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750만 관람 대열에 최근 합류했습니다. 밤에 영화를 보고 와서 잠자리에 누웠는데 영화 속 이미지들이 자꾸 머릿속을 오가더군요. 큰 상을 받을 만한 잘 만든 작품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예술 작품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잔상과 함께 창작자의 의도를 둘러싼 여러 해석을 남깁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넘쳐나는 이미지는 위아래의 대비입니다. 봉준호 감독 스스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수직적 이미지로 계층을 나타내려 했다”는 겁니다. 그는 수직적 이미지 자체가 이 영화를 만드는 모티브가 됐다는 식의 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영화 속에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이미지들이 가득합니다. 부자들은 올라가고 가난한 자들은 내려갑니다. 사장집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는 이미지로 자주 묘사되는 반면 가난한 김 기사네는 끊임없이 내려갑니다. 그들이 자꾸자꾸 내려가다 맞닥뜨리는 곳은 그야말로 똥물이 가득찬 막장입니다.

주제의 선명성을 위해 이런 극적인 대비를 했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려가기 위해서는 결국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실제 영화 속 김 기사네 식구들은 살기 위해 반지하방을 나와 세상으로 올라갑니다. 영화 속에서 조명하지는 않았지만 성 같은 부잣집에 출근하기 위해 그들은 꾸역꾸역 위로 올라갔을 겁니다. 문제는 그들이 타고 올라간 것이 ‘거짓의 사다리’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다시 막장으로 굴러내려갑니다.

영화와 달리 우리가 현실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건강한 사다리’입니다. 못사는 사람들을 위로 끌어올리는 계층 이동의 통로 말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가족들처럼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38만가구, 100만명이라는데 이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튼튼하고 건강한 사다리가 우리 사회 곳곳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사다리가 이전보다 더 필요한 까닭은 계층 간의 통로가 좁아지고 벽이 단단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학자 박남기 교수가 쓴 ‘교육전쟁론’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는 우리의 계층 구분 천장은 얇은 종이 상자 수준이어서 노력하면 뚫고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미국처럼 시멘트 수준으로 두꺼워지고 있다는 우려입니다.

실제 경제학자 주병기 교수가 만든 ‘개천용불평등지수’는 악화 추세입니다. 이 개념은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 수준에 따른 자녀의 성공 여부를 수치화한 겁니다. 이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하위 가구 출신이 상위 20% 이내 소득 획득에 실패할 확률이 15~20%였지만 2013년에는 이 수치가 30%까지 상승합니다. 교육만 특정해도 수능 외국어영역의 개천용불평등지수는 0.7이나 됩니다. 부모 학력이 낮은 수험생 10명 중 7명은 외국어영역에서 고득점 획득에 실패한다는 얘깁니다.

역설적인 것은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계층 간 벽이 더 두꺼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계층 간 소득격차가 이 정부 들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통계는 대통령의 토로대로 ‘아픈 대목’일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사다리를 더 놓지는 못할망정 어설픈 정책 실험으로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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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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