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객들 사이에서 요즘 동남아를 즐겨 찾는 이유 한 가지가 더 추가된 듯합니다. 바로 ‘과일 싸게 먹기’입니다. 맘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사악한 한국의 과일 값에 질려 동남아로 과일 먹기 여행 떠난다’ 같은 내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물가에 시달리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원없이 과일을 먹어보기 위해 동남아에 가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동남아 어느 나라 어디를 언제 가면 어떤 과일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구체적인 과일 여행 가이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가 보여주듯 지금 국내 과일 값은 진짜 ‘사악한’ 수준입니다. 어릴 적 자주 먹던 과일인 사과 값이 한 알에 5000원입니다. 대형 마트 매장을 가보면 과일 코너에서 물건을 집었다 내려놨다 고민하는 소비자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선 사과(71.0%), 귤(78.1%), 배(61.1%) 등 주요 과일 값이 전년 대비 깜짝 놀랄 만큼 올랐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일 값이 32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는데, 분명 지금의 과일 값은 한 세대 만에 처음 겪는 일인 듯합니다.

과일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이유는 작황 부진 탓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황 부진을 몰고온 이유 하나가 최근 들어 자꾸 눈에 띕니다. 농촌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일조량이 부족하다는 아우성입니다. 지난 2월 전남도가 일조량 감소에 따른 농작물 생산량 감소를 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간 영광 등 전남도 5개 시군 평균 일조시간이 평년(167시간)보다 23% 감소한 129시간에 그쳐 멜론 출하량이 전년보다 70%나 줄고 딸기에 곰팡이가 피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는 겁니다. 이런 일조량 부족 문제는 지방 뉴스나 농업 관련 전문지 등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3월 들어서는 지난 2월에도 전남의 일조량이 평년보다 39%나 감소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에는 햇볕을 받지 못해 시꺼멓게 썩어가는 멜론 사진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하고 있더군요. 이대로라면 앞으로 멜론 가격도 천정부지로 뛸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 20일까지 우리나라 총 일조시간은 389.9시간으로  2013년 이후 10년 단위로 측정된 일조시간(같은 시기 기준) 가운데서도 가장 적다고 합니다. 최근 10년 중 일조시간이 가장 많았던 2021〜2022년(518.5시간)에 비해서는 무려 128.6시간이나 적은데, 이 일조량 감소는 한 달 일조시간과 맞먹는 규모라고 합니다. 10년 동안 같은 시기 기준 일조시간이 400시간을 넘지 못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례적인 일조량 부족의 원인은 뭘까요. 기후변화의 여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지만 과학적으로 뚜렷이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조량은 강수량, 미세먼지 등의 대기 조건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남의 일조량 부족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도 이 지역에 평년보다 비가 많이 와서 그렇다는 것이 기상청의 답입니다. 같은 기간 경남에는 일조량 부족이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하튼 햇볕이 부족해지면서 과일은 비명을 지르고 과일 값이 하늘을 찌르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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