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 미국 디트로이트 코보센터에서 열린 ‘2019 북미 국제 오토쇼’에 공개된 기아자동차의 대형 SUV ‘텔루라이드’. ⓒphoto 뉴시스
지난 1월 14일 미국 디트로이트 코보센터에서 열린 ‘2019 북미 국제 오토쇼’에 공개된 기아자동차의 대형 SUV ‘텔루라이드’. ⓒphoto 뉴시스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놀라게 한 이슈 중 하나는 롤스로이스가 창사 이래 첫 SUV(Sport Utility Vehicle)인 ‘컬리넌’을 출시한 일이었다. 영국계 회사였다가 1998년 독일 BMW에 인수된 롤스로이스는 1906년 창사 이래 줄곧 최고급 세단만 만들어왔다. 세계 최고 세단 브랜드인 롤스로이스가 SUV 시장에 진출한 것은 100년 넘는 자동차 시장에 거센 변화가 일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자동차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그 변화란 승용차 시장에서 세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SUV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말한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 부는 이런 변화의 바람은 국내 시장에도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 2년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국내에서는 경기불황의 유탄을 맞았고, 외국산 브랜드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해외에서는 중국 내수시장 위축의 영향이 컸다.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자동차 업체들이 최근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데 그 반등을 이끌고 있는 것이 바로 SUV다.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차체. ⓒphoto 쌍용자동차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차체. ⓒphoto 쌍용자동차

롤스로이스도 창사 첫 SUV 컬리넌 출시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 7월 31일 발표한 상반기 자동차 판매 현황을 보면 이런 점들이 잘 나타나 있다. 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시장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88만9588대인데, 이는 전년 동기대비 4.3% 감소한 수치다. 주목할 것은 세단 판매량은 40만6523대로 13.0%나 감소한 반면, SUV는 전년 동기대비 4.3% 늘어난 32만2579대로 성장세를 이어갔다는 점이다. 이런 판매량 호조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SUV 판매비중은 44.2%를 기록했다.

승용차 시장에서 SUV 판매비중은 2016년 32.8%에서 2018년 41.2%로 증가하는 등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SUV와 더불어 판매량이 증가하는 차종은 전기차가 유일했다. 차종별 판매량 변화는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인구, 환경, 라이프스타일 등 사회적으로 다양한 트렌드 변화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고유가 시대에는 디젤차 판매가 늘어나고,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 전기차 판매가 증가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그렇다면 최근 2년간 SUV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차량 자체 요인으로는 기술의 진보를 꼽을 수 있다. 과거 SUV는 오프로드 주행을 위한 프레임과 파워트레인 등을 채택했기 때문에 승차감과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 개발되는 엔진부터 프레임까지 풀체인지가 되면서 세단 못지않은 주행 성능과 승차감을 갖췄다. 일례로 지난 2년간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끈 대형 SUV인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나 현대차 ‘팰리세이드’는 차체 제조에 모노코크(Monocoque) 방식을 채택했다. 모노코크 방식이란 보디와 프레임이 하나로 되어 있는 차량 구조를 말한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도 SUV 차체의 대세는 ‘보디 온 프레임(body on frame)’ 방식이었다. 이는 사다리 모양의 프레임에 사람이 타는 차체를 얹는 방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보디 온 프레임’은 높은 강성이 장점이어서 오프로드에 적합하고, ‘모노코크’는 승차감이 좋은 대신 차체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출시되는 대형 SUV는 모노코크 구조를 택하고도 강성까지 확보했다. 결국 승차감과 효율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기술의 진보는 고객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고, 대형 SUV 시장이란 새로운 시장을 형성했다. 이 시장은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도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그런데 국내 시장은 대형 SUV가 각광받는 세계 시장과의 흐름과도 약간 다른 측면이 있다. 지난해 출시한 현대차 팰리세이드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글로벌 트렌드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국내 시장에서는 경차의 수요까지 SUV가 빨아들면서 SUV의 비중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모노코크’ 방식의 차체. ⓒphoto 랜드로버
‘모노코크’ 방식의 차체. ⓒphoto 랜드로버

국내서 새로 창출된 소형 SUV 시장

경제가 어려우면 경차 판매가 증가하던 과거 패턴과는 달리 최근에는 경차 판매가 현저히 감소한 대신 소형 SUV가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차가 출시한 베뉴나 기아차 셀토스는 기존 SUV 시장에서는 없던 라인업이다. 현대차의 경우 팰리세이드(대형)-싼타페(중형)-투싼(준중형)-코나(소형) 등으로 SUV 라인업이 구성되어 있었다.

더 이상 세분화가 어려울 것같이 나름 촘촘한 라인업에 코나보다 낮은 가격대의 소형 SUV인 베뉴를 새로 선보였다. 기아차도 기존 니로보다 가격이나 엔진 배기량을 한 단계 낮춘 셀토스로 코나나 베뉴와 비슷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 시장을 처음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르노삼성의 QM3나, 쌍용자동차 부활을 이끈 티볼리 역시 여전히 해당 자동차 회사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대형과 소형 SUV가 동시에 판매 호조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기술적 측면보다는 사회 전체적 생활 패턴 및 가구 형태 다변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통화에서 “최근 나온 SUV 차량은 주52시간제의 확대로 인해 여유가 생긴 젊은층이나 여성층을 겨냥했다”며 “어떻게 보면 기존에 숨어 있던 시장을 찾아낸 셈”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의 이런 추세는 더욱 굳어질 전망이다. 이미 글로벌 자동차 업체 중 일부는 SUV 라인업 확대를 위해 일부 세단 라인업을 정리하고 있다. GM은 임팔라, 아베오 등 6개의 세단 라인업 단종 수순에 들어갔고, 포드는 이미 2018년 4월 머스탱, 포커스를 제외한 세단 라인업 단종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증권의 한 연구원은 “현대기아차의 SUV 라인업 확장은 긍정적이나 세단 라인업 축소가 병행되지 않으면 개발비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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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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