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총선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지만 영국은 이제 총선이 막바지인 모양입니다. 12월 12일 치러지는 총선에서 지난 몇 년간 영국을 갈가리 찢어놓은 브렉시트 논란이 드디어 끝장을 보는 듯합니다.

뜨거운 영국 총선의 한복판에서 보내온 이번주 ‘런던 통신’을 읽다 보니까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내각책임제에 대한 흥미가 다시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잔인하고도 효율적인’ 정권교체 절차가 흥미롭습니다. 총선 당일 개표를 하면서 어느 당이든 과반인 326석을 넘기는 순간이 바로 정권교체 시점이라고 합니다. 보통 새벽 3시쯤 과반 여부가 판가름 나는데 야당이 과반을 넘기면 이 새벽에 야당의 정권교체팀이 다우닝가 총리 관저로 밀고 들어간다는 겁니다.

승자와 패자의 자리 교체에 관한 한 단 몇 시간의 지체도 용인하지 않는 ‘잔인함’이 가능한 것은 내각제 특유의 그림자 내각 덕분입니다. 야당에 정부와 똑같이 설치돼 있는 그림자 내각에 평소 여당이 각 부처별로 업무 진행을 알려주고 정보를 전달해주면서 정권교체에 대비한다는 겁니다. 대통령제와 달리 특별히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내각제 특성상 언제라도 총선을 치르면 정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평상시 이런 대비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제1 야당 당수에 대한 존중입니다.

제1 야당 당수에게는 의원 세비와 별도로 총리에 버금가는 연 1억여원의 수당을 준다는 건데, 이것 역시 언제라도 국정을 담당할 수 있는 예비 총리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고 하네요. 이런 시스템에서는 여야가 적이 되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말 그대로 국정의 동반자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반환점을 갓 넘긴 문재인 정권이 그렇게 적폐라고 외치던 전 정권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한 현실이 특히 우리의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지금 불거지고 있는 청와대발 하명수사, 감찰무마 논란은 사람의 문제일까요, 제도의 문제일까요. 대통령의 버킷리스트인 친구의 당선을 위해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대통령을 형으로 부르는 사람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일이 왜 벌어졌을까요. 대통령의 의중과 심기를 살피고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결국 문제지만 그런 힘 센 대통령을 만든 것은 우리의 제도입니다.

실제 이 정권을 흔들고 있는 문제의 진원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핵심 기구인 민정수석실입니다. 이번호 정안세론 칼럼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민정수석의 사정 기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가장 강력한 제도적 기반이다. 그것은 정치와 사법의 분리라는 권력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정치도구로서의 사정, 즉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망가뜨린다.’

이 사법의 정치화는 바로 박근혜 정부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 다투고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죄의 본질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우병우를 법이 단죄하는 순간 또 다른 우병우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입니다.

사람이 바뀌었는데도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된다면 다시 진지하게 시스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정수석실 문제를 넘어서 여야 극렬 대치 속에 공회전하고 있는 국회를 지켜보고, 다시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대통령 탄핵’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징글징글하게 느껴집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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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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