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와 투우.
스페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스포츠에 관심이 있다면 2010년 월드컵 우승에 빛나는 축구, 세계랭킹 수위를 달리는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테니스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터지기 직전의 힘과 검붉은 정열로 달궈진 나라가 스페인이다. 중장거리보다는 100m 단거리, 세련된 화이트와인보다는 막 다져진 레드와인이 어울린다고나 할까. 바이올린에 실린 밤의 세레나데가 아니라 드럼과 나팔로 채워진 한낮 대행진이 스페인의 표정으로 와닿는다. ‘살벌한 긴장감’은 스페인의 춤 플라멩코의 정수다. 바일라오르(남성 댄서), 바일라오라(여성 댄서), 칸타오르(남성 가수)가 엮어내는 경연(競演)은 보는 이의 숨을 끊을 정도로 강렬하다.
‘알카디안에도 내가 존재한다(Et In Arcadia Ego)’고 했던가. 파라다이스로 통하던 고대 그리스 땅인 알카디안에도 죽음이 존재한다는 뜻의 라틴어 경구(警句)다. 어디든지 예외는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땀으로 얼룩진 100m 달리기와 핏빛 레드와인으로 채워져 있다고 하지만,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얼굴이 스페인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외부인이 아니라 스페인인 스스로가 공감하고 자임하는 ‘내면의 얼굴’이다. 바로 돈키호테(Don Quijote)다. 플라멩코와 투우에 준하는, 아니 그 이상의 위상을 갖고 있는 스페인의 진면목이 돈키호테다.
인류 최고 문학 1위가 돈키호테
한국에서 통하는 돈키호테의 이미지는 ‘시대착오 중세의 늙은 기사(騎士)’ 정도로 비칠 듯하다. ‘돈키호테 같은 친구’라는 말은 종잡기 어려운,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비상식적 인물로 해석된다. 풍차로 돌진하는 황당무계한 캐릭터다. 스페인, 나아가 유럽문화권에서 보는 돈키호테의 이미지는 어떨까. 단 하나의 조사 결과만으로도 돈키호테의 위상을 이해할 수 있다. 2002년 5월 노벨연구소가 주관한 ‘세계문학가 100인이 뽑은 인류 최고 문학백선(百選)’의 결과가 그 답이다. 세계 54개국 문학가가 내린 인류 최고 문학백선 1위에 오른 작품이 바로 ‘돈키호테’다. 고대 그리스 작가나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나 톨스토이의 작품이 아니라 스페인 최하급 귀족 집안 출신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소설 ‘돈키호테’가 인류문학의 최고봉에 올라섰다. 19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특히 ‘돈키호테’를 극찬한 작가다. “위대한 시인의 통찰력에 의해, 인간의 영혼이 갖고 있는 깊고도 신비한 단면이 훌륭하게 표출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슬픈 작품”이 ‘돈키호테’라고 평가한다.
소설로서의 ‘돈키호테’와 돈키호테라는 캐릭터가 별개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소설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새롭게 탄생한 캐릭터로서 돈키호테에 대한 평가도 특별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돈키호테의 수많은 기행(奇行)은 메타포(Metaphor), 즉 은유적 상징으로 풀이된다. 여관집 주인을 성주(城主)라 부르며 기사도 의식을 치르는 장면, 순정의 대상으로 삼은 환상 속의 귀부인 둘시네아에 얽힌 스토리, 돈키호테를 보호하려던 친구를 거울기사라 부르면서 치르는 결투…. 이 모든 기행은 반쯤 미친 늙은 기사의 상상력이 아닌, 메타포를 통한 다양한 인간의 내면묘사라는 것이 세계 문학가들의 분석이다. 정의구현은 돈키호테가 집 밖으로 탈출한 가장 큰 이유다. 중세 기사도 관련 책만 읽는 과정에서 자신도 기사처럼 정의구현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라만차 황무지로 떠나는 ‘십자가 삶’에 해당한다. 그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운명론적 사고에서 벗어난 인간 본위의 주체적 세계관이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는데 바로 스페인에서 탄생한 새로운 인간 모델 돈키호테가 출발점이다.
소설 ‘돈키호테’는 1605년과 1615년 두 번에 걸쳐 출간됐다. 무적함대를 통해 스페인의 국력이 세계 최고를 달리던 때다. 세르반테스는 1616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다. 전편이 57세, 후편이 67세 때 나온 셈이다. 천재가 그러하듯, 평생 돈과 인연이 없었던 인물이 세르반테스다. 추기경의 수하인에서 출발해 군인과 군수물자업에 이어 세금징수업에도 손을 대지만 전부 실패로 끝났다. 소설 ‘돈키호테’는 인생 막판에 손을 댄 실험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전편은 6판 인쇄에다 영어·프랑스어판 번역본까지 출간돼 유럽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세르반테스가 필요로 하는 ‘돈’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인기몰이 전, 일찌감치 판권을 넘겼기 때문이다. 후편의 경우 발간 1년 뒤 세상을 뜨면서 유작으로 처리됐을 뿐이다.
세르반테스 하우스와 돈키호테 루트
지난 8월 스페인 여행은 5년 만이었다. 마드리드를 스페인 여행의 중심으로 잡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세르반테스의 흔적 때문이다. 후편을 낸 뒤 부자가 될 날만 기다리다가 세상을 뜬 세르반테스 최후의 삶이 마드리드 시내에 남아 있다. 박물관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세르반테스 하우스(Cervantes House)’는 돈키호테 신자는 물론 스페인 문학의 성지이다. ‘돈키호테’는 인류역사상 근대소설 제1호로 통한다. 인간성 발견과 창조로 이어질 새로운 캐릭터, 구전작품이나 외부로부터의 요구나 요청과 무관한 작가의 독자적 관점, 바로 근대소설이 갖는 핵심요소에 해당한다. 한국의 경우 춘원(春園)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이 근대소설의 효시로 통한다. 1917년 작품이다. 춘원에 비해 무려 312년 앞선 근대소설이 ‘돈키호테’다. 자칫 놓치기 쉬운 작고도 소박한 공간이지만, 인류 근대소설의 요람이 바로 마드리드의 세르반테스 하우스다.
두 번째 이유는 라만차다. 소설 ‘돈키호테’는 전편이 ‘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 후편이 ‘Segunda parte del ingenioso caballero Don Quixote de la Mancha’라는 긴 제목으로 등장했다. ‘기상천외한, 기지가 넘치는, 재능이 넘치는 라만차 출신의 돈키호테’라는 의미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긴 수식어를 뺀 ‘라만차의 돈키호테’로 통용된다. 라만차는 ‘돈키호테’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뇌리에 남아 있을 지명이다.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동·서·남쪽에 인접한 땅이 바로 라만차다. 평균 600m 높이의 고원지대로 바다와는 무관한 곳이다. 원래 아랍어인 ‘만샤(Mansha)’에서 비롯된 지명일 것으로 추정된다. ‘마른 땅, 황량한 토지’라는 의미다.
마드리드에서의 세르반테스 흔적 찾기에 이어 곧바로 ‘라만차 순례’에 나섰다. 라만차는 광범위하다. 마드리드를 기준으로 할 때 남쪽으로 200㎞, 동쪽으로는 150㎞, 서쪽으로 100㎞에 달하는 광범위한 땅이다. 면적으로 본다면 한국 국토의 3분의 1 정도 크기다. 라만차라고 하지만 웬만한 나라 하나 전체를 드나들면서 그려낸 기사도 여행기가 ‘돈키호테’다. 자동차를 빌려 무조건 남쪽으로 달렸다. 스페인 정부는 이미 돈키호테 루트(Ruta de Don Quijote)라는 관광상품을 만들어 라만차 순례를 도와주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70㎞ 떨어진 고도(古都) 톨레도(Toledo)가 기점이다. 톨레도에서 라만차 남동쪽 끝 도시인 알바세테(Albacete)까지는 직선으로 260㎞에 달한다.
돈키호테 루트에 따르면, 중세 기사를 기념하고 있는 크고 작은 관광지가 무려 40여군데에 달한다. 17세기 초 ‘돈키호테’가 발간될 당시의 분위기나 소설 속 풍경을 연상케 하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고성(古城)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도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