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배경으로 이름난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1875년 개관한 이 극장은 샤갈이 그린 240㎡ 규모 천장화와 8t 샹들리에 등 볼거리가 많다. 파리 국립오페라는 올시즌 신작 오페라 ‘돈 파스콸레’를 이곳에서 올렸다. ⓒphoto 김기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배경으로 이름난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1875년 개관한 이 극장은 샤갈이 그린 240㎡ 규모 천장화와 8t 샹들리에 등 볼거리가 많다. 파리 국립오페라는 올시즌 신작 오페라 ‘돈 파스콸레’를 이곳에서 올렸다. ⓒphoto 김기철

여름휴가 12일간 오페라 9편과 콘서트 2편 등 공연을 11번 본다고 했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오페라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이 있다. 눈과 귀를 통해 온몸으로 느끼는 감동은 책이나 명화(名畵)를 감상하는 것과도 차원이 다르다. 영화 ‘쇼생크 탈출’ 주인공 앤디가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음반을 틀어주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교도소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편지의 이중창’ 아리아를 들은 죄수들은 최면에 걸린 듯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두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노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죄수 역 모건 프리먼의 독백에 깊이 공감한다.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통로가 전보다 넓어졌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파리 국립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는 극장에서 라이브 중계를 한다. 블루레이나 DVD 같은 영상물도 쏟아져나온다. 그러나 직접 보는 것과 같을 순 없다. 유럽 유명 오페라극장 시즌은 대개 9월에 시작해 6월에 마무리된다. 휴가가 여름철에 몰리는 우리 형편에선 그림의 떡이다. 다행히 7월 중순까지 시즌을 이어가는 극장들이 있다. 뮌헨이나 잘츠부르크, 베로나와 브레겐츠 같은 도시는 여름철 관광객을 겨냥해 오페라 페스티벌을 연다.

7월 12일 도니체티의 ‘돈 파스콸레’(전 3막)를 보기 위해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을 찾았다. 나폴레옹 3세가 건립을 추진해 1875년 완공된 가르니에 극장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배경이 된 극장으로 유명하다. 샤갈이 그린 천장화와 계단, 샹들리에 등 화려한 건물로 소문났다. 말굽 형태의 공연장 1층에서 올려다본 천장은 그 자체가 예술품이었다. 340개의 불빛이 반짝이는 8t 무게의 화려한 샹들리에, 240㎡ 규모의 천장화…. 1964년 설치된 샤갈의 천장화는 중앙 원형 패널에 비제의 ‘카르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추정), 베토벤 ‘피델리오’, 글루크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등 오페라 4편를 담았다. 원형 패널을 둘러싼 메인 패널 12개에도 모차르트 ‘마술피리’ 등 대표적 오페라 장면을 담았다.

‘돈 파스콸레’와 ‘일 트로바트레’

‘돈 파스콸레’는 돈 많은 노인 돈 파스콸레가 젊은 여자 노리나를 아내로 맞으려다 망신당하는 얘기다. 의사 말라테스타 박사는 친구 파스콸레를 돕는 척하면서 노리나와 파스콸레 조카인 에르네스토의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작전을 꾸민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와 비슷한 모티브다.

파리 국립오페라는 2017~2018시즌 대표상품으로 ‘돈 파스콸레’ 뉴프로덕션(New Production)을 내놓았다. 유명 오페라극장들은 시즌마다 연출과 무대 등을 바꾸고 재해석한 ‘뉴프로덕션’ 오페라를 대거 올린다. 이탈리아 연출가 다미아노 미키엘레토(43)는 1843년에 파리에서 초연된 ‘돈 파스콸레’를 요즘 TV 드라마처럼 설득력 있게 다듬었다. 여주인공 노리나가 동영상 카메라 앞에서 아리아를 부르고, 그 영상이 무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식이다. 에르네스토는 원작(原作)의 손편지 대신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빈 국립오페라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런던 로열오페라에서 활약한 재능 있는 연출가다웠다.

미국 소프라노 나딘 시에라(30)는 영리하고 매력적인 노리나였다. 연애소설을 읽다 ‘나는 당신의 눈길에 포로가 됐습니다’ 같은 기사(騎士)의 진부한 대사에 코웃음 쳤다. ‘나는 연애의 기술을 알고 있다’며 감칠맛 나는 목소리와 연기로 자신 있게 노래하는 장면에서 시에라의 매력이 흘러넘쳤다. 에르네스토를 부른 로렌스 브라운리(46)는 미국 흑인 테너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앳된 얼굴이지만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자주 선 베테랑이다. 브라운리는 파워는 떨어지지만 고운 미성(美聲)으로 삼촌에게 애인을 뺏기고 쫓겨나는 청춘의 불운을 그럴듯하게 연기했다. 주인공 돈 파스콸레를 맡은 바리톤 미켈레 페르투지, 말라테스타 역 플로리앙 상페이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일품이었다. 도니체티에 정통한 이탈리아 지휘자 에벨리노 피도가 이끈 오케스트라는 오페라에 최적화된 연주를 들려줬다.

다음날 오르세미술관에서 마네와 모네, 르누아르, 고흐와 고갱, 쿠르베의 작품 숲을 거닌 뒤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으로 향했다. 메트로바스티유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니 반(半)투명 유리로 둘러싸인 현대식 건물이 나타났다. 1982년 미테랑 정부는 새 오페라극장 건축을 결정하고 설계 공모를 거쳐 우루과이 출신 캐나다 건축가 카를로스 오트 작품을 선정, 바스티유 극장을 건립했다. 특권층의 상징인 박스석을 없애고 어느 좌석에서도 시야 방해 없이 무대를 볼 수 있게 했다.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지어진 만큼 누구나 ‘평등’하게 오페라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날 올린 베르디 ‘일 트로바트레’(전 4부)는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특히 소프라노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레오노라)와 메조소프라노 에카테리나 세멘추크(아주체나), 두 성악가의 불꽃 넘치는 대결이 볼 만했다. 정상급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즈(만리코)와 바리톤 제리코 루치직(루나 백작)이 ‘빅 4’의 나머지 배역을 채웠다.

집시들이 부르는 ‘대장간의 합창’으로 익숙한 ‘일 트로바트레’는 원래 1400년대 내전 중인 스페인이 무대다. 어릴 때 헤어진 백작의 두 아들 루나 백작과 만리코가 레오노라를 동시에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이다. 어린 아기였던 만리코에게 주술을 걸었다는 혐의로 화형당한 어머니를 위해 복수하려는 아주체나의 음모가 복선으로 깔린다.

바스티유 극장에서 올린 베르디 ‘일 트로바트레’ 주역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왼쪽)와 마르첼로 알바레즈(오른쪽). ⓒphoto Julien Benhamou
바스티유 극장에서 올린 베르디 ‘일 트로바트레’ 주역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왼쪽)와 마르첼로 알바레즈(오른쪽). ⓒphoto Julien Benhamou

베르디 전문 미국 소프라노 라드바노프스키(49)는 파워풀한 레오노라였다. 풍부한 성량으로 2700석 바스티유를 쩌렁쩌렁 울렸다. 소리만 큰 게 아니라 연기력 또한 대단했다. 루나 백작에 붙잡혀 처형당하기만 기다리는 연인 만리코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결연하게 드러낸 아리아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끊이지 않는 박수 세례에 지휘자 마우리치오 베니니는 라드바노프스키가 아리아를 다시 부르도록 앙코르를 연주했다.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당대 최고의 메조소프라노 중 하나로 꼽히는 러시아 세멘추크의 아주체나도 카리스마 넘쳤다. 원수의 자식(만리코)을 키워 친형의 손에 죽게 만드는 복수의 화신을 리얼하게 연기했다. 알바레즈와 루치직의 대결도 일품이었지만 두 여성 성악가의 호연이 더욱 빛났다. 공들여 차린 만찬을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파리 국립오페라는 가르니에 극장을 발레와 작은 규모 오페라, 바스티유 극장을 본격적인 오페라 무대로 쓰고 있다. 바스티유 극장은 지휘자 정명훈이 35세에 음악감독으로 지명돼 1989년 개관부터 5년간 이끈 곳으로도 친숙하다. 2009년 취임한 필립 조르당 음악감독이 이끌고 있다.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1989년 개관한 파리 바스티유 극장. 2700석이 넘는 대극장으로 어느 자리에서나 무대가 잘 보이도록 설계했다. ⓒphoto Christian Leiber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1989년 개관한 파리 바스티유 극장. 2700석이 넘는 대극장으로 어느 자리에서나 무대가 잘 보이도록 설계했다. ⓒphoto Christian Leiber

지휘자 김은선의 ‘카르멘’

7월 14일 오전 10시23분 파리 리옹역에서 취리히행 테제베(TGV)에 올랐다. 650㎞가 넘는 거리라 비행기를 타야 하나 했다. 프랑스 국철(SNCF) 사이트를 스마트폰으로 뒤져보니, 비교적 저렴한 66유로(약 8만6000원)짜리 티켓이 남아 있었다. 망설임 없이 기차를 예매했다. 파리를 떠난 기차는 4시간10분 만에 취리히 중앙역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유럽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트램을 타고 오페라극장 근처에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아 짐을 풀었다. 아파트에서 슬슬 걸어나왔더니 5분도 안 돼 극장에 도착했다. 1997년 7월 취리히 페스티벌을 취재하고 ‘주간조선’에 여행기를 썼다. 그때 이곳에서 푸치니 오페라 ‘황금 서부의 아가씨’를 봤다. 당시 메모를 뒤져보니 영국 연출가 데이비드 파운트니가 연출하고 취리히 오페라 음악감독이던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지휘한 작품이었다. 희미해진 기억이 되살아났다.

1891년 개관한 취리히 오페라극장은 알반 베르크의 ‘룰루’,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등 20세기 오페라를 초연한 곳으로 이름났다. 1970년대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연출가 장 피에르 폰넬 콤비를 초대해 몬테베르디 오페라를 연작으로 올렸고, 1980년부터 ‘이도메네오’ 등 모차르트 오페라 시리즈를 이어갔다. 수수한 외관과 비교적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취리히 오페라극장은 될성부른 예술가들을 점찍는 정확한 눈으로 성가를 높여왔다. 1995년 35세에 이 극장 음악감독으로 기용된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13년간 극장을 이끌다가 2010년 세계 최고 오페라극장으로 꼽히는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옮겼다.

7월 14일 저녁 취리히 오페라극장이 올린 작품은 비제 ‘카르멘’(전 3막4장). 지휘자 김은선(38)의 취리히 극장 데뷔작이라 일찌감치 잡아놓은 일정이었다. 7월 1일부터 다섯 차례 공연 중 이날이 피날레 공연이었다. 생머리를 뒤로 묶고 지휘대에 오른 김은선은 이 극장 필하모니아 취리히 오케스트라를 깔끔하게 리드했다. 1100석짜리 아담한 극장은 김은선의 지휘봉에 따라 병영(兵營)에서 카페로, 산속 요새로 모습을 바꿨다. 1층 중간 좌석에서 본 무대는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고 성악가들의 표정 변화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김은선은 ‘카르멘’을 성능 좋은 스포츠카 몰듯 날렵하게 연주했다.

아르메니아 메조소프라노 바르두히 아브라하미얀의 카르멘은 ‘팜므 파탈’(매력적 악녀) 그대로였다. 외모와 목소리 색깔도 돈 호세가 혹할 만큼 집시 여인의 매력이 넘쳤다. 우크라이나 테너 드미트로 포포프의 돈 호세도 미성(美聲)보다는 격정에 사로잡힌 우람한 소리였다. 첫 등장 때 갈래머리의 촌스러운 시골 처녀 미카엘라로 분장한 중국 소프라노 위관춘은 파워 넘치는 소리를 지녔다. 카르멘과 함께 도망친 탈영병이자 밀수꾼 신세인 돈 호세를 찾아가 부른 3막 아리아 ‘나는 이제 두렵지 않아’에서 작심한 듯 기운을 쏟아냈다. 위관춘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최고의 미카엘라였다.

김은선이 지휘한 취리히 오페라극장의 ‘카르멘’. ⓒphoto Judith Schlosser
김은선이 지휘한 취리히 오페라극장의 ‘카르멘’. ⓒphoto Judith Schlosser

루이지와 페레즈의 ‘라 트라비아타’

다음날인 7월 15일 자코메티 작품으로 유명한 쿤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야외에 설치된 로댕 ‘지옥의 문’과 샤갈, 칸딘스키, 모네, 뭉크의 컬렉션이 뛰어난 미술관이기도 하다. 스위스 출신인 자코메티의 조각을 물리도록 볼 수 있었다. 자코메티 재단에서 이 미술관에 작품을 대거 임대해줬다고 한다. 숙소로 걸어 들어오다 ‘리하르트 바그너(1853~1857)’라는 명패가 붙은 건물을 지나쳤다.

독일 드레스덴 궁정 지휘자였던 바그너는 1849년 무정부주의자 바쿠닌이 주도한 무장봉기에 휘말려 망명을 떠났다. 바그너는 취리히를 중심으로 작곡과 연주 활동을 했는데, 그 당시 바그너가 살던 집이었던 모양이다. 바그너는 취리히 망명생활 중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구체화했다.

이날 저녁 취리히 극장의 올 시즌 마지막 공연인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전 3막)가 올랐다. 취리히 극장 음악감독인 이탈리아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봉을 잡고, 미국 소프라노 에일린 페레즈(비올레타), 프랑스 출신 테너 벤자민 베른하임(알프레도), 미국 바리톤 퀸 켈시(제르몽)가 나섰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가수들이 피로에 지쳤을 법한데, 루이지가 지휘한 ‘라 트라비아타’엔 활력이 넘쳤다. 루이지는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의 템포를 늘렸다가 빠르게 몰아치면서 리드미컬한 연주를 선보였다. 29세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사상 최연소 연출가로 데뷔하며 천재 소리를 들은 데이비드 헤르만(41)은 ‘라 트라비아타’에 연극적 요소를 강화했다. 서곡부터 무대에 올라온 에일린 페레즈는 불안한 듯 무대를 서성이며 비올레타의 비극을 예고했다. 알프레도와의 첫 만남을 다룬 1막 파티 장면에서 주변 인물들은 정지화면처럼 동작을 멈춘 채 알프레도와 비올레타만 환한 조명 아래 움직였다. 비올레타가 병들어 죽어가는 피날레도 화해와 용서의 결말을 거부했다. 비올레타를 찾아와 용서를 구하던 알프레도와 아버지 조르지오는 비올레타가 숨을 거두기 직전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비올레타는 고독하게 숨을 거뒀다.

에일린 페레즈의 호연은 압도적이었다. 알프레도와 만난 후 흔들리는 마음을 담은 1막 피날레 아리아 ‘이상하다! 이상해!’부터 심상치 않았다.

조르지오로부터 아들과 헤어져달라는 부탁을 받고 절절한 심정으로 부르는 2막 아리아, 병들어 죽어가며 알프레도와의 추억을 돌이키는 3막 아리아 ‘지난날의 아름답고 즐거웠던 꿈이여, 안녕’까지 페레즈는 마지막 한 방울 남은 힘까지 모두 쏟아붓는 듯 엄청난 절창이었다. 벤자민 베른하임과 퀸 켈시도 흠잡을 데 없었지만 주인공은 페레즈였다.

공연 다음날 아침 취리히 중앙역 근처 버스터미널에서 18유로(약 2만4000원)짜리 뮌헨행 플릭스 버스를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다. 페레즈가 부르는 비올레타의 절규가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이 도시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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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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