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최초의 ‘엘도라도’로 군림해온 4000년 역사의 고르디온. 미다스 왕의 황금의 손과 알렉산더 대왕의 결단이 서린 전설의 도시 이전에 쇠똥 냄새가 표류하는 평화의 공간이란 점이 인상 깊다.
인류사 최초의 ‘엘도라도’로 군림해온 4000년 역사의 고르디온. 미다스 왕의 황금의 손과 알렉산더 대왕의 결단이 서린 전설의 도시 이전에 쇠똥 냄새가 표류하는 평화의 공간이란 점이 인상 깊다.

아름다운 꽃에는 수준에 맞는 화병이 따라와야 한다. 기억에 남으면서도 인생에 도움이 될 여행을 꿈꾼다면 거기에 적합한 안내서가 필요하다. 현지 정보뿐만 아니라 뭔가 새로 발굴할 만한 거리를 제공하는 도우미이자 지침서 말이다. 필자가 여행에 전념한 20세기 말 여행을 위한 화병은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이란 가이드북이다. 1972년 이래 매년 개정판과 함께 출간되고 있는데 배낭여행객(Back Packer)을 대상으로 한 호주발 정보지다. 당시 낯선 도시에 들르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론리플래닛이 지정한 최저가 도미토리였다. 벼룩이 물어뜯더라도 해가 떨어지면 곧바로 잘 수 있는 청춘들의 숙소다.

장년으로 접어들면서 론리플래닛도 잊혀 갔다. 2020년 필자가 가장 애용하는 여행 도우미는 책이 아니라 영상이다. 비주얼 시대에 맞는 여행 지침서다. 2005년 3월 이래 일본 NHK를 통해 매주 방영되는 ‘거리를 걸으며 함께하는 세계로의 여행(世界ふれあい街歩き)’이 그것이다. 1시간짜리 여행 프로그램으로, 문자 그대로 특정 도시나 지역을 걸어가면서 탐구하는 식의 구성이다.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현지의 매력과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로드워크(Road Walk) 스타일의 1인 여행자용 방송이다. 프로그램용 카메라와 이동용 도구를 특별 제작해 활용하는, 노력과 정성을 들인 NHK의 16년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다.

20세기 말 애용했던 론리플래닛과 가장 큰 차이점은 현지 분위기에 관한 부분이다. 어디가 명소다, 미식의 출발점은 어디다, 어떤 역사가 밴 곳이다 등등의 얘기는 없다. 현지에 도착한 뒤 ‘무작정’ 눈앞의 거리나 골목 안으로 빨려들어가면서 흥미로운 곳이 있으면 들어가 보고, 길을 스치는 현지 사람과도 만나 화젯거리가 뭔지, 실생활이 어떤지를 체험하는 식의 내용이다.

필자가 정확히 언제부터 ‘거리를 걸으며’에 빠졌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분명한 것은 인터넷이 론리플래닛을 잊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점이다. 호텔이 어딘지, 어디 가면 소매치기가 많은지, 현지 여행 출발점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등 실시간 정보로 채워진 인터넷 정보 하나만으로도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현지 분위기를 ‘담담하면서도 총체적, 객관적’으로 전해주는 안내서는 극히 드물다.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이 드리워진 프로그램이지만, ‘거리를 걸으며’는 감정을 빼고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제3의 눈’에 기초한 영상물이다.

교회 종소리가 실린 아침, 빵 냄새로 가득한 골목, 고양이와 개와 함께하는 레스토랑, 대리석 돌길에서의 산보, 망루로 이어진 중세의 풍경, 장사꾼의 목소리로 채워진 시장…. 최근 ‘거리를 걸으며’의 2시간짜리 특집 프로그램에 등장한, 과거 방문 도시의 유형들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나폴리 거리를 걸으며 대리석 돌길을 느끼고, 빈의 새벽 산보에서 교회 종소리를 만날 수 있다는 식의 분류법이다. 이런저런 분류를 통해 과거 영상물을 즐겁게 회상할 수 있었지만, 아쉬운 점도 하나 있었다. 필자가 기대한 분류법 중 하나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야로의 여행을 통한 인간 유전자 재발견’이 필자가 생각한 새로운 영역이다. 구체적으로는 ‘바람과 함께 드리워진 쇠똥 냄새’가 새로운 여행 분류법에 추가될 수 있을 듯하다. 불결하고 뭔가 ‘꼰대’스러운 발상이라 느낄지 모르겠다. 농촌 출신자에게 한정되는, ‘라떼 스타일’ 혹은 시대착오적 분류법이라 말할 수도 있다. 외양간 같은 쇠똥으로 범벅이 된 곳의 냄새에 감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필자의 경우 농촌에서 자란 기억은 어릴 때 1~2년에 불과하다. 바람 속 쇠똥 냄새는 농촌 노스탤지어나 꼰대의 추억을 넘어선, 인간 유전자의 속성이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아나톨리아 지방의 쇠똥 냄새

인간이 기억하고 참을 수 있는 동물 배설물 냄새로는 쇠똥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도시에서 자란, 한번도 쇠똥 냄새와 마주친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수백만 년 축적된 유전자를 통해 태고의 기억을 발굴,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능이라는 의미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후각은 오감 중 가장 깊고 오래 새겨진 인류 공통 유전자 중 하나다. 쇠똥 냄새는 주변에 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기와 우유로 배를 불려줄 풍요로운 음식이 근처에 있다는 점에서 행복 호르몬이 유전자 속에 깊이 새겨진다. 피하고 멀리할 존재가 아닌, 기아를 면하게 해준 안정과 평화로서의 냄새인 셈이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방목 중인 소, 나아가 바람에 실린 쇠똥 냄새는 고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문화·문명권에서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Theseus and the Minotauros)에 관한 신화는, 소를 테마로 한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사이의 패권싸움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를 대표한 테세우스가 크레타섬에 존재한 소 머리 반인반수를 처형했다는 신화다. 아나톨리아와 이집트의 영향이 강했던 크레타를 그리스가 점령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따라서 신화에서 보듯, 소는 작은 섬으로 이어진 그리스보다 넓은 벌판을 배경으로 한 아나톨리아의 산물이다. 그리스에도 소 방목은 있다. 그러나 원조로 가자면 아나톨리아가 출발점이다. 아나톨리아는 현재의 터키 동부지역으로 페르시아, 즉 이란 서부지역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이다.

아나톨리아 고대 유적지 주변에서의 체험이지만, 소 방목은 어제의 역사를 지키는 풍경 중 하나다. 당연히 바람에 실린 쇠똥 냄새도 곳곳에 넘친다. 한국에서 멸종돼 몽골에서 수천만원에 수입했다는 쇠똥구리도 아나톨리아 광야의 기본요소다. 최근 들른 터키 아나톨리아 중부의 ‘고르디온(Gordion)’도 그 같은 풍경으로 채워진 전형적인 마을이다.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남서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유적지가 고르디온이다. 생소한 지명이겠지만, 교과서 어디에서 한번쯤은 접했을 ‘고르디아스의 매듭(Gordian Knot)’을 알고 있다면 곧바로 친숙하게 와닿을 공간이다.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고르디아스 매듭 전설의 현장이 바로 고르디온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가 현지에 도착하기 전, 신비스러운 예언이 고르디온 지역에 표류하고 있었다. 신을 위한 마차의 바퀴에 이어진, 복잡하게 헝클어진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 최종 왕자가 될 것이란 신관의 예언이다. 복잡한 매듭은 마차와 함께 신전 안에 보관돼 있었다. 당시 아시아는 지금과 달리,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만을 의미한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가 점령하고 있던 고르디온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고르디아스 매듭 테스트에 직면한다. 알렉산더 이전에 수많은 영웅이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한 난제다.

황금의 도시 고르디온은 세계 최고로 오래된 모자이크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고르디아스 매듭이 보관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전 건물 내에서 발견된 기원전 8세기 당시 기하학 문양이다.
황금의 도시 고르디온은 세계 최고로 오래된 모자이크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고르디아스 매듭이 보관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전 건물 내에서 발견된 기원전 8세기 당시 기하학 문양이다.

‘엘도라도’로 통하던 프리지아 왕국의 수도

모든 것이 그러하듯 과정이 치열할수록 결과도 한층 더 알차게 맺어진다. 일확천금은 있겠지만, 일확천금을 영원히 믿을 수는 없다. 고르디온까지 향하는 길은 고르디온에 대한 총체적 기억의 중요한 요소다.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의 경치와 지세가 일품이다. 비가 내리는 늦은 가을, 이미 추수를 끝낸 황금빛의 광야가 압권이다. 1995년, 지평선조차 숨겨진 만주평야의 광야 이래 처음이다. 비가 멈추자 선명한 무지개가 지평선 끝에 걸려 있다. 무지개 빛깔이나 크기는 주변 지세와 지형에 따라 다르다. 개인적 체험이지만, 광야일수록 크고 선명하다. 쌍무지개도 더 자주 볼 수 있다. 유치한 자랑거리 중 하나지만, 여행 중 우연히 접한 쌍무지개 체험이 15번에 달한다. 접하는 즉시 넋이 나간 채 빠져들게 된다. 좁은 1차선 도로를 따라가자 고르디온 안내 표지판이 나타났다. 멀리서 방목 중인 염소와 양떼도 보였다. 흥미롭게도 쇠똥 냄새는 나는데 소는 눈에 안 들어온다. 나중에 알았지만, 강 근처 숲에 방목 중이었다. 소는 양과 염소에 비해 다리가 길다. 강 주변 풀을 먹기 위해 수중전도 마다하지 않는 동물이 소다. 이미 겨울로 들어가는 11월이지만, 들판은 염소와 양, 강 주변의 풀은 소에게 배당되는 식이다.

전설로 통하지만 고르디온은 인류 최초의 황금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황금의 손으로 유명한 미다스(Midus)가 통치자로 군림했던 프리지아(Phrygia)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기원전 8세기 때 대도시로, 인류사 초유의 엘도라도(El Dorado) 황금땅이라는 것이 전설과 신화 속에 나타난 고르디온의 이미지다. 그 같은 상황은 그리스 역사학자들의 기록을 통해 알렉산더는 물론 21세기 현대인에게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에게해 주변 정복에 나섰던 알렉산더가 갑자기 기수를 북쪽으로 돌려 내륙의 고르디온에 들른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역사의 아버지로 통하는 그리스인 헤로도토스도 언급한 미다스의 황금 전설이 방문의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 점령을 통한 전리품 약탈은 당시 전쟁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였다.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개념이 전혀 없던 시대다. 이길 경우 땅, 노예, 재물이 전부 들어온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왕에 오른 2년 뒤인 22살 때, 즉 기원전 334년에 시작된다. 요즘과 달리 2300여년 전 20대 청년이 돈에 탐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죽은 돈보다 살아 있는 권력에 취하던 시대다. 알렉산더는 전리품을 부하들에게 공평하고도 후하게 나눠준 인물이다. 그 같은 목적하에 들른 곳이지만, 엉뚱하게도 고르디아스 매듭이 난제로 떨어진다.

고르디아스 매듭 풀기의 메타포

고르디아스 매듭 문제는 정치학, 행정학, 심리학에서도 응용되는 역사적 메타포(Metaphor) 중 하나다. 누구도 풀지 못했다는 얽히고설킨 매듭은 이미 한계를 넘긴 구체제를 의미한다. 필자의 유년기 기억이지만, 미국판 보이스카우트 가입 안내서가 학교에 돌았다. 매달 회비와 보이스카우트 유니폼이 필요했기에 가입을 하진 않았지만, 당시 참가한 친구를 통해 어떤 교육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었다. 산에 가서 캠핑을 한 뒤, 매듭을 풀고 묶는 것이 보이스카우트의 핵심 교육 중 하나라는 것이다. 곧바로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피라미드, 십자형, 육각형, 별자리형에 이르는 다양한 매듭 묶기를 배웠다. 어릴 때 기억이지만, 강하게 묶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푸는 것이 매듭 훈련의 핵심 포인트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강하게 묶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복잡하게 엉킨 듯한 매듭이라도 끝부분을 당기는 순간 간단히 풀어지는 것이 매듭의 진짜 묘미라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풀기 위해 묶는 것이 매듭이다.

고르디아스 매듭이 도저히 풀 수 없는 존재가 됐다는 것은 묶는 데에만 정신을 판, 다시 말해 단기적 임시방편에 젖어온 정치를 의미할 수 있다. 풀려고 할 경우, 다른 부분이 더 강하게 묶이면서 한층 더 꼬이고 반발하게 된다. 여기 손을 대면 저기가, 저기를 고치면 여기가 피해를 입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칼로 매듭을 양분한 알렉산더의 행동은 갈 데까지 간 나라의 운명에 대한 ‘최후의 해결책’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좀 과장하자면 혁명이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다. 알렉산더의 칼은 매듭을 풀고, 신전 속에 머물던 신의 마차를 움직이게 만든 동력(動力)이란 점이다. 무지막지하게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20대 청년의 이벤트 쇼가 아니라, 신의 마차를 태양 아래 달리도록 만든 원동력으로서의 결단이다. 알렉산더 흉내를 내며 매듭을 칼로 자르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마차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한국식 우물 안 골목대장의 해결책과는 질적으로 다른 전설이다.

미다스 왕의 아버지를 모신 것으로 추정되는 고르디온 최대 규모의 무덤. 높이 50m 이상으로 내부에서 당시 최고 장식품인 청동류 집기가 다량 출토됐다.
미다스 왕의 아버지를 모신 것으로 추정되는 고르디온 최대 규모의 무덤. 높이 50m 이상으로 내부에서 당시 최고 장식품인 청동류 집기가 다량 출토됐다.

청동기시대부터 건립된 퇴적 유적지

고르디온 도심으로 접어드는 입구는 10m 높이의 큰 성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곧바로 성의 머리 부분 주변 언덕에 올라가야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성 바로 옆에 흐르는 상가리오스(Sangarius)강의 퇴적물로 인해 도시 전체가 20m 정도 파묻혔기 때문이다. 고르디온은 미다스 때만이 아니라 기원전 2300여년 청동기시대 때부터 건립된 고대 유적지다. 미다스의 프리지아 왕국 이후 페르시아, 알렉산더, 로마, 비잔틴까지 이어지다가 14세기 이후 폐허로 접어든, 4000여년 역사의 도시다. 주변으로 확장 발굴해 나갈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도시의 규모는 축구장 약 2개 정도 크기에 그친다. 퇴적물 위에서 내려다본 고르디온의 흔적은 너무도 앙상하고 허망하다. 돌로 쌓은 성의 윤곽과 고르디아스 매듭의 현장이었을 신전의 모습도 바닥 잔해만 남은 채 표류하고 있다. 곳곳에 굴러다니는 축성용 돌의 규모나 형상을 보면 대부분 헬레니즘 이전 시대의 흔적에 그친다. 그리스와 헬레니즘 건축기법은 마치 면도칼로 깎은 듯한 대리석을 전면에 앞세운다. 종이 한 장 끼어들 수 없는 세밀한 기법이다. 틈이 많고 크기도 불규칙한 작은 돌들이 고르디온 수도의 잔해다. 추측건대, 매듭을 끊어도 도저히 개선될 수 없는 악순환이 알렉산더 이전에 이미 만연했다고 볼 수 있다. 헬레니즘 문화·문명도 포용하기 힘든 부패하고 무기력한 도시가 황금 도시의 실체였을지 모르겠다.

고르디온 도시 위 퇴적물 언덕에서 보면 광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멀리 세워진 무려 120여개에 달하는 대형 무덤들뿐이다. 엘도라도 고르디온의 번영을 상징하는 인공무덤들이다. 가장 큰, 높이 53m에 달한다는 투무루스(Tumulus)무덤이 고르디온에서 가장 가깝다. 경주에서 본 6세기에 건립된 대형 무덤보다 약 10배 정도 크다. 미다스 아버지 무덤으로 알려진 곳으로, 고르디온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무덤 안까지 들어갈 수 있기에 나중에 둘러봤지만, 인공무덤 아래의 바닥 중간에 들어선 시신 보관실의 재료가 인상 깊다. 돌이 아니라 굵기 3m 정도의 통나무로 지어진 사각형 방이다. 약 2800년 전의 통나무들이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엘도라도 전설, 자신의 딸마저 금으로 바꾼 미다스의 황금손, 고르디아스 매듭을 단숨에 푼 알렉산더의 결단. 초겨울에 접어드는 2020년의 고르디온은 어제의 전설과 신화로 연명해가는, 오지 속에 파묻힌 잊힌 공간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 세계 어디에 가도, 황금손으로도, 알렉산더의 결단으로도 구할 수 없는 특별한 공기 하나가 흐른다. 바로 평화의 공기다. 잊힌 도시 고르디온은 평화의 도시다. ‘거리를 걸으며’ 방송처럼, 고르디온 주변을 구석구석 헤집고 다녔다. 바람에 실린 쇠똥 냄새는 어디를 가도 따라붙는 고르디온의 냄새다. 쌍무지개는 아니지만, 끝없이 펼쳐진 광야 끝부분에 엄청나게 큰 무지개 하나가 떠오른다.

키워드

#여행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