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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41호]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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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실크 옷 한 벌이 경비원 3년 연봉… 1700년 전 물가표로 읽는 로마 경제

▲ 터키 아이자노이에 남아 있는 서기 301년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물가표. 석조기념물 벽에 새겨져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은 2021년 한국의 전반적인 물가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 수치다.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을 알면 나머지 물가도 대충 비교 가능하다. 최근에는 1만원이 훌쩍 넘는 자장면도 등장했다고 하지만, 중식당에서 먹을 경우 자장면 한 그릇은 대략 5000~6000원 선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소비자원은 서울 지역 자장면 평균 가격이 5154원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7.19% 올랐다고 발표했다.
   
   음식을 통한 물가 측정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공통분모다. 생존을 위해 매일 먹고 마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일본 라멘, 미국 햄버거 세트, 프랑스 바게트,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중국 돼지고기 값 정도가 한국의 자장면에 해당하는 물가 지표일 것이다.
   
   시대를 2000여년 전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물가의 기준으로 어떤 것이 통용됐을까? 먼저 빵부터 떠올릴 듯하다. 그러나 로마 시민에게 빵은 황제와 정부가 내리는 무료배급품으로 인식됐다. 돈을 주고 빵을 사기도 하지만, 빵을 매매를 통한 경제상품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로마인은 ‘빵=공기’와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빵과 서커스(Panis et Circenses)’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로마 정치를 얘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말이다. 1세기 말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가 묘사한, 중우정치를 상징하는 용어다. 주의할 점은 ‘빵과 서커스’의 주체에 관한 것이다. 황제가 나서서 음식과 검투사 쇼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유베날리스는 무지한 시민과 노예가 황제에게 ‘빵과 서커스’를 요구하기 때문에 제공되는 것으로 봤다. 중우정치의 주체는 황제가 아니라 공짜를 바라는 무지한 시민에 있다는 말이다.
   
   빵이 경제적 상품으로 발전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로마의 어떤 음식이 21세기 한국의 자장면에 필적될 수 있었을까? 지역·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달걀은 필자가 판단하는 최적의 음식 중 하나다. 달걀 한 알 가격을 보면 다른 물건의 가격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다. 달걀 한 알이 갖는 경제적 가치를 통한 로마의 미시경제 분석이다. 달걀을 자장면 위치에 올리게 된 근거는 7년 전부터 알게 된 로마 유적지에서의 기억이다. 코로나19 망명 기간을 이용해 최근에도 다시 들렀지만, 아나톨리아 아이자노이(Aizanoi)가 현장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에 오른 곳으로, 아나톨리아 최대 도시 이즈미르(Izmir)에서 동쪽으로 300㎞ 정도 떨어진 내륙에 있다. 청동기시대부터 번창한 곳이지만, 현재 남은 유물·유적의 대부분은 로마시대의 것들이다.
   
   
▲ 아이자노이 로마시대 유적물. 제우스신전(왼쪽)과 2만명 수용 가능한 극장. photo 유민호

   ‘아이자노이 달걀’과의 만남
   
   개인적 체험에 기초한 생각이지만, 아이자노이는 최고 번성기였던 서기 2세기 로마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알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판단된다. 대부분 오해하기 쉬운데, 고대 유적지 가운데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은 극히 일부분에 그친다. 이유는 고대 유물·유적 재건에 있다. 발굴 이후 고고학자의 상상력에 의해 ‘쇼윈도’ 유적지로 변해간다. 전부는 아니지만 이탈리아·프랑스·그리스 유적지의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건물인데, 로마 건축 양식으로 도배를 하는 식이다. 재건에 나선 고고학자의 수준에 달린 것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잡동 백화점식’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마무리되는 유적지가 대부분이다. 필자의 주장이지만,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할 경우 아예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
   
   지금도 고고학 발굴이 진행되고 있고 관광객의 발길도 전무한 원시 처녀지 같은 유적지는 손꼽을 정도로 흔치 않다. 내륙 깊숙이 들어선 로마 유적지 아이자노이는 그 같은 범주에 속하는 원형 고대도시다. 10여년 전부터 첫 발굴에 들어간 이래 지금까지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는 원시 유적지다. 고고학자가 상상력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재건하는 이유는 유적 자체가 부서지고 땅속 깊이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아이자노이는 로마의 흔적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주변에 흐르는 강, 펜칼라스(Penkalas)가 몰고 온 퇴적물이 고대도시 전체를 1000년 이상 숨겨왔다. 완만한 강의 퇴적물이기 때문에 쓸려 가지 않고 땅속에 그대로 남았다. 아직도 발굴 중이지만 2만명 수용이 가능한 극장(Teatro), 200m 길이에다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 인공 언덕을 통해 건립된 제우스신전 등은 원형 아이자노이의 맛과 멋을 느끼게 만드는 로마의 걸작품들이다.
   
   ‘아이자노이 달걀’과의 만남은 도시 한가운데 들어선 실내 공공시장(Macellum)에서였다. 301년에 만들어진 디오클레티아누스 물가표(Price Edict of Diocletian)가 매개체였다. 이 가격표는 공공시장 중간에 세워진, 지름 7m 정도의 원형 기념물 바깥 벽에 새겨져 있다. 286년부터 305년까지 로마 황제로 군림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공표한 것으로, 아이자노이는 물론 아나톨리아 전역에 적용됐던 물가표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표기돼 지금도 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다.
   
   
   달걀 1알이 1데나리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재임한 3세기 말은 대제국 로마의 추락기라 할 수 있다. 복구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추락의 속도를 얼마나 늦출 수 있을지에 주목하던 시대다. 황제 근위병 사령관 출신으로 사실상 쿠데타를 통해 황제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당시 로마의 하향세를 증명하는 최적의 본보기다. 물가가 마구 뛰고 화폐 가치도 종잡기 어려운 시기였다. 아무리 황제가 공표한 물가표이지만, 사실상 현지에서는 거의 무시된 상태였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공표는 이른바 ‘최고가 기준물가표(Edict on Maximum Prices)’에 의거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명시된 물건이나 서비스의 최고가를 규정한 것으로, 그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지 말고 그 이하에서 서로 거래하라는 것이 기준물가표의 명령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최고가를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나톨리아 경제 대부분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물가표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됐다는 의미다.
   
   301년 공표된 물가표는 현재 일부분만 남아 있다. 비석에 새겨진 물가표 가운데 30여가지만 추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크게 식품·제조품·서비스로 구분할 수 있다. 로마 통화단위인 데나리(Denarii)가 물가표의 기본 지수다.
   

   
   물가표 전체를 훑어보면 로마 시장경제에서 달걀이 점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당시 로마에서는 달걀을 4알 단위로 팔았다. 4알에 4데나리, 즉 달걀 한 알에 1데나리다. 로마 통화 최소 단위의 상품이 바로 달걀이다. 21세기 달걀의 판매 단위는 영어로 더즌(Dozen), 즉 12알이다. 왜 10알, 15알, 20알이 아닌 12알일까? 로마 때의 4알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달걀 한 알의 100g당 영양분은 평균 130㎉ 정도다. 21세기 성인 남성 1인에게 필요한 영양은 약 2500㎉다. 2000여년 전 로마 남성의 평균 신장은 150㎝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열등한 신체적 상황을 고려할 때 21세기보다도 적은 영양분이 필요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대략 한 끼에 700㎉ 정도 필요했다고 보면 된다. 달걀 요리가 기름이나 다른 음식과 섞여서 제공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달걀 4알만으로도 한 끼 식사에 따른 영양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루 세끼, 즉 달걀 12알만 있으면 성인 1인에게 필요한 영양분도 보장됐다. 균형 잡힌 음식과는 무관하지만, 생존이란 차원에서 볼 때 달걀 12알만 있으면 하루를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로마 당시 최저임금 대상자인 청소원, 세탁원, 농부의 하루 일당이 25데나리란 점은 의미심장하다. 달걀 12알, 즉 12 데나리를 식(食)에 쓰고, 나머지 13데나리는 의(衣)와 주(住)에 지불하면서 살아가는 식이다. 거의 21세기판 홈리스 수준이겠지만, 25데나리만 있으면 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따라서 달걀 가격은 생존 영양분의 기준이자, 다른 모든 물가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물가표는 다른 상품과의 비교를 통해 당시 로마가 어떤 사회였는지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길라잡이다. 생존수단으로서의 달걀만이 아니라, 로마가 지향한 가치관과 기준이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 속에 배어 있다. 예를 들어 건축학 교사의 급료를 보자. 학생 1명당 100데나리다. 농부의 4일간 급료가 학생 한 명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 몇 명의 학생을 어느 정도 시간에 걸쳐 가르칠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육체노동보다는 월등히 높은 급료다. 건축학 교사의 수입이 높다는 말은 배우려는 학생도 많다는 의미다. 물론 그만큼 건축의 질적·양적 수준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때 집을 짓는 일에 평생을 바치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듯하다. 집을 짓는 일만 해서는 꾸준히 먹고살 수가 없다. 너도나도 과거시험에 통과해 관리가 되는 길만이 출세의 지름길이자 전부였다.
   
   
▲ 아이자노이 노천시장과 상인들이 파는 달걀. photo 유민호

   건축학 교사·조각가가 성공 직업
   
   로마는 다르다. 건축학 교사가 되거나 농부, 청소원보다 3배 정도 임금이 높은 조각가로 나서도 성공할 수 있다. 물건을 만드는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이 있다면 농부의 15일 급료에 해당하는 베개 하나를 만들어 팔 수도 있다. 1차산업보다 2차산업, 나아가 창조적인 3차산업이 한층 더 고가로 평가된 나라가 바로 로마다. 식품 가격은 아무리 오른다 해도 이들 3차산업 종사자의 급료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로마 당시의 유물·유적이 인류의 보물로 평가되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경제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20세기 초까지 무려 2000여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로 존재해온 콜로세움이 로마의 유산이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위의 물가표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실크 옷이다. 실크의 가격이 잘못됐는지 몇 번이나 살펴봤지만, 한 벌에 무려 15만데나리다. 안정된 직업으로 통하는 황제 경비원의 25년간 연봉이 동방에서 수입한 실크 옷 가격에 준한다. 실크로 장식된 미라는 유적 발굴 도중 발견되는 고고학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고대 로마에서 실크는 천사의 날개 정도로 인식됐다. 죽은 뒤 천사처럼 하늘로 날아가기 위해 필요한 옷이다. 실크 자체도 중요하지만, 실크를 입은 사람을 통해 당시 상류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실크는 성화(聖畫) 속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상징하는 장식품 중 하나이기도 했다. 투명한 실크가 마리아의 머리나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마리아 성화가 등장한 것은 5세기 비잔틴제국 때부터다. 보통 사람이라면 마리아의 성스러운 모습과 더불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실크 옷에 빠져들었을 듯하다.
   
   이집트 맥주는 실크 옷과 함께 로마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증거다. 무려 500mL의 양인데도 달걀 두 알 가격인 2데나리에 불과하다. 맛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도 싸다. 왜일까? 이집트를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로마인의 세계관이 가장 큰 이유였을 듯하다. 로마에서 보면, 변방의 최하류 미개 영토가 바로 이집트다. 착취와 가르침의 대상일 뿐, 문화나 문명적으로 배울 곳이 없는 야만인의 나라로 통했다. 이집트 맥주 맛이 아무리 좋다 해도 그리스 와인의 12분의 1 가격에 팔렸을 뿐이다.
   
   아이자노이 공공시장은 지금도 펜칼라스강 바로 옆에 있다. 내륙의 아이자노이에 대도시가 들어서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풍부한 수원(水源)의 펜칼라스강에 있다. 지금은 폭 5m, 깊이 1m 정도의 작은 시냇물 수준으로 전락했지만, 로마 당시는 폭 30m, 수심 10m에 달하는 큰 강이었다. 로마는 강 주변을 체계적으로 정리정돈했다. 대리석으로 된 다리를 3개나 만들어 활용했고, 석재로 구성된 튼튼한 둑이 강을 따라 6㎞ 정도 이어졌다. 그 결과 로마 최전성기이던 2세기, 아이자노이 인구는 무려 12만에 달했다. 2021년 인구는 불과 1만명 선이다.
   
   사람이 몰리면 시장도 넘쳐난다. 공공시장만이 아니라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 둑 주변도 노천 시장터로 활용된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아이자노이 야외시장은 로마 이래 지속된 전통이다. 극장 스타디움 신전에서 하루를 보내다 해 질 녘 펜칼라스강에 도착했다. 둑 바깥 노천 시장터를 지나는데, 방금 낳은 듯한 달걀 하나가 마른 풀 사이에 드리워져 있다. 아직 따뜻하다. 목소리를 드높이며 달걀 4알에 4데나리를 외쳤을 로마 장사꾼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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