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부산 출장을 갔다가 가덕도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신(神)의 한 수를 내놓기 전, 가덕도가 밀양과 신공항 후보 자리를 놓고 피 터지게 경쟁할 무렵이었습니다.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부산이 밀고 있는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취재 일정을 끝내고 일부러 찾아가 봤습니다.

가덕도의 첫인상은 푸름과 맑음이었습니다.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더군요. 가덕도에는 벵에돔, 감성돔 등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들이 많다고 합니다. 가덕도의 명물이라는 대구를 해풍에 말리고 있는 모습도 이채로웠습니다. 둘레길을 따라 내려다보이는 가덕도의 해안선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더군요.

가덕도의 청정 이미지는 겉모습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가덕도신공항 건립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진즉부터 가덕도가 생태계의 보고라는 주장을 펴왔습니다. 특히 신공항이 건립되면 잘려나갈 수밖에 없는 해발 269m 국수봉 일대는 보존가치가 높은 지형과 식생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 가덕도에는 지형보전 1등급지가 6곳이나 되고, 녹지 절대 보전지역도 3곳이나 있는 걸로 나옵니다. 또 가덕도의 철새도래지와 동백군락지 등도 훼손되어서는 안 될 곳으로 꼽힙니다. 가덕도를 찾는 낚시꾼들이 가끔 올리는 사진을 보면 가덕도에는 멸종위기 동물인 수달도 삽니다. 또 다른 멸종위기 동물인 삵이 관광객들의 사진에 올라온 것도 봤습니다. 가덕도에 수달과 삵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가덕도가 진짜 생태계의 보고라는 걸 입증하는 사례로 거론됩니다.

가덕도를 다녀온 후 김해신공항 확장안이 발표됐을 때 가덕도에 살고 있다는 수달과 삵이 떠올랐습니다. 가덕도신공항을 고대해온 상당수 부산 사람들은 실망감을 느꼈을 테지만 서울 사람인 저로서는 가덕도 자연환경이 보존될 수 있다는 데 안도감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가덕도신공항은 그로부터 4년여 만에 또다시 부활했습니다.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노린 정부 여당이 가덕도신공항을 관에서 끄집어낸 결과입니다. 대신 가덕도의 자연이 포크레인 앞에서 위태로워졌습니다.

진짜 필요하다면 자연훼손을 감수하고라도 공항을 지어야 하겠지만 이번 가덕도신공항 부활 과정을 지켜보는 뒷맛은 영 씁쓸합니다. 김해공항 확장안 검증위의 발표 내용을 보면 곳곳에 억지 논리가 보입니다. 김해공항 확장안에 비해 최대 7조원이 더 드는 비용(활주로 2개 기준)도 문제지만 정치적 논리와 필요에 의해 멀쩡한 대안을 쓰레기통에 던져넣는 후안무치를 지켜보는 심정이 편치 않습니다. 과거 경부고속철을 뚫을 때 천성산 도롱뇽을 살려야 한다며 공사를 앞장서 막던 환경보호론자들도 생각납니다. 부산의 한 지인은 “이 정부에서 환경론자들은 탈원전운동 벌이면서 다들 관변단체 사람들이 된 듯하다”고 비판하더군요. 지켜야 하는 자연도 이념과 당파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인가 봅니다.

어찌됐든 가덕도신공항은 선거 귀재들의 절묘한 카드라고 할 만합니다. 여당이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가덕도신공항 카드 앞에서 야당이 쩔쩔매는 게 보입니다. 오히려 야당 내부에서 반대와 찬성으로 분열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논란이 거세지는 사이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부른 전임 시장의 원죄는 까맣게 잊히고 있습니다. 내년 4월 부산의 선택이 궁금해집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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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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