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 실린 이탈리아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이야기를 읽어보셨는지요? 지난 7월 8일 구글은 이 여성 화가의 탄생 427주년을 기념해 화가 이미지를 로고에 올렸습니다. 16~17세기에 살았던 이 여성은 젊은 시절 스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아픔을 딛고 화가로 대성한, 최근 새롭게 주목받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7월 8일은 공교롭게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날입니다. 구글이 이날 박 전 시장이 피소된 사실을 알았을 리 없을 텐데 우연히 ‘미투운동의 선각자’로 평가받는 여성으로 홈페이지를 장식한 겁니다.

사실 저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누구인지, 왜 구글 로고에 오래된 역사적 인물의 이미지가 올랐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여성 화가를 둘러싼 사연을 알게 되면서 시의적절하다고 판단해 지면에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자유기고가 우태영씨가 쓴 이 여성 화가 스토리를 처음 접하면서 느낀 것은 당혹감이었습니다. 400여년 전에 벌어진 한 여성의 법정투쟁이 불러오는 기시감 때문이었는데, 지금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2차 가해, 그리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변명과 궤변이 놀랍게도 400여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림을 배우던 18세의 제자를 성폭행한 스승은 줄곧 젠틸레스키를 ‘헤픈 여자’로 몰아갑니다. 야한 편지를 써서 여러 남자를 유혹하는 등 창녀와 다름없었다는 식으로 공격합니다. 매수된 증인들도 젠틸레스키가 누드 모델로 활동한 창녀였다고 말합니다. 재판의 초점은 급기야 그녀가 처녀였는지 아닌지로 흘러갑니다. 무려 7개월간 진행된 재판에서 엄청난 모멸을 당하면서도 젠틸레스키는 시종 당당하게 자신의 피해를 밝혀나갑니다. 결국 글도 배우지 못했던 젠틸레스키가 남자를 유혹하는 편지를 썼다는 둥 거짓말을 일삼던 스승은 유죄판결을 받습니다.

이 스토리는 등장인물과 시대만 다를 뿐 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과 골격과 외관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해자인 남성에게는 그럴 리 없다거나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그럴 수 있게 한 원인 제공자라는 식의 구도가 예나 지금이나 되풀이됩니다. 피해 여성은 강제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나 ‘잠재적 무고자’가 돼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선정적일 정도의 구체적인 진술과 모든 것을 내걸고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나설 때에야 그나마 진실성을 담보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당장 박원순 전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를 향해 “4년간 뭐하다가 이제 신고하느냐”는 막말이 나옵니다. 또 “근데 자기는 숨어가지고 말야”라면서 얼굴을 드러내라고 압박합니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가 젠틸레스키가 400여년 전 섰던 치욕의 법정을 그대로 호출하고 있습니다. 반면 가해자를 향해서는 ‘맑은 분이셨다’ ‘그런 짓을 할 리 없다’는 평가가 예사로 나옵니다.

이 익숙한 구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권력형 성폭력의 사슬을 끊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더 강구되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성인지감수성을 높이는 각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성인지감수성은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묻는 이번 호 기사를 보면 성인지감수성은 끊임없이 성찰하고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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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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