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군수문제 정통한 고위 탈북자 주장 ‘핵무기’ 완성하려면 3차 핵실험 성공해야
김정은 전권 이양받았다고 볼 수 없어…
연평해전 패배 후 북한 10년간 복수 준비
북한이 지난해 5월 실시한 2차 핵실험 장소의 위치가 140m 범위로까지 좁혀졌다. 사진은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지질학과 롄싱 원 교수팀이 미 학술지 ‘지진학연구소식(Seismological Research Letters)’ 1·2월호에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함께 실은 것이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위치는 북위 41°17'38.14', 동경 129°4'54.21'로 추정되는데, 이는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지역이다.
북한이 지난해 5월 실시한 2차 핵실험 장소의 위치가 140m 범위로까지 좁혀졌다. 사진은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지질학과 롄싱 원 교수팀이 미 학술지 ‘지진학연구소식(Seismological Research Letters)’ 1·2월호에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함께 실은 것이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위치는 북위 41°17'38.14", 동경 129°4'54.21"로 추정되는데, 이는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지역이다.

“북한이 아직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고위 탈북인사의 증언이 나왔다. 북한 군사문제와 군수산업에 정통한 이 인사는 1월 18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두 차례에 걸쳐 핵 실험을 했지만 핵 효율이 너무 낮아 아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며 “3차 핵실험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핵무기를 갖췄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을 무기로 사용하려면 TNT 10만톤 이상의 파괴력을 갖춰야 하는데 아직까지 북한의 기술력은 이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며 “또 핵무기를 발사하려면 미사일 탄두에 핵을 앉히는 소형화 기술이 필수적인데 북한은 아직까지 이 기술력도 보유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으로, 어떻게 해서든 3차 핵실험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며 “북한이 3차 핵실험에 성공하면 그땐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6년 10월에 1차 핵실험을, 2009년 5월에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외교안보연구원은 2010년 12월 펴낸 ‘2011년 국제정세전망’에서 “북한이 2011년에 핵 무장력을 증강해 3차 핵실험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 사건과 관련해 “1999년 연평해전에서 참패한 북한이 이후 10년간 준비해 온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남측 함정이 내는 고유한 선체소음을 어뢰 CPU(중앙처리장치)에 저장, 10㎞ 이상 떨어진 원거리에서도 감지해 추적·격발되도록 해놓았다”며 “이는 천안함이란 특정 함정을 깨기 위해 목표를 정해놓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후계자 문제에 대해 “일부 북한 간부들이 김정은을 지칭해서 ‘그 새끼’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 같은 일은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이란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5월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김정은의 후계자 확정을 결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며 “당시 원자바오 총리가 김정은 승계설을 부인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발간한 방중보고서를 통해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김정은 권력 승계설은 서방에서 나온 거짓된 소문(a false rumour)’이라고 부인해 놀랐다”며 “승계설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탈북인사는 “작년 5월까지만 해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김정일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김정은을 후계자로 삼게 된 배경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며 “김정은이 전권을 이양받았다면 인사를 단행해 조직지도부를 움직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아직까지 김정은이 전권을 이양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고위탈북자가 두 시간 가까이 이뤄진 인터뷰에서 밝힌 주요 내용이다.

후계자 김정은 후계절차, 혁명정신에 어긋나

북한의 모든 정치체제는 김일성의 혁명사상(김일성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주체사상은 수령과 당, 대중 간의 상호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수령을 계승하는 것은 혁명사상을 계승하는 것이지, 결코 김씨 가문의 혈통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다. 김정일이 김일성을 계승할 때 여러 단계를 차례로 밟으며 절차를 거친 것은 ‘김일성의 아들’이 아닌 김정일 개인이 가진 ‘탁월한 능력’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은의 경우엔 밀어붙이기 식으로 모든 절차가 진행됐다. 북한은 기존에 없었던 자리인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새로 만들어 김정은을 앉혔다. 이는 당 규약에 어긋나는 것이며, 김일성 혁명사상에 어긋난다. 이 부분에 대해 북한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

북한은 2009년 12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 개혁의 목적은 김정은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은 화폐개혁 1년 전인 2008년 농민을 상대로 일종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북한에서 농민은 전체 인구의 50%가량을 차지하는 가장 큰 직업군이다. 이 조사에서 ‘농산물을 북한 당국이 모두 수거해가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졌고 그래서 농민들이 당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북한은 ‘농촌혁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그 결과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북한은 가구당 북한 돈 1만원(3500원)씩을 지급해 시장을 몰락시키려 했다. 이것이 화폐개혁의 핵심이다. 그런데 북한의 시장은 한국의 시장과 달리 물물교환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다. 생산 수단에 따라 시장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재의 가치에 따라 시장이 움직인다. 하지만 북한 위정자들은 시장의 물물가치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갔다.

화폐개혁이 성공했다면 농민들이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이해하지 못한 화폐개혁은 실패하게 됐고, 김정은을 ‘포장’하려 했던 당국의 의도는 꺾이고 말았다. 노동당 선전사업부에서 화폐개혁 이후 김정은에 대한 평가를 조사했는데 결과가 부정적인 것으로 나왔다. 화폐개혁이 성공했다면 그것을 김정은의 치적으로 내세웠을 것이다. 2010년 5월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김정은 후계자 확정을 결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 당시 원자바오 총리가 김정은 승계설을 부인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망설이던 김정일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김정은을 후계자로 삼게 된 배경은 솔직히 알지 못한다. 건강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 김정일 측근들도 “솔직히 말해 모르겠다”고 했다.

북한에는 ‘백두의 혁명정신’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북한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 사상의 하나인데, 이 혁명정신의 중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 ‘항일 빨치산부대’다. 북한에서 일제 때 빨치산 활동을 했던 대표적 집안이 오극렬(국방위 부위원장) 집안이다.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오극렬의 세력을 제거, 당 세력권에서 배제시켰다. 향후 만에 하나라도 김정은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잠재적 대상자를 미리 제거한 것이다. 오극렬은 김정일의 최측근이다. 김정일은 오극렬과 함께 또 다른 최측근이던 장성택의 세력도 제거했다. 방법도 치졸했다. 창광군수소를 통해서 외화를 잘 쓰는 당간부들의 집을 파악해 급습했는데 여기에 ‘공교롭게도’ 오극렬과 장성택의 측근들이 연루된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등장 이후 선군(先軍)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선군노선이란 ‘핵보유국의 자랑을 안고 선군혁명을 향한 총진군의 새로운 박차를 가하자’는 지침으로 상징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핵보유국의 자랑을 안고’라는 대목이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선군의 요구(핵보유)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강성대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해로 선포했다. 강성대국이란 무엇인가. 핵을 보유하고 그로 인해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이 북한에서 말하는 강성대국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선군노선이 요구하는 것을 따라 군사력을 강화하느냐, 아니면 주체사상이 요구하는 대로 경제자립을 강화하느냐 하는 두 가지 사이에서 혼동이 발생한 것이다. 북한에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 두 가지를 놓고 간부들조차 헷갈리고 있다. 일부 간부들은 대놓고 불만을 표현한다. 일부의 경우엔 김정은을 지칭해서 ‘그 새끼’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후계자에 대한 ‘포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대단히 의심 많은 성격이다. 김정은에 대한 평가도 아직은 부정적이다. 남한 언론들은 김정은이 모든 권력을 이양받은 것처럼 보도하는데, 이는 성급한 관측이다. 김정은이 전권을 이양받았다면 인사를 단행해 조직지도부를 움직였어야 했는데 김정은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따라서 김정은이 전권을 이양받았다고 보긴 이르다. 북한 주민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인 ‘당생활지도과’도 아직까지 김정일이 직접 관장하고 있다. 김정은은 전권을 이양받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핵 문제 핵무기 완성 안됐다… 희천에 원심분리기 제작 공장

북한이 영변 핵단지를 완성한 것은 1986년이다. 연변에는 현재 3000여명의 과학자가 있다. 북한에서 1986년 당시 핵을 발전용으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군사용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에 대해 군수공업부 제2부부장 박성복이 김일성의 교시를 전달했다. 교시 내용은 ‘핵무기에 전념해 달라, 원자력 발전소는 필요없다, 우리의 방향은 핵발전소가 아니라 핵무기 개발이다’라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내부 논쟁이 정리됐다. 당시 핵발전소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모두 목이 날아갔다. 남한 일부에선 ‘비핵화가 김일성 유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플루토늄 생산 기술은 1986년 이전, 100% 러시아의 두프라 핵연구소에서 들여왔다. 발전소용이라며 기술을 들여왔는데 기술 도입이 끝나자 1986년 러시아 과학자들을 다 내보내고 핵무기 연구로 방향을 돌렸다. 북한이 농축 우라늄 설비인 원심분리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원심분리기 연구는 국가과학원 기계공학연구소와 제2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담당했다. 우라늄 235와 238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분당 3만회 이상의 고속회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북한은 2005년까지 ‘3만회 이상’을 이뤄내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성공했다.

영변에서 직선거리로 약 57㎞ 떨어진 곳에 자강도 희천이 있는데 이곳에 원심분리기 제작 공장이 있다. 원심분리기 핵심 부품인 모터는 북한에서 못 만들기 때문에 일본·프랑스·러시아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희천에는 원심분리기 제작에 필수적인 정밀기계 및 전기부품 공장이 몰려 있다. (김정일은 지난해 7차례 희천을 방문, 발전소 현장과 기계·전기 공장 등을 현지지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북한은 희천 수력발전소 건설에 김정일 호위사령부 병력을 동원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99년 지하 핵시설로 의심받았던 양강도 금창리의 대형 동굴은 스웨덴 건설·광산장비회사인 아틀라스 콥코의 도움을 받아 뚫은 것으로 대형 군수공장을 짓기 위한 것이다.

북한이 플루토늄 핵장치와 고폭설계를 완성한 것은 2000년이다. 모스크바 물리대학을 졸업한 이명화 박사가 총책임자 역할을 했다.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했다. 하지만 핵효율이 너무 낮아 아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지진계로 탐지해도 제대로 감지하기 힘든 정도다. 따라서 북한이 3차 핵실험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핵무기를 갖췄다고 보기 힘들다. 핵을 무기로 사용하려면 TNT 10만톤 이상의 파괴력을 갖춰야 하는데 아직까지 북한의 기술력은 이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게다가 핵무기를 발사하려면 미사일 탄두에 핵을 앉히는 소형화 기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까지 이 기술력도 보유하지 못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으로, 어떻게 해서든 3차 핵실험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만약 북한이 3차 핵실험에 성공한다면 그땐 핵무기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천안함 북한군 “남한 이상한 교전규칙 만들어” 소문

1999년 연평해전에서 참패한 북한은 오랫동안 보복을 준비해 왔다. 당시 북한군은 사망 20여명, 부상 70여명, 함정 1척 침몰, 7척 파손이라는 손실을 입었다. 3년 뒤인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북한군은 10여명 사망, 15명 부상, 함정 1척 대파의 피해를 입었다.(당시 우리군은 6명이 전사했지만 공격중지 명령이 내려와 북한군에 응대하지 못했다. 아군 장례식에 대통령은 물론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 우리 군 고위층은 참석도 하지 않았다.)

2002년 북한군의 피해는 더 커질 수 있었는데 한국군이 갑자기 공격중지 명령을 내려서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당시 북한군엔 ‘한국이 이상한 교전규칙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북한이 남측 함정에 받혀서 파손된 함정을 조사해 보니 함정용이 아니라 건설용 철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철판은 프랑스에서 수입해 온 것인데 이로 인해 당시 북한 관계자들이 대거 처벌받았다.

두 차례에 걸친 연평해전 패전의 충격은 컸다. 북한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군부에선 이를 만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결과 4군단은 물론 작전부와 함대사령부에 복수를 준비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함정이 진행하면서 내는 소음은 주파수가 낮을수록 멀리 간다. 선체 프로펠러에서 나는 소음은 10㎞ 이내에서 이뤄져야 감지되지만 선체 자체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저주파로 10㎞ 이상 퍼져나간다. 그런데 이 선체소음은 각 함정마다 제각각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북한은 남측 함정이 내는 고유한 선체소음을 어뢰 CPU(중앙처리장치)에 저장, 10㎞ 이상 떨어진 원거리에서도 감지해 추적·격발되도록 해 놓았다. 천안함이란 특정 함정을 깨기 위해 목표를 정해놓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의미다. 함정으로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 기습공격을 택한 것이다. 천안함을 공격한 미사일이 북한제란 것은 척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모터, 형식, 단조방식….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북한제다.

장사정포 10분 이내 목표물 피격… 서울 공격 땐 대응시간 없어

북한에서 핵무기는 노동당 기계공업부(옛 군수공업부), 미사일은 제2경제위원회, 화학무기는 인민무력부(우리의 국방부)가 각각 전담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스커드B·C미사일(사거리 300~500㎞)이라 부르지만 북한에선 사거리를 기준으로 300, 500이라 부른다. 스커드C는 스커드B의 연료통을 개발한 것이다.

사정거리 1000㎞가 넘는 장거리 미사일(노동미사일)을 발사하려면 터빈펌프가 필요하다. 미사일을 멀리 날리려면 터빈펌프를 여러 개 묶어 병렬식으로 장착해야 한다. 그런데 연료 펌프가 내뿜는 발사 속도는 초당 600m 이상이다. 온도는 약 3000도에 달한다. 이게 정확하게 동시에 분사·제어돼야 한다. 타이밍을 맞추는 데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북한은 이 단계에서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서 1990년 김일성이 직접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북한은 1960년대 이집트로부터 러시아제 스커드B미사일 2기를 들여온 적이 있다. 지금의 스커드C는 당시 가져온 러시아제 미사일 2기를 바탕으로 개발한 것이다. 당시 중국의 미사일 기술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다.

북한은 이집트로부터 제공받은 미사일 2기 중 1기를 중국에 제공했는데 중국이 그 보답으로 1990년 북한에 미사일 터빈펌프 제어기술을 전수해 줬다.

대륙간탄도탄에 필요한 터빈펌프는 한 개의 무게가 무려 25톤에 달한다. 북한은 평안남도 계천에 있는 미사일 엔진 공장에서 대륙간탄도탄 터빈펌프를 생산·수출하고 있다. 이 공장은 겉으론 ‘탱크공장’이라 명명되지만 실은 미사일 엔진을 만든다.

북한이 광명성1호(사정거리 2400㎞)를 완성한 것은 1998년이다. 당시 김정일이 너무 기뻐한 나머지 미사일 공장에 염소고기를 하사했다. 2009년의 광명성 2호는 100톤짜리 터빈펌프를 장착, 4000㎞를 날아갈 수 있다. 이는 하와이나 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현재 북한의 미사일 기술은 4000㎞를 넉넉히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북한이 원래 목표로 삼은 곳은 오키나와 미군기지였다. 따라서 1200㎞, 1500㎞, 1600㎞짜리 미사일은 이미 완전배치가 끝난 상태다.

미사일 사정거리가 길어질수록 정확도는 떨어지게 된다. 장거리 미사일은 20㎞ 상공까지 올라갔다가 목표물을 향해 떨어지는데 이때 내려오는 속도가 빠를수록 편차가 커진다. 따라서 미세조종 기술이 중요하다. 현재 북한의 기술은 목표물 수백미터 이내에서 얼마든지 조종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한국에선 북한의 장사정포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장사정포는 170㎜ 자주포로 흥남종기계공장에서 제작하는데 지하에 설치돼 있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지상으로 나와 10분 이내에 목표물을 때릴 수 있게 돼 있다. 따라서 북한이 포격을 개시할 경우 서울이 타격당하기 전에 미리 북한 장사정포 기지를 초토화하기는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240㎜ 자주포다. 240㎜ 자주포는 목표물을 향해 발포하고 난 뒤 다른 곳으로 재빨리 이동하기 때문에 잡기가 쉽지 않다.

지금 당장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쟁을 지속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북한군 고위 장성들이 잘 알고 있다.

금년에 추가 도발을 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더 이상 얻어낼 것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예상되는 성과가 거의 없는데 도발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남한에선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공식 사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이 막바지에 몰려 매우 급한 상황이 되면 연평도와 같은 소규모 충돌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서해5도와 같은 일부 해역에 대해 위협사격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면전은 어렵다.

북한의 상층부는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하층부는 체제에 무관심하다. 그런데 상·하층부의 불만을 터뜨려줄 뇌관이 없는 상태다. 한국이 뇌관의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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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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