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터지기 몇 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네덜란드에 출장을 갔다가 귀국 길에 운좋게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가 돼 난생처음 1등석에 타보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1등석에 들어갔는데 창가 한 좌석에 담요를 뒤집어쓴 사람이 길게 누워 있더군요. 비교적 빨리 탑승한 저보다도 먼저 비행기에 올라타 벌써 누워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담요로 얼굴을 가린 그 승객은 11시간 가까운 비행 시간 내내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기내식도 먹지 않고 잠만 잤습니다. 승무원에게 “아픈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미소만 보내더군요. 결국 공항에 내려서야 그 승객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인 걸 알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김기스칸’의 폭풍 같은 지구촌 출장 여정을 바로 옆에서 잠시 지켜본 셈입니다.

지난 12월 9일 별세한 김우중 회장에 대한 추억담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유의 열정으로 하루 24시간을 남들 보다 길게 산 분이어서인지 세상 곳곳에 뿌려놓은 인연도 남다른 듯합니다. 김 회장이 마지막 열정을 불살랐던 베트남 하노이 GYBM(해외 청년사업가 육성사업)의 한 졸업생이 GYBM에서 가끔 강의를 하는 유민호 퍼시픽21 소장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고 합니다. ‘우리의 곁에는 GYBM을 설립하시고 우리 동문들이 세계 각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업들 하나하나를 방문하시어 이끄신 김우중 회장님이 계셨습니다. 5기 연수 당시에는 한마디라도 좋은 말, 좋은 것을 챙겨주시고자 거동이 불편하신 몸을 이끄시고 연수원에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작게나마 보답을 하고자 전 세계 GYBM 총동문회를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행사 직전 김우중 회장님의 별세 소식은 저희 GYBM에는 큰 상실로 다가옵니다. 지치고 외로울 때면 늘 가슴으로 품어주시던 김우중 회장님이 벌써부터 그리워집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글이 김 회장 별세 소식이 알려진 후 GYBM 측에 쇄도하고 있다고 하는데 부러움부터 듭니다. 83세에 세상을 뜬 사람이 74세부터 인연을 맺어온 20대 젊은이들에게 이런 생생한 기억을 남겼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아무리 큰 족적을 남긴 거인이라고 하더라도 누런 흑백사진 같은 기억만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 김 회장은 아직 빛이 바래지 않은 천연색 사진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간조선은 올해 1월 7일자에 김우중 회장의 알츠하이머 병세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바 있습니다. 김 회장에게 처음 ‘치매’라는 딱지를 붙인 기사여서인지 처음에는 대우맨들로부터 항의 섞인 핀잔도 들었지만 나중에는 “고맙다”는 말도 꽤 들었습니다. 비록 병상에서 기억은 작아지고 있었지만 그나마 건재했던 김 회장을 되돌아보게 해줘서 고맙다는 얘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김 회장이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었던 예우의 기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김 회장은 평생을 같이했던 부하 직원들의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등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영욕의 세월을 거친 그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기억부터 사라지고 무슨 기억이 끝까지 남았을까요. 무엇이 됐든 그가 잃어버린 기억의 빈 공간을 말년에 인연을 맺은 젊은이들의 기억들이 메웠을지 모릅니다. 거인에 대한 젊은 기억이 새로운 거인의 탄생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김우중이 말년까지 품었던 염원일 겁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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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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