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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3호]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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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범의 차이나워치]‘오만과 고립의 청나라’ 닮아가는 시진핑의 중국

지해범  전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hbjee@chosun.com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20일 베이징에서 열린 민·군 연대 강화에 기여한 공로자들과의 모임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영국 사신 조지 매카트니 경이 1793년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앞에서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절하는 청나라 황제에 대한 인사법)’를 거부한 지 12년 뒤 러시아 황제의 사신 골로프킨 백작이 베이징을 향했다. 중국과의 해상 교역로를 여는 게 목적이었다. 앞서 매카트니 경은 “나는 영국 국왕 폐하의 신하지 청의 신하가 아니다”라며 절하기를 거부하다가 한쪽 무릎만 꿇는 것으로 합의를 봤었다. 이 사건 이후 청 왕조는 외국 사절단에 대한 전통적 조공 의례, 즉 고두(叩頭) 의식을 더욱 엄격히 집행하려고 하였다. 그 까닭은, 유럽의 한 열강에 특혜나 예외를 허용하면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것을 요구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립과 오만이 청(淸)의 몰락 재촉
   
   골로프킨 백작이 베이징 서북쪽 장자커우(張家口)에 도착했을 때 청조는 노란색 비단에 수놓은 황제의 상징 앞에서 고두를 요구하여 그를 시험했다. 골로프킨이 거부했지만 청의 관리들은 계속 절하기를 요구했다. 매카트니의 경험을 알고 있던 골로프킨은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황제 알현은 무산되고 말았다. 중국은 러시아 사신을 빈손으로 돌려보냄으로써 교역 확대 요구와 추가적인 개방을 잠시 늦출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러한 폐쇄성과 고압적 자세 때문에 국가의 발전은 지체되었다.
   
   건륭제 시기는 청의 최전성기로 꼽힌다. 이 시기 중국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고 가장 우월하다’ ‘땅 크고 물산이 풍부해 있어야 할 건 다 있다(地大物博 應有盡有). 너희들과의 교역은 필요치 않다’ ‘우리가 베푸는 은혜를 입고 싶으면 우리의 규칙을 따르라’는 것이 청의 태도였다. 그러나 역사는 최전성기 때 쇠락의 씨앗을 뿌려두는 법이다. 명(明)조 때 환관 정화(鄭和)가 대함대를 이끌고 인도·아프리카를 원정했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풍조는 청 후반기 완전히 사라졌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대문을 걸어 잠근 청은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의 힘에 의해 개방을 강요당하고 국토를 분할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아시아에서 일본은 외부의 충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학습의 기회로 삼음으로써 근대화에 성공한 반면, 중국(淸)은 외부 자극에 적대감을 보이고 더욱 폐쇄적으로 국가를 운영함으로써 발전의 기회를 놓쳤다.
   
   
   ‘내적 지향성’ 보인 19기 5중전회 문건
   
   지난 10월 말 열린 중국 공산당 19기 5중전회는 ‘고립’의 메시지를 공식문건에 담았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다. 게다가 시진핑 일인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고, 서방에 대한 경멸과 적대감도 커졌다. 여러 면에서 고립의 길을 걸었던 청 말기를 닮아가고 있다. 물론 세계 2위의 경제 규모와 세계 1위의 교역량을 가진 중국이 국경 문을 닫아걸 수는 없다. 중국은 지금도 개혁개방과 자유무역을 강조한다. 그러나 역사의 변화는 작은 조짐에서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중국 공산당이 개혁개방 40년 만에 처음으로 ‘내적(內的) 지향성’을 보였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10월 29일 채택된 ‘공보(公報)’를 찬찬히 뜯어보기로 한다. 공보는 먼저 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지금의 세계는 100년간 없었던 큰 변화를 겪고 있고, 새로운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이 더욱 심화 발전하고, 국제사회의 역량 대비가 심층적으로 조정되고, 국제 환경이 날로 복잡해져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이 뚜렷이 증가하였다. 동시에 우리나라 발전의 불균형·불충분 문제가 여전히 두드러지고, 혁신 능력은 수준 높은 발전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
   
   공보는 이어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한다는 것과 문화강국·교육강국·인재강국·체육강국·건강강국을 건설할 것, 1인당 GDP(국내총생산)를 중진국 수준(3만달러)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러한 중기(中期)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으로 5중전회는 14차 5개년 계획 기간(2021~2025) 경제에서는 ‘쌍순환(雙循環)’을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인민의 날로 늘어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삼고, 발전과 안전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국내 대순환을 주체로 하고, 국내와 국제의 쌍순환이 상호 촉진하는 새로운 발전구도를 구축해야 한다.… 강대한 국내시장을 형성하여 새로운 발전구도를 건설해야 한다. 국내 대순환을 창통(暢通)시키려면, 국내와 국제 쌍순환을 촉진하고, 소비를 전면적으로 촉진하고, 투자공간을 넓혀야 한다.”
   
   ‘쌍순환’은 시진핑 주석이 올해 5월 제시한 이론으로, 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한 국내 순환의 기초 위에서 대외무역의 공급사슬을 조화시켜 코로나19의 충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출과 흑자를 중시하던 중국의 경제정책은 내수와 무역의 조화, 특히 내수시장의 확대라는 방향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의 ‘내적 순환’이 커지고 대외의존도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5중전회 공보는 또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립과 자강’을 강조했다. 문건은 “우리나라 현대화 건설의 전반적 국면에서 혁신의 핵심지위를 견지하고, 과학기술의 ‘자립(自立)·자강(自强)’을 국가발전의 전략적 버팀목으로 삼아… 과학기술 강국의 건설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등 선진국의 기술을 베끼거나 훔쳐서 자국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미·중 간 패권경쟁과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가속화하고 외국 기술의 도입이 어려워지자 중국은 ‘기술 자립과 자강’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자립, 자강’은 기초과학의 토대가 약한 나라에서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자립’은 곧 ‘고립’과 ‘정체’가 되기 십상이다. 북한이 그런 경우다. 내년에 출범할 미국 정부가 대중국 압박을 완화하지 않는 한, 중국 기술의 미래도 당분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국이 경제를 내수시장에 의존하고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고립되어 변방으로 밀려난다면, 한 세기 전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스스로 최고라는 착각 속에 살았던 청나라와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
   
   
   시진핑 독재로 ‘이견(異見)’이 불가능한 사회
   
   중국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는 것은 또 있다. 시진핑 1인 권력의 강화로 중국이 점점 ‘이견 제시’가 불가능한 사회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와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지난 10월 29일 자에서 “2022년 가을 20차 중국 공산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과거 마오쩌둥이 맡았던 ‘당 주석’직을 부활해 취임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당 주석’제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아래에 부주석을 여러 명 두는 제도로, 일인 권력집중과 개인숭배 문제로 비판받다가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후인 1982년 폐지됐다. 만약 2년 뒤 당 주석제가 부활하면, 7~9인으로 구성되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집단지도체제는 완전히 무너지고, 시 주석 1인 체제가 확립된다. 명실상부한 ‘중국의 황제’가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10월 5중전회에서 당 중앙위 공작조례의 추인 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9월 발표된 이 조례는 공산당 지도부의 권한 등을 정한 일종의 업무규칙으로, 시 주석이 당 총서기로서 회의 소집뿐만 아니라 의제(議題) 결정권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또 시진핑 시대 들어 신설·확대한 각종 영도소조(領導小組)의 회의 개최와 연구 결정 등도 총서기의 지시를 받도록 규정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 조례의 필요성과 관련 “상황이 복잡하고 도전이 엄중할수록 중앙의 집중된 통일 영도가 여의봉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선전했다. 중국 관영 매체는 이 조례의 추인 여부를 보도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시진핑은 앞서 2018년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직 2연임(10년) 이상 금지조항을 폐지해 장기집권의 기반까지 마련해놓았다. 이에 따라 2022년 말 2차 임기가 끝나는 시진핑이 퇴임하지 않고 3연임(2023~2027)할 가능성이 벌써부터 거론된다.
   
   시진핑 1인 체제는 내부 권력투쟁의 산물이다. 집권 초기 그는 보시라이(薄熙來), 저우융캉(周永康) 등 정적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적을 만들었다. 또 퇴임한 장쩌민, 후진타오 등의 견제도 받고 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권력을 집중하고 엄격한 감시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인 독재체제는 필연적으로 독선과 비효율, 부패를 수반하게 된다. 그런 사회는 사상적으로 경직되어 사소한 이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과거 소련의 스탈린 체제가 그랬듯이, 사회주의 1인 독재체제의 오만과 고집은 그 나라의 개방성과 포용성, 유연성,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구성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독재체제는 또한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권력에 대한 비판을 틀어막기 위해 바깥 정보의 유입을 차단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야 한다. 시진핑 체제에서 그런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의 패권 대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구축한 ‘권력의 집중’이 거꾸로 중국 사회를 비효율과 인권침해, 폐쇄의 길로 이끄는 독(毒)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청나라가 망했던 것은 ‘권력의 집중’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국가의 개방성과 유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100년 전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시진핑 체제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5일 중국 외교부 러위청(樂玉成) 부부장(차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은 미국의 새로운 정부와 충돌하지 않고 대결하지 않기를 원한다”며 “양국이 서로 존중하고 합작공영의 원칙을 지키며 이견을 관리하여 양국 관계가 앞으로 발전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에 대한 외교부 관리의 발언은 상투적인 표현에 그쳤지만, 일반 중국인들의 속마음은 달랐다. 환구시보 등 언론과 네티즌들은 미국 대선의 혼란상과 트럼프의 개표 제소(提訴)를 ‘후진국형 현상’이라 비웃고, 심지어 인민일보는 트위터 계정에서 ‘하하(HaHa)’라며 조롱했다. 한 번도 제 손으로 국가 지도자를 뽑아보지 못한 중국인들이 민주주의 과정의 일시적 혼란을 비웃은 것이다. 경제적 성공에 도취한 중국인들의 오만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흐리게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중 관계가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양국 국민 사이에도 건너기 어려운 깊은 골이 파였음을 보여준다.
   
   
   시진핑, 바이든과 잘 지낼까?
   
   에드윈 퓰너 미 헤리티지재단 창립자는 지난 11월 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간에 ‘좋았던 옛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미·중 관계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최근 진보적 민주당 의원들도 보수적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중국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견제하는 입법에 동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을 개방적이고 국제규범을 따르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압박에 초당적으로 협력할 것으로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더라도 미국의 중국 압박과 패권경쟁의 큰 구도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바이든은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언론자유, 국제규범을 중시하는 지도자다. 그는 올 1월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왜 미국이 다시 리드해야 하는가(Why America Must Lead Again)’란 글에서 이러한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미국 사회의 근간일 뿐 아니라 힘의 원천이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동맹관계를 다시 공고히 하고, 미국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기 첫해에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자유세계’의 정신과 목표를 새롭게 다지고 공유할 것을 공약했다. 그가 생각하는 협력 대상은 ‘가치와 목적을 공유하는 국가들’이다. 그는 “북미와 유럽을 넘어 호주, 일본, 한국과의 동맹협정에 재투자하고, 인도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파트너십을 더욱 깊게 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바이든의 입장은 트럼프 정부가 출범 초기 티베트와 신장웨이우얼 지역의 인권침해에 눈감고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한때 대중국 포용정책 지지자였던 바이든의 중국관은 최근 수년 사이에 크게 바뀌었다. 그는 올 상반기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 과정에서 시진핑 총서기에 대해 “100만 위구르인을 노동교화소에 처넣은 폭력배(thug)”라 불렀다. 홍콩과 대만 문제에서도 그는 강성으로 변했다. 바이든의 이러한 정치철학과 외교노선은 서방의 정치제도를 경멸하는 시진핑의 사회주의 정치철학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오만한 외교 역시 세계 곳곳에서 중국의 적을 만들고 있다. 경제적 성공과 종합국력의 상승에 도취한 중국 외교관들은 전 세계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힘으로 관철하려는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를 펼쳐왔다. 미국의 화웨이(華爲) 제재와 코로나19 확산 책임규명에 동참하려는 호주와 스웨덴 등에 노골적으로 경제보복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또 새로운 경제벨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추진과정에서 독재 권력을 옹호하고 경제적 이익을 독식함으로써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러한 안하무인의 오만한 외교로 중국은 세계에서 점점 고립되는 중이다. 이는 신냉전(新冷戰)이라기보다 일방적인 ‘왕따’에 가깝다.
   
   미국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서 시진핑의 중국이 갑자기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 법치를 존중할 리는 없다. 홍콩·대만 정책에서도 이미 너무 깊이 개입해 일국양제를 확실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어렵다. 그런 ‘패러다임의 전환’은 적어도 권력의 교체나 새로운 지도부가 출범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당분간 중국에서 시진핑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미·중의 패권 대결과 가치관 싸움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시진핑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미국에 대항할수록, 중국은 더욱 독재적이고 폐쇄적인 길로 갈 것이다. 청 후반기 황제 체제가 그랬고 소련 스탈린 체제가 그랬듯이, ‘오만과 고립’의 전체주의 독재는 결국 그 체제의 붕괴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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