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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420호] 201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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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쥔데르트 아를 몽스 오테를로 그리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 빈센트 반 고흐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여울  작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저자 

▲ 고흐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의 실제 배경의 현재 모습. 이승원
여행 초보자일 때는 런던, 파리, 뉴욕, 베를린 등 이름만 들어도 왠지 설레는 대도시가 좋았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상상만 하던 그 모든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의 뮤지컬, 파리의 루브르미술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사원, 베를린 필하모니 등등은 그곳을 여행하기 전부터 이미 우리가 ‘듣고 보고 알고 있는 것들’의 보물창고였다. 그러니 그 여행은 새로운 발견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의 재확인일 때가 많았다.
   
   그래도 짜릿했다. 내가 진짜로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기보다는 남들이 좋다고 해서 가보고 싶은 곳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모든 대도시의 화려한 문명 속에서 나는 엄청난 경험을 쌓았지만 어쩔 수 없는 소외감도 느꼈다. 서울에서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이 뉴욕이나 런던에서는 오히려 눈부신 자유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복잡한 교통과 숨 가쁘게 흘러가는 일상으로 가득한 대도시 여행에 조금씩 지쳐갈 무렵 작은 도시, 작은 마을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굳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아도,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가는 속도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쳐준 여행. 그것은 바로 작가나 예술가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요한 볼프강 괴테, 루드비히 반 베토벤, 빈센트 반 고흐 등의 행적을 더듬어가는 여행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을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 보는 여행, 마치 전기(biography)를 읽는 기분으로 한 사람의 인생 역정을 따라가 보는 여행이야말로 그 장소나 사람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여행이었다. 남들이 좋다는 여행이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고생을 하더라도, 변수가 찾아들어도, 그 변덕스러운 상황 자체를 더 적극적으로 즐길 수가 있었다.
   
   물론 이런 작가 기행은 발품이 많이 든다. 작가의 연보(年譜)도 조사해야 하고, 교통이 불편한 곳도 많다.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곳도 많아 ‘저 사람들이 왜 이 도시에 왔나’ 하는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도시를 중심으로 떠나는 작가 기행은 언제나 ‘몰랐던 사실의 발견’이라는 즐거움이 있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이미 본 것들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에 대해 내가 잘 몰랐던 부분을 깨닫게 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소도시나 마을을 여행할 때는 어김없이 현지 노인들의 따뜻한 친절과 해박한 지식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를, 마치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오랜 벗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대도시에서 서로 휙휙 스쳐가기만 하는 인연들 속에서는 그런 따뜻한 눈빛을 느끼기가 어렵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친절 덕분에 나는 작은 마을, 작은 도시의 매력을 더욱 흠뻑 느낄 수 있었다.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독일의 가이엔호펜에서는 “네가 이 집에 온 최초의 한국인이다”라고 반가워하시면서 입장료를 한사코 받지 않았던 할아버지도 계셨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는 발자취 속에서 나는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온갖 종류의 도록을 사 모으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미술관 탐험이었고, 그 맨 앞자리에 고흐의 도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흐의 탄생지 네덜란드 쥔데르트에서 고흐와 테오가 함께 묻힌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이르기까지 여행하면서, 나는 미술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상관없이 고흐라는 한 예술가를 향한 내 그리움과 동경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이승원

   네덜란드 쥔데르트 고흐가 태어난 곳
   
   네덜란드의 쥔데르트에서 태어난 고흐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 특이해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아이’로 낙인찍혔다고 한다. 햇살처럼 밝고 투명한 아이였던 동생 테오와는 달리, 고흐는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서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는 아이, 곤충을 채집한답시고 온 방을 어지럽히고 자연 속에서 홀로 지내는 것을 세상 어떤 장난감보다 좋아하는 아이였다. 철저히 금욕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삶을 추구했던 부모 밑에서 동네 아이들과 노는 것마저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금지당했던 고흐네 집안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고흐는 그 첫 번째 희생양이었다. 고흐의 안타까운 유년 시절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쥔데르트는 평화롭고 아늑한 고장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기차와 버스를 몇 번 갈아탄 뒤 조금 복잡하게 찾아간 쥔데르트에서 나는 도착하자마자 환영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한국인이 흔치 않았던 것이다. 고흐의 생가를 개조한 박물관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무료로 가이드투어를 소개해주셨고, 나는 뜻밖에도 훌륭한 가이드 할아버지를 만나 쥔데르트의 핵심적인 감상 포인트를 빠짐없이 방문할 수가 있었다.
   
   쥔데르트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해갔기에 당황스러운 점은 거의 없으리라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빈센트 반 고흐’라고 적힌 쓸쓸한 무덤을 만나 나는 당황했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빈센트의 무덤이 아니라, 고흐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던 큰형의 무덤이었다. 바로 빈센트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첫 아기가 사산아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빈센트는 그 죽은 아이의 이름을 따서 또 한 번 ‘다시 태어난 빈센트’가 된 것이었다. 빈센트에게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라는 뿌리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 것도 쥔데르트였지만, 동생 테오와 함께 들판을 뛰어다니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 곳도 쥔데르트였다. 쥔데르트에는 고흐와 테오가 마치 엄마 뱃속의 쌍둥이처럼 나란히 붙어 있는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다. 그 조각상을 발견하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고흐의 그림만큼이나 감동적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떠올리며 조각상을 바라보면 가난한 형을 위해 물감과 캔버스는 물론 집세와 병원비까지 아낌없이 후원한 동생을 ‘제2의 아버지’라고 불렀던 고흐의 깊은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고흐가 태어난 네덜란드 쥔데르트 생가(위)와 고흐가 살면서 화가의 꿈을 키운 벨기에 몽스. 이승원

   벨기에 몽스탄광촌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우다
   
   고흐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도시가 바로 몽스였다. 고흐가 잠깐씩 머물렀던 헤이그나 안트베르펜도 물론 멋진 도시였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벨기에의 몽스가 훨씬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바로 이 작은 탄광촌 몽스에서 고흐의 꿈이 ‘목회자에서 화가로’ 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조차 잘 알지 못하는 ‘고흐의 집’으로 찾아가는 길은 조금 어려웠지만, 우여곡절 끝에 고흐의 집에 도착한 나는 평범함에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랜드마크라고는 전혀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소박한 주택가 한가운데 고흐를 기념하는 집이 한 채 덩그러니 있었지만, 그 휑함을 달래주는 것은 바로 아름다운 숲이었다. 고흐는 이곳에서 예비 목회자로서 광부들에게 설교를 하다가 광부들의 고단한 일상과 신산한 삶의 역경에 큰 감화를 받았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좁고 허름한 집이었지만 처음으로 ‘작은 작업실’을 갖게 된 고흐는 파리나 런던처럼 수많은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대도시를 동경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딜 가도 고향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소박한 믿음이 고흐를 평생 작은 도시, 작은 마을로 떠돌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세상 한 사람만이라도 온전한 ‘내 편’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고흐였지만 끝내 배우자를 만날 수 없었던 고흐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의 안식처를 찾고자 했다. 당시에 최고의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파리지엔을 꿈꿨지만, 고흐는 생활비 걱정 때문에, 그리고 파리의 시끄럽고 복잡한 환경 때문에 오히려 몽스나 생 레미처럼 작은 도시를 선호했다. 고흐는 몽스가 속해 있던 보리나주 지방이 베네치아나 아라비아 못지않게 멋진 곳이라 생각했다. 고흐는 아무리 소박한 곳에서도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황혼녘에 광부들이 눈길 속에서 귀가하는 모습을 봤어. 어두운 갱에서 밖으로 나오는 이 시커먼 사람들은 마치 굴뚝청소부 같단다. 그들의 집은 대개 조그마한 오두막이야. 움푹한 길을 따라 숲속 비탈에 자리 잡고 있지. 여기저기서 이끼 낀 지붕이 보이고 작은 격자창들에는 포근한 불빛이 어리지.” 그는 높고 화려한 전망대가 아닌 한없이 낮고 초라한 탄광촌에서 예술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길을 탐색한다. 고흐는 좁고 어두운 갱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고난을 견디는 광부들의 삶 속에서 어떤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배운 것이 아닐까.
   
   
▲ ‘아를의 노란집’. 고갱과 고흐가 함께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터만 남았다(위). 아를의 어떤 가게에 가도 전시되어 있는 고흐의 엽서들. 이승원

   프랑스 아를최고의 작품들이 태어난 곳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아를이었다. 프랑스 남부, 작열하는 태양이 사물이 본래 지닌 최고의 빛을 끌어내는 도시 아를에서 고흐의 예술은 비로소 활짝 꽃을 피웠다. 고흐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화가 고흐’를 비로소 제2의 탄생으로 이끈 곳이 바로 아를이었다. 고흐는 말했다. 당신이 만약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이곳 아를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그저 붙잡기만 하면 된다고. 아를에서 고흐가 이룬 성취는 경이롭다. 고갱과 함께 예술가 공동체를 꾸려가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한 사람의 화가 고흐로서는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곳이 바로 아를이었다. 고갱과의 불화, 정신발작의 시작으로 인해 아를은 그에게 가장 뼈아픈 고통을 안겨준 곳이기도 했지만 이곳 아를에서 고흐의 예술은 그야말로 불타올랐다. 아를은 내면의 소용돌이처럼 요동치는 고흐 특유의 화풍이 완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건 고흐 스타일이구나!’ 하고 감탄하는 그림들 중 대부분이 아를에서 탄생했다.
   
   아를은 ‘고흐로 가는 길’ 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이다. 고흐를 기리는 기념품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고흐의 복제화들로 만든 각종 스카프, 우산, 가방, 식탁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고흐의 이미지들로 가득하지만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단연 ‘밤의 카페 테라스’다. 고흐의 걸작 ‘밤의 카페 테라스’와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맥주잔을 기울인다. 나는 이 카페가 뭔가 특별한 음식이나 엄청난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궁금했지만 알고 보니 고흐가 ‘평범한 카페’를 ‘눈부신 영혼의 풍경’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었다. 고흐는 밤하늘의 별과도 대화를 나누고, 카페 바닥에 깔린 돌멩이들 하나하나와도 대화를 나누었던 것만 같다. 고흐는 발작 때문에 점점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상태 속에서도 쉬지 않고 작업을 했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마다 들라크루아의 말을 기억해냈다. “숨이 차고 이조차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림을 알게 되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어떻게 그리는가’를 깨닫게 된 들라크루아를 뛰어넘어 고흐는 생의 한창 때에도 이미 ‘마지막 순간’처럼 힘겨운 고통을 느꼈고, 그 고통 속에서 비로소 ‘어떻게 그리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발작 때문에 두려워하면서도, 스스로 귀를 자르는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예술, 자기만의 창조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 오테를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 내부. 이승원

   네덜란드 오테를로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꼭 가고 싶어하는 곳
   
▲ 알싸한 오렌지향이 나는 고흐 기념 맥주(오테를로). 이승원
네덜란드 여행의 숨은 보석이 바로 오테를로였다. 오테를로 역시 고흐를 사랑했기에 알게 된 장소였다. 고흐가 직접 방문한 장소는 아니지만, 세계 최대의 고흐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암스테르담 반 고흐 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고흐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오테를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었다. 오직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보기 위해서만이라도 오테를로는 방문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가는 길 자체가 아름다운 여행을 약속해 준다. 암스테르담에서 반 고흐 박물관을 관람한 뒤 다음 날 기차를 타고 아펠도른(Apeldorn)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호지 벨베 국립공원(Hoge Veluwe National Park)을 가로질러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 도착할 수 있다. 이 아름다운 국립공원은 가히 자전거 여행자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하루밖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버스 여행을 추천하지만,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호지 벨베 국립공원 근처에 숙소를 잡아 며칠 더 여행하기를 권하고 싶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지만 인파에 치이지 않고 한적하게 좀 더 집중해서 고흐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곳이다. ‘밤의 카페 테라스’ ‘씨 뿌리는 사람’ ‘감자 먹는 사람들’을 비롯한 고흐의 작품들뿐 아니라 몬드리안, 쇠라, 르동, 브라크, 고갱, 피카소 등의 걸작이 전시되어 있다. 호지 벨베 조각공원은 유럽 최대 규모의 넓이를 자랑한다. 풀밭 위에 아름다운 별자리를 새겨놓듯이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상들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오귀스트 로댕, 헨리 무어, 장 뒤뷔페 등의 걸작들 곁에 자유로이 걸터앉아 한낮의 햇살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간과 자연의 행복한 조화를 느끼게 해준다.
   
   나는 조각공원이 보이는 미술관 카페에 앉아 고흐 기념 맥주와 당근 케이크를 먹었다. 고흐 특유의 힘찬 붓질로 그려낸, 한여름의 햇살을 듬뿍 쏟아넣은 듯한 맥주에서는 새콤한 오렌지향이 배어나왔다. 오테를로에 가면 누구나 만날 수 있다. 아무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는 공포,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슬픔,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외로움과 싸워 이긴 고흐의 용기와 담대함을.
   
   
▲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고흐 묘지(위)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만난 고흐 작품의 촛불. 이승원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고흐와 테오가 함께 잠든 곳
   
   우리의 하루는 ‘나’로부터 시작해 ‘나’로 끝난다. 나의 희망, 나의 직업, 나의 일상, 그리고 나의 인간관계. 모두가 ‘나’를 초점으로 진행되는 이 개인주의적 일상이 우리를 지나치게 피로에 물들게 하는 것이 아닌지. 내게 여행은 이렇게 항상 자기 감시의 표적이 되는 ‘나’로부터의 탈출이다. 현미경 아래 ‘나’라는 대상을 올려놓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하는 삶에서 벗어나, 마음의 망원경을 장착하고 더 멀리 더 많은 타인의 삶을 탐색하는 것이 내게는 여행의 묘미가 되었다. 항상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에게서 끝나는 우리 삶을, ‘타인의 삶에 대한 무한한 관심’으로 새롭게 채워 보는 것이 내게는 여행의 진정한 매력이다.
   
   수많은 고흐 투어의 장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시는 분들이 가장 쉽게 고흐의 흔적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다.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작은 다락방, 고흐를 치료하며 수많은 교감을 나누었던 가셰 박사의 정원,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 오베르 쉬르 우아즈이기에 고흐의 팬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을이다. 고흐의 삶을 떠올리며 하루 종일 천천히 마을 곳곳을 둘러보고 고흐의 무덤까지 걸어갔다가 파리로 돌아와 다음 날 오르세미술관에 가서 고흐의 원작을 감상하면, 그림에 대한 이해와 감상의 폭이 한층 깊어진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고흐의 영혼과 만난 여행자들이라면 지베르니에 있는 아름다운 모네의 정원에서 시작하여 또 다른 ‘인상파 투어’를 꿈꿔 볼 수 있다.
   
   이렇듯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을 부른다. 더 오래 추억이 되고, 더 깊은 영감을 주는 다음 여행을 계획하기 위해, 끊임없이 더 많은 것들을 공부하게 된다. ‘도대체 왜 나는 좀 더 잘해내지 못하는 걸까’ ‘내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이렇게 항상 자신을 다그치는 ‘1인칭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는 무엇을 고민했을까’ ‘그 사람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를 고민해 보는 ‘3인칭의 세계’로 이동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작가의 삶을 따라가는 마음의 여행이 되었다. 그럴 때 여행은 단순한 일상 탈출을 넘어서서 ‘자기로부터의 해방’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깊은 내 마음속을 만질 수 있는 여행은 좀 더 오랜 관심, 좀 더 깊은 공부를 필요로 한다. 맛집 탐방도 좋고 쇼핑도 좋겠지만, 우리 마음속에 조금 더 깊이 각인되는 추억을 만드는 길은 바로 내 마음을 탐험하는 여행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꿈꾼다.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아주 멀리 떠났는데,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나는 어느새 더 크고 깊어져 있는 그런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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