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 사는 한 친구가 한국에 잠깐 방문하게 되면서 몇 차례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친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댈러스의 한 한인마트에 이민국 직원들이 들이닥친 일을 들려줬습니다. 100여명에 달하는 이민국 직원들이 한인마트 2층에 있는 푸드코트에 들이닥치더니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단속하더란 겁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히스패닉계 불법 이민자들이거나 돈을 버는 행위가 금지된 한국인 유학생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민국 직원들은 귀신같이 이들만 찍어서 단속을 했고, 이들은 그길로 추방당했다고 합니다. 댈러스에만 20년을 넘게 살았던 그 친구도 이런 광경은 처음 봤다고 합니다. 그동안 그들의 존재를 이민국이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아도 모른 척했던 것인데 트럼프 2기가 시작된 후 이들을 실제로 쫓아냈다는 것이죠. 트럼프의 정책이 말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걸 친구는 이날 알았다고 합니다.

트럼프에 적대적인 미국의 레거시 미디어는 트럼프 2기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생각보다 견고하다고 합니다. 이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는 미국중심주의 정책에 대한 지지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약·동성애 등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민주당의 전향적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가 더 크다고 합니다. 관세정책이나 이민정책은 상대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번주 유민호 퍼시픽21 소장이 쓴 글에 보면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1기보다 높고, 오바마 전 대통령 때보다 높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인기를 등에 업고 자신의 정책을 유지해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서는 이상할 만큼 언급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챗GPT에 물어보니 그가 한국에 대해 직접 언급한 건 지난 4월 8일 당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전화 통화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관례적인 대화가 오갔고, 그가 한국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보다 직접적으로 밝힌 것은 3월 4일 미 의회 연설 때였습니다. 트럼프는 이날 한국과의 무역 불균형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이후에는 반도체, 외교문제 등 해당 사안에 대한 단편적 언급만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한국 정부를 향해 언급을 하지 않는 건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말 한마디가 한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아는 것이죠. 트럼프는 의도적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에 대한 정책 방향을 언론에 흘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3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보도된 주한미군 4500명 감축설도 그중 하나겠죠. 

새로운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트럼프는 지난 몇 달간 들고 있던 청구서를 한꺼번에 내밀 것이 확실합니다. 여기에는 관세를 비롯해 방위비 분담금, 농수산물 수입규제 완화, 데이터 이전 제한 해제 등 한국 사회에 큰 충격파를 던질 만한 다양한 안건들이 포함되어 있겠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는 말로 그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 대통령 후보자들의 토론을 보니 다가올 미국과의 협상에 준비가 된 후보가 있기는 한 건지, 경제를 살릴 카드가 있기는 한 건지 심히 걱정됩니다.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선거 같습니다. 독자님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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