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둔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여기저기서 비슷한 내용의 통화 소리가 들립니다. “모이지들 말라는데 어떡하지…” “이번에도 못 뵈면 실망하실 텐데.” “우리는 따로 뵈러 갈 테니까 다른 날 가라고.” 어떤 승객은 “그게 아니고요”라면서 목소리 톤이 올라갑니다. 아마도 고령의 부모님한테 설 명절에 찾아뵙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듯합니다. 휴대폰을 붙든 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심란해 보입니다.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도 ‘언택트’ 명절로 지내야 한다고 정부가 권유합니다.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설 명절에도 유지하겠다는 겁니다. 아이 둘 데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 자체가 원천 봉쇄되는 셈입니다. 정부가 엄포를 놓은 ‘위반 시 10만원 과태료’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것이 불법이 되는 세상이 올 줄은 다들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겁니다.

인터넷에는 언택트 명절을 무력화하려는 농반진반의 해법도 돌아다닙니다. 스키장에서 모이자, 지하철과 버스에서 가족 모임을 갖자, 순번제로 부모님을 찾아뵙자는 등 아이디어들이 난무합니다. 총리가 “이번 설을 맞아 시중에선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며 나름 비장함을 내보이지만 사람들은 냉랭합니다.

사실 집에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노인들에게 언택트 명절은 잔인합니다. 손자 손녀들을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뎌낸 시간들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이어가야 합니다. 담담하게 건네는 “올 필요 없다”는 한마디 속에는 낙담이 가득 차 있을 겁니다.

얼마 전 치매 증상이 심해진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한 가정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부친이 요양병원으로 떠나기 전날, 가족이 모두 모여 생이별의 아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요즘 요양병원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거기 들어가면 칸막이 너머로만 부친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식들 가슴이 미어졌다는 겁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요즘은 노인들에게 너무도 불안한 시간일 겁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시간으로 여기는 노인들이 많을 듯합니다. 그래서 자식과 손자 손녀의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평상시보다 소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시대 ‘가족’은 모두에게 가장 큰 화두입니다. 가족애로 인해 이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족애를 새삼 깨닫게 됐다는 고백이 줄을 잇습니다. 주간조선이 거의 매주 내보내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인터뷰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내용이 가족애입니다. 얼마 전 개봉한 ‘미드나이트 스카이’라는 영화의 주연을 맡은 조지 클루니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촬영 후 후반 작업에 들어가면서 코로나19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상호 의사소통과 가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다. 영화를 통해 실제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올해 같은 때야말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매일매일을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난 지금 나의 부모가 무척 그립다.”

이번 설이 마지막 언택트 명절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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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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