠 있다가 “미국은 이미 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 준비가 끝났다(Locked and Loaded)”고 선언했다. 북한은 괌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며 응수했고 괌에서 출격한 B-1 B 폭격기 편대는 9월 23일 자정 무렵 동해의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한 부근의 동해 바다를 비행했다. 유엔 총회에 참석 중인 북한 외무장관 리용호는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미국의 폭격기가 북한 영공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격추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트럼프는 “북한 외무장관이 꼬마 로켓 맨(Little Rocket Man)의 말을 되뇌고 있는 것을 들었는데 둘 다 오래 남아 있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북한은 미국을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했고 미국은 북한을 철저히 파멸시키겠다고 했다. 물론 실제 국력상 미국이 하는 말은 가능한 말을 하는 것이고, 북한이 하는 말은 공갈(bluffing) 수준이라고 보아야 한다. 순수하게 군사적인 측면만 따진다면 북한은 이미 미국의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앞에서 미국과 북한은 탱크와 경차에 비유했다. 지금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비록 경차이지만 탱크와 부딪쳤을 때, 경차가 완전히 파괴당할지라도 탱크의 승무원을 하나라도 죽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북한이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핵폭탄을 갖게 되는 날 이루어진다. 그날에는 탱크라도 경차를 깔아뭉갤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꿈에도 그리던 상황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같은 상황의 도래를 용납할 수 없다.
   
   한국 사람들 중에는 북한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 이유를 ‘체제 보장’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 등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주면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다. 상황에 대한 천진한 분석이다. 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지 따져 보자. 미국과 한국이 또는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이 김정은에게 ‘체제를 보장해줄 테니 핵무기를 폐기하라’고 요구했다고 하자. 이때 김정은은 이들 나라들에, 특히 미국과 한국에 뭐라고 말할까?
   
   
   대화로 문제가 해결될까?
   
   김정은은 미국의 체제 보장 약속에 대해 “내가 당신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내가 믿을 수 있도록 증명해 보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럴 경우 미국은 어떻게 할까? 돈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줄 테니 핵무기를 폐기하라고 할까? 또는 주한미군을 모두 철수시키고 한국과 동맹관계도 폐기할 테니 걱정 말고 핵을 폐기하라고 할까? 혹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게 저항할 경우 미군이 평양에 들어가서 김정은 편에 서서 저항하는 시민들을 제압해줄 테니까 걱정 말라며 김정은을 안심시킬까? 정치학 혹은 국제정치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위의 말들이 얼마나 황당한 소리인지를 잘 알 것이다. 한국이 북한의 체제 보장을 해주겠다고 나서면 김정은은 ‘한국은 빠지라’ ‘한국이 어떻게 나를 보장해줄 수 있는가?’라며 경멸조의 말을 늘어놓을 것이다. 이미 한국의 종북세력은 김정은에게 ‘절대로 핵을 내려놓으면 안 된다’고 오랫동안 충고했다. 카다피 혹은 후세인은 핵이 없어서 당한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정은이 핵을 만들려고 집착하는 이유는 ‘진정 믿을 수 있는 것은 핵무기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60년 동안 ‘철천지원수’라고 생각해온 미국의 체제 보장 약속을 믿고 핵을 폐기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북한은 전갈 같은 나라다. 작지만 맹독(猛毒)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런 나라가 이제 사자(미국)마저도 자제해야 할 만큼의 진짜 무서운 독(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는 핵무기)을 갖기 직전에 이르렀다. 그런데 전갈에게 그 독을 제거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독이 없으면 그게 전갈인가? 독을 빼면 전갈은 메뚜기보다도 무섭지 않다. 전갈인 북한이 어떻게 메뚜기가 될 수 있겠나?
   
   결국 김정은은 지난 10월 7일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따라 전진해온 것이 천만 번 옳았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더 나아가 ‘국가 핵 무력 건설의 역사적 대업 완수’에 대해서 말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가 소련을 배반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상황에서 결심했고, 중국의 배반을 처절하게 통감하며 믿을 것은 핵뿐이라며 다그쳤던 핵무장을 ‘역사적 대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역사적 대업을 위해 북한은 무려 300만이 굶어죽는 고난의 행군도 했고 지금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이 다시 있을지라도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기필코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 개발을 “체제 압살 책동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이룩한 것, 즉 “역사적 대업”임을 다시 공식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 노력은 김씨 왕조 체제의 속성에서 유래하는 고유한 국가전략이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핵을 완성해야만 한다. 먹을 것도 없는 나라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식량을 사올 돈으로 무기를 만들어야 하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김정은 정권은 미국의 마지막 인내심을 건드리는 데까지 나갔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이미 ‘미친 사람’이라고까지 말했는데 미친 사람이 미국을 때릴 수 있는 무기를 드는 상황을 허락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은 도덕적으로 행동하지만 국가들의 행동은 도덕적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국가들의 행동 원리는 개인과는 다르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개념이 세상의 표준과는 아주 달라 보이는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은 어디까지 나갈 것인가? 북한의 핵개발은 이제 북한 체제마저 그 종말의 여로를 달리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LG V30

맨위로

2484호

2484호 표지

지난호보기 정기구독
유료안내 잡지구매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찾기
호르반
삼성전자 갤럭시 s8
부산엑스포
경기안전 대동여지도
조선토크 브로슈어 보기

주간조선 영상 more

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