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유명 인사들이 잇따라 MBC를 떠나 방송가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올 상반기에만 ‘쌀집아저씨’ 김영희 PD, 최현정·방현주 아나운서 등 굵직한 인물들이 MBC를 떠났고, 간판 앵커 김주하가 최근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MBN을 보금자리로 정했다. 이미 2013년 손석희가 종합편성채널 JTBC의 보도 담당 사장으로 이동하며 방송가 지각변동을 일으킨 가운데, MBC의 인재들이 꾸준히 다른 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2012년 이후 쉼 없이 계속되고 있는 MBC 인력 유출 사태, 그 현상과 원인을 짚어봤다.

MBC 제작진의 이동 중 올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예능국 연출자의 유출이었다. ‘쌀집아저씨’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김영희 PD는 1986년 MBC에 입사한 뒤 굵직한 히트 프로그램을 내놓은 MBC의 대들보 연출자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 ‘느낌표’ ‘나는 가수다’ 등 인기 코너를 내놓아 MBC 내부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김영희 PD는 ‘라디오스타’ 연출자 이병혁 PD,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등을 맡은 김남호 PD 등 젊은 피들을 자신의 사단으로 아우르며 MBC를 떠났다.

예능국은 MBC가 타사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분야이다. 최근에도 ‘복면가왕’ 등 꾸준히 인기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는 MBC 예능국으로서는 김영희 PD의 이동은 득보다 실이 많다. 보도국, 드라마국의 이동이 이미 이뤄졌던 점에 비춰보면 예능국의 이동은 상대적으로 늦게 이뤄졌지만 집단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충격파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올 상반기 최현정·방현주 아나운서도 MBC를 떠났다. 최현정 아나운서는 1월 퇴사 후 연예기획사 에스피모터스에 속해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2006~2015년 MBC 아나운서로 활동하기 전 2년간 MBC 기상캐스터를 거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진행 경험을 토대로 MC로 전업한 것이다. 최현정은 6월부터 종편 TV조선의 새 프로그램 ‘변정수의 기적의 밥상’을 변정수, 오한진 박사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MBC의 간판 아나운서였지만 개인사로 곤욕을 치른 김주하 앵커는 MBC 퇴사 후 최근 MBN으로 갔다. TV조선으로의 이동이 진지하게 논의되다 계약 조건 등의 조율 과정에서 MBN으로의 이동을 최종 결정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1997년 입사한 베테랑 아나운서 방현주도 18년간 몸담은 MBC를 떠나는 등 ‘MBC의 얼굴’들이 잇따라 친정과 결별을 선언했다.

드라마국에서는 지난해 권석장·이윤정 PD 등 스타 연출자들이 이탈했다. 이윤정 PD는 1997년 입사 후 ‘커피프린스 1호점’ ‘트리플’ 등의 감각적인 드라마를 연출해 젊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연출자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신인 연출상, 한국PD대상 드라마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윤정 PD와 ‘골든타임’을 함께 연출한 권석장 PD는 1991년 MBC에 입사해 ‘온달 왕자들’ ‘여우야 뭐하니’ ‘파스타’ ‘미스코리아’ 등 섬세한 멜로 감성을 잘 드러내는 연출자로 호평을 받아왔다.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까지,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아나운서는 물론이고 드라마국·예능국에 소속된 굵직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MBC를 탈출한 이들이 향하는 곳은 KBS, SBS 등 지상파가 아니다. TV조선, MBN 등의 종편은 특히 아나운서들을 적극 흡수하고 있다. MBN 특임이사까지 겸하기로 한 김주하 앵커뿐 아니라, MBC에서 앵커를 했던 김은혜도 지난해부터 김주하가 출근하기 전까지 MBN ‘뉴스 앤 이슈’를 진행했다. 김은혜는 2008년 퇴사 후 청와대 대변인, KT 상무를 지냈다.

올해 MBC를 퇴사한 최현정 아나운서가 TV조선에서 정보성 예능 프로그램 MC로 소프트랜딩한 가운데, 이미 MBC 아나운서 출신인 이하정 앵커도 2011년부터 TV조선으로 옮겨 현재 ‘닥터의 냉장고’ ‘헬로 차이나’ ‘생방송 광화문의 아침’ 등 주요 프로그램을 도맡고 있다.

케이블채널로의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이윤정 PD가 프리랜서를 선언한 뒤 지난해 처음 연출한 드라마 ‘하트투하트’는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송되었고, 인기 웹툰을 바탕으로 하는 ‘치즈인더트랩’도 tvN에 편성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전한 MBC 신사옥.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전한 MBC 신사옥.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상대적으로 전통과 신뢰도가 높다고 인식됐던 지상파를 떠나 종편과 케이블방송으로 이들이 몰린 이유는 달라진 방송환경 때문이다. 방송 채널이 아니라 콘텐츠 중심으로 시청자들의 소비 형태가 달라지면서, 더 이상 근무하는 조직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된 방송시장은 광고주의 이동을 가져왔고, 시청자들은 양질의 콘텐츠라면 어느 채널이든 찾는 시대가 열려 방송인들의 이동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최근 유재석이 지상파만 출연한다는 방침을 접고 JTBC 프로그램 출연을 택했듯, 종편이 안정기에 접어들며 종편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도 줄었다.

올해 눈에 띄는 특징은 MBC 출신들이 향하는 곳이 국내가 아닌 해외, 바로 중국 시장이라는 점이다. 김영희 PD는 ‘나는 가수다’를 들고 한국과 중국을 오간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진출을 선언했다. 이병혁·김남호 PD 등과 함께 ‘김영희 사단’을 구성해 중국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도전할 예정이다. 김 PD는 30년 가까이 근무한 MBC를 떠나 한국과 중국의 방송 발전을 위한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방현주 아나운서 역시 한국과 중국의 가교 역할을 할 전망이다. 방현주는 상명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중국 베이징대학교 대학원에서 미디어경영학을 공부한 중국통이다. 한국과 중국의 방송과 관련된 미디어 비즈니스로 ‘2막’을 꿈꾸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의 발달로 ‘웹 2.0’ 시대와 더불어 ‘한류 2.0’ 세대가 도래하며 한류의 제작 노하우가 다채로운 방식으로 수출된 맥락에서 이들의 중국행을 풀이해 볼 수 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한국의 제작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도 방송인들에게 새로운 선택권을 준 셈이다.

MBC가 타 방송사에 비해 경력이 많은 방송인들의 이탈을 막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MBC에 대한 신뢰의 상실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의 사랑을 받던 MBC가 결정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기 시작한 것은 2008년 ‘PD수첩’의 광우병 왜곡보도였다. MBC는 이와 관련 국민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12년 파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170일의 파업 후 오상진·최일구·최윤영·박혜진·서현진·문지애·나경은 등이 줄줄이 MBC를 떠났다. 파업의 발단은 MBC의 대주주로 MBC 사장 임명권을 갖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였다. 방문진의 김우룡 전 이사장이 시사월간지 인터뷰에서 김재철 당시 사장의 임명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시사하는 일명 ‘조인트’ 발언으로 김재철 사장의 낙하산 인사를 사실상 인정했다. 그러나 파업은 성공하지 못한 데다 파업 참가자들의 실패감을 더할 조치들이 잇따랐다. MBC 측은 파업 업무복귀 후 156명에 대한 인사발령을 냈고, 무려 50여명이 당초 직무와 관련이 없는 부서에 배치되는 등 파행을 거듭했다. MBC는 ‘PD수첩’ ‘남극의 눈물’ 등을 제작하던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하고, 지난해 교양제작국을 해체했다. 시사PD와 기자들이 속한 시사제작국은 유지했지만, ‘불만제로’ 등 고발성 프로그램이 폐지되며 보도의 기능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5월 민·형사 소송 하급심에서 2012년 파업의 정당성이 법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상준)는 “MBC는 MBC 구성원들에게 방송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근로환경과 근로조건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며 방송의 공정성 요구가 정당한 쟁의행위라고 봤다.

그러나 법원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아 복직한 이상호 기자에게 MBC 측이 다시 정직 6개월을 내리는 등 몸살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조직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으리라는 관측이다. 또 방문진의 이사 선임이 미뤄지면서 MBC 방문진 8·9기 이사로 활동한 차기환 이사가 KBS 차기 이사로 유력하게 거론되며 ‘3연임’ 논란을 일으키는 등 홍역이 계속되자 MBC 방송인들은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을 찾아 탈출을 결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시대에 방송인들의 투쟁이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MBC를 지키지 않고 떠나는 데 대한 서운함을 갖는 이도 있다.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이 지난해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제 선택에는 많은 반론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나름대로 고민해왔던 것을 풀어낼 수 있는 자그마한 여지라도 남겨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제가 믿는 정론의 저널리즘을 제 의지로 한번 실천해 보고 훗날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MBC 이탈자들이 한국과 중국의 방송계에서 어떤 방송을 만들어갈지 시청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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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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