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도 낭보는 드물고 답답한 소식이 많다. 그중 하나가 공무원 증원 소식이다. 올해 공무원이 약 3만5000명 증원된다. 현 정부 5년 동안 무려 17만4000명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만큼 공무원이 할 일이 많아진 것일까. 이런 대대적인 증원은 불가피한 것일까.

이처럼 공무원 문제를 논의할 때마다 어김없이 소환되는 고전적 통찰이 있다. 바로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영연구가인 노스코트 파킨슨(1909~1993)의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1957)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법칙은 ‘공무원의 수와 업무량은 아무 관련이 없다’로 요약된다. 저자는 한때 해군 조직에서 일하며 관료제의 병폐를 직접 관찰했다. 그는 “전장에서 죽은 적군의 수는 아군 장군의 수와 반비례한다”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흔히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시간이 많은 사람은 일을 한없이 늘려서 한다. 심지어 점심 약속 하나로 하루 종일 부산하다. 그러니 항상 시간에 쪼들리고 허둥댄다. 조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은 인원이 간단히 할 일을 많은 인원이 복잡하게 하기 일쑤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업무량과 관계없이 공무원 수는 (자꾸만) 늘어난다”는 것이 ‘파킨슨의 법칙’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로, 관리자는 경쟁자를 두기보다 부하직원을 늘리려고 한다. 자신이 격무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는 공무원 A를 상상해 보자. 그가 진짜 바쁜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사표를 쓰거나, 동료 B(경쟁자)에게 협조를 구하거나, 또는 부하를 두는 방법이 있다. 당연히 부하를 두려고 한다. 하지만 부하를 하나만 두면 같은 업무를 분담하여, 부하와 경쟁관계에 놓인다. 따라서 부하는 반드시 둘(또는 그 이상)을 둔다.

그래야 자신의 입지가 확고해지고 나아가 업무를 둘로 나누어 부하 C, D에게 분담시킴으로써 자신이 두 업무를 모두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C, D도 나중에 업무 과중을 이유로 부하를 둘(또는 그 이상)씩 둔다. 그러면 A 혼자 하던 일을 일곱 명(또는 그 이상)이 하게 된다. 이처럼 관료조직에서는 인원이 조금씩 느는 것이 아니라 배수(倍數)로 불어난다.

둘째로, 관리자는 직원들 서로를 위해 일거리를 만들어낸다. 본래 A 혼자 하던 일을 이제는 A가 C, D에게 지시하고 그들은 다시 그들의 부하에게 지시하여 초안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보고, 수정, 반려, 재작성 등이 반복된다. 똑같은 일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다. 누구도 빈둥거리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다. 그만큼 업무량도 덩달아 배수로 늘어난다.

저자는 영국의 관료조직에서 벌어진 일을 실증적으로 제시한다. 1914년 대비 1928년 영국 해군의 장병 수는 약 30% 감소한 데 비해, 해군본부 행정 공무원 수는 무려 80%나 늘어났다. 그는 영국이 ‘웅장한 지상해군’을 만들었다고 비꼰다. 식민성의 공무원 수는 더욱 가관이다. 그것은 1935년에 372명이었다가, 1954년에는 1661명으로 네 배 이상 늘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식민지가 대부분 사라졌지만 담당 공무원은 오히려 폭증한 것이다.

저자는 회의체 운영에 관해서도 신랄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거액이 소요되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소액이 드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모두가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자의 안건은 대충 넘기는 반면, 후자의 안건을 놓고는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 결국 안건 논의 시간은 거기에 포함된 예산액에 반비례한다. 그는 이를 두고 ‘사소한 문제에 대한 집착의 법칙(Law of Triviality)’이라고 익살을 부린다.

또한 저자는 회의체의 인원은 5명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5명이 모이기도 쉽고, 일단 모이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반면 인원이 늘어나면 효율이 떨어지고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이너서클이 생겨난다. 회의체 역시 인원이 자꾸 불어나다가 대개 20명이 넘으면 회의체로서의 기능을 거의 잃고 만다.

저자는 모임 참석자들의 행동양식도 흥미롭게 묘사한다. 사람들은 입구로 입장해 벽에 붙어 왼쪽으로 돌며 인사를 나눈다. 이것은 원시시대에 어두운 동굴에 들어가 오른손에 무기를 들고 경계 태세를 취한 데서 유래한 습성이다. 또한 한 사람과 오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주요인물이 아니다. VIP는 사람들이 다 모였을 때 잠깐 들렀다가 먼저 자리를 뜬다.

‘파킨슨의 법칙’은 관료제, 회의체, 모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글을 한데 모은 선집(選集)이다. 다방면에 걸쳐서 저자 특유의 냉소적이지만 날카로운 통찰력이 번뜩인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공무원의 수와 업무량은 아무 관계가 없다’라는 파킨슨의 법칙이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부도덕하거나 악의를 가졌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성실하고 바쁘게 일한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관료제는 무심하게 비대화로 치닫기 쉬운 노릇이다.

저자뿐만 아니다. 이 세상에 공무원을 마구 늘려도 좋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막무가내로 공무원의 대폭 증원을 밀어붙인다. 대충 두 가지 이유를 댄다. 첫째로, 취업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명분이다. 둘째로, 안전 및 보건 분야의 공공서비스 수요가 늘어났다는 명분이다. 이런 이유들은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은 철저하게 정년이 보장된다. 더구나 급료나 연금 수준이 최상급이다. 한번 채용하면 국가가 그의 전 생애(적어도 60년)를 책임져야 한다. 일시적인 취업난을 이유로 거의 종신직을 세금으로 만드는 일이 과연 공정할까. 또한 시대변화에 따라 서비스 수요가 늘어난 분야도 분명히 있다. 반면 수요가 줄어든 분야도 얼마든지 있다. 수요가 줄어든 분야는 그대로 놔두고 늘어난 분야만 인원을 늘리는 일이 과연 타당할까.

따라서 증원을 논하기에 앞서 선행될 일이 바로 공공개혁이다. 특히 공무원의 과도한 신분보장을 완화하고 급료나 대우를 중향(中向) 조정해야 한다. 연금은 궁극적으로 국민연금에 통합해야 한다. 또한 증원뿐만 아니라 감축, 재교육 등을 통해 분야별로 상이한 수요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당장 개혁이 어렵다면 청사진이라도 내놓을 일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공공개혁을 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런데 현 정부가 들어서서는 공공개혁이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오히려 ‘부당한’ 제도를 그냥 놔두거나 오히려 강화하면서 대폭 증원, 대규모 정규직화 등으로 거의 종신직 수를 눈덩이처럼 불리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향후에도 공공개혁을 더 어렵게 만들며 다음 세대에 커다란 부담을 떠안기게 된다.

‘파킨슨의 법칙’은 업무량과 관계없이 공무원 수는 자꾸만 늘어나기 쉽다고 경고한다. 더구나 우리나라 공무원은 현재 과도한 대우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이를 중향 조정하는 공공개혁이야말로 사회적으로 공정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추다. 이를 외면한 채 공정을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개혁은커녕 국민들에게 ‘추가적으로’ 공무원 17만4000명을 평생 동안 최고 수준으로 부양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런 막무가내도 드물다.

키워드

#지금 이 책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