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photo 신화·뉴시스
지난 3월 1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photo 신화·뉴시스

“이거 전부 가짜야(這都是假的)!”

지난 3월 5일 우한시 칭산(靑山)구 카이위안(開元) 아파트단지에서 사람들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몇 사람이 소리쳤으나 갈수록 가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들이 고함을 친 이유는 베이징에서 내려온 쑨춘란(孫春蘭) 부총리 때문이다. 그는 중국공산당 서열 25위 안에 드는 정치국원이자 시진핑 정부 내 유일한 여성 부총리다. 그는 이날 코로나19의 발원지이자 최대 피해지인 우한(武漢)의 방역작업 실태와 식량공급 상황, 물가 동향 등을 살피기 위해 우한시 간부들을 대동하고 현장 시찰에 나섰다. 쑨 부총리 일행 20여명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고층아파트 여기저기서 주민들의 야유가 터져나왔다. “가짜야.” “모두 가짜야.” “형식주의.”

중국에서 주민들이 공산당 핵심 간부를 향해 야유를 퍼붓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동안 바깥 출입이 통제된 상황에서 돼지고기와 채소 등 식품마저 제때 공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도 시 간부들이 마치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연출하고 부총리를 속이려 하자, 주민들이 “모두 거짓”이라며 현장 고발을 한 것이다. 이 장면은 아파트 주민 누군가에 의해 촬영되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감염지역이 정상을 되찾아가는 중’이라는 베이징 정부의 ‘선전’이 과장이라는 게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 9일 트위터에는 중국 어느 도시의 4차선 대로에서 주민 수십 명이 무릎을 꿇고 앉아 도로 건너편을 향해 절을 하며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我們要吃飯)”고 외치는 동영상이 퍼져나갔다. 동영상 시간이 24초로 짧고 사투리가 심해 어느 지역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주민들은 지방 정부를 향해 살길을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 동영상 역시 코로나19로 봉쇄된 중국의 대도시에서 식품 공급 부족으로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 중국 랴오닝(遼寧)성 차오양(朝陽) 시정부는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에 관한 내부문건을 소각할 것을 지시하는 통지를 일선에 내려보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현재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치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다. 이러한 중국 현실은 당국의 철저한 정보통제와 관련자 처벌로 묻히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 없다”

중국에선 ‘실패의 역사’도 공산당의 ‘선전선동술’이라는 마술사의 손을 거치면 ‘성공의 역사’로 변한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말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약 두 달간 ‘바이러스 수출국’이란 오명을 쓴 채 세계인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러나 감염자와 사망자의 정부 발표 수치가 줄어들기 시작한 3월 초부터 중국은 수세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공세적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자신들의 불명예를 벗기 위해 찾아낸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증거가 없다’는 ‘책임회피론’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현명한 방역대책 덕분에 세계가 시간을 벌었다’는 ‘중국 기여론’이다.

중국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퇴치의 영웅’으로 불리는 중난산(鍾南山) 공정원 원사는 지난 2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먼저 출현했지만, 반드시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코로나19가 우한의 화난(華南)수산시장에서 팔던 야생동물에서 시작됐을 것”이라고 말했던 인물이다. 중 원사는 “먼저 중국만 고려하고 외국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현재 외국에 일련의 상황이 발생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어 중국의 대표적 민족주의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아예 “중국이 아니라 미국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 신문은 3월 1일자 논평에서 “코로나19가 처음 중국에서 발생했을 때 과학계조차 어디서 왔는지 규명해내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독감 감염률과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세계 언론도 코로나19와 미국 독감 사이에 상관관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물타기를 시도했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에서는 코로나19가 자연산이 아니라 ‘인공(人工) 바이러스’라는 주장과 함께,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낸 ‘생물학 무기’일 것이라는 음모론도 나돌았다. 확인되지 않는 이러한 주장으로 중국은 자신들에게 씌운 ‘책임론’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또한 코로나19 발원지 문제가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름으로써, 정작 중요한 중국의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줄었다.

중국의 선전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은 일당체제의 효율적 방역 덕분에 신속히 코로나19의 확산을 통제할 수 있었고, 이것이 세계 각국의 방역대응책 마련에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기막힌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중국이 사과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개발해낸 논리다. 공산당 대외연락부 궈예저우(郭業洲) 부부장은 지난 3월 5일 기자회견에서 “각국 정부와 정당들이 시진핑 총서기의 현명한 영도, 인민을 위하는 깊은 감정, 세계적인 책임감, 중국 특색 사회주의제도가 전염병 방역 과정에서 보여준 우월성(優勢)에 대해 주목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며 “중국의 조직, 동원능력과 집행능력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중국이 전염병 방역 저지선에서 세계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고 경험을 쌓은 점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여성용 감옥을 찾은 쑨춘란 부총리. ⓒphoto 신화·뉴시스
지난 3월 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여성용 감옥을 찾은 쑨춘란 부총리. ⓒphoto 신화·뉴시스

‘중국이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궤변의 확산

시진핑 찬양과 뒤섞인 이러한 황당한 논리는 처음에는 세계인들의 코웃음을 자아내지만, 중국 외교부장까지 나서 외국 귀빈들에게 말하기 시작하면 차츰 권위가 붙는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3월 9일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중국은 코로나19 저지를 위한 최전선에 나서 중요한 진전을 거두었다”면서 “중국은 각국의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시간을 벌어줬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1월 말까지 약 한 달간 코로나19에 대한 초기 통제 시기를 놓쳐 중국 각 성(省)과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한 책임을 외면한 억지이자 궤변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이러한 논리를 통해 지난 2월 초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최초로 제기한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죽음 당시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관료제의 무능과 언론자유 억압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은 이 논리를 국제사회에 꾸준히 확산시킬 것이다. 전 세계 친중(親中) 국가의 매체와 인사를 동원할 것이며 여기에는 한국도 해당한다. 중국의 이 작업이 오래 지속되면 어느 시점에 ‘중국이 바이러스 통제에 기여했다’는 논리가 굳어질 수도 있다. 3월 들어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중국 일부에서는 공산당식 강압적 대응이 오히려 효과적이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선전선동이란 마술을 통해 ‘실패와 불명예의 역사’가 ‘성공과 명예의 역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선전선동의 달인’ 마오쩌둥

중국에서 ‘선전선동’을 통해 불리했던 상황을 역전시키고 국면을 주도하는 기술은 마오쩌둥(毛澤東)을 따라갈 자가 없다. 그는 공산정권을 수립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발전이 없자 1958년 이른바 ‘대약진(大躍進)운동’을 발동했다. 그해 5월 공산당 제8기 2차회의에서 마오는 ‘일하려는 의욕을 북돋우고(鼓足干勁), 앞장서기를 다투며(力爭上游), 더욱 빠르게 더욱 절약하여(多快好省地)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총노선’을 통과시키고 고속성장과 고목표 달성을 제시했다. 마오는 이를 통해 “10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15년 내에 미국을 따라잡는다”고 국민을 선동했다. 1958년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1957년(335만t)의 3배인 1070만t, 1959년에는 1958년의 3배인 3000만t을 달성한다는 식이었다. 이에 따라 ‘못 해낼 일은 없다(沒有干不到的). 단지 생각 못 한 일만 있을 뿐이다(只有想不到的)’란 구호 아래 중국 전역의 모든 농촌과 직장에서 폐철을 녹여 강철을 만드는 작은 용광로(土爐)가 만들어졌다. 용광로를 만들 벽돌이 없으면 문화재급 건물과 담벼락을 허물어 고로를 지었다.

정부 간행물을 인쇄하는 신화(新華)인쇄공장에서도 폐지와 쓰고 남은 잉크를 활용하는 용광로가 건설되었다. 조잡한 용광로에서 폐철을 녹이는 연료를 대기 위해 전국의 산과 들에서 나무와 석탄이 대량으로 동원되면서 산은 더욱 황폐해졌다. 전 인민이 동원된 강철제련운동의 결과는 참혹했다. 석탄과 폐철이 한데 뒤엉켜 아무 쓸모없는 쇳덩어리만 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1958년 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철강과 식량 생산량이 3배로 늘어나 엄청난 약진을 이루었다”고 선언했고, 중국인들은 그로부터 20여년 동안 ‘대약진 만세’를 외쳐야 했다. 국민 모두가 ‘실패와 거짓’임을 알면서도 마오가 확립한 논리와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1960~1970년대 중국을 대혼란에 빠뜨린 문화대혁명 역시 정적(政敵)들을 치기 위한 마오의 정치선동에서 시작되었다. 이때 마오가 내세운 논리가 ‘모든 반항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造反有理)’는 것이었고, 이 선동에 따라 홍위병들은 10년간 제도와 권위, 지식과 문화를 파괴했다.

마오쩌둥의 선전선동술은 레닌과 괴벨스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레닌은 19세기 말~20세기 초 거의 유일한 대중매체였던 신문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이를 대중 선동에 적극 활용한 인물이다. 그는 “(신문을 통해) 러시아 전역에서 수집되는 정치 폭로 및 경제 폭로는 모든 직종의 노동자에게 지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뻔뻔스러운 정부 발표를 검토하고 평가하는 기회와 자료를 제공할 것”이라며, 신문을 ‘계급 투쟁과 국민적 분노의 불꽃 하나하나를 큰불로 일구어내는 거대한 풀무의 작은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마오의 스승, 레닌과 괴벨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는 “문제를 가장 단순한 공식으로 만들고, 그 공식을 끝없이 반복할 수 있는 자만이 여론에 영향력을 끼치고 궁극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짓말도 반복하면 결국 대중들이 믿게 된다고 했고, 이를 히틀러의 정치에 적용했다. 가령 괴벨스는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대해 ‘반격’이라는 표현으로 정당화했다. 그는 또 폴란드의 유대인 거주지를 시찰한 뒤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인도주의 문제가 아니라 외과 수술의 문제다”라며 유대인 격리와 탄압을 합리화했다.

이처럼 레닌과 괴벨스에게 ‘선전선동’이란 특정한 주장이 사실이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그 시기에 국민 대중이 그 주장을 믿고 따르도록 만드는 기술이었다. 마오쩌둥 역시 이러한 선전선동술을 자신의 권력 유지와 강화에 적극 활용했다. 지금의 공산당도 마오의 선전선동 전술을 철저히 계승하고 있다. 한국에서 괴벨스와 마오쩌둥식 선전선동술이 먹혀든 사례를 찾는다면, 2008년 이명박 정부 시기 벌어진 ‘광우병 사태’가 대표적이라고 본다. 당시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성은 그것을 먹고 광우병에 걸린 한국인이 단 한 명도 없을 만큼 근거가 빈약했지만, 초·중·고생과 연예인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인이 미국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린다’고 믿을 만큼 선전선동이 먹혀들었다.

중국공산당은 지난 3월 10일 시진핑의 우한 방문을 전후로 ‘시진핑 영웅 만들기’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 주석의 우한 방문은 지난해 12월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약 석 달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리커창(李克强) 총리 다음의 방문인데도 중국 매체들은 그를 찬양하기 바쁘다. 중국 CCTV(중앙방송)는 지난 3월 7일 평론 코너에서 “중국은 지난 한 달여 동안 시진핑 주석이 직접 지휘하고 대처하면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렀다. 시 주석은 시종일관 전략적으로 전체 국면을 꿰뚫고, 깊이 있게 판단하고, 정확히 대처해왔다”고 평가하고, “시 주석의 비전은 중국 국가 통치체제와 능력을 현대화한 현실판 교과서로서 중국 제도의 강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고 칭송했다. 지난 2월 13일 임명된 우한시의 왕중린(王忠林) 당 서기 역시 회의에서 시 주석과 공산당에 감사하고 당의 노선을 잘 따라야 한다는 이른바 ‘감사 교육’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우한 시민들은 왕 서기의 제안에 즉각 반발했다. 시민들은 웨이보와 웨이신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염병이 여전히 가혹하고 책임자에 대한 징계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당국의 감사 교육 제안은 황당무계하다”고 비판했다. 이 현상은 마오 시대와 시진핑 시대의 차이이기도 하다. 마오 시대가 공권력으로 여론을 통제할 수 있었다면, 시진핑 시대는 소셜미디어라는 국민 간 정보 교류의 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 반발 부딪힌 ‘시진핑 영웅 만들기’

중국공산당의 선전선동술은 중국을 통치하는 3가지 수단 중 하나이다. 공산당은 군과 경찰을 장악함으로써 국민에게 폭력이라는 공포감을 주며, 선전선동을 통해 정보를 통제·독점하고,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국민의 정신을 지배한다. 이 세 가지는 철저히 공산당의 리더십 유지와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코로나19 초기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하고 수많은 환자와 가족이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죽어가도록 방치한 것도, 국민의 생명보다 당의 리더십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사회주의와 선전선동이다. 국민의 절반이 세계를 여행할 만큼 경제 수준이 높아진 중국에서 사회주의는 그 정통성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유학을 통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맛본 청년 세대는 사회주의보다 개인의 행복한 삶을 우선한다.

또 중국공산당의 정보통제와 선전선동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소셜미디어를 통한 청년 세대와 도시 중산층의 합리적 비판을 다 틀어막지는 못한다. 물론 극소수 용기 있는 지식인을 제외하고, 이들의 비판 수위는 아직 지방 지도자에 머물러 있다. 시진핑을 직접 겨냥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그러나 어떤 권력도 국민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 불과하다. ‘시진핑 영웅 만들기’ 같은 공산당의 선전선동술이 코로나19의 초기방역 실패와 리원량 사망에 따른 국민의 분노를 덮고 실패의 역사를 성공의 역사로 둔갑시킬 수 있을지 현재까지는 미지수다. 겉은 성공적인 것 같아도 14억의 속까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크게 줄어들더라도, 넓은 의미에서 중국 사회의 코로나19 사태는 당분간 현재진행형이 될 것이다. 공산당은 국민 여론 속에 숨은 바이러스(?)와도 싸워야 한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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