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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한국을 움직인 멕시코 건축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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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229호] 201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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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한국을 움직인 멕시코 건축의 비밀

제주 카사 델 아구아 철거 논란

황은순  차장 

▲ 멕시코시티 폴란코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세계 갑부 1위 카를로스 슬림의 수마야박물관.
붉은 흙빛 건물에 햇빛이 내리꽂힌다. 줄무늬처럼 벽에 뚫린 수직 틈새를 통과한 빛은 시시각각 실내에 다른 색깔 다른 무늬를 그린다. 유리창 밖으로 푸른 바다가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단지 국제컨벤션센터 뒤에 있는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물의 집)다.
   
   이 건물의 철거를 반대하는 목소리로 한국뿐만 아니라 멕시코 외교가까지 떠들썩하다. 카사 델 아구아는 멕시코의 건축 거장인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의 유작으로 일본의 개인주택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 유일하게 남아있다. 한 건축가가 지구 반대편에 남긴 건물을 지키기 위해 마르타 오르티스 데 로사스 주한 멕시코 대사는 물론 멕시코 정부까지 “문화유산 파괴 행위를 막아 달라”며 한국 정부 측에 요청하고 나섰다. 국내 건축·예술계에서는 건축가 승효상씨(이로재 대표) 등을 중심으로 철거 반대 비상대책위가 꾸려졌고 지난 10월 15일 제주도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에서도 철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카사 델 아구아는 레고레타의 명성만으로도 이미 건축도들이 줄을 잇는 명소가 됐다. 한국을 움직인 멕시코 건축의 힘은 무엇일까.
   
   
   건축의 나라, 멕시코
   
   멕시코는 ‘건축의 나라’로 불린다. 그만큼 건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부심의 뿌리는 고대 멕시코의 마야·아즈텍문명까지 올라간다. 멕시코 건축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멕시코시티에서 50여㎞ 떨어진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를 꼽는다. 기원전 2세기경에 세워진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 도시는 전성기에는 인구가 2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264개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아찔하다. 피라미드 위에서 내려다본 유적지는 고대 도시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높이 60m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로 꼽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왕들의 무덤이었던 반면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신을 위한 제단이었다. ‘태양의 피라미드’ 서쪽에 있는 ‘달의 피라미드’는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신에게 바치는 곳이었다. 달의 피라미드에 이르는 죽음의 길은 5.5㎞에 달한다. 공간 자체가 건축이 된 죽음의 길은 멕시코 건축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들의 영혼에 여백의 건축을 심어줬다. 비록 스페인 식민지 시절 고대 건축물 위에 성당들이 지어지고 유럽 건축양식이 삶을 지배했지만 멕시코 건축의 뿌리는 DNA에 새겨져 있었다.
   
   1910년 멕시코혁명 이후 민족주의 열기가 살아나면서 건축 역시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다. 잠자던 멕시코 건축의 영혼을 깨운 사람은 멕시코 근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이스 바라간(1902~1988)이다. 미니멀리즘 건축의 토대를 만들었지만 가장 멕시코적이기도 했다. 멕시코 건축의 특징인 빨강·노랑·파랑 등 화려한 원색을 즐겨 사용하고 멕시코의 자연과 공간을 모두 건축의 요소로 활용했다. 남미 건축가로는 드물게 1980년 건축계의 노벨상에 해당하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그가 직접 설계해 1948년까지 살았던 멕시코시티의 ‘카사 루이스 바라간(바라간의 집)’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 건축인들의 필수 순례 코스가 됐다.
   
   
   바라간과 레고레타
   
바라간은 ‘침묵의 건축가’라고도 불린다. 미국 건축가의 거장 루이스 칸과의 일화를 보면 그의 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 루이스 칸의 걸작으로 꼽히는 미국 샌디에이고의 솔크연구소는 두 개의 연구소 건물 사이에 빈 광장이 있다. 태평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 연구소가 유명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이 광장 때문이다. 일몰 때 광장을 채운 빛이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인위적 요소가 아닌 빛으로 채운 이 광장은 사실 칸이 아닌 바라간의 작품이다. 칸은 애초에 이곳을 나무로 가득 채울 생각이었으나 바라간의 조언을 구한 뒤 계획을 변경했다고 한다. 바라간은 칸에게 “절대적 무위의 공간으로 남겨놓으라”고 말했다. 구도자와 같았던 바라간의 침묵의 메시지는 달의 피라미드에 이르는 죽음의 길을 떠올리게 한다.
   
   바라간의 건축은 리카르도 레고레타로 이어진다. 색의 연금술사로 불릴 만큼 레고레타 역시 멕시코 특유의 원색을 사용했고 강렬한 태양과 멕시코의 전통을 토대로 하고 있다.
   
   지역주의 색채가 강했던 그의 건축은 카사델아구아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국내 건축물에서 보기 힘든 붉은 흙빛은 제주의 화산송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제주의 푸른 바다 등 외부 풍경이 내부 공간으로 이어지고 실내로 기꺼이 끌어들인 빛은 인위적 구조보다 절묘한 공간 연출을 해준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건축사협회(AIA)의 골드메달을 수상했고 심사위원으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그의 건물이 있는 곳은 건축학도라면 일부러 찾아 나설 만큼 레고레타는 세계적 건축가로 대접받고 있다.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멕시코시티의 인류학박물관을 설계한 페드로 라미레즈 바스케즈(1919~)도 멕시코의 대표 건축가로 꼽힌다.
   
   

   슬림제국의 수마야박물관
   
   최근 멕시코시티에 멕시코가 자랑할 만한 또 하나의 건물이 등장했다. 서울의 강남쯤에 해당하는 폴란코 지역에 들어선 수마야(Sumaya)박물관이다. 마치 둥근 원통형의 조각품을 누른 후 비틀어 놓은 듯한 독특한 외형은 한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외벽은 1만6000개의 육각형 알루미늄 패널로 마감돼 햇빛에 반사되면서 시시각각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이 박물관은 빌 게이츠를 제치고 2010년부터 세계 갑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멕시코의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71) 텔맥스 회장이 지은 것이다. 1999년 사망한 부인을 기리며 부인 이름을 붙인 박물관으로 6층 규모에 6만5000여점에 이르는 슬림 회장의 개인 컬렉션의 일부가 전시돼 있다. 슬림은 로뎅 작품만 400점 가까이 소장, 세계 최대의 로뎅 작품 개인 소장자로 꼽힌다.
   

   지난 10월 10일 수마야박물관을 찾았다. 멀리서도 강렬한 태양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는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박물관은 무료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처럼 짐 검사를 하고 들어가니 탁 트인 로비에는 로뎅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이 관람객을 맞았다. 건물 내부도 외부만큼이나 독특했다. 전시 공간답게 깔끔한 흰색 벽면으로 모두 곡선형 구조로 설계돼 있다. 계단 대신 달팽이관 모양의 곡선을 따라 6층까지 전시실이 이어지는데 중세부터 르네상스, 인상파 시기의 작품 등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작품들이 전시실을 빼곡이 채우고 있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만 해도 10여점을 훌쩍 넘어 컬렉션을 돈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 숫자가 될 것으로 보였다. 작품이 너무 많이 전시돼 있다 보니 공간 구성이 품격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6층이다.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천장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 로뎅의 작품이 가득 차 있다. 로뎅의 대표 작품들은 모두 여기 모여 있는 듯했다. 로뎅 외에도 살바도르 달리의 조각 작품도 수십 점 전시돼 있었다.
   
   국내 건축가 몇 명에게 수마야박물관을 찍어온 사진을 보여줬더니 “건축가들이 한번쯤 지어보고 싶어 하는 꿈의 건축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곡선형의 건축물을 지으려면 건축비가 일반적인 사각형 건물보다 10배 이상 올라간다고 했다. 한 건축가는 “3.3㎡당 건축비가 최소 3000만원은 족히 들 것”이라면서 건축비 걱정 없이 마음껏 실력 자랑을 한 운 좋은 건축가가 누구냐고 물었다.
   
   

   부자 동네와 빈민가는 집 색깔로 구별된다
   
   건축비 7000만달러가 들어간 박물관을 지은 운 좋은 건축가는 다름 아닌 슬림의 사위인 페르난도 로메로(42)이다. 멕시코의 젊은 건축가 중 대표주자로 꼽히는 로메로는 멕시코시티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그가 2005년 멕시코시티에 지은 ‘아이들의 방’은 국내에서 출간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건축 1001’(마로니에북스)에도 선정돼 소개돼 있다.
   
   수마야박물관 주변은 그야말로 ‘슬림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 뒤로 슬림의 통신회사인 텔셀의 건물이 있고 그 옆에는 멕시코 최고의 명품 백화점이 있다. 슬림가 사람들이 미국까지 쇼핑가는 것이 번거로워 아예, 최고의 명품 브랜드들을 모아놓은 백화점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박물관 옆으로는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역시 슬림의 소유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슬림의 재산은 740억달러로 2위인 빌 게이츠보다 100억달러가 더 많다.
   
   세계 최고의 갑부가 살고 있지만 멕시코인의 절반 가까이(46.2%)는 빈곤층이다. 극심한 멕시코의 빈부는 집 색깔로 구별된다. 멕시코 건축의 특징을 화려한 색깔로 꼽지만 빈민가의 주택은 온통 회색빛이다. 페인트 칠을 할 여유조차 없다 보니 대충 블록만 쌓아올려 겨우 집 모양만 갖추어 살고 있다. 또 부자일수록 낮은 곳에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높은 곳에 산다. 멕시코시티는 해발 2200m에 위치해 있다.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가벼운 고산병을 느낄 정도로 높은 곳이지만 그나마 빈곤층은 산 위쪽으로 점점 밀려나고 있다. 산꼭대기까지 블록집이 밀고 올라가 아예 회색빛 블록산이 된 곳도 있다. 멕시코시티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도로 양편으로 이런 블록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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