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미국은 바이든 시대를 맞이했다. 그는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미국이 본을 보이는 리더십’을 내세우며 동맹과의 협력을 다짐한다. 바야흐로 ‘트럼프 지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소용돌이가 단순히 ‘트럼프 지우기’가 아니라, 좀 더 구조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일깨우는 인상적인 연구가 있다. 바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선택’(The Choice·2004)이다. 우리말로는 ‘제국의 선택’(2004)으로 소개되었다. 부제가 ‘세계적 지배냐, 세계적 리더십이냐(Global Domination or Global Leaedership)’인데, 오늘날 미국이 그 선택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저자는 민주당 카터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원로다. 그는 일찍이 그의 책 ‘거대한 체스판’(1997)에서 미국이 특이한 제국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로마, 몽골, 중국, 유럽 국가들 등 여러 제국이 있었지만, 전(全) 분야에 걸쳐 주변을 압도한 제국은 없었다. 반면 오늘날 미국은 군사·정치·경제·기술·문화 등 전 분야에서 세계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그런 힘이 전 지구에 걸쳐 미치는 것도 역사상 최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이 세계로부터 손을 떼는 순간, 세계는 곧바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미국이 세계 질서에 관여하느냐 마느냐는 전혀 논쟁거리가 아니다. 다만 어떻게 관여해야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관여 방식을 둘러싸고 미국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저자는 그것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우선 9·11테러로 야기된 안보 위기 속에서 미국이 겪는 딜레마가 세 가지 있다. 첫째로, 국가 불안의 딜레마다. 그동안 미국인들은 안전을 표준으로, 불안을 탈선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9·11테러를 계기로 그 반대가 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국가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런 일방적 정책은 안팎으로부터 다양한 반발과 증오를 초래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이 함께 충족되어야 한다. 즉 테러리스트들은 근절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출현을 야기하는 정치사회적 조건 자체를 없애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사회적 호소력을 상실하고 충원 능력을 잃고, 재정적 지원이 고갈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목표를 오로지 미국이 홀로 배타적으로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로, 새로운 지구적 무질서의 딜레마다. 특히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러시아 남부의 독립국가들로부터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광대한 무슬림 지역이 혼돈에 빠져 있다. 저자는 전통적 발칸 지역에 빗대어 이곳을 새로운 ‘글로벌 발칸’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지역이 테러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 지역을 안정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은 9·11테러 충격으로 인해 다양한 정책적 문제를 성급하게 단순화하려고 한다. 그런 일방적 대응은 유럽과의 동맹을 혼란에 빠뜨리고, 동시에 이슬람 세계와의 충돌을 악화시킬 뿐이다. 실제로 이슬람 근본주의가 퇴조하다가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다시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 혼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당사국과 함께하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로, 동맹 관리의 딜레마다. 중요한 것은 유럽과 동아시아다. 미국이 혼자 행동하면 우세하지만 전능할 수는 없다. 반면 미국과 유럽이 함께 행동하면 지구적 안정을 꾀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은 중국이나 일본을 각각 적절히 활용하여 동아시아의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미·중 충돌은 중국의 ‘과도한’ 대국화에 대한 견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일방주의로 일관한다면 서쪽에서는 범유럽주의를, 동쪽에서는 범아시아주의를 표방하는 포퓰리즘적 반미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여기에 러시아, 이란 등이 가세하여 반패권, 반미전선이 상당히 확장할 우려도 없지 않다. 미국은 이런 위험을 민감하게 인식하며, 사활이 걸린 유라시아의 서쪽 및 동쪽 지역과 전략적 연계를 심화해야 한다.

오늘날 미국의 세계적 역할은 미국의 우월한 힘과 세계적 상호작용, 즉 세계화라는 우리 시대의 두 가지 핵심적 현실에서 비롯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미국이 훨씬 우월한 위치에서 게임의 법칙을 지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9·11테러 이후 미국은 일방주의로 흘러 외부로부터 반감이 한층 거세졌다. 여기에서 네 번째 딜레마, 즉 세계화의 딜레마가 떠오른다.

최근에 세계적으로 정치적 각성이 일어나고 민족주의, 근본주의 등이 대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세계화로 인한 부작용의 진원으로 비난받고 있다. 특히 이런 지탄은 모호하지만 강력한 감정과 결합하어 거센 반미운동으로 비화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보상이 없는, ‘그러나 신중하게 계산된’ 희생을 통해 세계가 미국의 우위가 선하다고 믿게 해야 한다.

다섯째로, 헤게모니적 민주주의의 딜레마가 있다. 미국은 한마디로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지구적 헤게모니 국가다. 과거 어떤 국가도 이토록 민주적이고 다원주의적으로 헤게모니를 행사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9·11테러를 겪고 나서 미국의 관심은 미국의 세계적 역할을 선량하게 규정하는 쪽에서 오로지 미국의 취약성에 골몰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헤게모니적 힘은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증진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밖으로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면 적이다”라고 말하고, 안으로는 민주주의를 제한하려고 했다. 특히 이런 제한은 국가안보 문제에서 시작하여 뛰어난 정보력과 기술력에 의해 완성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의회의 역할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러한 진단은 9·11테러 이후 2년여의 관찰에 기반한 것이다. 저자는 미국이 당시처럼 세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 대신에 동맹을 규합하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저자의 ‘선택’은 지배가 아니라, 리더십이다.

‘지배냐, 리더십이냐’는 이번 정권교체기에만 해당하는 딜레마가 아니다. 그것은 특히 9·11테러를 계기로 대외정책의 노선 갈등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더구나 트럼프가 낙선은 했지만 ‘역사상 최다 득표 낙선자’다. 심지어 트럼프가 당을 만든다면, 공화당 지지자의 64%가 트럼프 신당을 지지하겠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만큼 트럼피즘이 견고하다.

이처럼 안으로 분열된 나라는 밖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래서 바이든도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통합을 호소했다. 하지만 격렬한 대결과 분노로 상처 난 미국 사회가 바이든의 다짐처럼 온전히 제자리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바이든은 항구적 패권 공고화를 중시하며, 정치(精緻)한 바텀업(Bottom-up) 방식을 구사할 전망이다. 그것이 겉으로 상호주의나 다자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동맹에 촘촘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돌아온’ 미국에 환호하기보다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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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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