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은 비영리단체 '뉴웨이즈(NEWWAYS)'와 함께 6·1 지방선거 전까지 '청년 정치인을 찾습니다'는 연재를 싣고 있다. 이번은 10번째 주인공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찬래(21)씨는 강원도 동해시에서 태어나 초·중·고교 시절을 모두 이 지역에서 보냈다. 그가 학창시절 관심 가졌던 건 다름 아닌 ‘음악’. 구체적으로는 트로트와 민요였다. 8살이란 나이에 지역에서 ‘트로트 신동’이란 별칭을 얻으며 각종 행사와 방송 프로그램을 누볐다. 그의 재능은 국내 유명 국악인들 눈에까지 띄었다. 김씨가 ‘경기민요’를 전수받게 된 배경이다. 김씨는 강원도 소재 대학에 진학해 관련 음악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있지만, 고향인 동해시엔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고 느낀다. 그는 “교육 접근성을 비롯해 청년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다. 나를 비롯한 청년이 지역에서 꿈을 키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 외지로 빠져나가는 이유다. 강원도에도 청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봤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씨는 오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강원도 동해시의원(나선거구) 후보로 나선다. 강원도 역대 최연소 지방선거 출마자다.

 

“음악 공부하며 지역 한계 느껴” 

김찬래씨가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하게 된 데에는 그의 어머니 영향이 컸다. “원래 어머니의 꿈이 가수였다. 트로트를 상당히 좋아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따르면서 자연스레 나 또한 트로트를 익히게 됐다. 지난 2008년 8살 때 KBS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삼척시 편에 출연해 인기상을 수상한 이후 ‘아침뉴스타임’ ‘아침마당’ 등의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됐다. 지역에선 ‘트로트 신동’ ‘리틀 박성철’ 등으로 불렸다. 각종 지역 행사에도 다수 참여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당시 트로트에 대한 그의 관심은 ‘민요’로까지 번졌는데, 그 계기는 ‘강원민예촌’ 동해지부에서 주말마다 하는 ‘민요교실’ 참여였다. 당시 그는 민요를 처음 접하곤 트로트와의 접점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꼈다. “시김새나 꺾임 등의 기교가 신기했다. ‘무슨 노래일까’라는 호기심은 흥미로 뒤바뀌었고 지금의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민요 이수자 김선란 선생님, 경기민요 전승교육사인 이호연 선생님과의 연을 만들었다.”

김선란, 이호연은 내로라하는 유명 국악인들. 이들은 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봤고 민요를 전수받기를 권유했다. 이에 그는 김선란을 거쳐 현재는 이호연의 경기민요 전수생으로 있다. 그가 가장 행복할 때는 민요를 부르고 들을 때라고 한다.

하지만 김씨의 이런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 학구열은 그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에서 모두 채우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관련 교육만 해도 모두 서울에서 이뤄졌다. 이를 받기 위해선 매주 왕복 6시간 거리의 서울을 오가야 했다. 하지만 이건 김씨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진로를 고민하는 주변 친구, 선후배들 또한 비슷했다. 이에 김씨와 그의 동기들은 지역에서 나름 자립 활동에도 나섰지만 실망과 상처만 느꼈다고 한다.

“2018년 지역에서 뭐라도 해보자라는 취지로 친구, 후배들 50여명이 모여 ‘슈퍼비(SuperB) 청소년자원봉사단’을 조직했었다. 1365자원봉사포털에 해당 단체 등록 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매년 불우이웃돕기 음악회를 열어 후원금을 모아 모두 기부했다. 사랑의 쌀·연탄 나눔, 위안부 소녀상 설치 캠페인, 평화문화역사공원 조성 서명운동 등도 했었다. 지도교사의 도움이나 재정적 지원 없이 모두 자체적으로 시행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역에선 우리의 어린 나이 때문인지 이를 마냥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는 기성 단체에서 우리가 시행한 프로젝트를 뺏어다가 홍보하기도 했다. 그때 체감했다. 누군가는 강원도에서 청년이 설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피선거권 연령이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고, 이것이 그의 지방선거 출마 결심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때다 싶었다. 누군가는 용기 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지금이 그 목소리에 가장 큰 힘이 실릴 때라 봤다.”

 

“뛰어넘기 어려운 ‘어린애’ 편견” 

사실 김씨는 이번 지방선거 출마에 앞서 2020년 민주당 당원 가입 후 지역 당내 활동에 앞장서 왔다. 그가 당에서 맡은 직책만 해도 민주당 전국청년위 운영위원, 민주당 전국청년당 청년특보단 중앙특보, 민주당 강릉시지역위 대학생위원장, 4·7 보궐선거 박영선 서울특별시장후보 청년온라인 특별위 특보, 동해태백삼척정선 선거대책위 정책위원, 20대 대선 이재명 후보 직속 정무특보단 정무특보 등 다양하다.

“민주당을 택한 건 민주당의 정치적 이념보다는 민주당이 청년에게 내준 기회와 공간 때문이었다. 국민의힘과 비교했을 때 민주당은 지역에서 각종 청소년 포럼, 청년위원회 등과 연계해 젊은 층과의 협업, 교류에 힘썼다. 국민의힘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씨가 민주당 소속 청년 정치인으로 지역에서 성장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지역에서의 경험이나 네트워킹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정치적으로 함께하거나 지도해줄 사람 찾기부터가 어려웠다. 당내에선 ‘어린애가~’ ‘대학생이~’ 등의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후원회 설립도 쉽지 않다. 현행법에 따르면 후원회 등록을 위해서는 후원회장, 회계 총무, 운영위원 등을 선임해야 하는데 정치 신인 입장에선 이에 적합한 인물을 구하는 것조차 과제다. 공천 과정 또한 좀처럼 알 수 없다. 나선거구는 경선 혹은 단수 공천 논의가 몇 번이고 오갔고 결과를 번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역위원장을 비롯한 당 윗선에 나의 목소리를 내기란 불가하다.” 지역에서 김씨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치인은 박남순 강원도의원 후보(전 동해시의원) 정도였다고 한다.

김씨가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시의원 후보로 나서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해시는 10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문화도, 인프라도, 정책도 모든 게 똑같다.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의회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 본다. 시민을 위해,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청년을 위한 제도 손질이라 생각한다. 청년이 자립하고, 청년이 잘살 수 있는 동해시로 만들고 싶다. 나의 정치 출사표가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될 거라 확신한다.”

그가 당에 바라는 점은 다음과 같다. “강원도를 비롯해 전국에서 경선도 못 해본 채 그대로 컷오프된 청년들이 수두룩하다. 당초 청년을 적극 공천하겠다는 당의 방침과는 상반된 결과다. 당에서 적극적으로 이런 지역 상황을 살펴주길 바란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경쟁하고 싶다.”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