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연설 중인 바이든 미국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연설 중인 바이든 미국 대통령. photo 뉴시스

19세기 프로이센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국내 정치의 연장이자 또 다른 수단”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유명한 말은 이제 좀 보완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100일이 넘도록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논란이 일었다. 이제 먼 곳에서 발발한 남의 전쟁까지 국내 정치의 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대표가 우크라이나 방문을 통해 노린 국내 정치적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동맹국인 미국이 관련되어 있고 동아시아에도 영향력이 큰 러시아가 당사국인 만큼 윤석열 정부는 노련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이 대표의 현지 방문이 여당 내부와 정부 일각에서도 논란을 빚었다는 것은 정부가 사전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정부의 외교권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이 대표가 우크라이나 방문을 국내 정치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여긴 배경일 것이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위정자들은 강자인 러시아에 맞서 용기 있게 싸우는 정의의 사도로만 그려져 왔다.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거나 동정하는 것 역시 정의로운 행동으로 받아들여졌고 급기야 정치인이 응원차 방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크라이나 위정자들도 이번 전쟁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은 나토(NATO) 가입을 밀어붙이면 러시아가 100% 침공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지 않아 1000만 난민과 국토 파괴를 초래하고 말았다. ‘러시아는 악(惡)이고 우크라이나는 선(善)’이라는 프레임으로만 이번 전쟁을 들여다보면 이런 측면은 가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선과 악의 프레임으로만 재단할 수 없다. 따라서 조지 케넌, 헨리 키신저, 존 미어셰이머, 마이클 오핸런 등 미국을 대표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이 이번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귀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먼저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전쟁의 배경을 잘 드러내주는 그의 통찰은 하버드대 박사 학위 논문인 ‘회복된 세계(A World Restored)’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가장 평화로워 보이던 시대들은 가장 평화를 추구하지 않았던 반면, 평화를 추구하는 시대들은 가장 평화롭지 않았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미군 주둔을 가장 우려”

이 말이 이번 전쟁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키신저가 영국 외상 케슬레이와 오스트리아 외상 메테르니히가 이끌던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련돼 있다. 19세기 초 유럽의 평화를 이끌었던 이 두 정치가는 ‘항구적 평화’가 아니라 ‘달성될 수 있는 안정’을 추구했다. 만약 그들이 항구적 평화를 추구했다면 오히려 전쟁 등으로 불안정하고 평화롭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그들의 시대가 평화로울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오늘날의 세계가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 것은 미·러 강대국 간 외교가 그 때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글로벌 패권국인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여전히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움켜쥔 에너지 강국 러시아를 상대로 안정이 아닌 항구적 평화를 추구해 왔다. 무엇보다 서유럽과의 안보 동맹인 나토(NATO)를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우크라이나까지 확대함으로써 러시아에 의한 군사 위협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는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4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러시아는 첫 번째 시도 때는 후르쇼프 전 수상이 우크라이나에 선물로 준 크름반도를 강제 병합하는 선에서 경고하고 전면 침공은 자제했다. 하지만 이번엔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을 선택했다. 이는 미국의 두 번째 시도를 막지 못할 경우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선에 미군이 주둔하는 사태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 카네기평화재단의 로버트 케이건은 저서 ‘역사의 귀환과 깨진 꿈(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미군이 주둔할 가능성을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나토의 우크라이나 확장 카드를 다시금 꺼내들게 된 배경과 관련해서는 미 하버드대의 스티븐 월트가 저서 ‘미국 외교의 대전략(The Hell of Good Intentions)’에서 미 이상주의 외교 엘리트 그룹으로 지목한 ‘블롭(the Blob)’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 블롭은 냉전 종식 이후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미 외교 정책을 주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유주의적 가치 확산을 위한 체제 전환 전쟁을 벌여왔다.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전략을 추진했던 블롭이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 외교의 전면에 재등장함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재추진됐다는 분석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의 날’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의 날’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재등장한 블롭이 나토 동진 밀어붙인 이유

키신저는 앞의 책에서 항구적 평화를 통한 절대적 안전에 대한 한 국가의 욕망은 모든 다른 국가들에 절대적 불안정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절대적 안전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나토를 확장해 국경선에 미군을 배치하려는 미국과 서유럽의 욕망이 러시아에는 절대적 불안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도 러시아와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다. 미 오하이오주립대의 존 뮐러는 저서 ‘전쟁의 어리석음(The Stupidity of War)’에서 “미국은 만약 러시아가 멕시코와 캐나다와 동맹을 체결하고 미국 국경선을 따라 군사 기지들을 세우기 시작한다면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미국의 현실주의자들은 그동안 푸틴의 위험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은 저서 ‘평화시대의 전쟁론(The Art of War in an Age of Peace)’에서 “푸틴의 목표는 러시아의 글로벌 강국 지위를 회복시키는 것이지만 그의 외교 정책에는 특별한 게 없다”면서 “그는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데 강점이 있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할 뿐 글로벌 정복자는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미 조지타운대 앙겔라 스텐트의 평가도 비슷하다. 그녀는 저서 ‘푸틴의 세계(Putin’s World)’에서 푸틴은 “마키아벨리적 3차원 글로벌 체스보다는 유도를 닮은 지정학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실책으로 공백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합리적 비용과 리스크 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나토의 동구 확장은 가장 치명적인 외교 실책”

미국의 현실주의자들은 이번 전쟁 이전부터 나토의 우크라이나 확장을 통한 대러 항구적 평화 전략의 추구가 초래할 리스크에 대해 우려해 왔다. 더구나 푸틴의 러시아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위협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충분히 공유해 왔다. 그렇다면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이어질 것이 명백하게 예상됐던 나토의 우크라이나 확장을 왜 추진했던 것인가.

나토의 동유럽 확장 전략을 미국에서 가장 먼저 비판한 사람은 대소 냉전 전략인 ‘봉쇄(containment)’를 기획한 케넌이었다. 케넌은 클린턴 행정부가 1995년 들어서면서부터 나토의 동유럽 확장 전략을 본격 추진하고 나서자 1997년 2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나토의 동구 확장은 탈냉전 시기에 미 외교 정책의 가장 치명적인 실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케넌은 1996년 10월 나토의 동구 확장을 주도하던 스트로브 탈보트 국무부 부장관의 공개 강연장에 참석해서도 앞서의 경고를 다시 제기했다.

나토의 동구 확장에 대한 케넌의 비판은 키신저와 맥락이 같다. 케넌은 저서 ‘미국 외교 50년’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전쟁을 해서도 안 되고 유화 정책을 추진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요한 말을 했다. “윤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상대 국민 전체의 태도와 전통, 또는 정권의 성격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라면 군사적 수단만으로, 또는 단기간에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특히 전면적인 승리라는 개념은 과거에 우리에게 가장 큰 손해를 끼쳤고, 미래에도 가장 큰 손해를 야기할 망상이다.”

케넌이 이 책에서 사용한 ‘전면적인 승리’의 개념은 키신저가 앞의 책에서 표현한 ‘항구적 평화’의 개념과 다르지 않다. 두 거장 모두 핵무기와 ICBM, 에너지 강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전면적인 승리와 항구적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비극을 낳는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가 독일 통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부시 행정부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비롯한 소련 지도부를 상대로 추구한 ‘안정과 절제’ 또는 ‘제한적 승리’ 덕분이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장벽 붕괴 직후 베를린으로 날아가 소련의 실패 현장을 축하해주라는 모든 제의를 거부하고 소련이 느끼고 있을 제국 붕괴로 인한 당혹감을 이용하지 않는 등 ‘솜씨 있는 외교’를 추구했다. 월트는 앞의 책에서 당시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고르바초프에게 장벽 붕괴 이후 나토의 동진은 1㎝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전한다.

미국의 대러 전략은 클린턴 행정부 이후 트럼프를 제외한 모든 행정부에서 나토의 동유럽 확장을 통한 항구적 평화 또는 전면적 승리의 추구로 이행해 왔다. 키신저는 저서 ‘세계질서(World Order)’에서 클린턴이 취임 첫해인 1993년 유엔 연설을 통해 부시의 대(對) 소련, 중국, 이슬람 제한적 승리 정책을 뒤집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클린턴이 자신의 외교 정책은 봉쇄가 아니라 ‘확장(enlargement)’이라고 천명함으로써 세계가 탈냉전 시대 들어 다시금 이념과 군사적 대립과 갈등의 시대로 이행하게 됐다고 비판한다. 확장 정책은 대러시아의 경우 나토의 동구 확장으로, 대중국의 경우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개혁 압박으로, 대이슬람의 경우 서구 가치 확산으로 추진됐다. 이슬람권에서는 서구 가치의 확산으로 인한 위기감에 지하디즘의 반발이 고조됐고 이는 결국 2001년 9·11테러 사태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 시가지. photo 뉴시스
러시아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 시가지. photo 뉴시스

체제 전환을 통한 ‘역사의 종식’이 소명

미국의 대러 항구적 평화 전략은 클린턴 행정부가 1996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나토의 동유럽 확대 외에 다른 정책으로도 추진됐다. 월트는 앞의 책에서 2002년 부시 행정부가 미·소 반(反) 탄도미사일 협정인 ABM에서 탈퇴한 뒤 동구에 ICBM 배치를 결정한 것이 그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마이클 만델바움도 저서 ‘임무 실패(Mission Failure)’에서 “미 외교의 실책은 나토 확대와 발칸 사태 개입, ABM 탈퇴 등의 추진으로 러시아가 자국 안보가 미국과 서구에 의해 위협받고 냉전 종식의 정신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대러 항구적 평화 전략은 모두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쇠퇴해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와 관련, 오핸런은 위의 책에서 이렇게 비판한다. “최근 미국 내 다수의 전략 서클들은 중국은 증대되는 위협으로 인식하는 반면 러시아는 쇠퇴하는 위협으로 간주한다. 그런 평가는 지전략적 축의 지위는 말할 것도 없이 과학과 공업에서 세계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1억4000만 인구의 핵강국 러시아에 대한 평가로서는 기이한 것이다.” 그는 이어 “러시아가 중국보다 향후 몇 년은 물론 수십 년간 미국과 서유럽의 메이저 도전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오핸런의 말대로 이번 전쟁은 러시아의 국력에 대한 블롭의 기이한 평가에서 말미암는다. 블롭은 러시아가 쇠퇴한 나머지 우크라이나로 나토를 확대하더라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문제는 블롭의 궁극적 목표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이다. 키신저는 ‘세계질서’에서 “나토의 동구 확대, 특히 모스크바의 수백 마일 내의 완충 국가인 우크라이나로의 확대 시도는 안보 차원보다는 민주주의 가치들을 확산시키기 위한 방안으로서 이루어져 왔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어 “균형의 전통적인 문제들을 중시하는 외교는 구식 외교로 배척되면서 공유된 이상적 가치들의 확산에 의해 대체되어 왔다”고 덧붙인다.

키신저의 이 분석은 나토의 창설 목적을 살펴보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오핸런은 앞의 책에서 “나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단합된 서구의 목표로서 세계의 핵심 산업·경제·군사 지역들이 적대국의 손아귀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나토 지도자들의 비전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들은 이 같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눈 내리는 먼 나라를 나토가 지켜준다는 것은 너무 버겁다”고 비판한다. 영국의 19세기 역사가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너무 먼 곳의 나라를 관리하겠다는 것만큼 자연의 질서에 더 반하는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롭이 나토의 우크라이나 확대를 강행하게 된 데는 키신저의 분석대로 안보적 이유보다는 러시아의 체제 전환 목적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블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더라도 어떻게든 나토에 가입시켜 민주주의 가치들이 러시아로 확산되기를 원했다. 러시아를 다원주의 체제로 이행시킴으로써 못 다 이룬 ‘역사의 종언’을 실현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블롭의 목표가 러시아의 체제 전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블롭의 최종 목표는 러시아를 체제 전환시킴으로써 중국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유라시아의 단일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저지하자는 데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키신저가 저서 ‘외교(Diplomacy)’에서 나토의 동구 확대의 최종 목표와 관련해 분석한 대목에서도 엿보인다. “나토의 동구 확대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소련의 위협에 대항해 고안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갖는 핵심 논리, 즉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강국들이 유라시아에서 발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는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나토 가입 막겠다는 푸틴의 목표는 달성되나?

그렇다면 지금 자유주의 진영이 경계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블롭의 이 같은 전략을 아무 비판 없이 따라가다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 큰 비극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블롭이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체제 전환을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중국의 대미 패권 추구를 견제해나가는 과정에서 전략적 관리가 잘못될 경우 미·중·러 간에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의 수잔 셔크의 경고를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저서 ‘중국: 취약한 슈퍼파워(China: Fragile Super-power)’에서 “부상 중인 강국들이 전쟁을 촉발하는 것은 그들이 반드시 공격적이어서가 아니라 패권국들이 현 질서에 도전하는 강국들을 잘못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셔크의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는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뒤지는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본격 추진했을 가능성이 있다. 블롭으로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실현시킬 경우 러시아의 체제 전환을 위한 기반 확보라는 성과를 미 국민에게 과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행여 러시아가 침공하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통해 푸틴을 실각시킬 수 있다면 중간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좋은 호재가 될 것이라고 계산했을 수도 있다.

이 같은 분석은 “모든 전쟁은 국내 정치의 연장이자 또 다른 수단”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에 기반한다. 블롭은 올 들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본격화함에 따라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바이든이 러시아의 2월 침공 가능성을 각종 회견을 통해 밝혔다는 데서 확인된다. 블롭과 바이든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그 전쟁을 통해 11월 중간선거 승리와 함께 3년 뒤 트럼프를 상대로 바이든의 재선을 위한 국내 지지를 확보하겠다는 국내 정치적 목표를 추구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블롭의 이런 전략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국과 서구의 언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 점령에 실패하고 돈바스를 중심으로 한 친러 성향의 동부지방 점령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푸틴의 패배를 전망한다. 현재 러시아는 도네츠크와 루한시크를 아우르는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와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케넌이 앞의 책에서 지적했듯이 “전투에서는 승리라는 것이 있을 수 있으나 전쟁에서는 목표를 달성했느냐 여부만이 존재한다”. 푸틴의 목표가 동부지방 점령만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이번 전쟁은 푸틴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점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저항에 막혀 키이우 점령에 실패했다고 보는 미국과 서구 언론의 평가와 달리 푸틴은 미국과 서유럽의 파병까지 초래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전체 점령이라는 완전한 승리보다는 동부지방 점령이라는 제한적 승리를 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실제 중국에까지 탄도미사일을 수출하는 탄도미사일 강국인 러시아가 키이우를 점령하려 했다면 탄도미사일로 키이우 대통령궁부터 타격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4월 말 프랑스 크기 면적을 단번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차세대 ICBM 발사에 성공한 바 있다.

 

중간선거 앞두고 전쟁의 역풍에 시달리는 바이든

블롭의 실패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고 대러 수출을 차단한 데 따른 유가와 물가 상승이 미 서민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에서 민주당에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와 2010년 글로벌 대침체를 겪으면서 상위 1%가 GDP(국내총생산) 26%를 차지하는 수준으로까지 부의 양극화가 심화해 왔다.

미 컬럼비아대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가 최근 “세계는 미국과 나토의 승리가 아닌 평화를 원한다”면서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고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하지 않는 선에서 이번 전쟁을 끝내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는 “대러시아 제재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해를 끼치며 공급망 혼란, 인플레이션, 식량 부족을 촉발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많은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에서 가스와 석유를 계속 수입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메랑 효과는 인플레이션이 유권자의 실질소득을 갉아먹기 때문에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원에게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삭스의 이 같은 주장은 동맹국들의 국민들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블롭의 또 다른 실책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와 대량살상무기 개발 금지 등 글로벌 공통 현안들에 대해 미국과 비교적 잘 협력하던 러시아가 이제는 협력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도발과 관련해 미국과 한국 등의 대북 경제 제재안을 상임 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한 데서도 확인된다.

이 점에서 시카고대 현실주의자 존 미어셰이머의 경고는 준엄하게 다가온다. 그는 ‘거대한 환상(The Great Delusion)’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강대국도 현 체제 내에 다른 강대국이 있는 한 자유주의 패권을 추구할 수 없으며 그 체제가 양극 체제든 다극 체제든 간에 모든 강대국은 현실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강대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한 나토의 우크라이나 확장이라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은 결국 ‘환상’이라는 것이다. 

이교관 한국대전략연구원장·‘패권 충돌의 시대 한국의 대전략’ 저자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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