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여행]  기이하고 신기한 도시, 조호르바루
  • kakao 플러스친구facebooktwiteryoutube
  • 검색
  1. 문화/생활
[2590호] 2020.01.06
관련 연재물

[여행]기이하고 신기한 도시, 조호르바루

▲ 신도시인 포레스트 시티는 영화 ‘아바타’의 세계처럼 비현실적이다.
“내가 꿈꾸던 집이에요!”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어요!”
   
   모델하우스에 놓인 거대한 TV 속에서 여자들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연중 따뜻한 나라에서 골프 치고 좋은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겠어!”
   
   남자들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또는 아름다운 노년을 어디서 보낼까 고민하며 다른 나라를 꿈꾼다. 태국이건 말레이시아건 베트남이건 동남아에 드림하우스, 세컨하우스를 갖는 건 은퇴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일 아니려나?
   
   
   조호르바루에서 그리는 또 다른 인생
   
   여기 뉴질랜드야? 아니면 미국이야? 차를 타고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Johor Baharu) 외곽을 달리다 별안간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미국에서 살았던 지인 말이 생각났다.
   
   “조호르바루는 동남아가 아니라 미국 소도시 같았어.”
   
   동남아에서 이리 거대한 신시가지를 곳곳에 조성한 도시는 처음 본다. 조호르바루 어디를 가나 뉴타운이라 할 만한 고층 아파트, 주택단지가 즐비하다. 한국 신도시와 비슷하지만 곳곳에 래플스(Raffles), 섀턱(Shattuck-St. mary’s) 같은 국제학교 광고판, 면세점이 있는 게 다르다. 신축 아파트, 국제학교, 병원, 호텔, 쇼핑몰, 골프장의 6종 세트 같다. 대로변의 스타벅스는 한국과 비할 바 없이 거대한데 여기는 왠지 조호르바루가 아닌 캘리포니아 같다.
   
   싱가포르에서 조호르바루로 온 건 사실 집 때문이다. 집 보러 왔다. 한때 방콕에서 그랬듯 조호르바루에 집을 살까 궁리 중이다. 한발 앞서 조호르바루에 집을 샀다는 지인 말에 홀딱 빠졌다. 서울에서 마스크를 쓰고 살 순 없으니 탈출이라도 해볼까 싶어 종횡무진 집을 보러 다녔다. ‘테라스하우스’라 부르는 벽을 맞대고 지은 타운하우스, 위층과 아래층 두 가구로 분리되는 ‘링크드하우스(linked house)’, 그리고 아파트를 골고루 구경했다.
   
   오래 머물다 보니 친해진 호텔 직원의 신혼집도 구경했다. 외국인이라면 ‘콘도(오피스텔이나 아파트)’만 살 수 있는 방콕과 달리 조호르바루에선 테라스하우스나 링크드하우스 같은 ‘주택’을 살 수 있다. 단독주택은 아니라도 한국 아파트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드림하우스’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단독주택인 ‘방갈로’는 제법 비싸다. 부유한 중국인들이 ‘포레스트 시티(Forest City)’나 ‘이스칸다르 푸트리(Iskandar Puteri)’ 같은 신도시 집을 싹쓸이한다는 게 난감해도, 어딘가 나의 드림하우스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집은 선웨이 이스칸다르(Sunway Iskandar)의 레이크홈(Citrine LakeHomes)이란 3층짜리 테라스하우스다. 바로 옆에 국제학교가 있고, 구매자 중 중국인보다 말레이 사람이 많은 것도 특별하다. 방 4개, 화장실 3개, 주차 2대, 분양가는 82만링깃(2억3000만원).
   
   또 하나 마음에 든 집은 마사이(Masai) 지역의 세니봉 코브(Senibong Cove) 단지에 있는 방 3개, 화장실 3개짜리 아파트(The Water Edge)다. 가격은 21층의 경우 91만링깃(2억6000만원). 가격은 선웨이 테라스하우스와 큰 차이가 없는데 시내에서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아파트라지만 층고가 매우 높은 점도 한국 아파트와 다르다. 거실에서 조호르해협 너머 싱가포르가 바로 내다보이는 집이다. 딱 두 채만 남았다는데, 특별할인도 해주고, 옵션을 이것저것 해주겠다는 나이 지긋한 남자 말에 빠져 예약금부터 걸 뻔했다. 고민은 엉뚱한 데서 왔다. 신시가지 어디선가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려고 하는데 횡단보도가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다른 2차선 도로에도 횡단보도가 없다. 고층 아파트는 즐비한데 횡단보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인도는 좁다. 그럼, 도로는 오로지 차를 위해 존재하나? 조호르바루에선 늘 택시를 타야 했다. ‘시내버스’가 다닌다는 풍문은 들었지만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과 달리 이곳엔 ‘오토바이 택시’도 없다. 그럼, 차가 없는 이들은 죄다 택시를 타나? 이해가 안 된다. 집을 보러 조호르바루에 왔고, 3주를 지내며 여기에 사는 꿈을 꾸었는데 결국 나는 회의적이 되어버렸다. 좋은 집을 찾아 여기까지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엔 더 레이크뷰, 더 시프런트, 더 리버사이드, 더 파크뷰 같은 이름을 가진 좋은 집밖에 없다. 그것도 너무 많다. 좋은 집의 기준은 ‘싱가포르까지 거리’다.
   
   조호르바루 집값은 늘 싱가포르와 비교된다. 모델하우스에 가보면 조호르바루가 아닌 싱가포르가 한가운데 있는 지도가 있다. 의도는 분명하다. 우리 아파트에서 싱가포르까지 이렇게 가깝다고요! 나는 조호르바루가 보고 싶은데 사람들은 자꾸 다리 건너 싱가포르에 가라 한다. 조호르바루에 조호르바루는 없고 싱가포르만 있다. 런던에서 지낼 때가 생각난다. 이탈리아 친구 집 주방 바닥에서 잠을 자도 하루하루가 풍요로웠다. 조호르바루에선 배는 부른데, 좋은 집은 있는데 정신이 고프다.
   
   싱가포르에서 열흘쯤 지내다 조호르바루로 돌아오니 그 간극은 비약적으로 커진다. 1965년 싱가포르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낼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말레이시아의 현재는 기이하다. 구시가지도 아니고 미래도시 같은 신시가지에 변변한 서점, 미술관, 문화공간 하나 찾기 힘든데 국제학교만 스무 개에 육박한다. 조호르바루에서 다리를 건너 싱가포르 부기스로 가는 버스요금은 3.4링깃(950원)이다. 반대로 부기스에서 조호르바루로 오는 버스는 3.4싱가포르달러(2900원)다. 대충 27㎞ 정도 구간을 오가는 똑같은 버스이니 요금은 비슷할 것 같은데 실제는 세 배 차이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싱가포르가 세 배 비싸다고 혀를 내두르고, 싱가포르 사람들은 말레이시아의 값싼 물가에 싱글거리며 세컨하우스나 투자용 아파트를 사들인다.
   
   주말이면 쇼핑과 음식을 즐기러 온 싱가포르 사람들로 거리는 북새통을 이룬다. 중국계 말레이시아 친구는 싱가포르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그저 말레이시아는 싸다, 싸다고만 말하지. 그 외엔 아무 관심 없어. 조호르바루에만 오면 운전은 제멋대로 하고, 주차 위반은 예삿일이라고!”
   
   음, 나도 싱가포르 사람들과 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나도, 한편으론 말레이시아 싸다, 싸다! 하며 조호르바루에서 원 없이 식도락을 즐겼으니.
   
   
▲ 조호르바루 신시가지는 말레이시아가 아닌 미국 소도시처럼 느껴진다.

▲ 탄중피아이는 아시아 최남단의 땅끝 지점이다(왼쪽). 조호르바루에선 어디를 가나 말레이 음식뿐만 아니라 중국 음식, 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먹고 마시고 또 먹고
   
   새벽 6시, 거리는 어두운데 호커센터(Hawker Center)는 벌써 환히 불을 밝혔다. 널찍한 호커센터 한편에 앉자마자 이제 구면이 된 찻집 아주머니가 멀리서 나를 보고 검지를 펴 보인다. 매일 아침 그렇듯 “차 한잔 줄까요?” 묻는 게다. 로티 만드는 인도계 남자도 슬쩍 알은체를 한다. 조호르바루에 처음 도착해선 아파트를 빌려 한 달쯤 지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2주 가까이 똑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고, 거의 매일 새벽 6시쯤 일어나 호텔 옆 호커센터에서 차를 마시고 아침을 먹는다. 2링깃(560원)짜리 밀크티 한잔 시켜 놓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좋아 새벽에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큼직한 원형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쓰고 이런저런 정리를 한다.
   
   여기서 차를 마시면 잠시 말레이시아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국수를 시키면 바로 국수를 뽑는다.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내장이 들어간 국수다. 평소에는 내장을 잘 먹지 않는데 여기선 신선하고 깔끔한 맛에 부러 찾는다. 만둣국(wonton soup)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서 바로 빚어 정갈하게 내오는데 모두 1500원 정도다. 2000원에 남부러울 것 없이 든든하게 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말레이시아산보다 더 단맛 나는 태국산 구운 코코넛도 자주 먹는다. 코코넛 속 물은 마시고 하얀 속살은 스푼으로 깨끗이 파먹는다. 점심에는 수제비 같은 ‘미 훈 꾸웨(mee hun kueh)’나 돼지갈비탕 같은 ‘바꾸떼(bak kut teh)’를 먹고, 그릇이 작다는 이유로 한 그릇을 더 먹는다. 그 다음은 디저트다. 올드타운에 있는 100년 빵집, ‘히압 주(Hiap Joo)’에서 따끈한 바나나케이크를 사서 맞은편 커피집 ‘킨 와(Kin Wah)’로 가 연유가 들어간 중국식 커피와 슬쩍 구운 토스트를 먹는다. 저녁에는 말레이 스타일의 쌀죽(congee)과 닭꼬치 구이 또는 양꼬치 구이다. 고기나 야채 등 여러 가지를 넣은 중국식과 달리 말레이식 죽은 쌀만 쓰는데 걸쭉하지 않아 술술 잘 넘어간다. 짭조름한 야채와 소금간이 밴 오리알, 볶은 땅콩이 곁들여지는데 한 그릇을 금세 해치우고 또 한 그릇을 먹을 수밖에 없다.
   
   KSL 쇼핑몰 앞거리에서 월요일에만 열리는 차이니스 마켓을 구경하다 먹은 파인애플도 잊을 수 없다. 한국에서 먹는 바나나, 파인애플은 진짜 바나나, 진짜 파인애플과 완전히 다르다. 조호르바루의 ‘베이비 파인애플’은 입에서 살살 녹을 만큼 부드럽고 과즙이 많다. 말레이시아에선 어느 호커센터를 가나 말레이 음식뿐만 아니라 중국 음식, 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히잡을 두른 말레이시아인과 중국인, 진한 피부색의 인도인, 그리고 외국인인 내가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는다.
   
   가끔은 신시가지의 버거킹, 서브웨이, 스타벅스에 간다. 조호르바루에선 간혹 스타벅스라는 익숙한 공간마저 낯설다.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히잡을 쓴 여인들이 자리한 공간에서 이국의 공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창밖은 새 건물 일색, 간판은 영어 일색이다. 하늘색 수채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 아래 창가에 자리를 잡고 광활한 하늘을 본다. 오후 7시6분,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여기는 조호르바루의 신시가지 마사이(Masai)의 스타벅스 세리 알람(Seri Alarm)점.
   
   
   아시아 땅끝을 찾아서
   
   조호르바루에서 집 보고 밥만 먹으러 다니진 않았다. 아시아 대륙의 서남단 지점도 찾아갔다. 말레이반도 최남단이자 ‘유라시아 서남단’ 지점을 품은 ‘탄중피아이(Tanjung Piai)’가 조호르바루에서 멀지 않다. 내가 아시아인이니 아시아 땅끝에는 한번 가봐야지 않겠는가! 조호르바루에서 탄중피아이까지 거리는 대략 80㎞인데 중간에 쉬면서 갔더니 2시간쯤 걸렸다. 아시아 대륙의 끝에 가자, 하고 조호르바루에서 우연히 알게 된 중국계 말레이시아 친구인 제이슨에게 말했을 때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아시아 대륙 끝은 싱가포르 아냐?”
   
   싱가포르 바로 옆에 사는 그조차 싱가포르가 섬이란 사실을 잊고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인 제이슨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탄중피아이에 가기로 한 날 아침, 제이슨은 바캉스 떠나는 아저씨 차림으로 나타났다. 아이스박스에 맥주를 잔뜩 담아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나타난 그를 보니 나보다 그가 더 들뜬 게 분명하다. 제이슨을 밀쳐 내고 내가 운전석에 앉았다. 손수 차를 몰고 아시아 대륙의 끝, 거창하게 말하면 ‘유라시아 대륙의 최남단’ 지점을 향해 달리고 싶다. 온갖 경계를 넘으며 세상의 끝을 좇는 여행자로선 흥이 날 수밖에 없다.
   
   수백 년 전 유럽인들은 말라카해협을 따라 말레이반도 끝 어촌 마을인 쿠쿱(Kukup)을 지나 탄중피아이를 끼고 조호르해협으로 들어선 후 싱가포르에 이르렀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지나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홍콩, 중국으로 들어서는 아시아의 관문이 바로 탄중피아이다. 동남아 식민의 역사를 말할 때 늘 언급되는 곳이지만 막상 눈앞에 마주한 탄중피아이는 뜻밖에도 국립공원이다. 맹그로브 나무가 주변을 감싼다. 처음 보는 ‘말뚝망둥어(mudskipper)’가 눈길을 끈다. 어류이지만 지느러미로 땅 위를 날렵하게 기어다니고 눈은 360도를 볼 수 있다. 아시아의 끝에 이르렀다는 소회에 빠지기도 전에 망둥어 재롱이 나를 웃게 한다. 탄중피아이 바다는 누렇거나 회색빛이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화물선이 탄중피아이 바다에 떠 있다.
   
   포르투갈 바다에서 본 유럽 땅끝의 장엄함과 달리 어수선한 풍경이다. 조호르바루 모델하우스에서 본 신도시 모형이 생각난다. 반듯하게 정돈된 주택 단지의 거대한 모형이 왠지 기이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서양을 향한 아시아의 욕망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너무 인공적이고, 너무 집단적인 탓일까? 생활비도, 집값도 한국 절반도 안 된다는데, 좋은 집에 대한 욕망은 간절한데 조호르바루의 완벽한 인공도시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