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지막 날, 서울시로부터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서울시가 강남구 대치동 세텍(SETEC·서울무역전시장)에 건립하려던 ‘제2시민청’을 백지화하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주간조선 2434호’ 보도가 나간 지 정확히 한 달 만입니다. 서울시와 ‘제2시민청’ 건립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강남구 역시 즉각 논평을 내놨습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58만 강남구민의 현명한 판단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사필귀정의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강남구 측은 기자에게도 “주간조선 보도가 많은 도움이 됐다”고 알려왔습니다.

기자는 강남구 주민도 아닐 뿐더러 강남구와 하등의 관계도 없습니다. 다만 ‘관청 청(廳)’ 자가 아닌 ‘들을 청(聽)’ 자를 쓴다는 ‘시민청’을 두 눈으로 직접 본 뒤 서울시 지방세를 납부하는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1시민청은 서울지하철 시청역과 지하통로로 연결된 서울시 신청사의 지하 1, 2층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현재 노숙자들 차지입니다. 알짜배기 공간을 노숙자들에게 내어준 탓인지 서울시 신청사 인근의 여러 빌딩에 흩어져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들도 많습니다. 민간빌딩 입주비용은 서울시민 세금입니다.

‘시민청’ 취재과정에서 만난 인사들은 “박 시장이 대선 전 시민단체 인사들에게 아지트를 마련해주기 위해 시민청에 집착한다”고 우려했습니다. 실제 시민청 운영자문위원회에는 12명의 시민단체 및 사회적 기업 관계자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상설 및 기획 프로그램도 시민단체 위주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에게 직함을 주고 서울시내 가장 알짜배기 공간까지 내어주며 시장의 우군(友軍)으로 삼겠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아닌 생업에 바쁜 진짜 시민들은 시민청에서 한가하게 여유를 즐길 시간조차 없습니다.

정치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펴면 ‘잠룡(潛龍)’인지 ‘잡룡(雜龍)’인지 모를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등장해 차기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힙니다. 이 중에는 현직 지자체장들도 적지 않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새해 1월 2일 “결심이 섰습니다”라며 대권도전 의사를 공식화했습니다. 비장감 가득한 출사표를 읽어봤습니다. ‘대한민국’이란 단어가 8번 등장하는 데 반해 ‘서울’이란 단어는 딱 1번만 나왔습니다. “벌써 마음이 콩밭에 가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년 오세훈 전 시장의 중도사퇴로 촉발된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2014년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오는 2018년 6월까지가 주어진 임기입니다. 차기 대선에 뛰어들어 시장직을 중도포기라도 하면 재차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합니다. 물론 현행법과 각 당의 당헌당규상 시장직을 유지한 채 경선 참여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양다리를 걸치고 선거판에 뛰어든다는 것은 공직자의 ‘직무전념 의무’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남은 임기만이라도 ‘대한민국’보다 ‘서울시’에 전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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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flatron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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