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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5호]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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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범의 차이나워치]14억에 맞선 2500만… 호주의 ‘대중정책’이 한국에 가르쳐준 것

지해범  전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hbjee@chosun.com 2021-01-05 오후 5:54:55

▲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왼쪽)가 지난 11월 17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앞두고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17일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이 현지 언론사 기자들을 캔버라 대사관으로 불러모았다. 대사관 측은 간담회에서 양국 간 14건의 분쟁 사안에 대한 입장을 담은 문건을 배포했다. 14건의 입장문에는 최근 중국이 국제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망라돼 있다.
   
   그것은 △화웨이와 ZTE의 5G사업 참여 배제 △중국 기업의 호주 투자 프로젝트가 국가 안보상 이유로 거부된 점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사회의 독립적 조사를 요구하는 미국의 행동에 동조 △중국의 코로나19 통제 노력을 둘러싼 미국의 허위정보에 동조하고 퍼뜨린 행위 △신장웨이우얼-홍콩-대만 문제에 대한 간섭 △남중국해 연안 국가가 아니면서 UN에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입장 표명 △빅토리아 주정부의 일대일로 참여를 막은 입법 조치 △반중국 싱크탱크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 △중국 기자들에 대한 새벽 압수수색과 무모한 체포 △증거 없이 중국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주장 △호주 의회의 터무니없는 중국 공산당 비방과 중국인 및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공격 △중국에 관한 호주 언론의 적대적 보도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외국의 간섭과 영향력 행사에 대응하는 입법 추진 △중국 학자에 대한 비자 제한 등이다.
   
   중국대사관 측은 문건을 전달하면서 “중국은 매우 화가 나 있다. (호주가) 중국을 적으로 만들면, 중국은 (호주의) 적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외국의 대사관이 주재국의 언론을 통해 주재국 정부와 국민에게 직접 협박성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호주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중국이 호주를 향해 새로운 위협을 가하고 있다. 중국 측 문서는 호주가 외교적 냉각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의존이 화 불렀다
   
   호주와 중국의 관계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좋았다. 양국 경제는 상호보완적이어서, 호주는 이를 통해 큰 이익을 얻었다. 양국의 무역 규모는 2400억달러(2019년 7월~2020년 6월)이며, 호주는 수출품의 32.6%를 중국에 판다. 호주의 일자리 중 8%가 중국 관련 분야에서 나온다. 호주의 대중국 무역액은 미국, 일본, 한국과의 교역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호주의 철광석과 석탄, 천연가스의 최대 수출시장은 중국이다. 중국은 브라질산보다 호주산 광물자원의 품질이 좋고 수송 거리가 가까워 선호한다. 호주의 보리, 밀, 소고기, 와인 등 농식품의 최대 수출시장도 중국이다. 호주 농민들이 생산하는 맥주용 및 사료용 밀 800만t(2019년)의 절반 이상이 ‘프리미엄 가격’에 중국으로 팔린다. 그뿐만 아니라 호주의 교육(유학)과 관광 분야도 중국인의 지갑을 열게 하는 시장이다. 호주 대학생의 10%가 중국 학생이다.
   
   문제는 강대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의존이 강대국의 간섭을 부른다는 점이다. 냉전 시대 핀란드는 무역의 30% 이상을 구(舊)소련에 의존했다가 모든 정치·외교적 사안에서 크렘린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이 때문에 ‘핀란디제이션’이란 국제정치학 용어까지 생겨났다.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25.1%(2019년 기준)인 한국 역시 2017년부터 지금까지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을 겪고 있다.
   
   올 초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세계로 확산되자, 미국을 중심으로 바이러스의 기원을 조사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올 4월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는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며 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한 독립적 조사를 요구했다. 그는 지난 9월 유엔 총회 직전 연설에서도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호주 정부는 홍콩보안법 제정과 웨이우얼 인권탄압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호주의 경제의존도를 보복 카드로 쓰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중국은 호주산 보리에 약 80%의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또 호주산 소고기의 수입을 연기하고, 자국 관광객과 유학생들의 호주 여행도 제한했다. 6월에는 마약 밀수 혐의로 체포된 호주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양국 정부는 상대국 기자들을 추방하거나 조사하여, 미디어 협력도 약화됐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호주 국민의 대중국 부정적 인식은 2017년 32%이던 것이 2019년 57%, 2020년 81%로 증가했다.(Pew Global Attitude poll)
   
   지난 수개월간 모리슨 정부가 여러 사안에 대해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고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자 중국은 지난 11월 6일 호주산 보리, 소고기, 석탄, 면화, 랍스터, 목재, 와인 등 7개 품목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들 품목은 중국 시장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반면, 중국 입장에서는 수입선을 다른 나라로 돌릴 수 있는 품목들이다. 즉 호주의 생산업자들은 졸지에 최대 시장을 잃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중국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수 있어 국내 물가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중국의 보복 조치가 노리는 것은, 호주 경제에 대한 타격 외에도 호주의 생산업자들이 모리슨 총리의 외교안보 정책에 불만을 품도록 해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대중국 보복 관세를 부과했을 때도 미국산 농산물의 수입을 삭감해 중남부 곡창지대 농민들이 트럼프 정부에 불만을 갖도록 유도한 적이 있다. 선거를 통해 국가 지도자를 뽑는 민주국가의 정치구조와 그 약점을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가 최대한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탈(脫)중국, 말만큼 쉽지 않다”
   
   양국 관계의 악화로 호주·중국 간 정상회담은 3년간 열리지 않고 있다. 호주의 거듭되는 정상회담 요청에도 중국은 묵묵부답이다. 영국 BBC는 ‘호주는 중국에 얼마나 의존적인가(How reliant is Australia on China?)’란 기사에서 “양국 관계가 수십 년 이래 가장 낮은 수위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호주에서는 최근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의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다.
   
   당장 중국으로부터의 탈피는 쉽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직 중국을 대체할 만한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호주는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여 2035년까지 수출액을 450억호주달러(약 36조원)로 끌어올린다는 목표지만, 이는 현재 대중국 수출액(1600억호주달러·130조원)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국립호주대학의 중국경제학자인 제인 골리 교수는 “중국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선택지가 없다. 일본처럼 정부의 개입은 돈 낭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전략분석가들이 요구하고 특히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부각시키지만 현실은 실망스럽다. 거리에서 신문의 머리기사를 읽고 중국으로부터의 탈피를 생각하는 사람도 그것이 자신과 자식들의 일자리에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문제정책연구그룹의 더크 반더 켈리는 “호주의 기업과 대학들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아직 별다른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시드니기술대학의 찬 라이하 정치학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호주는 아시아의 이웃들과 관계를 과감하게 강화할 필요가 생겼다”면서 2019년 모리슨 총리가 호주 총리로서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것을 예로 들었다. 찬 라이하 교수는 “인도와 베트남 외에도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다”고 제시했다. 양국 간 협력 분야를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호주 총리실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리처드 모드는 “호주가 식량안보와 에너지, 기후변화 영역에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더 켈리는 “중국의 중산층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관리와 간호와 같은 영역에서 호주에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호주에 거주하는 120만명 중국인의 존재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 10년 사이 이주하여 호주 안에서 뿌리 깊은 화교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으며, 호주의 교육과 관광에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장 호주가 중국의 경제보복을 중단시킬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파이브 아이스’는 눈이 멀게 될 것을 조심하라”
   
   중국이 ‘호주 때리기’를 멈추지 않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미국 중심의 ‘파이브 아이스(5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결집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중국이 미국을 공격하는 방법은 미국을 직접 때리는 것과 미국의 핵심동맹을 때리는 간접적 방법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개의 동심원(同心圓) 가운데 가장 핵심은 앵글로색슨족이 중심이고 영어를 쓰는 ‘파이브 아이스’이다. 결집된 5개국은 중국이 넘기 힘든 산이다. 이 가운데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가장 높은 호주를 집중 공략하여 굴복시킨다면, 5개국의 결속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미국의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종의 ‘살계경후(殺鷄儆猴)’ 전략이다. 닭(호주)을 죽여 원숭이(미국)를 겁주려는 것이다.
   
   중국의 또 다른 목적은, 미국 세력권의 두 번째 동심원에 해당하는 아시아의 동맹과 전략적 파트너들을 위협해 미국에 협력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국가는 일본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이다. 이 가운데 일본과 인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단독으로 중국의 경제보복과 군사압박을 견디기 어렵다. 중국은 호주를 ‘죽도록 패서’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중국에 대들지 못하게 하려 한다. 마치 조직폭력 사회에서 ‘한 놈’을 죽을 때까지 패서 다른 조직원이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국은 최근 더욱 거친 압박과 언사로 호주를 밀어붙이고 있다.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모든 문제는 호주 측에 의해 발생했다”며 양국 간 장관급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호주가 중국을 ‘기회’로 여기는지, 아니면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하는지 명확한 입장을 밝혀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또 지난 11월 19일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파이브 아이스는 눈이 멀게 될 것을 조심하라”는 거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날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블룸버그통신사 기자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외교장관들이 최근 중국의 홍콩 입법의원 4명의 자격을 박탈한 것을 재고하여 의원 자격을 즉각 회복하라고 중국에 촉구한 것에 대해 중국 정부는 어떤 입장이냐”고 묻자, 자오 대변인은 “당신이 말한 것이 ‘파이브 아이스’지? 중국인은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여태껏 문제를 겁내지도 않았다. 그들이 5개의 눈을 기르든 10개의 눈을 기르든, 감히 중국의 주권, 안전, 발전이익을 손상시킨다면, 그들의 눈이 (뭔가에) 찔려 멀게 될 것을 조심하라(小心他們的眼睛被戳瞎)”고 경고했다.
   
   시진핑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국익을 관철하기 위해 외교적 압박과 힘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를 과감하게 구사해왔다. 중국대사가 스웨덴 정부를 향해 “경량급 선수가 헤비급 선수에게 대들어선 안 된다”고 협박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오 대변인의 발언도 상대의 기를 죽이려는 전형적인 ‘전랑외교’에 해당한다.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일본, 브라질, 인도를 제외하고 이러한 중국의 경제보복과 협박을 견뎌낼 나라는 많지 않다.
   
   
   “돈 때문에 주권과 가치, 민주주의에서 타협하지 않을 것”
   
   하지만 중국의 거친 외교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시드니대학의 살바토르 바본스 교수는 지난 11월 4일 미국의 외교전문잡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노골적 압박으로 인해) 중국은 스스로를 ‘국제적 왕따(international pariah)로 만들었다. 민주국가의 정치인들은 베이징에서 악수하는 사진이 찍히는 것을 매우 꺼리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그동안 서양인의 지갑을 불려주던 중국의 노다지판 기차는 멈추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 정부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한 데 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가입 의사를 밝힌 것은 이 같은 ‘국제 왕따’에서 탈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호주의 모리슨 정부는 중국의 총체적 압박에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중국의 호주 투자를 면밀히 검토해 10여개 프로젝트의 승인을 거부했다. 중국이 공자(孔子)학원을 기반으로 호주의 대학을 친중(親中) 활동기지로 만들지 못하도록 대학 등 공공기관이 외국과 맺는 협약 등을 감시하고 있다. 모리슨 총리는 “호주의 가치, 민주주의, 주권은 무역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호주는 미국도 중국도 그 누구도 아닌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법과 규칙을 정할 것”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외국인투자법을 정하고 5G 네트워크를 구축할지, 우리 제도를 어떻게 운용할지 등의 문제에서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의 대중 정책은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한국과 호주는 미국의 군사동맹이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은 나라이다. 중국이 호주에 구사하는 외교전략은 한국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11월 25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 목적은 ‘협박 반(半), 당근 반(半)’이라고 봐야 한다. 내년 초 출범할 미국 바이든 정부는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동맹국들의 공동대응’으로 중국을 상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왕이는 ‘미국 중심의 공동행동’ 대열에서 한국을 빼내기 위한 협박과 당근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왔을 것이다. 중국은 문재인 정부가 가장 좋아하는 당근, 즉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교류를 돕는다는 카드를 흔들며, 한국 측에 화웨이 문제, 홍콩-웨이우얼 문제, 코로나19 발원지 조사 문제, 남중국해 문제, 인권과 언론자유 문제 등에서 미국 편에 서지 말 것을 압박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 정부는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중국은 하나의 시장일 뿐이지만, 미국은 ‘1+N’ 국가라는 점이다. 미국 주위에는 파이브 아이스와 EU, 일본,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무수한 협력 국가가 있다. 또 미국은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민이 누려온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언론과 종교 자유, 법치를 보호하고 존중하지만 중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인의 미소 뒤에는 칼이 감춰져 있다(笑裏藏刀)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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