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안개가 조금은 걷힌 느낌입니다. 주간조선이 지난 6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보도해온 ‘함박도 미스터리’ 말입니다. 어제(9월 4일) 정경두 국방장관이 국회 국방위에 나와서 함박도에 북한군 1개 소대가 투입돼 2017년 5월부터 시설 공사를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과 강화도, 인천항 등에서 불과 60여㎞ 떨어진 대한민국 주소지의 섬에 북한군이 운용하는 탐지거리 30~60㎞가량의 일제(日製) 레이더가 설치돼 있다는 겁니다.

‘함박도 미스터리’는 주간조선이 집요하게 취재 보도해 세상에 알린 사안입니다. 곽승한 기자가 지난 6월부터 무려 4차례에 걸쳐 기사를 썼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의문으로 시작됐습니다. 군 관계자로부터 “함박도가 주소지는 대한민국인데 북한 땅”이라는 말을 우연히 들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의아해서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함박도의 공식 주소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입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북한 땅’이라는 겁니다.

첫 취재부터 국방부는 주간조선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 소극적으로 응했습니다. 북방한계선(NLL) 이북 북한 땅이라면 좌표를 달라고 해도 군사기밀 운운하며 거부했습니다. 다음 궁금증은 구글지도가 불러왔습니다. 곽 기자가 몇 년치 구글지도를 분석하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함박도에 뭔가 시설물이 들어서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게 뭔지를 알아내는 데 또 한참이 걸렸습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실을 통해서야 국방부로부터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언제부터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걸까 또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국방부는 ‘대북 정보사항’이라며 입을 다물어왔습니다. 그래서 구글지도를 시간대별로 일일이 쪼개 분석해서 ‘북한군 시설이 2017년 이후 생겼다’고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지 후인지가 끝내 궁금했지만 위성지도만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었는데 어제 국방부 장관 입에서 ‘2017년 5월’이라는 답이 나온 겁니다.

곽승한 기자가 며칠 전 주간조선 홈페이지에 올린 네 번째 기사는 국방부의 모순을 지적한 겁니다. 국방부는 함박도가 대한민국 주소지로 돼 있는 것이 ‘단순한 행정착오’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곽 기자가 확인한 결과 함박도는 1970년대 대한민국 주소지로 편입될 즈음 국방부 장관이 결정하는 군사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됐습니다. NLL 이북이냐 이남이냐를 떠나 우리 군이 사실상 우리 땅, 우리 군 시설로 관리해온 섬에 북한군의 레이더 시설이 새로 설치됐다면 이 상황 변화는 엄중합니다.

얼마 전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던 기자에게 ‘기레기’라고 쏘아붙여 논란이 일었습니다. ‘기레기’라는 말을 들어야 할 기자들도 있을 테지만 ‘기레기’라는 괜한 욕을 먹으면서도 발로 현장을 누비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권력자가 숨기고 싶어하는 일들이 실제 기자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양파껍질’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조국 후보자 관련 의혹들이 대표적입니다. 조국을 파헤치는 기자들이 없었더라면 멋지게 포장된 ‘가짜 조국’은 아직도 건재했을 겁니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해도 명절은 명절입니다. 독자님들,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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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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