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간조선이 창간 57주년을 맞았습니다. 1968년 10월 “깊이 있는 시사 주간지를 만들자”는 한 문장으로 출발한 이 잡지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와 함께 걸어왔습니다. 그 사이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취재나 언론 환경도 변한 지 오래입니다. 글보다 영상, 기사보다 쇼트폼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클릭 수가 진실을 앞서고, 알고리즘이 여론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주간지 편집장으로서 계속 되뇌는 질문은 ‘글은 여전히 힘이 있는가’입니다. 디지털,
연휴 기간 미국 텍사스에 있는 친구 집에 들렀다가 실탄 사격을 할 기회가 생겼다. 신병교육대 K2 조교로 군 복무를 했다는 자부심 때문에 소싯적 혈기가 솟구쳐 올랐다. 사격장은 친구 집에서 10분이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총기 전문 몰 안에 있었다. 몰에 들어서는 순간 이 나라를 왜 ‘총기의 나라’로 부르는지 이해가 됐다. 영화에서 보던 총의 종류는 전부 있었고, 야구 배트 집듯 누구나 총을 만져볼 수 있었다. 권총 같은 경우 1000달러도 안 하는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했다. 어떤 총알은 아예 반값 할인판매를 하며 구매를 유도했다.
정치가 가족을 갈라놓은 지 오래다. 오랜만에 가족이 만나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부모와 자식이 적이 되고, 남편과 아내도 적이 된다. 요즘은 80대 할아버지와 이대남 손자가 한 편이 되어 50대 아버지와 논쟁을 벌이는 공동전선도 형성된다고 하니 가볍게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게 됐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피보다 진한 게 정치인가 싶다. 이번 추석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맞는 첫 명절이다. 이번 추석 밥상에 이런 얘기들이 오른다면 그 식탁은 지난 4월 초 헌법재판소 앞 풍경의
요즘 ‘피클볼’이란 운동의 매력에 빠져 있다. 토요일 새벽이면 ‘패들’이라고 불리는 라켓을 들고 집 근처 피클볼 경기장에서 레슨을 받은 지 오래다. ‘요즘 피클볼 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피클볼’이 뭐냐고 되묻는다. ‘테니스와 배드민턴, 탁구를 섞어놓은 라켓 스포츠’라고 설명하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휴대폰을 꺼내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면 ‘아 이런 거구나’ 하지만 표정은 ‘이런 운동은 왜 하는 거냐’는 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피클볼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미국 내 급성장 스포츠’ 1위에
8월의 마지막 주에 태어난 내게 가을은 냄새에 실려 찾아온다. 세기가 바뀌기 전만 해도 생일 전후로는 항상 가을 냄새가 났던 걸로 기억한다. 내게 가을의 냄새란 건 소나기와 초록 잎의 냄새가 묘하게 섞인 여름의 냄새도, 갈색으로 변하는 나뭇잎을 훑고 온 싸늘한 냄새도 아니다. 내가 느끼는 가을 냄새는 오래된 책의 눅눅한 냄새, 밤새 타고 남은 숯의 재 냄새 같은 것들이 묘하게 섞여 있다.가을 냄새는 내 세포 속 기억을 되살린다. 몇 년 전 정선 민둥산의 억새밭의 풍경도, 라라랜드 어느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며 맞았던 바닷바람도 모두
스포츠팬들의 냄비근성은 정치 팬덤과 다르다. 정치 팬덤은 내로남불이란 비판을 들어도 지지하는 정치인을 감싸고 돌지만, 스포츠팬들은 보내는 지지만큼이나 비난도 거세고 변덕스럽다. 특히 소속팀 선수들을 향한 팬들의 비난은 살벌한 수준이다.이번주 주간조선 야구 기고에는 소셜미디어(SNS) 악플에 시달리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고통이 담겼다. 팬들의 인기를 먹고사는 선수들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비판은 감내해야겠지만, 댓글의 수준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걸로 보인다. 반려견을 독살하겠다는 악플도 그중 하나인데, 요즘은 반려견도 또 다른 가족이니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Budapest Memorandum)’는 소련 해체 후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 문서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 규모인 190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영국·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주권과 영토 보전을 보장받는 안전보장 약속을 얻었다. 이 약속이 명문화된 것이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다.양해각서에서 서명국들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주권·영토 보전 존중’ ‘무력 사용 또는 위협 금지’ ‘경제적 강압 금지’ ‘침략 시 유
윤석열 전 대통령이 특검 소환에 불응하고, 내란 관련 재판에도 나가지 않는 모습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앞서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속옷만 입고 버텼다든가, 교도관들 손에 들려나가다가 낙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뉴스를 보면서 윤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또한 그들대로 이 현실이 드라마 같다고 생각한다.지금의 이 현실이 마냥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여권 인사들이다. 최근에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인사는 윤 전 대통령의 이러한 침대축구에 “나쁠
최근 한 장관 후보자가 갑질 논란으로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했다. 갑질의 피해자는 다름아닌 그 밑에서 일하던 여러 명의 보좌관이었다. 20명이란 설도 있었고 40명이란 설도 있었지만 그 수는 처음부터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애초부터 그 목에 방울을 매는 건 국회의원과 보좌관 관계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원은 논란 끝에 낙마했으나 과정이 지난했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를 끝까지 감쌌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제가 아는 한 낙마할 만한 갑질은 없었다”고 마지막까지 그를 감쌌다. ‘제가 아는 한’이란 표현이
우리나라에서 군(軍)과 대기업은 지우고 싶은 역사를 지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외세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군은 정치권력을 넘봤고, 대기업은 군과 손잡고 몸집을 불렸다. 그랬던 군과 대기업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최근 실감한다.12·3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원인 중 하나로 계엄에 동원된 군인들의 소극적 대응이 꼽힌다. 이들 중 일부는 계엄 당시 명령이 반헌법적이라 판단하고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비상계엄 당시 불법 부당한 지시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간부들에 대한 특진을 추진하라”고 지시했고,
사과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렵다. 살면서 여러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해야 했던 미숙한 사람으로서, 사과하는 일에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사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직접 하는 것과 타이밍 그리고 말을 뒷받침하는 행동이다. 진심은 이 세 가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를 제쳐두고 제3자를 통해서 하는 미안함의 표시는 대부분 안 하느니만 못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사과받는 사람의 마음은 돌처럼 굳는다. 돌처럼 굳은 후에 계란을 던져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적
지금은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할 때가 많지만,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회사를 오갔다. 내가 타는 6715번 버스는 서울 서부권을 관통해 상암동으로 온다. 서부권에 사는 상암의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버스가 마땅치 않다 보니 출근 시간에 버스는 당연히 만원이다. 교통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가려면 이미 통로를 승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사람이 앞을 가로막는 건 그럴 수 있는데 그들이 멘 백팩을 보면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발 디딜 공간은 있는데 몸이 지나갈 공간을 백팩이 차지하고 있으니, 이 사이를 뚫고 지나가다 보면 꼭 뭐
스포츠를 그라운드 위의 경기로만 이해하면 반쪽만 보는 것이다. 한 경기 한 경기, 한발 더 나아가 한 시즌을 치르기 위해선 그라운드 위에서의 퍼포먼스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준비가 더 중요하다. 몇 년 전 유행한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팀이 강해지는 건 결코 운으로만 될 수 없다’는 걸 그렸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 스포츠판에는 널렸다.최근 내 눈을 사로잡은 뉴스는 미국 프로농구 NBA의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우승 스토리다. 오클라호마시티는 NBA의 대표적인 스몰마켓팀이다. 전신은 시애틀 슈퍼소닉스지만 연고지
과학과 종교는 기원을 찾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과거에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었던 종교적 신화나 기원이 이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것들이 많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노아의 방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등도 그중 하나다. 기후학자, 지질학자들은 기원전 5600년경 흑해 지역에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홍수가 있었음을 지질학적으로 확인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라이언(Ryan)·피트먼(Pitman) 연구팀은 이 사건이 근동 지역 대홍수 신화인 노아의 방주에서 언급된 홍수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요르단의 ‘탈 엘함맘
경북의 한 지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지인과 만난 일이 있었다. 나름 성공한 사회생활을 마치고 고향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출마를 결심한 그에게 처음 연락이 온 것은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고 한다. 이 의원은 돈을 쓰는 규모에 따라 득표율이 달라질 것이라며, 돈을 쓰지 않을 경우 나올 수 있는 득표율을 콕 집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골적으로 ‘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인은 이를 거절했는데, 놀랍게도 돈을 쓰지 않았던 그가 받은 득표율은 현역의원이 말한 것에 거의 근접했다.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듣노라니 더
현충일 연휴였던 7일 늦은 밤. ‘미션임파서블’의 최신작 ‘파이널 레코닝’ N차 관람을 위해 가까운 영화관을 홀로 찾았다. 그 영화의 N차 관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게 과거의 추억이자, 현재의 빛이요, 미래의 희망인 톰 크루즈의 액션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컸다. 다음 시리즈가 나온다면 그는 70세 정도 될 텐데, 그때도 지금처럼 비행기에 매달려 액션연기를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나이든 톰 크루즈를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 ‘미션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톰 크루즈는 항상 전력질주한다. 손바닥을 펴고,
이재명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외곽 스피커였던 유시민 작가가 대선을 며칠 앞두고 김문수 후보의 아내 설난영씨의 학력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의 발언이 나온 유튜브를 봤다. 주변에서 유시민에 대한 비판이 부쩍 늘었지만 그가 ‘학벌비하’ 같은 발언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설씨가 여성 노조원 비하 발언을 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 발언은 왜 비판의 강도가 약한 건지 의아했다.유 작가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유시민과 김문수 부부의 관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판단을 미
최근 미국에 사는 한 친구가 한국에 잠깐 방문하게 되면서 몇 차례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친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댈러스의 한 한인마트에 이민국 직원들이 들이닥친 일을 들려줬습니다. 100여명에 달하는 이민국 직원들이 한인마트 2층에 있는 푸드코트에 들이닥치더니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단속하더란 겁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히스패닉계 불법 이민자들이거나 돈을 버는 행위가 금지된 한국인 유학생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민국 직원들은 귀신같이 이들만 찍어서 단속을 했고, 이들은 그길로 추방당했다고 합니다.
선거철이라서 그런가요? 이상한 일 투성이입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전직 대통령이 느닷없이 부정선거론을 옹호하는 영화 상영회에 나타나 손을 흔드는 일이나, 그 부인이 받은 적 없다는 명품백이 검찰 수사를 다시 하자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일은 저만 이상하진 않을 겁니다.이런 일보다 더 이상한 일은 중국의 10대 후반, 20대 초반 청년들이 남의 나라 군사보호시설에 호기심을 갖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일본 여행을 함께했던 20대 초반 조카는 일본의 군사, 기업기술, 공항에 아무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먹을 것에 더 호기심을 가
‘정호용’이란 이름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제 위 세대는 아마 그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은 전두환 정권 신군부 ‘핵심 5인’ 중 유일한 생존자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을 맡은 바 있습니다.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을 무력 진압한 혐의 등으로 1997년 징역 7년을 확정받은 바 있죠.2008년 즈음에 전두환의 숨겨진 재산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저는 당시 신군부 인사들의 재산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렵게 찾은 그의 집은 과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