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특검 소환에 불응하고, 내란 관련 재판에도 나가지 않는 모습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앞서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속옷만 입고 버텼다든가, 교도관들 손에 들려나가다가 낙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뉴스를 보면서 윤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또한 그들대로 이 현실이 드라마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이 현실이 마냥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여권 인사들이다. 최근에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인사는 윤 전 대통령의 이러한 침대축구에 “나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 주간조선에서도 비슷한 기사를 쓴 적이 있지만, 이 인사의 논리는 이랬다. “윤 전 대통령이 수사도 안 받고, 재판도 불참하면 1심은 아마 빨라도 2년, 늦으면 3년 뒤에나 나올 것이다. 그때 되면 총선 모드인데 속이 타는 건 우리가 아니라 국민의힘이다.”
실제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윤 전 대통령 수사와 재판에 대해 내놓는 반응은 형식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후 곧바로 “강제집행하면 된다. 담요에 둘둘 말아 나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정치적 수사지, 실제로 그렇게 하란 뜻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만에 하나 민주당이 윤 전 대통령 소환조사에 진심이었다면 ‘담요에 둘둘 말고 나오라’거나 성명서 한두 개 내는 데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정 대표를 위시해 최소한 여러 명의 의원들이 구치소를 방문해 구치소 측에 거센 항의라도 하는 퍼포먼스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과거의 사례에 비춰 보면 그들이 죽은 권력을 향해 어떤 액션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이런 상황에 속이 타들어가야 하는 건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올해는 이 문제를 털어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나마 비벼볼 만하다. 내년 지방선거가 쉽지 않다면, 차라리 창조적 해체에 준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털어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의 마음이 열린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전한길 늪’에 빠져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탈당했지만,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전한길씨에 대해 100석의 의석수를 가진 공당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지난 14일 국민의힘은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가 전당대회에서 소동을 일으킨 것에 대해 ‘경고’조치를 내렸다. 출당이나 당원권 정지 같은 중징계는 기대도 안 했지만, 경고라는 형식상의 징계는 다소 충격적이다. 징계위원회 출석에 앞서 전한길씨가 “나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지만 당의 징계는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건 아마도 이런 징계수위가 나올 것을 예측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김문수 당대표 후보가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구속을 비난하고, 부정선거론을 옹호하는 것도 전씨와 비슷한 부류의 세력들이 지금 이 당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국민의힘에서는 어떤 대책도 보이지 않고, 조급함도 없다.
오히려 조급함은 민주당에서 보인다. 최근 이재명 정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미향 전 의원 등을 사면했다. 두 사람의 기소 내지 사면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식으로 추진하는 그들의 속도라고 본다. 언론은 이들의 사면이 정권 초 국정동력을 약화해 지지율을 떨어뜨릴 것이란 과거의 프레임으로 현상을 읽지만, 그들의 속도전 뒤의 저의가 나는 더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