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이 종소리로 울릴 때나는 비로소 땀이 노동이 되고눈물이 사랑이 되는 비밀을 알았습니다.낮에는 너무 높고 눈부셔 볼 수 없었던 당신을이제야 내 눈높이로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너무 가까워 노을빛이 내 심장의 피가 됩니다.저녁이면 길어지는 하루의 그림자를 근심하다가 사랑이 저렇게 붉게 타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사람의 정이 그처럼 넓게 번지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종이 다시 울려면 바다의 침묵이 있어야 하고내일 해가 다시 뜨려면 날마다 저녁노을 져야 하듯이내가 웃으려면 오늘 울어야 하는 것을 이제 압니다.내 피가 생명의 노을이 되어
“나는 천리마가 아니라 백락(佰樂)이야.”‘이어령의 창조이력서’ 마지막회 인터뷰의 첫마디다. 마지막에는 늘 슬픔이 따른다. 무언가 아련하고 가슴 조이는 저녁노을 같은 언어를 기대했던 기자에게는 너무나 삭막한 선언이었다.“겸손으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나는 하루에 십 리도 못 달리는 노마(駑馬)지만 천리마(千里馬)를 알아보는 눈은 있지.”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처 몰랐던 이어령의 또 다른 얼굴. 그의 문화적 공적은 안팎으로 뻗어 있다. 그는 ‘문화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숨어 있던 천재를 세상에 알리고 추임새를 하고 손뼉을
“생명자본주의와 AI(인공지능)가 만나면 놀라운 파괴력이 나와요. 앞 못 보는 사람이 성한 사람처럼 운전대에 앉아 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거지. 오늘은 그런 얘기를 하자고.”창조이력서 마지막회를 한 회 앞두고 만난 지난 12월 2일 이어령 교수는 곰삭여뒀던 주제를 꺼냈다. 이어령 창조이력서의 결정판이라 할 만한 ‘디지로그’와 ‘생명자본’. 이어령 교수는 굵직한 새 시대의 패러다임을 던져왔다. 컴퓨터가 막 대중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정보화사회의 새 패러다임으로 ‘디지로그’를 제시했고, 인구절벽이 국가적 어젠다
“한국 사람은 무엇이든 잘 버려. 쓰레기 버리듯 마구 버리지.”만나자마자 이어령 교수가 던진 일침이다.“말끝마다 버리잖아. 내버려에서부터 시작해서 먹어버려, 쓸어버려, 잡아버려, 잊어버려…. 무언가를 결단하거나 포기할 때에도 버리라는 말이 따라붙지. 심지어 버린다를 겹쳐 ‘버려버려’라고 해.”그는 ‘버려’의 수십 가지 예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어조를 바꾼다.“그런데 말야, 한국인은 절대로 버리지 않는 민족이야. ‘버려둬’라는 말이 있잖아.”반전이다. 늘 그렇지만 오늘도 이어령 교수는 반전, 뒤집기의 전략으로 시작했다. ‘버리다’와 ‘
옹알이를 하며 말을 배우듯아가야 이제는 젓가락을 쥐거라.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천 년 전 똑같이 생긴 이 젓가락으로음식을 집으셨지. 그리고 젓가락처럼 늘 짝을 이루어함께 일하고 사랑하며 오랜 날을 지내셨단다.아느냐. 아가야 젓가락이 짝을 잃으면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네가 젓가락을 잡는 날오랜 역사와 겸상을 하고신라 사람, 고구려 사람, 백제 사람 그리고한국인이 되고 아시아인이 되는 거란다. 아가야 들리느냐 부엌에서 도마질하는 어머니먹기 좋게 음식을 썰고 다지는 그 마음의 소리 있어오늘도 우리는 먹는다. 젓가락 숟가
이번 호는 새천년준비위원장 시절 두 번째 숨은 얘기다. 지난 10월 21일에 만난 이어령 교수는 팩트를 꼼꼼히 체크해달라고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먼 훗날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날줄로 써가는 대한민국 문화사의 곳곳에 씨줄로 엮이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황무지 같았던 문화의 텃밭에 씨앗을 뿌리고 움을 틔워서 문화의 네 기둥을 세우고 생명이 숨 쉬는 문화의 전당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오늘은 유독 예열시간이 길었다. 밥 딜런 때문이다. 본격 창조 이야기를 펼쳐보이기 전, 밥 딜런 이야기는 20분 넘게
“창의성 경쟁이었지. 새 천년이 갈라지는 순간, 묵은 천년이 저물고 새 천년의 문이 열리는 0.1초의 그 순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두고 전 세계가 경쟁을 벌였어. GDP 경쟁이 아니라 지혜의 경쟁, 아이디어의 올림픽이었던 거야.”이어령 교수는 16년 전의 이야기를 꺼냈다. 2000년 1월 1일 0시0분이 되는 순간. 천년에 딱 한 번 맞닥뜨리는 새 천년 첫 순간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는 감회에 젖었다. 예의 그 표정이다. 한 줄 문장으로 쉽게 쓸 수 없는, 창조이력서의 결정적 순간을 설명할 때 보이는 눈빛이다. 눈빛은 아득했고
벌써 창조 이력서 열여섯 번째.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이어령 교수를 면 대 면으로 만난 것이 어느덧 20차례를 훌쩍 넘는다. 이제 궁금증의 우물이 바닥을 드러낼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그 숱한 행적의 고비고비마다 새로운 물음표들이 생겨났고, 그 물음표들은 자가증식해갔다. 문화부 장관 시절만 해도 그렇다. 처음엔 2회로 예정돼 있었지만 3회, 4회로 늘었다. 그런데도 아직 궁금한 게 많다.문화부 장관 시절, 대통령과의 관계도 궁금했다. 문인·교수 출신 장관으로서 대통령과의 사이는 어땠을까. 그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절 문화부 장
“나는 강연이나 연설을 할 때 늘 시간을 어기고 초과하는 결점이 있어요. 그런데 내 평생 가장 빛나는 딱 5분의 스치피였지. 그것도 그해 마지막 국무회의 석상에서 내 마지막 국무위원으로서 한 발언이에요. 최후의 5분 스피치로 예술학교 설립 법안을 통과시켰거든. 그 스피치로 오늘의 ‘한예종’이 태어나게 된 거지.”문화부 장관 시절의 뒷얘기 마지막 시간. 이어령 교수는 이날 근엄한 장관님 얼굴이 아니었다. 도무지 심각한 구석이 엿보이지 않았다.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보였다. 주제 때문이다. ‘창조 이력서’의 주제에 따라 인터뷰 분위기가
“창조는 거창한 것이 아니여. 생활의 밑바닥에서 창조적 상상력이 우러나올 때가 많지. 우리 어렸을 때 생각해봐요. 팽이 돌리고 자치기하고 마당에서 뛰놀면서 인생과 예술을 배웠잖아. 문화는 그런 거지. 일상 속에 스며 있는 작은 감동과 아름다움.”오늘은 문화부 장관 시절 두 번째 뒷얘기다. 이어령 교수의 표정은 이날 유독 부드러웠다. 예리한 눈빛을 쏘며 학자적 논리를 펴기보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표정을 자주 지었다. 슬픔을 품은 단조 음성이 잦았다. “오늘은 눈물겨운 이야기예요. 내가 문화부 장관을 하면서 세 번 울었는데, 그 첫
[image1]“목수의 심정이었지. 광야에 집을 지으러 가는 목수. 목수의 운명은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이에요.”이어령 교수는 초대 문화부 장관직을 맡은 심경을 목수에 비유했다. 그간 창조이력서를 통해 이어령 교수를 만나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이력이 바로 ‘문화부 장관’이었다. 사각형, 틀, 고정불변, 선입견과 편견, 권위주의, 관료주의, 그리고 정치. 이어령 교수가 질색하는 것들이다. 관직과 이어령. 그의 평소 사고방식대로라면 의외의 이력이다. 그가 교수 시절 교수회의에도 잘 참석하지 않고, 보직도 맡기 꺼려
“우리 것만 고집해서도, 외국 것에 경도되어서만도 안 돼. 글로벌리즘(globalism)과 로컬리즘(localism)이 합쳐져야 하지. 일명 ‘글로컬리즘(glocalism)’. 극과 극의 것을 배척하지 않고 끌어안고 결합시켜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와요.”글로컬리즘. 이 생소한 조어는 기시감이 있다.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를 결합한 디지로그(digilog)! 이 역시 이어령 교수가 탄생시킨 조어다. 그는 2006년, 후기 정보사회의 키워드로 ‘디지로그’를 선언하면서 차가운 디지털의 대척점에 있는 따듯한 아날
리우올림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88올림픽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에게 88서울올림픽의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몸으로 겪어낸 세대에게 88올림픽은 그 이름만 들어도 울컥하는 감동의 드라마로 각인돼 있다. 88올림픽 관련, 아직 궁금한 속 얘기들이 숱하게 남았다. 당시 개폐막식에는 기존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아이디어를 녹여 화제가 됐다. 지난 창조이력서에서 다룬 ‘굴렁쇠 소년’ 이야기가 그렇고, 특이한 점화방식과 성화대, 폐회식에서 선보인 나타났다 사라지는
벌써 연재 10회. 그런데 이어령, 하면 떠오르는 창조의 트레이드마크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88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 말이다. 사실 그간 몇 번 재촉했다. 굴렁쇠의 숨은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그때마다 그는 “아직 때가 아니여”라며 손사래를 쳐 왔다. 오늘도 ‘굴렁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내가 말하면 자화자찬이 될 테니 남들이 쓴 글을 읽어보고 그냥 지나갑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2~3회에 걸쳐 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그냥 넘어가자니. 기자는 전에 없이 반발했다. “안 되죠. 요리를 먹는 게 아니라 요리를 만든
이어령, 하면 이 책을 빼고 논할 수 없다. 일본 문화 비평서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일본어로 먼저 써서 한국어로 번역 출간한 이 책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이다. 외국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한국인의 첫 저작물이라는 점이 그렇고, 외국인이 쓴 일본문화론(論) 고전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과 비견된다는 점도 그렇다.1982년 출간돼 35년이 지났지만 이 책의 인기는 여전하다. 두고두고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는 서평이 줄을 잇는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문명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다음 인터뷰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식사하면서 하자구.”그리고 2주 뒤,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이어령 교수의 단골 한정식집에 마주앉았다. 허언(虛言)을 하지 않는 그다웠다. 3층 창밖으로 보이는 5월의 신록에 눈이 시렸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나타난 이 교수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입을 뗐다. “인공지능이 말이지….” 인공지능에서 딥마인드로, 구글의 기업문화에서 한국의 폐쇄적 문화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향연은 20여분간 이어졌다. 자연스럽고 쉼 없다. 창조이력서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꼭 이런 ‘예열’ 시간이 있다. 서론이자 징검다리의
일곱 번째 연재 인터뷰는 공간을 옮겨서 진행되었다.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가 아니라 영인문학관이다. 이어령 교수의 부인 강인숙 교수가 관장으로 있는 곳이다. 연구소와 문학관은 모두 종로구 평창동 산중턱에 있다. 두 곳의 직선거리는 불과 251m. 물리적 거리로 치자면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로 치자면 먼 거리다. 두 사람이 57년간 동행자이면서 각자 일을 하며 살아온 삶의 거리가 이 같지 않을까.인터뷰는 영인문학관 아래층에 있는 자택의 거실에서 했다. 소파에 앉으니 전면의 널찍한 통창으로 인왕산이 내려다보였다. 거실의 두 벽은 온통 책이
“창조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요? 파괴지. 창조와 파괴는 동전의 양면 같은 거여. 경제학자 슘페터가 쓴 ‘창조적 파괴’라는 표현이 딱이지. 창조를 하려면 먼저 파괴를 해야 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창조적 파괴라는 모순어법이지. 우리는 모순어법을 많이 쓰는 민족인데, 창조적 파괴는 잘 못해. ‘좋아서 죽겠다’는 민족이잖아.(웃음)”창조와 파괴. 이어령은 여섯 번째 연재에서 창조와 파괴라는 두 톱니바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창조’와 ‘파괴’는 늘 붙어 다니지만 동시에 작용할 수 없다. 늘 시간 차를 두고 나타난다. 순서는 파괴가 먼
이어령은 하나의 타이틀에 가둘 수 없는 사람이지만 늘 글쟁이였다. 그의 60여년 글쟁이 인생의 처녀작, 첫 출판물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다섯 번째 창조 이력서에서 처녀작에 대한 고백을 했다. 그는 자신의 처녀작에 대해 ‘슬프고도 우스운 출생의 비밀’이라고 표현했다. 출생의 비밀은 그의 청춘 시절 사랑 이야기에서 시작된다.“청춘을 방공호의 어둠 속에 묻었던 시절인데 왜 자꾸 사랑 이야기를 하라는 거여? 그리고 사랑만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거 아닌가. 소설에서라면 몰라도….”청춘(靑
네 번째 연재를 위해서 이어령 교수를 만난 지난 3월 11일, 서울 평창동에 있는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는 소란스러웠다. 한 일간지의 기자 세 명이 인터뷰 중이었고, 안쪽 연구실에는 또 다른 팀이 대기 중이었다. 전화벨도 수시로 울렸다. 그동안의 연구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다 알파고 때문이었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지나서야 그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어이쿠, 미안합니다. 바둑도 두지 못하는 나한테까지 알파고 녀석의 불똥이 튈 줄이야.” 그리고 혼잣말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가 떠들어야 할 건 인공지능(AI)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