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견주어 경쟁력 있는 단일후보로 노무현·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십니까.’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때 양측이 합의한 질문입니다. 당시 이 짤막한 질문 하나로 대통령 후보가 결정됐습니다. 이 질문을 앞세운 여론조사 결과 불과 4.6%포인트 앞선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의 맞상대로 결정됐는데, 이 희대의 정치 드라마를 연출한 두 사람이 단일화 방식에 합의한 후 러브샷을 하는 장면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시 제가 취재한 바로는 앞서의 질문을 만들어내기까지 양측은 피 말리는 수 싸움을 벌였습니다. 노 후보 지지율이 8%포인트 정도 뒤처지는 상황에 시작된 실무협상에서 양측은 유권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를 놓고 상당 기간 옥신각신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질문의 내용에 따라 지지율이 2~3%가 오락가락하는 등 유불리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이회창 후보를 상대할 야권 단일후보로 ‘누구를 선호하느냐’는 질문과 ‘누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왔다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선호도는 정몽준 후보가, 경쟁력은 노무현 후보가 앞섰다는 것이 당시 실무협상팀의 회고입니다.

양측은 질문 내용뿐 아니라 언제 여론조사를 하는지를 둘러싸고도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휴일에 조사할 경우 유권자 충성도가 낮은 정몽준 후보 표는 분산될 가능성이 높았고, 충성도가 높은 노 후보의 표는 뭉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원샷’ 여론조사는 앞서의 어정쩡한 질문을 일요일에 던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노무현 후보가 수 싸움에서 이긴 셈입니다.

20년 가까운 옛날 얘기를 끄집어낸 것은 선거 때만 되면 되풀이되는 후보 단일화가 이번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라서입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당의 명운을 건 국민의힘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후보 단일화 없이는 사실 승부를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3자 대결의 경우 여당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옵니다. 안철수 후보나 국민의당이나 자기 욕심만 부리다가는 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황은 단일화를 부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국민의힘과 안철수 후보 간 밀고 당기기만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경선을 외부에 개방해 후보 단일화를 하자는 안철수 측의 제안을 김종인 위원장이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안철수 후보의 국민의당 입당 보도가 나오자 안철수 측이 발끈하며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뜁니다.

이번 밀고 당기기가 2002년처럼 드라마를 만들어낼까요. 이번호에 인터뷰가 실린 이상돈 전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박원순에게 후보를 양보한 경험이 있는 안철수 후보가 또 ‘철수’를 결단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100명이 넘는 의원을 거느린 제1 야당이 쉽게 후보직을 내줄 가능성도 커 보이질 않습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같은 배짱과 결단이 없으면 단일화는 물 건너갈 가능성이 오히려 커 보입니다. 단일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반대로 무산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다 많을 듯한데 밀고 당기기의 끝이 진짜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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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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