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 ‘삼체’를 얼마 전 정주행했습니다. 역시 듣던 대로 상상력과 흡인력이 대단해 8부작을 내리 쉼 없이 봤습니다. 이 드라마는 중국 소설가 류츠신의 동명 SF소설이 원작입니다.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중국 여성 과학자가 인류에 환멸을 느끼고 외계인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기괴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줄거리 자체도 신선하지만 스토리에 스며든 과학적 지식도 상당히 전문적입니다. 예컨대 태양이 3개나 뜨는 가혹한 환경의 별에서 지구로 이주해 오는 삼체인들은 양자얽힘 기술을 이용해 지구인들
“폭탄은 저쪽을 향해 던졌는데 오히려 우리 편 등 뒤에서 터져 버렸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후반인 2005년 6월 자신이 꺼내든 대연정의 후폭풍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 표현대로 노 전 대통령이 불쑥 제안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연립정부 구성안은 그야말로 정치권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장 호남을 비롯한 여당 지지층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습니다. 새천년민주당에서 떨어져나온 열린우리당을 적극 밀어줬던 호남 유권자들도 “이게 무슨 소리냐”며 일거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였습니다. 문희상 의장 등 당시 열린우리당 지도부도 대놓고 대통
여당에는 험지 중의 험지라는 서울 도봉갑에서 이번에 승리한 김재섭 국민의힘 당선인을 처음 만난 건 2021년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주간조선에 ‘청년유감’이라는 칼럼을 쓰고 있던 ‘필자 김재섭’에게 후배들과 함께 저녁을 대접하는 자리였습니다. 한여름 냉면집에 나타난 그는 반팔, 반바지 차림이었습니다. 얼핏 팔뚝이 제 허벅지만 해 보이는 건장한 청년은 매일 체육관에 출근하는 ‘헬스 매니아’라며 자신의 별명이 ‘헬스부장관’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별명은 체육인들이 붙여줬다. 여의도에서 헬스인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사람이어서
대한민국에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고준위방폐장 건설입니다. 원자력발전은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고사 상태에 빠졌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살아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준위방폐장이 조속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원전은 또다시 문을 닫아야 합니다. 원전의 필연적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임시로 쌓아두고 있는 저장조 포화율이 대부분 90%를 넘긴 상태여서입니다. 구체적으로 2030년 한빛원전, 2031년 한울원전, 2032년 고리원전, 2037년 월성원전, 2042년 신월성원전 순으로 완전 포화상
코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에서는 여야 승부를 떠나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눈에 띕니다. 6070 유권자 숫자가 사상 처음 2030 유권자 숫자를 넘어선다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60대 이상 인구는 1395만11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만 18세 이상 전체 유권자 4438만549명 중 31.4%를 차지합니다. 반면 2030 유권자는 전체의 28.8%에 그쳤습니다. 18세와 19세 인구(103만9572명)를 합쳐도 1381만2606명으로 60대 이상보다 13만7504명이 적습니다. 이런 유권자 분포는 4년 전 총선과 비교
요즘 쏟아져나오는 총선 격전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의 총선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잘 알다시피 총선은 254개 지역구 하나하나의 승패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전국 단일 지역구에서 한판 승부로 치러지는 대선과는 성격이 판이합니다. 그런데 전체 승패를 좌우할 격전지라는 곳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이 안심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히 최대 승부처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판세가 어렵습니다.국민의힘 지지자 입장에서는 ‘어쩌다 이렇게 됐느냐’는 탄식이 나올 법하지만 사실 시간을 조금만 되돌려 보면 지금의 판세는 충분히
마감날 유튜브를 통해 처음 공개된 AI 로봇 ‘피규어 01’ 동영상을 봤습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가 협력해 만든 이 휴머노이드 로봇은 기존 로봇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로봇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선 남성이 “지금 뭐가 보이냐”고 묻자 “테이블 중앙에 있는 접시 위에 올려진 빨간 사과가 보인다” “당신(인간)은 테이블 위에 손을 얹고 가까이 서 있다”고 또렷하게 말합니다. 이어 남성이 “뭐 좀 먹어도 되냐”고 묻자 “물론”이라면서 사과를 집어 건넵니다. 남성이 바구니에 든 쓰레기를 ‘피규어 01’
해외 여행객들 사이에서 요즘 동남아를 즐겨 찾는 이유 한 가지가 더 추가된 듯합니다. 바로 ‘과일 싸게 먹기’입니다. 맘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사악한 한국의 과일 값에 질려 동남아로 과일 먹기 여행 떠난다’ 같은 내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물가에 시달리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원없이 과일을 먹어보기 위해 동남아에 가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동남아 어느 나라 어디를 언제 가면 어떤 과일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구체적인 과일 여행 가이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이런 트렌드가 보여주듯 지금
역대 총선 승부를 결정지은 무시 못 할 변수 중 하나가 투표율입니다. 대체로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정당에,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정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타나곤 했습니다.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포함해 180석을 싹쓸이한 4년 전 21대 총선의 투표율은 66.2%였습니다. 당시 코로나 사태 여파로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지만 오히려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몰려가면서 이례적으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21대 총선 외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이 불었던 17대 총선의 투표율 역시 60.6%로 꽤 높았습니다. 그때도
최근 감옥에서 사망한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이 몰고온 파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당국의 추모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추모 행렬이 그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급기야 추모행사에 참석했다가 체포된 남성들을 입영시키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나발니가 감옥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직 미스터리입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이 최대 정적의 죽음에 개입했을 것이란 관측이 높습니다. 이와 관련 영국 언론들은 나발니가 과거 KGB(소련 정보기관)가 구사했던 암살 수법인 ‘원 펀치’에 당했을 것이란 추측도 내놓았습니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삼수생인 딸의 근황을 물어보자 “드디어 의사의 꿈을 접었다”는 말을 하더군요.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삼수까지 감행한 딸이 결국 의대를 포기하고 경영대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겁니다. 이 후배의 가족이 고심 끝에 삼수생의 의대 진학을 포기하기로 한 이유가 흥미로웠습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앞으로 의사는 밥벌이가 힘들지 모른다는 우려가 의사의 꿈을 접은 직접적인 이유라고 합니다. 이 후배는 “대치동 학원가의 이름 있는 입시 컨설턴트들 사이에서 ‘이제 의대도 끝물’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면서 “의사들도 변
22대 총선이 6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4월 승부 결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근거를 갖고 여당과 야당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사실 전문가들도 총선은 대선보다 변수가 많아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선거 막판에 대형 변수가 터질 가능성도 여전합니다. 2020년 치러진 지난 21대 총선 때도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면서 압승할 것을 예상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당시 뜻밖의 결과를 몰고 온 총선의 최대 변수는 코로나 사태였다는 분석들이 많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요 며칠 한파가 무섭습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 바람이 자꾸 몸을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나이가 들면 체열의 외부 유출을 막는 피하층이 얇아지고 몸에서 열을 내는 근육이 소실되는 등 추위를 더 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노인들에게는 여름 더위보다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 더 힘든 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여전히 지구 온난화가 더 무서운 적입니다. 최근의 추위는 미국과 유럽을 덮친 북극한파, 즉 북극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북극한파 역시 지구 온난화 탓이
요즘 현역 국회의원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얼굴이 밝지 못합니다. 특히 초선들일수록 수심이 가득합니다. 공천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만약 탈락하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한 표정들입니다. 그나마 지역구를 탄탄히 다져온 의원들은 누가 오더라도 경선에서 한번 붙어보자며 결기를 내보이지만 그것도 아닌 경우는 풀이 죽기 마련입니다. 작년 11월 국민의힘 현역 의원 22명의 이름이 담긴 컷오프 명단이 지라시 형태로 유포됐을 때 이 살생부에 언급된 의원들이 밤새 울분에 차서 폭음을 했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돌았
제가 개고기를 처음 먹어본 것은 군 제대 후 대학 복학생 시절입니다. 비슷한 시기 입대했던 동기들이 캠퍼스에 우르르 돌아와 후배들로부터 아저씨 취급을 받던 때였습니다. 그 복학생들이 진짜 아저씨의 맛을 즐겨보자며 도전한 것이 개고기였습니다. 한 친구 손에 이끌려 몇몇이 서울 제기동의 허름한 뒷골목 식당을 찾았는데, 개고기와의 첫 대면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거무튀튀한 고기와 들깨로 덤벅이 된 벌건 탕에서는 역한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다들 인상을 찌푸리면서 소주잔만 기울이다가 결국 식당 옆 호프집에서 닭다리를 뜯었던 기억이 납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품는 증오가 고등동물만이 가질 수 있는 선택적 감정이라고 얘기합니다. 인간처럼 뇌가 발달한 고등동물들에게서만 증오라는 감정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은 육체적 고통의 표현일 뿐 증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상식적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증오가 고등동물의 선택적 감정이라는 설명의 근거는 증오를 키우는 뇌의 부위에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증오를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편도체라고 추정합니다. 복숭아를 닮은 포도알 크기의 이 작은 부위는 뇌에서 시상하부
요즘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유튜브에서 우주 공부를 합니다. 주로 대한민국에 갇혀 있던 제 인식의 한계를 극한으로까지 밀고 간다는 점에서 색다르고 유익합니다. 일단 나이가 45억년이라는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까지는 그런대로 막힘이 없습니다. 지구보다 109배나 크며, 태양계 전체를 차지하고 지배하는 질량과 중력 등 태양 자체에도 놀라운 비밀들이 많지만 낯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Our Galaxy)부터는 초현실적인 숫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은하는 태양과 같은 항성, 가스, 먼지, 암흑물질 등이 중력에 의해
한국 정치에서는 늘 새로움이 진부함을 이겨왔습니다. 총선 때만 되면 각 당이 사활을 거는 이른바 ‘물갈이’만 봐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인물들을 후보군으로 가능한 많이 앞세워야 총선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 거의 공식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실제 지역구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현역이 다시 당선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늘 압도적으로 높게 나옵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하듯 역대 총선 물갈이 비율은 40% 선에 이릅니다. 초선들이 ‘거수기’ 노릇밖에는 못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강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한국 정치를 주름잡던 3김(金) 중 한 명인 김종필 전 총리(JP)는 생전에 “정치는 허업(虛業)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허업의 사전적 의미는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꾸며놓은 사업’입니다. JP의 이 발언은 종종 정치 허무주의로 해석돼 왔습니다. 그가 살아온 시대배경과 맞물려 권력투쟁의 무상함을 지칭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많았습니다. ‘정치는 허업’이라는 JP의 말은 후배 정치인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줬나 봅니다. 2009년 10월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정치가 허업이 아니라 꽃을 피우고 과실을 따는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아무 성과 없이 문을 닫는 모양입니다. 지난 12월 6일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 간의 17분 비밀회동이 끝나고 발표된 말들을 보니 좋게 포장돼 있긴 하지만 결국 혁신위의 항복 선언으로 비칩니다. 김 대표는 “지도부의 혁신 의지를 믿고 맡겨달라”고 했고, 인 위원장은 “오늘 만남을 통해 김 대표의 희생과 혁신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고 화답했다는데, 하나 마나 한 소리로밖에는 보이질 않습니다. “혁신위 어젠다를 어떻게 스텝 바이 스텝 (실천)할 것인가 고민하겠다”는 김 대표의 정치적 화법이 무엇을 뜻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