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12일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은 기존 자본시장에서 통용되던 세계 금융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세계 금융의 판을 짜보자는 것이 주요 의제였다. 여기에 회복될 듯 회복될 듯하면서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세계 금융위기라는 중병에 새로운 처방을 내려 보자는 커다란 전제를 가지고 시작됐다. 세계 금융의 판을 새로 짜보자는 노력은 이번 세계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세계 각국의 과잉 부채를 제한하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규제와 감독 체계를 세계 각국이 공조해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 G20 회담은 세계 각국 금융기관의 공공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중요한 단초를 마련해 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향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지가 미지수이지만 각국의 정상들이 고민한 결과물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 준다면 세계 금융 불안의 한 요인인 제도와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G20를 세계 금융위기에 새로운 처방을 내려 보자라는 대목에서 보면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제도와 규제의 정비에는 각국이 뜻을 같이하면서도 유동성에 관해서는 첨예한 대립의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더욱이 경기 회복에 대한 숙제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미제로 남겨졌다. 국가 간 경제 상황 차이가 너무 크고, 어느 국가든 자국 이기주의 유혹을 쉽게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취한 2차 양적 확대는 그 대표적 예이다. 여기에 최근 세계 경기가 부분적인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몇몇 국가에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 팽배했던 위기 의식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런 심리적 영향은 경기 회복을 위한 국제 공조의 어려움을 가속시키고 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환율 갈등에서도 볼 수 있듯, 이미 올 3분기부터 경기 회복을 위한 국제 공조는 약화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통화·환율과 관련, 그동안 보여온 세계 각국의 공조가 해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G20 정상회담을 전후해 국가 간 환율전쟁은 논쟁은 격하지만 시장에서는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든 듯하다. 현재 글로벌 자산 시장에서 극단적인 환율전쟁은 모두가 패배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형성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공감대는 달러와 유로화의 완만한 약세를 불러오고 있다. 달러와 유로화의 완만한 약세는 글로벌 투자자금을 상대적 통화 강세 지역으로 몰고 있다. 경기의 내성이 강한 아시아 이머징 마켓은 물론, 원자재 등의 상품으로도 끊임없이 투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한국, 특히 한국 주식시장의 입장에서 이러한 투자금 유입은 주가 호조를 뒷받침하는 힘이 되고 있다.

통상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질수록 자금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고, 위험 자산 투자가 증가하는 것이 금융시장의 법칙이다. 이 경우 물가 상승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원자재 등 상품 가격의 고공 행진도 동시에 나타난다.

주식과 상품 시장의 호황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금융위기 당시인 2년 전에 비해 부채가 줄지 않았고 소비와 고용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최근 남유럽 금융 불안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는 것처럼 민간의 부채 일부가 정부 부채로 넘어가며 국가 재정 문제는 언제든지 또 다른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미국은 저금리와 달러 방출을 택한 것이다. 유동성이 회수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유동성에 기반한 현재의 자산시장은 정상적인 시장 활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부채가 줄고 경기가 자생적으로 살아나서 활성화된 시장이 정상적인 시장이다. 하지만 당분간 이런 시장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거대한 유동성 외줄타기 외에는 시장 활성화에 대해 달리 대안이 없다는 점이 글로벌 자산시장의 고민이다. 마치 유동성이라는 폭탄을 들고 축제를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G20 정상회담은 그런 과제를 그대로 남겨 둔 듯해 보인다.

홍성국

대우증권 전무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대우증권 투자분석부 부장,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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