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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53호]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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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구촌 노마드가 살아본 도시, 로마

하루 30유로 호스텔에서 본 로마의 속살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kroad100@gmail.com

▲ ‘메르카토’로 불리는 로마의 노천시장. photo 뉴시스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정확한 해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접한 영화다. 이후 지금까지 최소 10번 이상, 일생을 통틀어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됐다. 코미디라 불리지만 인간의 품과 격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예의 바른’ 영화라고 생각한다. 1953년 작품이니까 이미 66년이나 흘렀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레고리 펙의 신사상(像)은 전 세계 모두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로마의 휴일’은 필자의 미래를 결정한 운명의 나침반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것을 호기심으로 대하던 어린 나이였지만, 영화를 본 뒤 가진 두 가지 결심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첫째 장래희망은 기자다. 영화 속의 그레고리 펙의 직업이 기자였기 때문이다. 둘째 장차 로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각오를 다졌다. 영화에서처럼 오드리 헵번 같은 여인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필자의 결심은 ‘부분적으로’ 이뤄졌다. 31년 전 사회생활의 출발을 기자로 시작했고, 로마를 무대로 한 장기여행도 장년 인생의 연간 고정 스케줄로 잡혀 있다. 1인 유튜브를 통한 영상 홍수시대라지만, 영화 한 편만으로도 인생이 변할 수 있던 시기도 있었다. 만약 영화에서 그레고리 펙이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이었다면, 영화의 배경이 로마가 아닌 파리나 런던이었다면 필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상당히 달라졌을 듯하다.
   
   
   4인용 호스텔 숙박비 하루 30유로
   
   필자에게 로마는 전 세계 문명·문화의 압축판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했지만, 필자는 ‘인류 역사의 전부가 로마로 통한다’고 믿고 있다. 인류문명사를 살피면서 인도, 중국, 미국에 무게 중심을 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할 경우 로마라는 존재에 필적할 만한 곳은 전무하다. 겨우 17세기부터 뜨기 시작한 파리는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된 로마의 역사와 비교할 수가 없다. 문명과 문화를 구성하는 과학, 기술, 문학, 종교, 예술 그 모든 측면에서 볼 때도 로마를 따를 만한 도시는 없다. 무엇보다도 2000년 이상의 영고성쇠를 거친 도시 자체가 없다. 로마는 로마로서만이 아닌, 이탈리아 전부를 압축한 도시다. 또 이탈리아는 이탈리아라는 나라 하나가 아니라 유럽과 세계를 압축한 또 다른 작은 세계로 존재한다. 따라서 로마는 전 세계를 하나로 압축한 지구의 무게중심에 해당하는 도시라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로마의 휴일’을 본 뒤 맺어진 연(緣)이지만, 세상을 이해한 뒤 알게 된 로마의 진가는 깊고도 넓다. 대략 50대 이후부터 로마 장기체류가 일상화된 배경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러하듯 유럽 여행은 겨울이 최적의 시기다. 거주비용이 싸다는 점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덜 붐빈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통상 연중 로마 여행은 필자의 유럽 본거지인 베네치아에서 시작된다. 대략 1월이 최적의 시기다. 바티칸에 들러 신년결의도 다지고, 긴 줄 없이 곧바로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바티칸박물관도 둘러본다. 로마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할 부분이 너무도 많은 도시다. 언제나 그러하듯 미리 공부를 하지 않으면 주마간산 셀카 인증의 도시로 남을 뿐이다. 파리, 도쿄, 런던, 베이징과 거의 비슷한 느낌의 디지털 기억 속의 도시로 전락할 뿐이다.
   
   모든 도시가 그러하듯, 로마는 로마만의 색깔과 맛을 가진 공간이다. 그것도 전 세계의 문명·문화가 압축된 안과 밖이 ‘꽉 찬’ 무대다. 얼마나 발굴해내고 활용할지는 각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구체적인 차원에서의 전략 전술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한국인의 로마 정복’을 위한 장기체류 노하우라고나 할까?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의식주 가운데 주의 결정이 우선한다. 로마에서 머물기에는 중심가 호스텔이 좋다. 호텔이 아닌, 4인이 방 하나를 쓰는 기숙사용 호스텔이 좋다. 6인용도 좋지만, 8인용까지 되면 너무 복잡하다. 남녀혼숙 기숙사도 좋다. 항상 강조하지만, 단신 여행을 권한다. 4인용 기숙사는 국적이나 남녀노소 구별 없는 작은 글로벌이 될 수 있다.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심가라면 민박도 좋다. 50대의 필자가 주로 이용하는 것은 4인용 호스텔이다. 로마 중심가 4인용 호스텔의 경우, 대략 하루 숙박비가 30유로 이하다.
   
   꼰대 세대인 필자가 호스텔에 머무는 이유는 ‘결코’ 돈 때문만이 아니다. 호스텔의 장점은 의외로 많다. 첫째,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하루 수면 6시간 정도를 보장받는다. 호스텔 침실은 대략 11시부터 불을 끈다. 그러나 늦게 들어오는 심야족 한두 명이 반드시 끼어들기 마련이다. 시끄럽기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필자의 경우 호스텔 로비나 주변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 12시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을 잔다. 심야족은 물론 ‘코골이 선수’를 염두에 둔 수영용 귀마개는 필수다.
   
   
▲ 로마를 흐르는 테베강 풍경. photo 뉴시스

   6시 기상해 하루 5시간 걷기
   
   호스텔에서의 기상은 오전 6시 전후다. 이유는 화장실과 세면대 때문이다. 호스텔 화장실과 세면대는 대부분 공용이다. 10유로를 더 주면 개인용도 가능하지만, 일부러 공용으로 간다. 아침 8시 이후 한꺼번에 몰리는 곳이 공용이다. 7년 전이지만, 화장실 하나에 숙박객이 30명꼴인 호스텔에 묵은 적도 있다. 화장실 앞에서의 초조함과 시간낭비 때문만이 아니라 비싼 비행기 타고 찾아온 로마에서 1분 1초를 아낀다는 점에서 6시 기상이 이상적이다. 씻고, 식사하고 하루 일정을 짠 뒤 외출하는 시간은 아침 8시쯤이다. 다른 사람들이 겨우 일어나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설 때, 로마의 하루가 시작된다.
   
   호스텔의 장점 중 하나는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데 있다. 화구는 물론 취사도구도 마련돼 있다. 유럽 대도시는 노천시장, 즉 ‘메르카토(Mercato)’의 역사다. 로마는 유럽에서 큰 메르카토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도시다. 영어로 ‘마켓(Market)’인 메르카토의 어원은 ‘메르크(Merk)’다. 고대 그리스 신의 이름인 ‘메큐리우스(Mercurius)’에서 따온 이름이다. 기원전 10세기에 등장한 이탈리아 ‘에트루스칸(Etruscan)’ 문명이 만들어낸 말이다.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Hermes)’는 그리스 신 메큐리우스의 로마식 이름이다. 멀리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마켓이란 말의 출발점이 바로 이탈리아인 셈이다. 프랑스의 에르메스와 달리, ‘공화국의 평범한 시민’을 위한 싸고 싱싱한 물건들로 채워진 공간이 바로 로마의 메르카토다.
   
   마켓의 원조국답게 로마는 메르카토의 천국이기도 하다. 로마 중심가 어디서나 대략 걸어서 20분 거리 어디쯤에 메르카토가 들어서 있다. 로마는 고대 유물과 건축물로 뒤덮인 초대형 미로다. 골목 하나에 접어드는 순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옆에서 열려 있는 메르카토라도 쉽게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간단한 ‘증거’ 하나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 ‘카렐로(Carrello)’라 불리는 바퀴 두 개가 달린 간이용 장보기 카트(Cart)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고급 제품도 있지만, 플라스틱 제품은 대략 10유로 선에서 구입 가능하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플라스틱제 이동형 카트다. 필자도 하나 구입해 장보기나 물건을 사러 나갈 때 반드시 끌고 다닌다. 카렐로가 여기저기 보인다면 주변 어딘가에 메르카토가 들어서 있다는 증거다. 메르카토는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이 그러하듯, 장소별로 1주일에 두 번씩 문을 연다.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제외하면, 1년 내내 로마 어디를 가도 메르카토가 넘친다. 과일·채소·와인·치즈·고기·생선과 같은 식료품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산이나 중국산 의류·신발·장난감·전자제품 등으로 메워진, 전 세계 마켓의 압축판을 로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호스텔에서의 요리는 유서 깊은 로마 메르카토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대략 10유로 정도면 먹고 싶은 재료를 전부 구입할 수 있다. 와인은 1L에 1유로 정도면 살 수 있다. 파스타 2유로, 치즈 3유로 정도면 1주일 내내 먹을 수 있다.
   
   
   골목마다 넘치는 시장의 매력
   
   로마가 낳은 인류 문명과 문화 속으로 ‘간단히’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로마 중심가의 호스텔을 숙박지로 잡는 큰 이유다. 어디든지 걸어서 갈 수 있고, 걸어다녀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로마 거리와 골목 구석구석이 역사이고, 건축물과 공간 하나하나가 문화다. 따라서 로마는 튼튼한 다리를 필요로 한다. 하루 5시간 이상 걸어다닐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로마에서의 장기체류는 무의미하다.
   
   로마는 곳곳이 일방통행에다 보행자 천국용 거리로 이뤄져 있다. 자동차로 옮겨다닐 만한 공간이 아니다. 물론 택시의 바가지 요금도 일상적이다. 주목할 점은 관광객이 접하는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사실 이탈리아인이 아니란 점이다. 로마는 국적과 무관한 도시다. 전 세계를 압축한 도시답게 로마를 사랑하고 로마에 거주하는 한, 누구나 로마인이 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에 기초한 얘기지만, 영어가 가능한 로마인의 대부분은 알바니아·루마니아·슬로베니아처럼 과거 동유럽권 출신자들이다. 로마에 대해 필자보다 더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민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예 로마 밖으로 나갈 경우 이탈리아 국적의 주인을 만날 수 있지만, 로마 시내 호스텔의 주인들은 이탈리아 출생과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로마를 ‘카오스(Chaos)’라 부를 경우, 바벨탑의 집산지라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따라서 이방인에 대한 바가지 요금, 나아가 소매치기는 너무도 일상적인 ‘로마의 상식’이다. 당하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그 같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자전거 공유에 주목하는 그린족(Green族)도 있다. 빅토리오 드 시카(Vittorio de Sica) 감독의 명작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의 무대도 로마다. 전후 70여년이 흐른 21세기라고 하지만, 로마의 자전거 도둑은 지금도 왕성하다. 자전거 도둑 때문에 최근 아예 자전거 공유제도 자체를 폐지한 도시가 로마다.
   
   
▲ 콜로세움 photo 셔터스톡

   로마의 맥주 연구
   
   필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로마는 한 달 체류로 볼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견(見)’으로서는 가능하겠지만, ‘관(觀)’으로서의 로마는 1년, 아니 평생을 가도 체득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관광객으로 들끓는 낮과 적막으로 뒤덮인 밤의 로마가 딴판이듯, 다중인격자의 무대가 로마일지 모르겠다. 로마 장기체류를 원한다면 구체적인 주제를 잡아 마치 탐사하듯 하나씩 찾아나서기 바란다. 예를 들어 로마에서 벌어진 ‘흑역사’에 대한 공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암살된 폼페이우스극장, 글래디에이터(검투사)의 피의 현장과 무덤, 연합군에 쫓기던 무솔리니가 마지막으로 연설을 한 광장,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가 말다툼 끝에 상대를 칼로 찌른 테니스장…. 이런 것들을 통해 본 로마의 어제와 오늘은 항상 새롭다. 로마 콜로세움이나 바티칸이 로마의 전부가 아니다. 그같은 나름대로의 주제를 찾아 헤매는 동안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여행이다. 여담이지만 필자의 최근 주제는 로마의 맥주 역사다. 흔히들 이탈리아는 와인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모든 영역이 그러하듯, 전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영역이 로마의 맥주다. 심지어 독일이나 체코보다도 한 수 위다. 와인보다 낮은 도수라는 점에서 꼰대 나이에도 즐길 수 있는 미지의 주제다. 몸과 함께 혀, 머리, 가슴까지 달굴 수 있는 인류 모두의 휴가지가 바로 로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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