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이성진 기자가 쓴 커버스토리를 보다가 한 대목에 눈길이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통해 국내외적인 관심을 일으키는 데 기여’ ‘이런 활동이 결국 피해자들의 권익수호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점’ ‘피신청인들의 활동으로 명예와 인격을 회복하는 피해자들이 더 많다는 점’….

지금 ‘윤미향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에 대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발’에 대해 법원이 내린 판결문의 일부분입니다. 고발 시점이 무려 16년 전인 2004년의 일입니다. 당시 ‘무궁화회’라는 모임을 만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금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며 “피해자를 앞세운 정대협의 모금활동을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그때도 할머니들은 “역사의 무대에 (우리를)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들”이라고 정대협을 신랄하게 고발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 이유입니다. 당시 할머니들의 고발이 체계적이지 않고 증거가 충분치 못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소송 기각 사유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피해자들의 권익수호 등을 목적’ ‘피신청인들의 활동으로 명예와 인격을 회복’ 등의 대목을 보면 정대협의 대의명분이 웬만한 잘못들은 가릴 수도 있다는 의미처럼 읽힙니다. 하지만 “앵벌이로 피를 빨았다”는 할머니들의 외침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만한 대의명분이 과연 있는 것일까요.

이 기사를 읽다가 1980년대 제가 참가했던 한 시위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투신과 분신이 벌어지던 살벌한 대학가에서 시위라는 시대의 대의명분과 맞서는 다소 ‘엉뚱한’ 외침이 기억 속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어느 날 대학 도서관 바로 밑 통로를 점거한 시위대가 쩌렁쩌렁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한 학생이 도서관에서 튀어나와 “공부 좀 하게 조용히 해달라”며 큰소리를 냈습니다. 저를 포함한 시위 학생들은 그 외침에 일순간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는 곧 ‘저런 멍청한 이야기는 처음 듣겠다’는 표정들로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고요와, 안경을 쓰고 심각한 표정을 짓던 그 학우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공부할 권리를 시위를 할 권리가 앗아갈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더군요. 그 친구의 외침이 엉뚱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년 전 무궁화회 할머니들의 외침은 더 심각한 사안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앵벌이를 거부하는 외침이 직접적인 다수 피해자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묵살됐고 정대협과 그 후신인 정의연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돼 버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당초의 대의명분이었던 할머니들조차 대수롭지 않은 수단으로 작아졌을 겁니다. 지금 문제가 된 의혹투성이 회계처리가 보여주듯 할머니들은 돈벌이 수단이고, 할머니들을 통해 번 돈은 엉뚱한 곳에 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 진보진영을 향해 독설을 날리는 진중권 교수는 칼럼에서 “포스터 속의 저 치마저고리 소녀는 더 이상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다. 매서운 눈으로 횃불을 치켜들고 ‘No 아베’를 외치는 저 소녀는 실은 윤미향이다”라고 썼더군요. 본말이 전도되고 꼬리가 머리가 되는 기막힌 현실을 꼬집은 건데, 지금도 이어지는 할머니들의 외침이 다시는 묻혀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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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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