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야르바키르 성벽은 근처에서 생산된 검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철옹성이다. 축성 역사가 멀리 로마에서부터 시작되지만, 현존하는 지구상의 수많은 성들 가운데 원형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한 유적지로 통한다.
디야르바키르 성벽은 근처에서 생산된 검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철옹성이다. 축성 역사가 멀리 로마에서부터 시작되지만, 현존하는 지구상의 수많은 성들 가운데 원형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한 유적지로 통한다.

행복은 인간 모두의 공통 목표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있다. 사랑·돈·명예 같은 것들이 거론된다. 그렇지만 과연 어느 정도의 사랑과 돈이 행복을 약속해줄까? 1억원보다 10억원이 10배 행복할까? 돈이야 액수로 우위를 따질 수 있겠지만 사랑의 정도는 어떤 식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결국 개인의 주관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의 아이콘 같은 인물로 비쳐지다가 하루아침에 자살로 인생을 끝내는 사람도 있다. 반면 불행으로 뒤덮인 환경과 상황에서도 언제나 밝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도 많다. 주관적·상대적·개인적으로 나눌 경우 행복의 기준이나 개념은 백인백색 다 달라진다. 복잡하지 않고 뭔가 간단하게 행복에 이르는 방법은 없을까? 답은 파라다이스, 즉 천국이다. 그곳에 다다르는 순간 행복지수 100이 보장되는 하늘나라다. 이유는 신이 창조해낸 공간이기 때문이다. 감히 인간이 나서서 행불행을 따질 여지가 없다. 복잡한 지상세계에서의 논리보다 죽은 뒤 열릴 하늘의 파라다이스가 행복의 완결판이다.

어디가 에덴동산일까

황당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10여년 전부터 파라다이스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인간의 상상에 기초한 중국의 무릉도원이나, 대오각성과 함께 다가오는 심신만족 불교식 극락이 아니다. 서방에서 말하는, 인간을 위해 신이 제공한 특별 공간인 ‘땅 위의 파라다이스’가 필자의 주된 관심사다. 노동·근심·병·죽음 없이 그냥 즐겁고 행복하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지구 위 공간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지 지금도 궁금하다.

아담과 이브가 잠시 경험했지만, 성경 속의 에덴동산이 파라다이스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파라다이스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축복·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필자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심리적 조건이 아니라 환경적 조건이다. 구체적으로 지상낙원은 어떤 토지와 풍경을 갖고 있을까, 그 내부는 무엇으로 꾸며져 있을까 하는 것이 파라다이스 탐사에 나서는 주된 이유다.

단서로 삼은 것은 에덴동산의 원조에 해당하는 이란어 ‘파라데이소스(Paradeisos)’다. 원래 고대 페르시아에서 탄생한 개념으로, 이후 고대 그리스가 수입해 확산시킨 말이다. 신학자들은 에덴동산의 원류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천국관에 있다고 분석한다. 노아의 홍수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신화에서 따왔다고 본다. 현재의 이란에서 탄생한 파라데이소스, 즉 파라다이스가 에덴동산의 원조가 되는 셈이다.

디야르바키르 성벽에서 내려다본 헤브셀정원. 에덴동산은 화려하고 번쩍이는 만사형통 무릉도원이 아니다. 물이 흐르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만 존재하는, 신을 위한 정원사가 살아가는 곳이 에덴동산의 원래 의미다.
디야르바키르 성벽에서 내려다본 헤브셀정원. 에덴동산은 화려하고 번쩍이는 만사형통 무릉도원이 아니다. 물이 흐르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만 존재하는, 신을 위한 정원사가 살아가는 곳이 에덴동산의 원래 의미다.

이란어 ‘파라데이소스’의 의미

파라데이소스라는 말은 환경적 차원의 파라다이스의 의미를 증명해줄 중요한 근거다. 그리스어로 ‘닫힌 공원(Enclosed Park)’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원이란 자연과 동물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러나 야생이나 원시 상태의 자연이 아닌, 인간을 행복하고도 즐겁게 만들어줄 ‘보호막을 가진’ 공원이란 점이 중요하다. 동물에게 잡아먹히고 천재지변이 일상화된 곳이 아니라, 인간에게 따뜻한 신의 보호구역이란 의미다. 동양의 자연관은 말그대로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에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유럽권은 다르다. 손을 대고 수로를 통해 조정해야만 하는 정복의 대상이 자연이다. 다듬고 관리하고 통제해야만 한다.

성경에 묘사된 에덴동산은 신이 만든 정원, 생명의 나무, 지혜의 나무로 채워진 공간이다. 동물들도 인간의 뜻에 따르는 순한 존재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의 원래 임무는 신이 창조한 정원을 일구고 지키는 정원사 역할이었다. 남녀 구별 없이, 인간이 가진 최초의 직업이 정원사였던 셈이다. 영미 기독교 사회권에서 정원사란 직업은 성스럽고도 특별하게 취급된다. 에덴동산 얘기에서 비롯된 관념이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으로 지혜의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먹으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환경적으로 볼 때 정원과 나무가 에덴동산의 기본요소다. 생명체가 있으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물이다. 성경의 시편에도 에덴동산은 물이 넘치는 곳이라고 나온다. 에덴의 기원인 에딘(Edin)이란 단어는, 아르메니아어로 ‘물이 풍부하고 과일이 많은 곳’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성경에서 ‘에덴동산=네 개의 강이 시작되는 원류’라 기록했다는 점만 봐도 풍부한 수원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파라데이소스에서는 물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까? 이게 한층 더 중요하다. 건조지대에다 부분적으로 사막까지 들어선 곳이 메소포타미아 외곽이다. 물 자체가 파라데이소스다.

에덴동산으로 추정되는 삼각지대

터키 디야르바키르(Diyarbakır)는 파라다이스 현장답사라는 기분으로 들렀다. 가장 큰 이유는 고고학자들의 고증에 있다. 종교적·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디야르바키르 주변 어딘가가 에덴동산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에덴동산은 성경 속의 황당한 얘기에 그치지 않는다. 실존했던 장소를 신과 연결해 후세에 알렸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생각이다. 현재의 아르메니아 남부, 터키 아나톨리아 동부, 중동 전체를 연결하는 자그로스(Zagros)산맥을 연결하는 삼각형 지대 어디쯤이 에덴동산이었을 것으로 고고학계는 추정한다. 디야르바키르는 그 같은 지리적 조건을 만족시켜 주는 곳이다. 에덴동산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에덴동산을 통해 파라다이스의 윤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야르바키르로 향했다.

디야르바키르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북서쪽으로 700㎞, 터키 이즈미르(Izmir)에서 동쪽으로 1400㎞ 떨어진 고대도시다. 인류 역사상 농경 집단부락이 처음으로 들어선 지역으로, 21세기에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군림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디야르바키르는 터키 내 치안 불모지대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유는 쿠르드족에 있다. 도시 인구의 90% 이상이 쿠르드족이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총성이 난무하는 시가전이 디야르바키르의 이미지 중 하나다. 21세기 들어 쿠르드 지도자들의 비폭력선언과 함께 평화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터키인조차 방문을 꺼리는 이색지역이다. 자동차를 빌려 타고 진입했지만, 특이한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인도와 골목 구석구석을 채운 수많은 어린이다. 터키 다른 도시에도 어린이가 많지만, 디야르바키르에는 특히 더 많다. 쿠르드족의 높은 출생률 때문이다. 자식 수가 최하 3명에서 시작된다. 10명을 넘기는 대가족도 있다. 10살 미만 어린이가 시장에서 목청을 높이며 일하는 것은 디야르바키르의 일상 풍경이다.

성벽 아래 쿠르드족 상인의 좌판. 마늘은 쿠르드족이 즐기는 음식 중 하나다. 어린이와 함께 장사를 하는 것이 쿠르드족 시장 풍경이다.
성벽 아래 쿠르드족 상인의 좌판. 마늘은 쿠르드족이 즐기는 음식 중 하나다. 어린이와 함께 장사를 하는 것이 쿠르드족 시장 풍경이다.

총성 사라진 아이들의 도시

1953년 휴전 이후의 상황이지만, 한국은 거의 70년간 평화를 유지해온 세계 유수의 평화대국이다. 총성이 멎은 거리는 안전하다. 심야에도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의미에서 평화로운 도시다. 최근 들어 근본부터 허물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평화로운 나라다. 당연히 평화는 번영의 기본전제다. 평화가 있어야 경제·사회·문화 활동이 가능해진다.

쿠르드족의 무장 독립운동이 사라지면서 디야르바키르도 평화의 성과를 맛보기 시작했다. 2015년 유네스코가 도우미다. 디야르바키르는 2015년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도시다. 도시 전체를 둘러싼 성벽(Diyarbakır Fortress)과, 도시 바깥쪽 자연공간인 헤브셀정원(Hevsel Gardens)이 문화유산 대상이다. 디야르바키르는 검은색 높은 성벽을 낀 요새 도시다. 무려 6㎞에 달하는 디야르바키르 성벽은 비잔틴시대에 확장된 군사시설로 지금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하지만 성 위에 올라가 쉬거나 심지어 공놀이를 즐기는 시민들도 있다. 헤브셀정원은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좌우 7㎞에 달하는 생태계 전체를 지칭한다. 초대형 정원인 셈이다.

파라다이스 후보지 중 하나인 헤브셀로 직행했다. 구글 지도를 따라가자 멀리서 넓은 강이 보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티그리스강이다. 강 주변에 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티그리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타이거(Tiger)’, 즉 호랑이를 의미한다. 원래 페르시아어에서 따온 말로, 빠른 유속과 엄청난 수량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유프라테스강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좌청룡 역할을 해왔다. 침전물이 많이 생기는 토양이기 때문에 티그리스강에 비해 유속이 느리다. 그러나 강폭은 넓다. 상대적으로 좁은 강폭에다 빨리 흘러가는 곳이 티그리스강이다. 수량이 많고 유속이 빠르다는 것은 홍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증거다. 성경 속 노아의 홍수 현장이 어디인지에 대한 논의는 고고학계의 오래된 숙제다. 논의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두 개로 나뉜다. 각자 근거가 있지만, 수량과 유속이란 점에서 보면 티그리스강이 노아의 홍수 무대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티그리스강에서 흘러온 물이 성벽 안의 시민용 휴식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물이 흐르는 곳에는 항상 어린이가 넘친다.
티그리스강에서 흘러온 물이 성벽 안의 시민용 휴식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물이 흐르는 곳에는 항상 어린이가 넘친다.

세계문화유산 헤브셀정원

헤브셀을 관찰하기 위해 출발지로 삼은 곳은 ‘디클 다리(Dicle Bridge)’다. 1065년에 당시 통치국가였던 쿠르드 왕국에 의해 건립된 석조건축물로, 현지에서는 10개의 아치형 다리로 통하는 곳이다. 다리 주변은 노상 주차로 번잡하다. 10살 미만 어린이가 달려와 빈 공간을 안내하며 팁을 챙긴다. 다리 반대편에는 케밥 식당이 즐비하다. 신혼부부들의 기념사진 행렬도 다리 위에 펼쳐져 있다. 다리에 올라서자 검은 티그리스강이 빠르게 흘러간다. 멀리 바그다드까지 내려가다가 유프라테스강과 만나 아라비아만으로 빠지는, 1850㎞에 달하는 길고도 긴 강이다.

헤브셀은 티그리스강 상류에 위치해 있다. 다리 바깥쪽에는 수영을 즐기는 가족단위 터키인도 볼 수 있다. 항상 느끼지만,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나라가 터키다. 원하는 것은 부족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것은 전부 다 있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 눈에는 터키가 가난한 나라로 비쳐질 듯하다. 필자가 접해본 터키인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모바일기기, 자동차, 아파트도 없지만 세상 그 어떤 나라보다도 풍족하고 여유로운 인생으로 채워진 사람들이다.

다리 위에서 보면 세계문화유산 헤브셀이 한눈에 들어온다. 에덴동산 자연관에 기초한 듯이 정리해둔 정원이다. 그냥 마구 엉킨 자연이 아니다. 나무와 식물이 종류별로 나뉘어 길러지는, 인간의 손을 거친 자연이다. 한국인이 본다면 강과 나무로 채워진 곳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올랐을지 궁금해 할 듯하다. 한국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강을 낀 일상적 풍경일 뿐이다. 어떻게 해서 유네스코의 마음을 잡아냈을까?

출발점은 역시 물이다. 사방팔방 맑은 물로 넘치는 나라가 한국이다. 헤브셀 주변은 다르다. 티그리스강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황량한 토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식수와 농업수를 위해 멀리서부터 물을 끌어들여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도 제공되는 물은 강 주변에 가야만 얻을 수 있다. 티그리스강 역사에서 보듯, 모든 것은 물을 근거로 출발했다. 노아의 홍수에 이어 인류의 문화·문명을 창조해냈고, 파라다이스 세계관도 등장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헤브셀은 그 같은 역사적·종교적·환경적 배경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추정컨대 헤브셀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에덴동산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을 듯하다. 물론 에덴동산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단정하에 이루어진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고학계와 기독교의 생각일 뿐, 과학과 다른 종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보면 이치에 어긋날 수 있다. 21세기 지구의 이념인 ‘그린(Green) 정책’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티그리스강 상류가 자연생태계의 표본이란 점이 선정의 주된 이유였을 듯하다.

티그리스 강가의 모기 떼

디클 다리에서 내려와 티그리스강 산보에 나섰다. 헤브셀 안이 어떤지 궁금했다. 나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여름철은 건조기, 겨울은 우기인 곳이 메소포타미아다. 강 주변이기 때문인지, 넓게 펼쳐진 정원 전체의 땅이 질다. 조금 안에 들어가자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모기와 해충도 달려든다. 올해 터키에서 처음 만난 모기다. 여름철인데도 모기나 곤충이 극히 드문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특징이기도 하다. 강렬한 태양과 건조한 날씨 때문에 모기나 곤충이 살아남기 어렵다. 그래서 시장에 가보면 해충 피해를 입은 채소나 과일도 거의 없다.

모기의 공격을 뚫고 계속 산보에 나섰지만 중간에 그만둬야 했다. 발목이 완전히 잠기는 늪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멀리 검은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헤브셀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디야르바키르 성벽이다. 언덕 위 구름처럼 성벽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비잔틴제국과 이후의 아랍과 오스만제국의 변방을 지킨 철옹성이다. 당시 성벽 내 지도자들의 집은 전부 헤브셀을 내려다보는 곳에 꾸며져 있었다. 집안에서, 성벽 꼭대기에 올라서서 티그리스강을 눈앞에 두며 여흥을 즐겼을 것이다. 하늘이 약속한 파라다이스 땅을 지켜보면서 인생 최고의 행복감에 빠졌을지 모르겠다.

끝없이 원하면서 살아가는 욕(欲)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신이 창조해낸 행복지수 100의 파라다이스 공간이 어떤 곳인지, 성경에 기록된 에덴동산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디야르바키르 성벽과 헤브셀 주변에 흩어진 일상적 풍경이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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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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