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카나리아제도 라스팔마스주 산 바르톨로메 데 티라하나의 마스팔로마 해변.
스페인 카나리아제도 라스팔마스주 산 바르톨로메 데 티라하나의 마스팔로마 해변.

내가 사는 곳은 스페인 카나리아 지방의 도시인 산 바르톨로메 데 티라하나다. 카나리아 지방은 라스팔마스(Las Palmas)주와 테네리페(Tenerife)주로 나뉘어 있는 스페인의 자치령. 본토인 리베리아반도로부터 1000㎞가량 떨어져 있고 크고 작은 7개 섬으로 구성된다. 산 바르톨로메 데 티라하나는 라스팔마스주에 속해 있고, 면적이 서울의 절반만 하다. 맑고 깨끗한 대서양을 품은 마스팔로마 은빛 모래 해변이 특히 풍광을 자랑한다. 라스팔마스주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항구도시 라스팔마스가 주도이다. 하지만 산 바르톨로메 데 티라하나와, 이곳에서 60여㎞ 떨어진 라스팔마스는 도시 풍광과 분위기가 천지 차이다. 라스팔마스는 원양업으로 유명한 평범한 산업도시이고, 내가 사는 산 바르톨로메 데 티라하나는 유럽인이 살고 싶어하는 지상천국이다.

카나리아 지방은 스페인 최대 관광 휴양지다. 영국인과 북유럽인이 조기 은퇴 후 제2의 고향으로 가장 선호하는 곳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지중해 연안 해변 지역과 오염되지 않은 대서양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고 있는 카나리아 지방이다. 카나리아 지방은 올해 대박을 쳤다. 상반기까지의 외국인 관광객이 700만명을 넘어섰다. 작년 대비 8% 이상 늘어났다. 인구나 면적으로 보면 한국 중소도시만 한 카나리아 지방에 휴양과 관광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은 보통 연 1000만명을 웃돌지만 올해는 외국 관광객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수천 곳의 호텔과 일반 숙박업소들의 겨울철 예약이 이미 완료된 상태다. 관광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다른 직종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관광객이 대거 몰리면 돈이 돌게 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 관광객이 카나리아제도에 체류하는 기간은 1~2주다. 휴양을 목적으로 한 달에서 6개월 이상 머물다 돌아가는 외국인도 많다. 호텔비와 항공료 말고도 이들이 레저 활동에 뿌리는 돈은 1인당 주당 800유로(120만원 정도)를 웃돈다.

카나리아뿐 아니라 스페인 전체의 관광객 수는 올해 최고의 상승세다. 주 원인은 불안한 중동 정세가 꼽힌다. 아랍권으로 휴가를 떠나던 유럽 사람들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전쟁과 테러의 땅 대신 스페인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주변의 중동 국가는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다.

스페인은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이다. 한 해 80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미국과 이탈리아를 제치고 관광객 수가 세계 1위다. 21세기 최고의 무공해산업으로 한 해 국가총생산의 4% 이상에 해당하는 500억유로를 벌어들인다. 한국 대기업들의 1년 수입을 모두 합쳐도 따라오지 못할 엄청난 돈이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4인 가족 중 적어도 한 명은 관광업과 연관된 일에 종사한다. 관광업은 이 지역의 생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지방경제의 주 동력이 관광산업이다. 카나리아 사람들은 1년 동안 자그마치 10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불편 없이 먹고 자고 레저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그것도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선진 유럽인의 구미에 맞게 주정부 차원에서 관광서비스업 인력을 정기적으로 교육한다. 그래야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같은 다른 관광 선진국들과 경쟁할 수 있다.

카나리아 지방의 원주민은 스페인 사람들이지만 수많은 독일인, 영국인, 스칸디나비아 국가 사람들이 섞여 산다. 이들은 수십 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독일과 북부 유럽 자본도 곳곳에 투자돼 있다. 가족 단위로 장기간 영주하는 북부 유럽인도 많다. 우리 옆집에는 영국인 가족이 살고, 윗골목집에는 독일인 부부와 스웨덴 가족이 산다.

중북부 유럽대륙의 기나긴 겨울은 춥고 습하고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하다. 이런 날씨는 유럽인의 일상생활을 짜증나게 만드는 주범이다. 중북부 유럽에 사는 10억명의 인구는 바로 스페인 관광산업의 전략적 타깃이 된다.

나의 오랜 친구 한스 부부를 보자. 이 중년 부부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살았다. 빈의 기후는 짧은 여름 한철만 빼고는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이 많고 비가 자주 내려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라고 한스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따스한 햇볕이 그리운 한스 부부는 여름 한철만 빼고는 수시로 내가 사는 도시로 와서 1~2주일 머물고 갔다. 10월 빈의 온도는 영하로 접어들지만 산 바르톨로메 데 티라하나의 마스팔로마 해변은 언제나 영상 27도 정도다.

어느날 한스 부부는 마스팔로마 해변가 근처에 깨끗하고 아름답고 자그마한 집 한 채를 장만했다. 말 그대로 산 바르톨로메 데 티라하나가 한스 부부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 온화한 기후가 있고, 유럽 도심지의 소음공해와 공장단지 굴뚝에서 뿜어대는 독성 매연도 없고, 유럽 도시 외곽에서 목격할 수 있는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핵발전소도 없으니 삶의 질을 높이며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여유 있는 유럽인들에게는 최적지다.

현재 스페인과 함께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공동체 18개국의 3억3400만명은 그냥 자국의 여권이나 신분증만 소지하면 스페인에 입국하여 원하는 대로 지낼 수가 있다. 동일한 유로화를 사용하는 3억이 넘는 인구가 관광과 휴양을 위해 단기간에 인구이동을 한다. 말 그대로 이웃 마을 마실 가듯이 평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독일, 영국,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삼국에서 개인 승용차나 열차, 혹은 비행기를 타고 플라멩코와 투우의 나라, 피카소의 고향인 스페인에 휴가를 온다.

스페인 남부 지방의 유명 관광지라고 하면 바가지 요금과 높은 물가를 연상할 수도 있다. 스페인 남부와 카나리아 지방의 물가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유럽 여러 도시 물가와 별반 차이가 없다. 내가 한국 대도시의 물가를 보고 와서 이곳의 여러 가지 기본 식료품 가격을 비교해 보고 뜻밖의 결론에 도달했다. 놀랍게도 이곳에서 팔리는 유럽산 식료품 대부분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다.

카나리아 지방에는 유럽 다른 나라 사람들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우리 동네에도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노르웨이, 스웨덴 초·중·고등학교, 독일학교, 영국학교, 프랑스학교와 미국학교가 있다. 학교 규모와 교육시설과 교사 자질도 수준급이다. 거의 모든 국제학교에서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유럽연합 교육청 지침에 따른 정규교육을 받을 수가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관광 삼아 왔다가 편리한 교통여건과 교육시설 때문에 자녀가 있는 부부들이 그냥 눌러앉아 사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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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식 C.C. Ronda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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