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방송화면 캡처
KBS 방송화면 캡처

무소속 윤상현 의원과 안상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소송전을 벌이게 된 ‘선거 공작 의혹’ 사건은 ‘함바왕’ 유상봉씨와 그의 아들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 유씨는 안상수 전 의원과는 송사를 주고받으며 악연으로 엮여 있었고, 윤 의원과는 가까운 지인을 통해 얼굴을 튼 관계였다. 윤 의원과 안 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같은 미래통합당 인천 지역구 의원으로 관계가 원만했다. 그랬던 셋이 얽히고설킨 관계가 된 것은 지난 2월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윤 의원이 인천미추홀구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인천 중구옹진 현역의원이었던 안 전 의원이 윤 의원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으면서부터다.

유씨는 지난 7월 14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윤 의원이 내게 함바 식당 입점, 롯데백화점 입점 등 이권을 주는 대가로 안상수에 대한 공격을 사주했다”고 폭로했다. 경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씨 부자, 그리고 이들 부자와 의사소통했던 윤 의원실 조모 보좌관을 입건하면서 수사도 시작됐다. 하지만 유씨의 설명과 배치되는 물증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오히려 “유씨가 윤 의원을 통한 이권 획득이 좌절되자 역으로 윤 의원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씨가 조 보좌관에게 먼저 “안상수를 공격할 테니 롯데건설 재건축 함바 사업권을 달라”는 제안을 하는 편지를 보낸 게 밝혀지면서다.(주간조선 2619호 참조)

유씨가 최초에 누구에게 제안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유씨가 양측 모두에게 자신의 의사를 타진했다는 점이다. 즉 유씨가 윤 의원 내지 안 전 의원 측 누군가에게 최초의 제안을 하고 이것이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다른 한 사람에게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KBS의 연속보도에는 유씨와 안 전 의원 간 오랜 악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 유상봉씨의 아들 유모씨에 따르면 유씨는 안 전 의원과 오랜 원한관계였다. 지역 내 이권과 관련해 인천시장을 지낸 중진 의원이었던 안 전 의원에게 수십억원의 거액을 건넸는데, 실제 사업은 전혀 따내지를 못하고 오히려 유씨는 여러 혐의로 감옥에 들어가면서 원한이 쌓였다는 게 아들 유씨의 설명이다. 반면 윤 의원과 유씨는 작년 9월 이후 관계가 단절되지만 윤 의원실 조 보좌관과 유씨 아들이 친한 관계였다. 일종의 삼각관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런데 유씨는 아들을 통해 민원을 들어준 윤 의원이 사주했다는 선거 공작 의혹을 폭로하고, 결과적으로 안 전 의원과 같은 진영에 섰다.

주간조선은 유상봉씨가 윤상현 측에서 안상수 측으로 돌아서게 된 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통화 녹음파일을 입수했다. 유상봉씨의 아들과 A씨가 대화하는 6분24초 분량의 통화 녹음파일이다. A씨는 유씨와 동향으로 오랜 이웃사촌 관계라고 한다. 유씨의 아들도 A씨를 잘 알았다. A씨는 유상봉씨가 이동할 때 운전을 대신 해줄 정도로 매우 친밀한 지인의 부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아들 유씨의 설명이다. 현재 아들 유씨가 아버지와 상반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유상봉씨의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원경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직과의 재판이 진행 중인데,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 유씨는 “아버지가 이제 나이도 많고, 감옥에서도 진정서를 수백 장씩 쌓아놓으면서 다른 재소자들과 갈등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아버지가 더 이상 감옥에 가는 것은 막고 싶다”고 말했다. 유상봉씨는 ‘함바’ 운영권과 관련해 경찰 간부나 공기업 임원, 건설사 임원 등에게 뒷돈을 건네거나 관련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로 2010년부터 구속됐다가 풀려나기를 반복하고 있다.(주간조선 2618호 참조)

원한 관계에서 동업 관계로

지난 6월 23일 통화에서 아들 유씨는 A씨에게 “아버지가 안상수한테 붙었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자 A씨는 “사연이 있겠지”라며 “안상수 쪽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이숙(특정 지역에서 아저씨를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여기서는 유상봉씨를 지칭함)이 나가진 않고 대신 B씨가 나갔다. 내가 알기로 저번 주 일요일(6월 21일)”이라고 설명한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안 전 의원 측에서는 여성 한 명이 나와서 “‘함바’ 세 개를 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아들 유씨의 설명에 따르면 B씨는 소위 ‘함바 브로커’로, 유상봉씨에게 오랜 기간 함바 식당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녹취록을 보면 유상봉씨가 윤 의원 측에서 왜 안 전 의원 측으로 돌아섰는지를 A씨가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아들 유씨 (아버지가) 나한테 (안 전 의원에게) 몇 년 동안을 20~30억을 사기당했다고. ‘이 XX 죽여야 된다’고 그래 놓고서는….

A씨 죽이는 거보다 돈이 더 급한가 보지. 근데 나는, C씨도 그것 가지고 막 뭐라 하더만. 내가 C씨한테 뭐라 했어요. 왜냐하면 이숙이 이 일을 안 하면 모를까. 이제 이숙 나이도 있고 마지막이야. 그쵸?

아들 유씨 그렇지.

A씨 근데 이숙이 여태까지 열나게 고생하고 해서 지금 돈이 하나도 없잖아. 노후(대비)도 해야 되는데 돈을 만들고 빨리 그만둬야지 나이가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들 유씨 응.

A씨 그리고 그 사람들하고 어차피 인간관계로 만난 게 아니라 이 건 때문에 만난 건데. 이놈이나 저놈이나 도와주는 게 장땡이지, 안 도와주는 놈은 필요 없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이제 와서 누가 돈을 가져왔든 뭐했든 어쨌든 간에 돈이라도 얼른 만지면 그만둬야 할 거 아니에요.

아들 유씨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안상수 쪽에서. 그때 20억을 줬을 때도 안 좋았던 사람이 지금 도와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데. 아버지는 왜.

A씨 그건 이제 목 졸리니까 그런 거지.

아들 유씨 그니까 뭐가 걸리니까 그런 거 같은데. 그렇게 하고 나서 아버지를 가만 놔두겠냐고.

A씨 그야 모르지.

아들 유씨 이제까지 감옥에서 못 나오게 한 것도 사실은 그 사람이라고 의심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가만 놔두겠냐고.

A씨 정치하는 사람들은 아군 됐다 적군 됐다 하는 거 아니야?

아들 유씨 그렇게 단순하게 볼 게 아니야. 나는 아버지가 다시 감옥 들어갈까봐 그러는 거야.

A씨 응. 조심해서 해야지. 근데 그쪽이랑 아직 뭘 하겠다는 건 아니야. 안상수 쪽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아들 유씨 아니 신문을 보니까 ‘안상수에게 늦게나마 사과한다’고 인터뷰를 했더라고.

A씨 아 그래?

아들 유씨 응 지금 뭐하자는 거냐고.

이 같은 녹취록의 내용을 근거로 아들 유씨는 안 전 의원 측이 유상봉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함바 3곳을 제공하는 대신 윤 의원을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유씨가 안 전 의원으로부터 이권을 제공받는 대신 윤 의원을 공격하는 형태로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녹취록은 통화에 언급된 B씨나 안 전 의원 측 당사자가 직접 통화한 내용이 아니라 유씨의 아들과 제3자인 A씨가 나온 ‘전언(傳言)’ 형식이기 때문에 신빙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여러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유씨가 상당한 금전적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들 유씨는 “아버지는 늘 채권자들에게 쫓겨왔다”고 말했다.

아들 유씨에 따르면 A씨는 당시 유상봉씨의 상황을 자신보다 더 잘 알던 사람이다. 아들 유씨는 윤 의원 보좌관과 가깝게 지냈고, 당시 유씨는 안 전 의원 측에 서 있었기 때문에 부자지간이지만 사건과 관련한 대화는 일절 나누지 않았고, 평소 전화통화도 소원했다는 것이 아들 유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통화 내용을 보면 이 같은 부자간 감정의 골을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녹취록에서 A씨는 아들 유씨에게 “이숙이랑 통화 좀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아들 유씨는 “통화해도 나한테는 안 해. 나는 있는 그대로 경찰에 진술을 해버리니까. 나보고 자꾸 지금 가서 거짓말하라는 거야. 뭐든 윤상현이 도와줬다고 하라고. 나랑 무슨, 그리고 내가 전화해 가지고 들을 사람이 아니잖아”라며 거절한다. A씨는 “하긴 이숙이 고집이 여간 세야지. 어차피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까”라고 동의한다.

이 통화가 끝난 며칠 뒤인 6월 말, 7월 초부터 유상봉씨는 KBS 등을 통해 “윤 의원이 선거 공작을 사주했다”는 폭로를 시작한다. 유씨 아들은 이 과정에도 안 전 의원 측이 개입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그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저도 여러 기자와 접촉하려고 메일도 써보고 전화도 해봤는데 쉽지 않았다”며 “아버지의 인적 인프라가 그 정도가 안 되는 걸로 아는데 단시간에 스케줄이 여러 개 잡힌 걸로 봐서 중간에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사안은 현재 맞고소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안 전 의원 측 조모 사무국장은 지난 7월 17일 윤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고, 윤 의원 측 역시 조 사무국장을 무고로 검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주간조선은 윤 의원을 고소한 안 전 의원 측 조모 사무국장에게 이 문제를 문의했다. 조 국장은 “함바를 세 개 해주기로 한 게 맞냐”는 질문에 “저는 잘 모르니 (안상수) 의원님과 통화하라”고 했다. 안 전 의원은 함바 관련 질문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쪽(윤 의원 측)이 그렇게 (말)하면 무고(소송)를 해야지”라며 “내가 건설회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처가가 건설회사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처가가 롯데가(家)인 윤 의원을 겨냥한 말로 풀이된다. 조 국장은 이후 다시 전화를 걸어와 “유상봉씨와 윤 의원 측 간에 벌어진 일을 왜 안 전 의원에게 덮어씌우는지 모르겠다”며 “안 전 의원은 유상봉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통화에서 언급된 B씨 역시 전화통화에서 안 전 의원 측을 만났냐는 질문에 “기가 막힌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나는 유상봉씨에게 7억~8억원 가까이의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 곧 고소할 예정”이라고 했다.

주간조선은 이 사건과 관련해 결국 유상봉씨의 입장을 듣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그와 지난 7월 24일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는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